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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전고투

20대 얘기는 거의 정리가 끝나가는데, 3주 동안 그야말로 악전고투인 셈이고, 이 악전고투가 클라이맥스로 향하고 있다. (물론 그래도 2부의 챕터 두 개를 더 써야 한다...)

세대간 분배 문제에 대해서 거의 마지막까지 왔는데,

아. 다단계판매와 조직폭력배

이렇게 이름을 붙여놓고 잠깐 쉬기로 했다. 조직폭력배는 지하경제에 대한 선행 연구가 몇 개 있어서 대체적으로 국민소득의 10% 정도 규모가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라는 정도는 있고, 여기에서부터 간략하게 추정해보면 우리나라 경제 규모의 5~6% 정도가 조폭시장 규모라고 정부 공식연구를 통해서 얘기할 수 있다.

그런데 다단계판매는 종내 그 규모를 모르겠다. 좀 몸을 사용하면 신고된 업체의 매출액을 다 더하고, 여기에 불법다단계의 매출액을 추정하면 공식적인 규모야 알 수 있겠지만, 불법다단계의 매출액을 어떻게 추정하나? 게다가 1위라고 했던 JU의 발표된 매출액이 수조원 규모라고 하는데, 내 생각에 비해서 너무 숫자가 작다. 우리나라 경제가 800조원짜리라고 한다면, 1%면 8조, 5%면 40조 정도 되는데, 못되어도 그 정도 규모는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런게 심증만 있고 확증은 없다는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예전에 한겨레에 바다이야기 관련된 글 쓸 때 약간 도박산업 추정을 해본 적이 있는데, 그 때에는 발표된 상품권 매출액과 서민경제 총액 두 가지를 비교해서 생각보다는 손쉽게 추정을 했었다. 상품권 발행액이 있으면 어차피 사람들이 바다이야기류에 지불한 총비용은 그 내에서 나오기 때문에 손 대기 쉬운 편이다.

이런 황당한 종류의 추정으로 또 한 번 했던게 집창촌 사태로 여성단체가 코너에 몰렸을 때 총 경제규모를 계산해본 적이 있다. 하도 오래되어서 숫자도 잘 기억나지 않는데, 그 때는 형사연구원에서 추정한 수치와 여성단체들에서 추정한 수치의 원 데이타를 놓고 아마 투입산출표의 경제유발효과 평균치를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얘기를 풀어가는데 총규모가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난 김에 계산이나 추정을 한 번 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잠깐 찾아봤는데, 숫자가 잘 나오지는 않는다. 재경부 과장이면 10분 내에 알 수 있는 숫자이기는 할 것 같은데, 정부 밖에서 이런 간단한 숫자의 내부 보고서 같은 것을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뭐, 정 안되면 국정원에서 얼마 전에 다단계 판매 규모 조사해서 청와대에 내부 보고하면서 숫자를 언론에 흘린 게 있기는 하니까. 그 숫자를 가져다쓰면 된다.

우리나라의 경제조직에 관해서는 태권도 대표단에서 상공회의소 그리고 전경련과 기타 등등 자영업까지 대체적으로 다 분석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세대간 분배와 진입장벽이라는 두 가지 기준을 가지고 분석을 해봤다.

처음에는 생각을 못했다가 느끼게 된 점이 이 정도로까지 20대가 불리할 줄은 몰랐는데, 현재 전개되는 형국이 20대에게 대단히 불리하다. 나도 놀랄 정도였다.

작년에 몇 가지 통계작업을 하면서 우리나라의 10대 여성이 가장 불리할 것이라는 생각을 좀 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의 20대는 평균적으로 거기에 비견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는 않다. 개별적 탈출구는 있을 수 있는데, coordination game이라고 부르는 그런 상황으로 전개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사실 진작에 20대 얘기는 이미 끝내고 다음 얘기로 넘어갔어야 할 것 같았는데, 탈출구 혹은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 같은 얘기를 생각하다 보니까, 너무 얘기가 깊어졌고, 이젠 내가 탈출구가 필요한 순간이 왔다.

벌써 A4 70장에 육박하기 때문에, 다음 얘기를 위해서라도 더 이상 늘릴 수 없는 상황인데, "잘 해보기를 바래"라고 마음 아프게 툭 던지고 도망가고 싶지는 않다.

두 권으로 책을 나누라고 조언해주는 사람도 있었는데, 어차피 탈출구가 없기 때문에 양을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왜 20대가 다단계 판매에 몰리는가 혹은 조직폭력배는 왜 20대를 환영하는가... 이런 건 개리 베커의 논리 정도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잘 설명해줄 수 있는데, 그게 결론이 아니라는데 사태의 어려움이 있다.

악전고투에 진퇴양난인 셈이다. 조금 더 들어가서 더 잔인한 분석을 할지, "잘 해보기를 바래"라고 문을 닫고 도망갈지 선택해야 하는 순간인데,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

가끔 이런 순간이 오면, 경제학은 진짜 피도 눈물도 없는 학문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리카아도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경제학을 했다고 하던데, 진짜로 리카아도가 사람을 구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의 경제학원론을 읽어보면, 언젠가 세상은 망한다, 바둥거려바야 그 종말을 피할 수 없다... 끝... 이렇게 되어있다.

계보상으로 리카디안 경제학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건 피에로 스라파라는 이탈리아 사람이 리카아도를 재해석하면서 만든 경제학이다. 네오 리카디안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스라피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스라파는 친구였던 그람시에게 경제학을 가르켜주었고, 그람시의 옥중서신 중에는 스라파와 나눈 편지들도 있다. 이탈리아 친구들에게 들은 얘기로는 스라파 없는 그람시는 상상할 수도 없다고 한다. 내 주위에서 그람시를 제일 열심히 읽었던 사람은 10년 전의 윤소영 선생이었는데, 그 후에 네그리도 읽고 한참을 헤매다가 요즘은 뭐 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정운영 선생이 평생 소장하던 책을 윤소영 선생한테 돌아가실 때 넘겨주었는데, 윤소영 선생은 그 책을 전부 서울대에 기증했다...

(또 딴 얘기로 빠진다. 그 책들이 내 생각에는 정운영 선생을 개인적으로 불행하게 만들었는데, 집을 사도 될 시기에 책 때문에 넓은 집에 살아야 한다고 전세로 평생을 전전하다가, 돈 때문에 중앙일보로 옮겼고, 마지막 순간에 "도대체 네가"라는 말을 듣고 돌아가셨다.)

리카디안 경제학으로부터 출발한 윤소영 선생도 암만 생각해봐도 세상 구할 것 같지는 않다... 또 다른 네오 리카디안 논쟁에 들어가 있던 강남훈 선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

하여간 피도 눈물도 없는 출구와 비겁한 출구 두 개를 앞에 놓고 악전고투를 끝내기 위한 고민 중인데, 정말 판단이 잘 안 선다.

내가 지금의 20대라면 이 상황에서 개인적으로 어떻게 돌파구를 찾았을까? 만 스물 한 살에 유학갈 때 내가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었을까? 나는 어차피 그 때 수배받고 감옥가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기 때문에 별 두려움 없이 유학을 선택한 것 같다.

지금 내가 그냥 20대의 대학교 3학년이라면 어떤 삶의 출구를 생각했을까? 가보지 않고,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아무리 상상해봐도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고시 보기로 했을까? 아니면 역시 유학을 선택했을까?

개인의 삶에 대한 질문은 아무리 가볍게 생각해도 가벼워지지 않는다. 삶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특징이 있나보다. 아무리 작아보여도 개인에게는 그것이 자신의 우주의 전부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간 20대에 관한 장은 열기도 어려웠고, 중간에 지나오는 것도 어려웠는데, 닫는 것도 너무 어렵다. 악전고투 중이다...

by 비나리 | 2007/01/31 02:30 | 출간 이야기 | 트랙백(1) | 덧글(7)

<어둠 속의 희망> 서평을 마치고

리베커 쏘울닛이라는 미국 평론가이며 현장활동가가 쓴 <어둠 속의 희망>이라는 책의 서평을 마쳤다.

"위기에 놓인 진보세력, 희망은 있는가"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의 서평은 황해문화에서 부탁받은 것이다. 황해문학은 몇 년 전 북한에 관한 토론회 때 이필렬 선생에 대한 토론자로 참여한 적이 있고, 직접 기고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좋은 잡지로 알고 있고, 지역에서 이런 것이 버틴다는 것에 대해서 상당한 경외감을 가지고 있다.

서평이 가지고 있는 어려움은 두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데, 첫 번째가 객관성이고, 두 번째가 부가가치라고 생각한다.

객관성은 실제로 서평할 때 갖는 첫 번째 난관인데, 수없이 밀려오는 서평에 대한 부탁 중에서 그래도 서평을 쓰기로 마음을 먹은 책은 나름대로는 괜찮은 책이고, 읽어볼만한 책을 받게 된다. 싫거나 악평을 해야할 책이라면 아예 서평을 쓰지 않게 되는데, 원래는 좋은 평과 나쁜 평을 객관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서평을 쓰는게 맞는데, 매체에 서평을 쓰게 될 때에 소위 나는 전문 리뷰어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책만 받게 된다. 딱 한 번 총리실 있던 시절에 서평 쓰고 싶지 않은 책의 서평을 쓴 적이 있다. 정말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책이고, 내 입에서 나올 얘기는 욕 밖에 없었을 것이 뻔함에도 불구하고 잡지사에서는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 책의 서평을 쓰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에, 나도 안 쓰면 안된다는 말을 강조했다. 결국 매우 싫음에도 불구하고 서평을 썼는데, 이 책이 별로 읽을만한 필요가 없다는 표현을 돌려돌려가며 딱 한 줄을 집어넣었다. 비지니스라는 제목을 달고 있던 책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도대체 비지니스라는 제목을 가진 책을 어떻게 나한테 서평을 부탁하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내가 쓴 서평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독수리 오형제"라는 제목을 달았던 서평인데, 창비 어린이에서 부탁받았던 서평이다.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고, 하여간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어둠 속의 희망"이라는 책은 권하고 싶은 책인데, 아마 사람들은 죽어라고 안 읽을 것이고, 왜 이 책을 읽어야 하고, 무슨 메시지를 받아야 하는지가 즉각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 책이다. 이 경우에 두 번째 난관인 '부가가치'라는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서평을 통해서 책에 숨겨진 숨은 메시지나, 번역서의 경우에 특히 한국의 맥락에 집어넣는 일들이 이 책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일에 해당하는 일이다.

이 서평은 이 두 번째 문제에 대해서 약간 신경을 썼는데, 상당히 논쟁적으로 서평을 마무리했다. 왜 노무현주의자들은 실패하였는가에 대한 질문을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면서 책을 다시 독해하는 방식으로 서술한 셈이다.

많은 경우 책은 사회적 질문이 던져지는 경우에 비로서 유효하게 된다. 나는 이렇게 질문던지는 것을 특히 선호한다...

어떻게 보면 속이 깊은 것이고, 어떻게 보면 악취미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면 당연히 사람들이 내리게 되는 결론을 뒤집어보는 질문 같은 것... 그게 내가 서평을 쓸 때 꼭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한데, <어둠 속의 희망>에 대해서는 그런 질문거리 하나를 찾아낸 경우에 해당한다.

글은 졸고라도, 질문이 유효하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가 그렇다. 그래서 나는 작가는 아니다. 우리나라의 작가들은 질문은 꽝이라도 글이 멋지기를 바란다. 그런 사람들이 전문 작가라고 자신들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난 작가라기 보다는 학자에 가깝다... 글 못쓰고, 따분한 질문들...

by 비나리 | 2007/01/30 17:58 | 출간 이야기 | 트랙백 | 덧글(4)

에코가 몇 사람을 살렸을까?

움베르트 에코가 베르베르를 살린 것은 확실하다. 에코가 없다면 베르베르도 없다. 그렇다면 베르베르가 몇 사람을 살렸을까? 베르베르는 날 살렸다. 그러니까 움베르트 에코는 두 사람을 살린 것은 확실하다.

그와 같은 루트로 추적을 해보면, 에코로 인해서 산 사람은 많다. 그리고 그가 살린 사람으로 인해서 산 사람도 적지 않게 있다.

서울대 교육학과를 나와서 유학갔던 박사라고 대충 수염이나 기르면서 살았던, 그리고 누구나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읽고 살아나는 것을 보았다.

공각기동대의 TV 시리즈의 "Stand Alone Complex"에는 스마일 맨이 나온다. 모방의 원 저자인 스마일 맨은 자신을 스마일 맨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는 원본에 해당한다. 그는 2030년 대에 보존하기로 일본 정부가 결정한 도서를 분류하는 일을 하는, 요즘 식으로 얘기하면 사서에 해당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가 심심해서 하는 일이 해커이다. 이 이야기가 장미의 이름의 오마쥬라는 것은 모른다면... 뭐, 더 할 말은 없다.

하여간 이런 식으로 숫자를 조금 늘려서 OECD 비율로 생각해보면, 에코는 최소 6,000만 정도의 숫자는 살린 것 같다. 우울증과 자살강박 그리고 "먹고 살아야 한다"에서 그 정도 숫자는 구해준 것 같다. 물론 세계 인구로 보면 아무 의미도 없는 숫자지만, 그냥 에코의 책만 읽고 있어도 전 세계의 이 정도의 사람들은 살아나게 되었다.

푸코의 추에서 에코가 던진 메시지는 간단하다. 프리메이슨 같은 이상한 조직 만들지 말고, 뭉치지 말고, 자신을 드러내지 말라는 말을 한 셈이다.

그리고 연이은 책들에서 스탈리주의의 심각한 것들을 버리라고 주문했다. 혹시 사람들이 자신의 전작을 이해하지 못할까봐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법"이라는 해설서까지 발간했다.

그래도 에코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바우돌리노"를 저술했다. 장미의 이름은 너무 어렵다.

내가 에코의 말을 아주 조금 이해한 것은 "장미의 이름의 에필로그"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100 페이지 안팍의 작은 또 다른 해설서를 읽고 난 다음의 일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는 안 나온 것 같다...)

바우돌리노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을 위한 책이다... 정말 이 책은 그렇다. 아마 세계 인류의 1/10은 살리겠다고 마음먹고 작정하고 낸 책이다...

이 책은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법"의 마지막 종단에서 이어지는 책이고, 혹시나 이 책을 이해하지 못할까봐 "논리와 추리의 기호학"이라는, 먼저 읽어야 하는 책을 친절하게 이미 발간했다.

와트슨이라는 이름을 듣자 말자 19세기 영국과 여왕이라는 단어들이 즉각적으로 떠오른다면, 이 책은 읽지 않아도 좋다.

내가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잘 해야 다섯 명인데, 대개 사람은 한 명에서 열 명 사이를 살릴 수 있다.

에코는 한 100명쯤 살린다고 생각하고 세상을 살라는 주문을 하는 셈이다. 그래서 그는 추리와 사유를 사람들에게 계속 요구한다.

에코는 몇 천 만명은 전 세계에서 살린 것 같은데, 100명을 살린다고 생각하면 과연 나는 혹은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답은 에코의 모든 책에 있다. 자기가 처한 바에 따라 골라 읽으라고...

한 명을 살리고 싶으면 책을 버리고, 두 명을 살리고 싶다면 종교서적을 집고, 열 명쯤 살리고 싶다면 장미의 이름을 보면 된다... 요르게를 죽이면 열 명쯤 살리게 된다.

그러나 정말 많은 사람을 그러니까 백 명 정도 살리고 싶다면 "추리와 추리의 기호학"이라는 책을 보면 될 것 같다.

나의 벗이였던 노빠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논리와 추리의 기호학"을 보면 노빠라도 백 명쯤 살릴 수 있게 된다.

민족을 살리고 싶거나 국가를 살리고 싶다면...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법"을 읽고, 집에 가서 발 닦고 자라고 에코는 말하는 셈이다. 그런 길은 없다...

다만 한 명이라도 덜 죽이는 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죽이거나 살리거나... 살리지 못하면 죽이는 일이라도 덜 하는게 낫다.

에코가 마피아들 등살 속에서 몇 명이라도 살리려고 하는 동안, 우리는 모두 서로 죽이고 있었던 셈이다.

by 비나리 | 2007/01/30 02:43 | 그냥 잡담 | 트랙백 | 덧글(3)

영화 <인 사이더>


"교복 대리점의 '짝퉁 교복' 판매를

고발했던 한 제보자는 아들이

교복 대리점 주인에게 살해당하는

참극을 겪었다." "(한국일보)

이 문장이 잠자던 나의 이성을 깨운다... (2007년 1월 29일. 석훈)


나는 100번쯤 본 영화가 몇 편 된다. 영화의 음악적 완성도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오스틴 파워 2편이 그렇고, 반지의 제왕이 그렇고, 스타워즈 4, 5, 6편이 그렇다. 대부도 3편 모두 100번 정도는 보았다.

약간 우울한 영화이지만, 디어 헌터와 지옥의 묵시론은 50번 정도 보았다. 지옥의 묵시록은 회사 다니던 시절 주말에 혼자 앉아서 술 마시면서 보는 단골 영화였다. 이젠 말론 브란도 얼굴만 봐도 술냄새가 난다.

그리고 최근에 많이 본 영화가 <인사이더>이다. 이건 작년부터 앓아서 누워있는 동안에 주로 본 영화다.

같은 영화를 보고 또 보고 그리고도 또 보고 절대로 끄지 못하게 하고 있으면 얼마나 한심스러워 보일까? 아내는 내가 <인 사이더>를 죽어라고 보는 것은 금연을 하기 위한 시도라고 생각하고 너그럽게 봐준다. 내부 고발자에 관한 이야기이고, 담배가 해롭고 담배 제조과정에 담배 맛을 좋게 하기 위해서 해로운 암모니아 화학물을 첨가한다는 고발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내부고발자는 철저하게 응징하는 아름다운 전통을 가지고 있다. 미국도 이런 아름다운 전통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고 사회적으로 이런 일이 더 많이 벌어지게 하는 것은 사회를 위해서 그야말로 사회가 전체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보면 나는 핸펀 번호에서 그 이름을 삭제한다. 언젠가 내가 인 사이더가 되었을 때 나를 무던히도 괴롭힐 확률이 많은 사람이다.

<인 사이더>는 그렇지만 방송에 관한 이야기이고, 과학자의 양심에 관한 이야기이고, 비록 방송을 송출하는데 성공했고, 담배회사의 유죄를 입증하는데 성공했지만, 전체적으로 착한 사람들이 실패한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약간 슬프다.

알 파치노는 68세대이고, 그람시의 이론에 따라서인지 아니면 그 세대의 믿음에 의해서인지 "Sixty minutes"의 간판 PD가 되었고, 그 시절에 했던 삶의 한 그림자라도 지키려고 하는 사람이다. 노련하고 강직한 PD이다.

정치적 신념과 정체를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호주 출신의 배우 러셀 크로우는 이 영화에서는 선량한 과학자 배역을 맡았다. 결국 담배회사의 부사장이 되면서 불의와 손을 잡으면서 괴로워한다.

일본 영화 같으면 이럴 때 "안녕, 정직한 사나이"하고 조용히 총구가 머리를 노리는데, 하여간 러셀 크로우는 살해협박만 당하고 진짜로 살해당하지는 않고, 담배회사에 대한 내부고발자가 된다.

그리고 이 프로의 방영을 막기 위한 담배회사의 작전이 시작되고, 1 라운드에서 두 사람은 패배한다.

과학자는 이혼을 당하고, 두 아이를 떠나보내고, 방송사에서 마련해준 호텔방에서 자폐적으로 알콜에 빠져든다.

그리고 PD는 방송 제작에서 손을 떼고 강제로 바닷가로 휴가를 떠나게 된다.

이 두 사람이 바닷가와 호텔방에서 서로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통화하는 장면... 난 이 장면을 명장면으로 친다 (물론 그렇게 분석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리고 2라운드가 시작된다. 2라운드에서 알 파치노는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한 신문사들에게 사실을 흘려주고, 결국 진행자, 우리 식으로는 MC라고 표현되는 사람을 스캔들로 몰아 날려버린다.

이 2라운드에서 진리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언젠가 나의 아내가 나에게 지적한 것처럼 그래서 이 영화는 아주 슬픈 영화다. 작은 전투에서 이겼지만, 아주 괜찮은 PD 한 명은 결국 <식스티 미닛>을 떠나고, 진실이 소중한 것이라고 믿는 과학자 한 사람은 과학계에서 떠나게 된다. 물론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던 것에 대해서 "그래도 삶은 이어진다"라고 할 수는 있지만 말이다.

KBS의 이강택 PD는 한미 FTA와 광우병으로 학자 100명 몫은 족히 했던 사람이다. 얼마 전부터 KBS 환경 스페셜로 자리를 옮겼다. 이걸 두고 말이 많은데, 본인이 아주 흡족한 상태로 지내는 것 같지는 않은 것 같다. 이강택 PD와는 지난 여름에 여의도에서 소주 한 잔 같이 마신 적이 있고, 성공회대에서 지나는 길에 가끔 만난다. 그 심경을 잘 모르겠지만, 영화 <인 사이더>의 한 장면으로 상상을 가름한다.

MBC의 또 다른 PD 몇 명들은 황우석 두 번째 방영이 막혔을 때 만난 적이 있었는데, 몇 명은 그 전에 같이 방송한 적이 있었고, 또 몇 명은 처음 보았다... 그 때 본 사람들도 몇 번 자리를 옮기면서 요즘은 본인들이 썩 내켜하지 않는 일들을 하는 것 같다.

진짜 인 사이더였던 어느 수학자는 급기야 석궁을 들고 판사를 겨누게 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진화로 생각하면, 우리나라는 아름다운 진화를 하는 중이다. 미풍양속을 곱게 취급하고, 아름다운 전통으로 대접받는 정겹고, 따뜻한 사회를 살고 있다.

내부고발자에게 검찰과 판사들이 "배신자"들 아니냐고 한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정말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훈훈하고 따뜻한 전통으로, 팔은 안으로 굽고, 먹여주고 키워준 조직은 부모처럼 받들고, 흠을 보아도 마음에 담아두는 아름다운 전통은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 같다.

이 아름다운 광경을 보면서 용감한 것은 미덕이 아니고, 대의는 정의가 아니고, 아름다운 미풍양속이야말로 지금 한국 사회가 나아가는 길이라는 흥겹고 따뜻한 감동이 밀려들지 않을 수 없다.

원래 서슬시퍼런 대왕 앞에서도 건들거리면서 소신있게 말하는 "충신"의 야박한 전통 대신 아름다운 미풍양속으로 진화하는 이 사회에는 사소한 부작용이 하나 있다. 진실은 개값처럼 취급받고, 진실을 말하려고 한 사람들은 아름다운 치도곤을 치르게 된다.


[공익 제보] 버림 받는 제보자들
"배신자 꼬리표에 받아주는 회사 없어요"
해고·협박에 기나긴 법정다툼 만신창이… 믿었던 동료들의 왕따 보복 가장 힘들어
"그래도 불의 보면 다시 제보할 것" 55%


관련기사

• 90%가 "징계·해고 당했다"
• 버림 받는 제보자들
• 부패방지법 문제 없나
• 우리 사회 변화는
• 해외의 사례는

#1. 인천국제공항 건설 당시 감리원이었던 정태원씨는 부실공사를 문제 삼았다가 건설업체의 협박을 받고는 회사를 그만뒀다. 이후 20여 차례나 재취업을 시도했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전공과 무관한 전자업체에 들어갔으나 이마저도 회사 부도로 금세 접어야 했다. 부인이 벌어오는 100만원이 한달 수입의 전부이다 보니 4식구가 생활하기는 빠듯하다. 정씨는 "해마다 치솟는 전셋값을 감당하기 어려워 지방 소도시로 이살 갈 계획"이라며 "생계가 막막하기만 하다"고 털어놓았다.

#2. KT에 다니던 여상근씨는 2005년 회사의 국가지원예산 유용을 폭로했다가 기밀유출과 회사비방 등의 이유로 해고됐다.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를 취소해 달라"며 제소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공익제보자의 신분 보장과 보상을 책임지는 국가청렴위원회도 여씨가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회사 직원이라며 손을 놓았다.

여씨는 "공익제보 이후 회사가 내부고발자의 비참한 말로를 보여주겠다고 작정한 듯 집요하게 괴롭히고 있다"며 "심한 스트레스로 우울증과 수면장애까지 앓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국 사회에 드리워진 오명 '부패공화국'.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어 선진국 입성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아직도 부정부패의 악취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투명성이 많이 높아졌으며 '특권'과 '반칙'이 줄어들고 있다는데 이의를 달기는 어려울 것이다.

실제 사회의 청렴도를 보여주는 부패인식지수는 1999년 3.8점에서 2006년 5.1점으로 올랐다. 여기에는 온갖 불이익을 무릅쓰고 자신이 속한 조직의 불법과 비리를 과감히 고발한 공익제보자들의 역할이 컸다.

그러나 공익제보자가 겪는 고통은 불이익을 넘어 형벌에 가깝다. 한국일보 기획취재팀이 1990년 이후 공익제보자 20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 공익제보로 인해 징계와 해고를 당한 비율이 80%(16명)에 달했다. 이 중 11명은 지금도 무직상태다. 또 60%(12명)는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과 법정 다툼을 벌여야 했다.

문제는 돈과 권력을 지닌 소속집단의 조직적인 대응, 그리고 공익제보와 이에 따른 불이익간 인과관계를 명확히 입증하기가 힘든 탓에 법정 싸움에서 승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회사와 하청업체간 부품가격 커넥션 비리를 고발했던 LG전자 전 직원 정국정씨는 무려 8년간 사문서 위조, 무고와 위증교사 등의 혐의를 놓고 회사 측과 민ㆍ형사 소송을 벌였다. 그는 민사상 손해배상을 받아냈지만, 해고통지서를 피할 수는 없었다.

공익제보자에 대한 수사기관과 법원의 태도가 '공익제보자=배신자'라는 인식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공익제보자 김봉구씨가 "인사상 불이익 처분 등의 보복행위를 당했다"며 안산시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공익제보자에 대한 보복행위는 사회 통념상 용인될 수 있다"는 취지를 밝혀 논란을 일으켰다.

상부의 압력에 따른 감사 중지 사실을 폭로한 감사원 전 직원 현준희씨는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 당해 10년째 법정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빈 라덴처럼 비행기를 몰고 대법원으로 돌격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공익제보자가 싸워야 할 대상은 소속 조직뿐만 아니라 사회에 만연된 유교적 온정주의와 공익제보자를 배신자로 보는 비뚤어진 시선"이라고 지적했다.

법정 싸움으로 가는 경우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공익제보자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바로 동료 조직원들의 '왕따'다. 공익제보자들이 '가장 교묘하고 악랄한 보복행위'라고 입을 모으는 집단 따돌림은 전체의 95%(19명)가 경험했을 만큼 흔하다. 김태진 연구원은 "후배 8명이 별다른 이유없이 휴업명령을 받았을 때는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고백했다.

여상근씨도 "내부고발에 따른 회사의 보복행위인지는 모르겠지만, 친구가 보직을 받지 못해 너무 미안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공익제보자들에게 가해지는 극심한 스트레스는 정신적ㆍ신체적 질병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공익제보자의 90%(18명)가 우울증 불면증 대인기피증 편집증 같은 정신질환과 소화불량, 신경성 장염, 급성간염 등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더욱이 공익제보는 부부관계와 자녀의 학교생활에까지 피해를 준다. 교복 대리점의 '짝퉁 교복' 판매를 고발했던 한 제보자는 아들이 교복 대리점 주인에게 살해당하는 참극을 겪었다. 사학비리를 고발했던 진웅용씨는 "할머니가 공익제보의 충격으로 숨진 이후 가족들에게서 '네가 할머니를 죽였다'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시간이 갈수록 더해지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경제적 궁핍, 사회적 관계 악화는 자살 충동으로 연결돼 전체의 60%(12명)가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실제 대한적십자사의 감염혈액 유통 실태를 고발했던 최덕수씨는 시너를 끼얹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문옥 전 감사관은 "온 몸으로 우리 사회의 불법과 부정부패를 고발한 대가가 이렇게 가혹할 줄은 몰랐다"며 "잠깐일 줄 알았던 악몽의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고 말해 심적인 갈등 정도를 짐작케 했다.

하지만 공익제보자의 55%(11명)는 상상을 초월하는 불이익을 받았음에도 불구, '불의를 보면 다시 공익제보를 하겠다'고 답했다. 조직의 문제는 그 내부자가 가장 잘 아는데다 개인적 안위보다 사회적 공익이 더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공익제보자와 함께 하는 모임'의 김용환 대표는 "공익제보자를 사회적 갈등유발자로 치부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공익제보자는 우리가 지켜야 할 명분과 양심을 대변해준 소중한 존재인만큼 이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고 보호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획취재팀=고재학(팀장)ㆍ김용식ㆍ안형영기자 news@hk.co.kr



 

by 비나리 | 2007/01/29 22:29 | 영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3)

프랑스 대선 추이

기왕 펌질 하는 김에 여론조사표까지...

세르코지가 32%, 루아얄이 29%이다. 조금 벌어지기는 했다.

극우파 장마리 르뺑 13%다. 역시 놀랍다.

UDF와 UMP가 통합 후보를 내면 우파가 43%이지만, 프랑스 대선의 묘미는 그런 치사한 짓은 안한다는 점이다.

폼새를 보니, 이 선거도 늘 그렇듯이 결선투표까지 가겠다. 극우파 13%까지 하면 우파연합이 57%이다. 늘 그런데, 이 와중에 두 번이나 대통령이 된 미테랑이 정말 대단했던 셈이다.

루아얄이 선거홍보 기획사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고 한 건 이해되는 일이다. 어지간히 지금부터 기적과 같은 레이스가 벌어지지 않으면, 해보나마나 지는 선거판인데, 기획사 도움 조금 더 받는다고 해도 어차피 결선가면 지게 되어있으니까, 기적을 바라는 심경이겠다...

(윽, 스크립트 먹어서 펌질이 안된다... 보실 분은 여기로  http://www.lemonde.fr/web/vi/0,47-0@2-823448,54-848463,0.html#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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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나리 | 2007/01/28 05:08 | 그냥 잡담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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