2권이 먼저 나오다


기분이 영 그렇더니 결국은 2권이 1권을 추월하는 일이 벌어졌다. Theories des organisations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 내가 책을 내게 될 일이 있을줄은 몰랐는데...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Jean-Pierre Dupuy 책과 비슷하게 된 셈이다. 뒤삐가 내던 시절보다 10년 뒤에 나온 셈이라서, 그 시절에는 게임이론이 static model이었는데, 나는 조금 더 dynamic model을 많이 참조했다. 하긴... 그 시절에는 게임이론에서 dynamic model은 거의 없었다. 실제로는 최정규 박사의 <이타적 인간의 출현>과 쌍둥이 책에 해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수학적으로는 reference가 거의 겹친다... 하긴... 최정규 박사에게 많이 배웠다.

뒤삐가 조직 얘기 풀 때에는 mimetism, 모방적 행위 하나만을 가지고 풀었었는데, 그 시절에는 젊은 뒤삐에게 사람들이 전부 천재라고 그랬었다. 그는 요즘 뭐할까?

나는 <스팀보이>가지고 풀었다. 책 쓰는 내내, 에니메이션 <스팀보이>를 경제학 책으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그런 질문을 가지고 있었다. 스팀 보이의 '스팀'이라는 뜻은 사람 이름이다. 스팀가의 장남, 대충 그런 뜻이다. 이 만화는 "아톰, 그건 아니다"라는 질문을 가지고 있고, 지난 10년 동안 나온 일본 에니메이션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극우파는 싫어요"라는 노골적인 은유를 가지고 있다.

<스팀 보이>를 구성하는 두 줄기는, '아톰은 싫어요'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이다. 여기에서 무기를 만들고 파는 그런 재단이 하나 나오는데, 이 재단 이름이 바로 오하라이고, 스팀 보이 옆에 여자 주인공처럼 나오는 철없는 소녀의 이름이 바로 스칼렛이다... 개미허리로 숱한 여성들을 괴롭혔던 그녀의 이름이 바로 스칼렛 오하라... 바로 그 스칼렛의 소녀 시절 애기이고, 미국의 극우파를 형성하는 기본 축의 하나인 남부의 노예상이 결국 지금의 무기상들 아니냐... 이런 은유를 가지고, 스팀가의 용기가 세상을 위기에서 구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면 결국 소녀 스칼렛은 스팀과 헤어진 셈이다.)

하여간... 나도 만화를 좋아하기는 너무 좋아한다. 생각해보면,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의 기본 줄기와 이미지는 '에반게리온'에서 가지고 왔다. 폭주가 바로... 에바 초호기의 폭주에서 이미지를 따온 것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어디에다 얹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아픈 아이들의 세대>는 반지의 제왕에다 얹었고, 음식국부론은 국부론에 얹었고...

워낙 중층구조를 좋아해서, 몇 개를 가지고 기본 뼈대를 만드는 일을 내가 좀 즐기는 것 같다.

수학식 몇 개를 써놓고, 변수들 가지고 책을 쓰고 싶은데, 이러면 아무도 읽을 수 없게 되기 때문에, 결국은 방정식 형태를 가지고 있는 몇 개의 문학작품이나 만화 혹은 에니메이션 위에다 얹게 되는 것 같다.

by 비나리 | 2007/08/03 11:48 | 출간 이야기 | 트랙백 | 덧글(3)

맑은 정신

굉장히 오랫만에 '맑은 정신'이라는 표현을 보게 되었다. 참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말이다. 정신은 그런대로 정의할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맑다'는 말이 정의하기가 어렵게 만든다. '밝은 정신', '맑은 웃음' 같은 것들은 내용이 규정하기가 조금 더 쉽고, 바른 정신도 규정하기가 쉽다.

바른 정신, 이건 극우파들이 자신의 똘마니들에게 강요하는 정신이다.

맑은 웃음, 이건 회사에서 물건 팔아먹을려고 만든 말이다.

해맑은 웃음은 별 생각없이 작가가 "난 착한 사람이다"라는 표현을 덧씌우고 싶을 때 등장인물의 행위 표현을 통해 쓰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맑은 정신'은? 이건 행동을 요구하는 말인데, 늘 비겁했지만, 인생에 한 두번, 용기가 필요할 때 그 용기를 사용하라고 있는 단어에 가깝다. 정말로 불의를 봤을 때, 열 번에 단 한 번은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행위도 그러한 판단에 맞게 하라고 있는 단어가 바로 맑은 정신이라는 단어 아닐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도 비겁함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에게는 맑은 정신이라는 단어를 쓰지 못하고, 늘 정신 차리고, 그야말로 성경 표현처럼 '깨어 있는 사람'에게도 맑은 정신이라는 말을 쓰지 못한다.

('맑은 정신'이라는 단어는 매카시와 맞섰던 CBS의 먼로에 대한 글 중에서 발견했다.)

by 비나리 | 2007/08/02 03:05 | 파라독스 | 트랙백 | 덧글(1)

책 두 권은 인쇄소로 넘어가고...

<88만원 세대>와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라는 두 책은 이제 인쇄소로 넘어갔고, 다음 주 월요일 릴리즈를 시작한다고 한다.

지난 번 책 이후로 책을 내고 나서 인터뷰도 안하기로 했고, TV는 물론 책과 관련해서는 라디오에도 안 나갈 생각이다. 책 내면 한 달 정도 인터뷰에 시달리고 나면 아무 일도 못하는데,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겠지만, 예전에도 하기 싫은 데도 억지로 한 건데, 이젠 싫은 것은 안 할 생각이다. 교보에서 펜 사인회를 한 번 한 적이 있었는데, 내 인생에 오점으로 남을 일 중의 하나이다. 지금도 생각하면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저자는 책이 나가서 만들어지는 데까지만 역할이 있고, 일단 책이 나가고 나면 그 다음 역할은 없다는게 내 생각이다. 물론 예전에도 그런 생각을 안한 건 아닌데, 순진하기도 하고 - 무구하기도 한 건지는 모르겠다 - 뭘 잘 몰랐던 시절의 일이다.

8월에는 아르바이트로 하는 작은 보고서도 하나 만들어야 하고, 또 역시 아르바이트로 하는 책도 한 권 써야 한다. 일년에 한 달 정도 아르바이트하고, 또 일년 먹고 살걸 벌어야 하는 상황인데, 그래도 한 달 일하고, 열 한 달 놀 수 있으면 나쁜 상황은 아니다. 어지간한 월급쟁이 1년 연봉 정도를 한 달에 벌 수 있으면, 나같이 살고 싶은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기는 한데... 늘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한국 경제 대안시리즈 3권에 해당하는 DJ 독트린은 내 나름의 얘기는 거의 다 정리되었는데, 1, 2권에서도 아방가르드적인 시도를 좀 했었는데, 특히 2권은 상당히 전위적인 '날아라 슈퍼보드' 얘기들이 들어갔다. 그래도 내용이 전위적이라는 것이지, 만드는 과정이 전위적이지는 않았다.

3권은 시나리오 만드는 방법처럼 만들어볼려고 하는데, 영화 한 편이 보통 100씬에서 120씬 정도로 이루어지는데 비해서, 이건 40씬 정도로 만들어보려고 한다. 씬을 만드는 것은 박권일씨가 하고, 일종의 공동 작업처럼 씬의 구성을 놓고, 일종의 '갖다붙이기'나 '배열바꾸기'로 약간의 IQ 테스트 같은 작업을 해보려고 한다. 스토리 보드를 씬을 가지고 역으로 재구성하는 일을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다.

통일과 식민지라는 두 개의 키워드를 가지고 일러스트 화보집 혹은 말이 좀 많은 만화책 같은 것을 생각하는 셈인데, <다락방의 불빛>을 좀 어렵게 쓴 그런 것들을 머리에 그리고 있다.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의 에필로그를 그렇게 하고 싶었다. 쉘 실버슈타인 그림을 좀 몇 개 쓰고 여기에 말을 붙이고 싶었는데, 돈도 없었고, 그림 그려줄 사람도 찾을 수가 없어서... 그래서 그 책이 에필로그는 내 원래의 구상과는 달리 그렇게 딱딱한 것이 되어버렸다. 

미리 구상되어 배치된 그림에 경제학 이론과 공황론에 대한 설명 같은 것이 그림마다 따라 붙어서 이런 걸 40개 정도로 구성하는... 전체적으로는 200페이지 많으면 250페이지 정도되는, 일종의 만화책과 그림책 중간에 있는 뭔가로 만들어보고 싶은게, 나와 박권일씨가 합의한 내용이다.

그러니까 미리 글을 만들어놓고 그림을 갖다붙이는게 아니라 처음부터 이미지로부터 시작해서 그림과 글을 동시에 만들어나가는 그런 방식이 되는 셈이다. 이미지를 놓고 역으로 말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니까. 글이 주인공이 아니라 그림이 주인공인 셈이다.

일단 만들어놓으면 아마 열 개 정도는 추가로 이미지가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는데, 그건 짜맞추는 과정에서 발생할 일이라서 미리 결정할 건 아닌 것 같다.

글을 보고 이미지를 형성하는 능력은 나는 아주 약하지만, 그림을 놓고 글을 떠올리는 능력은... 그런 건 잘한다. 예전에 시인이 되고 싶었을 때, 내가 혼자 했던 훈련 중의 하나가 그런 게 있었다. 그림집을 갖다 놓고, 그림을 해석하면서 시 한 편씩을 만드는 훈련은 나도 몇 년을 했었다. 그러나 물론... 이런 건 원래 미술학도였던 박권일씨가 나보다 훨씬 더 잘 한다.

한국 경제에 대한 그림으로 보는 해석 정도가 될텐데, 누가 일러스트를 담당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아마 다음 주 정도 전체적인 방향에 대해서 소위 제작진이 협의가 되면 시작될 것이다.

그래서 이건 팀작업으로 책 혹은 그림책 한 권을 만들어내는 셈인데, 이 책의 주 독자는 고등학생으로 정했다. 지금 식의 통일 논의, 이건 아니다라는 얘기를 고등학생들하고 하고 싶어서 여러가지 양식을 생각하다 보니, 결국 만화 혹은 일러스트 그 중간에 해당하는 그런 양식이 나중에 결정된 셈이다.

1권은 20대를 위한 책이고, 2권은 CEO 수준이나 최소한 기업체의 부장급 이상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쓴 책이다. 물론 내용은 쉽게 썼지만, 아직 취직 준비 중인 사람이나 평사원이나 대리들이 상상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그런 전체적인 기업 경영에 관한 책인 셈이다. 읽은 사람들의 평으로는 문체와 글은 쉽지만, 내용은 쉽지 않다는...

3권은 고등학생들 혹은 10대들을 위한 책이 되는 셈이다. 정말로 그만큼 쉬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가장 쉽게, 그리고 vehicle도 그들을 위해서 이미지로 구성하려고 한다. 3권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는 1주일만 붙잡고 있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 손에 들어오면, 쉬운 얘기도 어려워진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박권일씨의 손에서, 그리고 일러스터의 손에서 더 많은 창작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나는 그 중간을 연결시키는, 딱 1주일분의 일만 하려고 한다 (물론 <한미 FTA는 폭주를 멈춰라>와 <아픈 아이들의 세대>와 같은 대부분의 책들이 실제로 초고를 만드는데 딱 1주일이 걸렸던 책들이라서, 말만 이렇지 나의 일주일이라면 책 한 권을 쓰는 기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건 대화를 많이 해야 하는 일종의 팀작업이라서, 정말로 표준 man hour로 one week를 쓸 생각이다.)

4권은 대학생을 위해서 쓸 생각이다. 그래서 3권을 전부 모은 내용이기도 하고, 일종의 전위적 대안경제에 대한 교과서의 형식을 가지게 될 것이지만, 아무도 경제학을 그렇게 해석하지 않았던, 그래서 새로운 경제학에 대한 내용이 될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절대로 "폴라니가 맞다"라는 명제와 정반대에 서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젠 폴라니를 덮어라"... 제목은 모르겠지만, 그런 키워드를 중심으로 교과서처럼 만들 생각이다. 이 책은 내 손에서 9월에 떠나보낼 생각이지만... 어쩌면 몸이 불편해지면, 내년으로 넘어갈지도 모르고, 중간에 생각이 바뀌면 더 늦어질지도 모른다.

하여간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4권으로 구성된 한국 경제의 대안 시리즈를 생각을 했었는데, 어지간하면 올해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기 전에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다. 사실 원래의 모티브가 찰스 디킨즈는 아니었는데, 사실 1월 이후로 여기까지 오는 과정의 가장 큰 모티브가 찰스 디킨즈였다는 사실은 맞다. 이 얘기는 <88만원 세대>에 앞으로 쓰게 될 것들에 대한 약간의 중의법으로 좀 설명을 해놓았다.

소망한다면, 이제 40이 되는 한 경제학자가 올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경제학이라는 학문으로 이 사회에 줄 수 있는 선물이라는 생각으로 이 작업을 계속 끌고온 셈인데, 실제로 디킨즈에게서 내가 배운 것이 많다. 만약 찰스 디킨즈가 아니었다면, 벌써 길을 잃고 삼천포로 빠졌을 가능성이 높지만, 디킨즈가 영국 사회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건 축복인데, 자본가들이 말하는 상품 속에서의 축복은 결코 아니다.

물론 내가 올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맞춰서 내놓고 싶은 책은 이 대안경제 시리즈는 아니다. 그건 그 전에 벌써 끝나있을 것이고, 생태경제 시리즈 3권을 그때쯤 내놓으면서, 피곤한 올해를 접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2권은 대학원 수업, 3권은 학부수업의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라, 종강 전에 정리가 가능할 것이고, 여기에서 하일라이트는 중고등학생들에게 일종의 생태윤리에 해당하는 1권이다. 이 1권은 아직 내용 구상이 안되었고, 나에게도 소위 quite challange... 어려운 숙제 같은 것이다. 2, 3권은 이미 여러 번 했던 수업들을 정리하는 내용이라서, 강의 노트를 아주 재밌게 재구성한다는 정도로 마음을 먹고 있고, 게다가 3권은 "이공계생을 위한 생태경제학"이라는 틀로 이미 다 써놓은 것을 재구성하는 거라서... 말은 세 권이지만, 있는 걸 그냥 정리하는 것에 가깝다.

여기까지 해놓고,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나서 올해 크리스마스는 아프리카의 토고나 마다가스카르 같은 곳에서 보내고 싶다는 야무진 꿈이... (누가 이 여행에 좀 돈을 대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아주 없지는 않은데, 여행은 내 돈으로 간다는 내 성격 때문에 아마 돈을 받을 것 같지는 않다...)

by 비나리 | 2007/08/01 23:22 | 출간 이야기 | 트랙백 | 덧글(1)

대학교 신문사와 교지는 뭐가 다를까?

나는 대학생과 20대에 더 많은 발언기회와 공식 데뷔의 창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리고 지금 이 사회의 구조가 '지체된 데뷔'라는 것을 아주 특징적으로 만들어내고, 이런 것들이 우리나라 퇴행의 한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많은 출판사의 에디터들은... 그들도 한 때는 대부분 문학도였거나 예민한 분석가들이었는데, 자신들의 글이 가장 섬세하고 아름다웠던, 그리고 날카로웠던 시기를 25세를 전후한 시기라고 회상한다. 사실 가장 예민하고 불안하면서도 섬세한 글은 그 나이 때 나오고, 내 경우도 그랬던 것 같다. 서른을 넘어가면, 이미 쓴 맛을 한두 번씩 보면서 이미 한 번 무뎌진 상태이다.

꽤 큰 출판사의 에디터들이 예전에 쓴 내 글을 보고 20대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서 약간 노력을 했다고 하면서 나에게 전해준 말들 중의 일부는 새겨들을 만하다. 게시판의 글과 같이 작은 글들을 보고 실제로 만나서 책 한 권의 집필을 부탁하면, 대부분 책 한 권을 써내지 못한다고 한다. 이건 현실적인 지적인데, 아마 글을 쓰고 싶어하는 20대들이 좀 생각해볼만한 구석이 있을 것 같다.

하여간... 어쨌든 20대에게 더 많은 발언기회를 주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그 창구로 생각해낸 대안이 대학교 신문사와 교지의 편집국장이나 기자들이다. 예를 들면 최장집에 대한 비판을 한다고 할 때, 여기에 패널을 두 사람을 붙이는데, 그 중에 한 명을 이런 사람들로 채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전위적인 시도이기는 한데, 과연 최장집의 권위에 눌리지 않고 불만을 비록 날 것이라도 가지고 있을 20대가 있을까?

비슷한 시도를 몇 번 해본 적이 있기는 한데, 지금까지는 결과는 좋지 않았다. 40대는 아예 그런 비판의 자리에 나서지 않고, 30대는 취직자리, 진로 이런 거랑 엉켜있어서, 특히 학위 마지막 과정에 있는 사람들은 생각과 달리 사회적 발언은 거의 하지 않는다. 이해는 가는게... 괜히 학위도 받기 전에 비판의 예봉을 펼쳤다가 진짜 학위도 못 받고 인생 곤란하게 된 사람이 여러 명 있다.

그렇다면 20대는? 내가 경험해본 아주 작은 사례로는... 이런 자리를 마련하면, 선생님, 존경합니다, 사랑해요...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 다시 검증된 사람들로 논쟁구도를 만드는데, 장기적으로는 그 나물에 그 밥인, 익히 우리가 봤던 잡탕국이 되어버린다.

예를 들면, 한국 사회와 들레쥬... 이런 토론회를 만든다고 생각해보자. 이런 토론회는 하나마나이다. 사랑해요, 들레쥬, 존경해요, 들레쥬, 누굴 어떻게 불러놓고, 어떻게 주제를 구성해도 거의 100% 논쟁 결과는 이렇게 나올 확률이 높다. 기껏 불꽃튀게 붙는다고 하면, 누가 책을 더 많이 봤는지, 더 여러 번 봤는지... 결론은 "내가 들레쥬 더 잘 알아", 이런 토론회가 된다. 이런 건 하나마나이다.
하여간 이런 그 나물에 그 밥을 피하기 위해서 대학생들에게 기회를 주자는 데까지는 합의를 봤는데, 실제로 지금의 대학생들과 가장 최근까지 토론을 하고 있는 분들이...

신문사 편집국장이면 가능성이 있고, 교지는 안된다고 하신다.

내 기억에는 예전의 대학 신문은 기사 만들어내서 분량 채우느라고 정신이 없었고, 진짜로 길게 숨을 가지고 기획하는 것들은 교지에서 주로 했는데, 지난 20년 동안 무슨 일이 이 안에서 벌어진 것인지 궁금하기는 하다.

예전에 서강대 교지부에 아주 친한 친구가 있어서, 지리산의 빨치산에 관한 기획기사 만들고 그런 일을 같이 한 적이 있었다. 연세대학교 영자 신문에 기자로 활동하던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교시절까지의 친구가 삼성 X-파일로 유명해진 MBC의 이상호 기자였는데, 솔직히 그 시절에는 대학 교지가 신문보다는 좀 깊이가 있었던 것 같다.

영매 얘기로 지율스님의 책에도 실렸던 내 글이 원래는 어느 지방대학교 교지에서 부탁받아서 썼던 글인데... 생각해보니까 난 대학교 교지나 대학원 신문 같은 데에 기고를 많이 한 편이다 (이런 데는 원고료 없어도 영광으로 알고, 최선을 다해서 쓴다.)

그런데 하여간 교지와 신문사 사이에 뭔가 차이가 있으니까 사람들이 지금 그 차이를 지적하는 것인데, 작동 메카니즘에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사실 자치라는 가슴 뛰는 단어의 한 가운데 들어가 있는 것이 대학교나 대학원 신문이고, 교지이기는 하다. 이런게 좋아져야 길게 보면 이 땅에 희망이 생길 것이기는 하다.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와 이런 것들이 좋아지려면 뭘 해야하는가, 이 두 가지의 질문이 오늘의 고민거리다.

by 비나리 | 2007/08/01 13:23 | 그냥 잡담 | 트랙백 | 덧글(9)

Royal Charter에 대한 번역은?

한겨레 신문에 3주에 한 번 칼럼을 쓰는데, 예전 명랑국토부 시절의 2주 주기 보다는 조금 편해졌다. 2주가 있으면, 2주를 준비하게 되고, 3주가 있으면 3주를 준비하게 된다.

보통 칼럼을 쓰게 되면 세 개 정도의 주제를 준비해서 압축을 시작하게 되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두 개 중에서 하나를 들고 고민을 하다가, 결국 하나는 버리게 된다. 물론 준비한게 아까워서 버린다고 하면서도 이건 더 준비해서 다음 번에 쓰겠다고 생각을 하지만, 막상 그렇게 둘 중에 하나가 남았던 것이 다시 칼럼이라는 형식으로 신문에 나가게 된 적은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또 다른 사건이 생기면 3주 전에 생각했던 것들은 이미 요단강 너머로 가버린 내용들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칼럼을 쓰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두개 혹은 세 개 정도의 논문 거리를 준비해서, 별도로 전개하면 2~3개의 논문이 되었을 내용을 하나로 압축하는 방법을 즐겨 사용한다.

내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일단 내가 글을 잘 못쓴다는 사실을 내가 아주 잘 알고 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다. 역사에 남는 명문, 혹은 몇 줄로도 감동시키는 좋은 글, 하고는 싶은데, 이건 내 능력상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글만 잘 쓸 수 있다면야 논문거리가 아니라 삶의 작은 소사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것들을 얘기할 수 있겠지만, 나같이 너절하게 글 쓰는 사람이 택도 없이 명문장 흉내냈다가는, 그야말로 어떤 꼴불견이 나오게 될지는 너무 뻔한 일이다.

두번째 이유는, 내가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잔챙이라는 점을 역시 내가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뭔가 내용이라도 들어가 있어야 한 번이라도 읽을만한 글이 되지, 내용도 없다면 그 글에 시선이 머물렀던 사람에게 민망하게 될 것 같다.

이런 이유들로, 결국 2배, 2배가 안되면 3배, 이런 물량공세를 사용하게 된다. 원고지 여덟장 분량에 논문 두개 혹은 세개의 내용을 담으면, 중간에 중대한 논지 전환이 한 번 혹은 두 번이 생겨나게 된다. 그래서 설명할 여유가 별로 없기는 하다. 그러나 분량이 늘어난다고 해서 내 경우에는 내용이 좋아질 것 같지는 않다.

요번에 쓰는 글에는 두 개의 주제가 각축 중인데, 하나는 KBS 시청료에 관한 이야기이고, 또 다른 하나는 영어 시험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마 공영방송과 시청료에 관해서 쓸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건 커버에 관한 이야기이고, 2차 텍스트는 부동산 투기에 대한 사회적 자세인데, 이 글을 통해서 정말로 내가 의도하는 바는 한국에서 '좌파와 우파가 같이 동의할 수 있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공영방송의 시청료 얘기는 그 자체로도 하나의 목표지만, 속내로 보면 "그래도 우리가 동의할 수 있는 것들은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이끌어내기 위한 일종의 커버 레터에 해당하는 셈이다.

나의 이런 글쓰는 습관은 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 긴 글이든, 짧은 글이든, 보통은 세 개의 레이어라는 아키텍처를 갖는 형태를 나는 좋아하고 선호하는 편이다. 기승전결, 혹은 서론 본론 결론, 이런 구조에 의해서 생각하지도 않고, 그런 서술 방법을 중심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물론 내 글도 가끔은 이렇게 3단 구조, 혹은 4단 구조를 갖기도 하지만, 보통은 글 내부의 세 개의 레이어를 짜는데 더 시간을 많이 들이고 공을 들이는 편이다.

이런 습관이 아마 프랑스에서 대학원 시절에 무수히 써내려갔던 시험답안과 그 시절의 프랑스식 글쓰기 과정에서 생겨난 습관이 아닐까라고 스스로를 의심해보기도 한다. 보통 대학원 이상의 프랑스 답안은 A4보다 조금 더 큰 백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15점 이상을 받고 싶다면 이걸 앞뒤로 빼곡이 3장에서 4장 정도는 적어내려가야 한다. 시간은 3시간을 주는데, 경우에 따라서 4시간을 주기도 한다. 문제는 두 문제 중에서 택일이다.

이 시험의 첫번째 레이어는 주어진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직문직답식인데, 워낙 질문이 광범위해서 이것들을 정확히 A4 앞뒤로 적으면 딱 10점을 맞게 된다. 물론 주어진 시간 내에 서술하다 보면 틀리는 내용이나 평소에 잘못 알고 있던 내용들도 들어가고, 알았는데 서술과정에서 예를 들면, 불어 작문의 실수에 의해서 거꾸로 적게 되던가 - ne 같은 걸 강조한다고 잘못 사용하거나 가정법의 시제가 몇 글자 차이로 틀리면 내용이 반대가 되어버린다 - 하면 9점 밑으로 내려가고, 여기에서 1점만 더 내려가면 과락기준에서 달랑달랑하게 된다.

두 번째 레이어는 출제자에 의도에 대해서 과하지 않도록 적절히 반박하는 걸 깔아야 한다. 내가 당신 이 문제 왜 냈는지 아는데, 그러니 여태 당신이 이 모양이지... 혹은 10년 전에 이런 식의 문제가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때가 어느 땐데 아직도 이런 문제나 내고 있느냐... 이건 기술적으로 세밀하고, 예의가 필요한 작업이다. 만약 택도 아닌 방식으로 출제자의 의도를 공격했다면, 이젠 8점이 아니라 0점도 각오해야 한다. 기술적인 시험이었는데, 이걸 잘못 처리해서 4점을 받고 결국 재시험을 보게 된 경우가 있었다. 이 때내가 주로 했던 주의사항은 첫번째 레이어에서 기술적으로 출제자의 의도에 대한 공격이 연결되도록 논리적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분량이 과하면 안되고, 또 절대로 출제자가 자신을 직접 공격한다고 느끼도록 하면 안된다. 어쨌든... 채점자는 출제자이기 때문이다. 상당히 도전적인 자세인데, 이 두번째 레이어를 통해서 문제는 물론 내가 쓴 답이 과연 학계에서 어떤 자리에서 어떤 흐름에 있다는 것인지를 내가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프랑스에서 대학원 이상의 시험에서는 단순하게 기술적인 지식을 묻는 것만은 아니고, 기술을 전수하는 마에스트로와 전수받는 사람 사이의 일종의 대화에 가깝다. 이 두 번째 레이어는 첫 번째 레이어의 중간중간에 아주 가볍게 감춰둬야 하지만, 물론 아무리 감춰도 전공자들은 그게 무슨 말인지 잘 안다. 결국 자기 욕인데, 숨겨놓았다고 그게 숨겨지겠는가. 애교로 도망갈 수는 없고, 만약 정확하고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이 질문을 할 수 없다면 두 번째 레이어는 포기하고, 그냥 10점을 기대하는 것이 좋다. ENSEE에서 봤던 시험에서 워낙 문제가 어려워서 아예 이 두 번째 레이어는 포기하고, 그냥 첫 번째 레이어만 가지고 답을 쓴 적이 있다. 운이 좋게 12점이 나왔는데, 그 과목에서 매우 화려한 등수를 얻었던 적이 있다.

세 번째 레이어는 아주 어렵다. 왜 내가 지금 시험을 보고 있느냐, 그리고 왜 당신은 이 문제를 내고 있고, 우리는 이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지금 한 학기 동안 수업 혹은 세미나라는 공간에서 마주보고 있었고, 나는 어떻게 세상을 살고 싶다... 이런 학자로서의 결심 혹은 앞으로 연구하고 싶은 분야 같은 것을 문제의 행간에 대한 약간의 비판들과 함께 살짝 밀어넣는 것이 15점을 넘어가는 기록적인 점수를 얻기 위해서 필요한 세 번째 레이어이다. 물론 보통의 경우라면 이런 것까지는 필요가 없지만, 내가 쓴 불어에는 수많은 철자오류와 문법오류를 가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내가 불어로 쓰니까 이렇지라고 - 사실 우리말로 써도 오히려 그 이상의 오탈자와 문법오류가 나온다 - , 하여간 뭔가가 더 필요하다. 한문장, 길면 두 문장 같은 것들을 예를 들면 장-밥티스트 세이의 업적에 평가하면서, 가정법 혹은 조건문 같은 것을 동원하고, 주어도 'on'과 같은 비지칭 주어를 사용하거나 수동형 같은 것을 활용해서 살짝 끼워넣던 것이 내가 주로 쓰던 수법이다. 선생을 단순히 감동시키는 것만으로는 15점을 넘어서거나 혹은 이 오류 투성이의 불어문서를 과락으로부터 구해내지 못하고, 같이 연구하는 동료라는 생각에서 약간의 뭔가가 더 필요하다... 그렇게 해서 몇 번 17점과 18점을 넘긴 적이 있었는데, 내가 15점을 넘겼던 모든 시험들은 예외없이 이렇게 세 개의 레이어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렇게 답안을 쓰고 나면 학기가 끝나고도 나중에 선생이 따로 부르거나 혹은 곤경한 일이 처했을 때에 자상하게 도움을 받게 된다... 나도 몇 번 그 시절의 답안지 덕분에 죽다 살아난 적이 있었고, 대학원 입학할 때까지의 고생과는 달리 마지막 학위를 내는 순간까지 정말이지 편하게 지냈고, 약간 특별 대우를 받으면서 지냈다.

그 시절의 습관이 몸에 배어서인지, 대체적으로 세 개의 레이어로 글을 구성하려는 경향이 나에게는 있다. 그래서 내가 혼자 보면서 흐믓해 하는 몇 개의 글들은 이렇게 세 개의 레이어를 구성하는데 성공한 글이다.

나중에는 정주영 회장한테 올라가는 보고서나 총리한테 가는 보고서도 이렇게 세 개의 레이어로 구성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 때때로 잘 썼다는 소리를 듣고, 때때로 도대체 그 말은 왜 넣었냐고 드럽게 터지기도 하고... 세상은 학기말고사와 같은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의 이 전략은 한국에서 그렇게 유효하지는 않다는 것이 대체적인 내 판단이다. 일단 우리말이 불어와 같이 은근한 조건법이나 부대상황 같은 것들을 숨겨서 표현하는데 그렇게 간단치가 않고 - 그렇다고 내가 우리말보다 불어를 더 잘한다는 것은 아니다 - 또 수동형 같은 것으로 교묘하게 능동과 수동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도 우리 말 표현에서는 어쩐지 어색하다.

쓸데없는 얘기가 괜히 길어졌다. BBC에는 Royal Charter라는 것이 있다. NHK는 공영방송으로 왜 좋은 방송이 되었는지는 2주 동안 좀 들여다봤는데 아직도 전혀 이해를 못했고, BBC의 경우는 Royal Charter라는 존재와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라는 점에서는 약간의 프레임이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이 Royal Charter를 어떻게 번역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방송국이 여왕과 한 약속인 셈인데, 왕립, 고귀, 황제 - 이러다 황송까지 나오겠다 - 그 어떤 수식어도 이 맥락에서는 잘 안 맞는 것 같고, Charter도 늘상 하듯이 장전이라고 해서는 뚯이 안통할 것 같다. 황실 장전? 무슨 AK 탄창튀어나오는 소리 같다. <경제 비타민> 같은 것 좀 하지 말라는 한 문장을 원고지 여덟장으로 늘리는 일이 막상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쉬운데, 정말로 이걸 사라지게 하는 사회적 행위 혹은 유사한 사건이 벌어질수 있도록 주어진 원고지 여덟장에 말하는 방법은? 그냥 안 없애면 총들고 쳐들어간다는 단 하나의 문장이 복잡하지 않고, 간결해서 좋은데, 이런 문장은 우아하지가 않다.

다른 사람들은 원고지 여덟장을 어쩌면 그렇게 우아하게 잘 메꾸는지, 이럴 때는 부럽기도 하다.

by 비나리 | 2007/07/31 04:41 | 그냥 잡담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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