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사회주의 청년동맹에 관하여

국가사회주의 청년동맹이라는 이름의 조직이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4개의 하부조직이 있다. 이름만 들으면 꼭 국정원에서 만들어내는 좌파 조직의 사다리 그림표처럼 상상되지만, 정부 조직이고 공적 조직이다.

사람들이 유겐트라고 부르는 조직의 본 이름이 국가사회주의 청년동맹인데, Nazional을 민족이라고 번역할지 국가라고 번역할지에 따라서 조금 뉘앙스가 바뀌기는 한다.

이 유겐트는 4개의 조직으로 만들어져 있다.

1. 10~14세의 소년으로 구성된 독일소년단
2. 14~18세의 소년으로 구성된 히틀러 유겐트
3. 10~14세의 소녀로 구성된 소녀단
4. 14~21세의 소녀들로 구성된 독일여자청년동맹

그리고 이 중 17~21세의 여성들에 대해서 "신앙과 미"단이라는 특별조직이 하나 더 구성되어 있다.

1936년 12월부터 이 조직은 독일의 전체 청소년의 강제 조직이 되었고, 36년부터 전쟁이 끝나는 45년까지 독일에서 살았던 모든 청소년은 이 4개의 조직 중에 하나에 가입하게 되었다.





("깔끔한 신사"로 잘 알려진 프리츠 비트는 노르망디 유겐트의 사단장을 했던 사람이다. 요 사람이 청년들을 데리고 전투 훈련을 시키던 나이가 30대 초반이다.)

유겐트는 전쟁 노동력으로 동원된 하층, 청년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은 중간층, 그리고 정예요원으로 전투에 참가한 유겐트 등으로 나뉘어진다고 하는데, 독일어를 잘 몰라서 엄청나게 자세하게 알고 있지는 않다.

보통 독일 제3공화국의 청년들이라고 부르는 이 '유겐트 세대'에 대해서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60년대의 일이다. 이 때가 되면 유겐트 세대가 40살에서 50살이 되어 독일 사회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시대가 된다. 그게 바로 60년대이다.

비슷한 경우로 나치 침공에 맞서 싸웠던 레지스탕스 출신들이 사회를 장악했던 프랑스의 경우와 2차 세계대전의 참전 세대들이 형성한 미국의 60년대 모습들 혹은 일본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하여간 20세기에 가장 큰 역사적인 세대 갈등이 등장한 60년대, 독일의 주측 세력을 유겐트 세대라고 부른다.

이 유겐트 출신들이 장악한 시대를 독일에서는 "회색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청년기에 히틀러를 칭송하고, 그 전위대의 역할을 했던 사람들에게 생겨날 수밖에 없는 집단 트라우마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그래서 회색의 모습을 갖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회색인이라는 말이나 회색에 대한 여러가지 표현들이 60년대에 등장한 것은 상징적인 일이다. "25시"도 유겐트 시대의 아픔을 대상으로 그리고 있다.

참고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대전초기 무장친위대의 입대조건
1. 순수 아리아인혈통임을 증명하기 위해 사병은 1800년까지, 사관은 1750년까지 가계도(족보)를 제시해서 검수를 받아야 했습니다.
2. 눈동자는 푸른색에 금발일 것.
3. LAH는 178cm이상, 게르마니아 도이치란트 연대는 174cm이상, 기타지원부대는 172cm이상일 것.
4. 의무 복무기간은 사병 4년, 부사관 12년, 사관 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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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표현들이 있기는 한데, 다 비슷비슷한 말이다. 마르쿠제는 "unidimensional man"이라는, 좀 듣기에도 민망한 표현을 썼다.

"1차원적 인간"이라는 표현인데, 새 대가리라는 말과 비슷하고, 미국식 표현으로 burger head라는 말과도 같다. 얼마나 이 시기가 싫었으면 1차원적 인간이라고 했을지 마르쿠제의 심정이 이해가 되기는 한다.

나는 마르쿠제의 1차원적 인간은 열 아홉살 때 읽었는데, 너무 웃겨서 버스 안에서 성산대교를 건너면서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던 기억이 있다. 전두환이 대통령이던 시절, 그 책은 너무 통쾌했다.

작년에 교육방송에서 유겐트 세대와 우리나라를 비교하는 방송을 준비했었는데, 자료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서 결국 방송을 만들지는 못했다는 얘기를 얼핏 들었다.

박정희 세대가 우리나라에서는 유겐트 세대와 약간 비슷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40대에서 50대 사람들은 약간은 한국 버전의 회새인과 비슷한 특징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내놓고 이 얘기 했다가는 선배들한테 맞아 죽지만, 사실 그 세대가 내세우는 정치적 상징이 자연스럽게 "중도"라는 것을 보면 박정희 세대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유겐트 세대에게는 많은 반성과 자기 고백들이 있었다. 그래서 60년대에 독일의 여러가지 정책은 좌파 정책이 아니라 유겐트 시절의 반성에 관한 것들이 많다.

우리나라의 박정희 세대는 반성한 적이 없다. 지금까지 그 시절의 기억에 대해서 고백하거나 반성하는 것을 사회적으로 잘 들어본 적이 없고, 그 시절에 싸웠던 일부의 엘리트들이 6.3 세대니, 하면서 자신들의 힘으로 사용하는 정도인 것 같다. 예를 들면 한나라당의 이재오나 자신이 김구의 적통이라고 가끔 주장하는 이부영이나 김근태?

엘리트들이야 그렇다고 하지만 조용히 침묵하고 그 시대를 살았던 박정희 세대는 별로 집단적인 반성이나 자성 같은 것을 한 것 같지는 않고,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그 시절이 최고로 좋았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국제적인 눈으로 보자면 "회색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황우석 사태는 짧게 지나가서 그나마 다행이다. 그 꿈이 몇 년간 갔다면, 그 시절에 중고등학교를 보냈던 세대가 나중에 황우석 세대로 분석되는 일이 벌어질 뻔했을 것이다.

"신앙과 미"라는 단어를 보면서 자꾸 "무궁화의 꽃"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by 비나리 | 2007/01/27 16:55 | 출간 이야기 | 트랙백(1)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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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tabula rasa at 2007/01/28 17:33

제목 : 우석훈 선생이 쓴 나치 유겐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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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연애편지 at 2007/01/29 14:20
음 제가 만난 노빠들과 황빠들을 보면 이해가 가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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