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방가르드와 20대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래이는 단어가 있다. 아방가르드라는 말과 camarade, 꺄마라드라는 말이 두 가지 다 가슴을 셀래이게 만든다.

꺄마라드라는 말을 가장 멋있게 들었던 것은 샤르트르의 입에서 들었던 말이다. 월남전 반대 시위를 할 때 사르트르가 대중연설을 했었는데, 그 첫 마디가 Camarade!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동무들, 혹은 동지들이라는 말인데, 그 말이 샤르트르 입에서 나오니까 참 멋있었다. 기록 필름에서 본 사르트르의 멋진 모습은 카바레에서 색스폰을 부는 모습도 있기는 하지만, 대중연설하는 모습이 훨씬 멋있다. 사진으로 보는 사르트르의 모습은 72년 이민자 지지 집회에서 푸코 옆에 서 있던 모습도 멋있고, 지금은 구하기 어렵지만 푸코와 둘이서 길거리에 쭈구리고 앉아서 피켓 들고 말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모습도 멋있다. 나에게 꺄마라드라는 단어는 이런 낭만의 시대, 즉 지식인을 직업가로 이해하지 않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고, 아직도 나에게 무엇인가 해야할 일이 있을 것이라는 것들을 상기시켜 준다.

사진이 남으려면 이런 멋진 모습으로 남아야지, 신문 인터뷰에서 잘난 척하면서 잔뜩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모습으로 남으면, 나중에라도 돌아다보면서 쪽팔려서 죽고 싶어질 것 같다.

이 단어와 함께 나의 가슴을 사정없이 흔드는 또 다른 단어가 아방가르드라는 말이다. 가드, 즉 맨 앞의 전위대로 서는 가드 보다도 더 앞에, avant에 있다는 말인데, 전위 중의 전위가 바로 아방가르드라는 말이다. 우리 말로는 쉽게 전위부대 정도로 번역하지만, 척후병이라는 말과 비슷하고, scout라는 것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말이다.

지금 보이 스카웃이라고 말하면 갑자기 맥가이버가 머리에 떠오르거나 전두환이 만들었던 한별단 같은 것들이 머리에 죽죽죽 지나가지만, 원래 스카웃이라는 말과 불어의 아방가르드라는 말은 본대 보다 먼저 나서는 척후병 같은 것들을 의미한다.

도대체 왜 그렇게 나에게 아방가르드라는 말이 10대에 가슴에 팍 와닿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대학교에 다닐 때에도 컨닝이라는 것이 유행하기는 했었는데, 뒷자리에 앉아서 시험보는 친구들은 아예 책을 꺼내놓고 시험을 치루기도 하였다. 이렇게 컨닝에 익숙해졌던 나의 친구들은 결국 나중에 유학 간다고 GRE 볼 때에도 몇 명이 같이 들어가서 자기들끼리 cheating이라고 불렀던 일을 해서 두고두고 친구들 사이에서 얘기거리가 되었다. 그들도 다 박사가 되었고, 아주 성공한 인생은 아니지만 연봉 1억원 정도는 받으면서 가끔 TV나 책자에서 얼굴을 보게 된다.

난 한 번도 컨닝을 하거나 치팅 같은 것을 해본 적이 없고, 그런 건 생각한 적도 없었는데, 특별히 도덕교육이 더 잘 되어있거나, 법을 두려워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방가르드라는 말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15세, 16세, 일제 시대에 나왔던 소설책들에서 보았던 그 표현이 왜 그렇게 가슴에 깊이 남았는지에 대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내가 살았던 시절에도 전위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집회하면 맨 앞에 나가서 각목 드는 친구들을 전위라고 불렀고, 그들도 전위부대로서 자신들을 자랑스러워했다. 표현이 적합한지는 모르겠지만, 그 전위도 어원은 아방가르드이다. 그 시절에 각목들었던 친구들이나 후배들도 요즘 가끔 만나게 된다. 대중적으로 아주 유명해진 소설가도 있고, 영현이 누나는 각목까지 들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하지만... 하여간 대장금의 작가인 김영현 선배가 그 시절에는 책 같이 읽고 밤새도록 막걸리 같이 마시던 선배 중의 한 명이었다.

아주 일부는 아직도 전위적으로 살지만 그 시절에 자신을 전위라고 불렀던 친구들도 요즘은 금융담당으로 다달 6~7,000 정도의 연봉을 받으면서 애들 학교 고민하고, 가끔은 새로 생긴 애인과 바람피는 얘기를 무용담처럼 하기도 한다. 그런 삶이 그렇게 아방가르드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지금 20대는 아방가르드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들까라는 궁금증이 든다. 내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지금 20대 중에서 아방가르드의 길을 걸어가겠다고 마음 먹은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혹은 이 단어나 유사한 단어가 마음 속에 어떤 감정을 일으킬지 가끔 궁금하다.

내가 아방가르드라는 말에 다시 한 번 매혹되었던 것은 작년 5~6월의 일이다. 녹색평론에 아방가르드라는 제목을 달고, 생태 아방가르드... 이런 글을 한 번 구상해봤던 적이 있었는데, 김종철 선생 놀라실 것 같기도 하고, 내용이 잘 전개가 되지 않아서 접었던 적이 있다.

굳이 아방가르드의 사회적 맥락을 따져보면 구유럽에서 식민지 경영이 한참일 때 여기에 동조하면서 새로운 대륙에서 새로운 기회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불만을 쁌어내었던 출구가 그 시절의 아방가르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의 맨 앞이라는 것은 매 시대마다 새롭게 정의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 시대의 아방가르드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컴퓨터로 깊이 들어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아방가르드라는 질문은 분명히 방법과 방향에 관한 질문은 아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주류와 다르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도 않는 것 같다. 경제학에서는 이 얘기를 innovation이라는 개념과 연결시키거나 진화라는 개념과 연결시켜서 소위 mutant의 원할한 등장과 새로운 파라다임의 전환이라는 방식으로 설명할 길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어떻 때 사회적으로 아방가르드가 많이 등장하게 되는가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자신을 아방가르드라고 생각하는 20대의 비율은? 혹은 그 이유는? 이런 것들은 설문조사를 해보면 금방 나오겠지만, 사실 설문조사가 중요한 것은 아니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구조 같은 것들이 더 궁금하기는 하다.

"난 다르다"라고 생각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어떻게 다른가?'라는 질문을 아방가르드라는 단어는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단어가 무서운 것이다. "넌 퇴행이야"라는 무서운 판단을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 한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지독하도록 어렵고 무서운 뉴앙스를 담고 있다.

웃기는 것도 사실 끝까지 가면 아방가르드가 된다. 채플린? 충분히 아방가르드였다. 질문들이 몇 가지 있기는 한데, 이 질문들은 어쩌면 지금의 20대보다는 10대들에게 더 어울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 해보게 된다.

by 비나리 | 2007/02/15 00:44 | 출간 이야기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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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붤뤠 at 2007/02/15 06:09
그냥 끝까지 가는 거. 1-20대 무슨 개소리를 했든 3-40대까지 그런 소리를 하고 있음 아방가르드가 되는 거구, 난 1-20대 때 이런 개소리를 한적이 있었지 잇힝 후일담이양. 그럼 XXX 라고 나름 구분하고 있습니당. 에효, 애국가 나오넹.
Commented at 2007/02/15 11:2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생소 at 2007/02/15 17:03
전 문화적인 진보라고 생각했었는데 배경을 알게 되니 몬가 다른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평소 대중보다 한발짝만 앞으로 / 산도 꼭데기보다는 7부능성을 지향하기로 맘먹었지만 앵간히 잡기가 힘든곳이더군요.
아방가르드...전위 중의 전위... 웬지 엘리트 지향적인 냄새가 풍겨서 매력적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어려운 구성을 제 작은 머리로 조금씩 깨다보면 아주 작은 디테일에서 꽤나 유용한 현실적 아이템이 나오기도 하더군요

순수한 어린아이들에게 아방가르드란 무슨 의미일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박노인 at 2007/02/15 22:55
아방가르드, 변혁과 전복, 이전의 문학과는 전혀 다른 문학. 수수하게 한 평생 살다가, 옆 집 똥개 죽을 때 같이 죽고 싶지는 않다는 옛날. 설이 지나면 30이 됩니다. 품고 있던것, 다시 아프게 해주셔서, 감사.^^
Commented at 2007/07/24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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