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아프니 내가 아프다

"네가 아프니 내가 아프다"라는 표현이 있다. 별 거 아닌 것 같아 보이기 때문에 아토피 관련된 세미나나 혹은 마케팅 구호로도 종종 쓰이는 말이다.

그러나 생각보다는 어려운 표현이다. 이 말을 우리나라에서 처음 유행시킨 사람이 수경스님인지 아니면 수경스님 측근의 여성운동했던 그룹인지는 나도 직접 물어본 것이 아니라서 정확히는 모른다. 하여간 나에게 유마경을 볼 필요가 얘기하신 분은 수경스님이다.

"네가 아프니 내가 아프다"라는 표현은 유마경에 나오는 말이다. 유마힐이라는 당시에 깨달은 어느 거사가 한 말이다.

이 말은 문수보살과 연결되어 있다. 부처가 유마힐이라는 깨달은 사람의 병문안을 갔다 오라고 제자들에게 시켰는데,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쟁쟁한 '선배'들이 이 핑게 저 핑게 대고 가지를 않아서 결국 막내에 해당하는 문수보살이 병문안을 갔다오게 되었다.

이 부분은 가끔 논란이 되는데, 왜 더 쎈 넘들이 가지 않았느냐? 부처는 깨달은 사람인데, 부처를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지 않느냐와 같은 생각을 제자들이 한 모양이다. 그런데 다른 경로로 또 깨달은 사람을 만나면 난처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아마 제자들은 부처가 유마는 가짜라는 말을 해주기를 바랬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말 대신에 유마힐에게 병문안을 갔다오라고 하니 좀 난처해진 셈이다. 이건 유마힐의 깨달음이 진짜이기도 하고, 또 존경하기도 해야한다는 말을 한 것과 같다. 그렇다고 스승인 부처에게 왜 그런 걸 시키느냐고 직접 대들기도 좀 어렵고, 그래서 쌩까는 일을 한 셈이다.

부처는 늘 이 제자들 때문에 속상한 일을 많이 겪었는데, 부처가 눈을 감으려고 하니까 이 제자들은 "우리에게 더 가르켜주어야지 벌써 죽으면 어떡하느냐"고 말했는데, 그래서 부처가 제대로 눈을 감지 못하고 입적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답답한 제자들이기는 하고, 불가의 생각으로 본다면 진짜 자기 밖에 모르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하여간 제자와 스승 사이의 이런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로 인해서 영문을 잘 모르는 문수보살이 병문안을 갔다.

그래서 그때 유마에게 들은 얘기가 "세상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라는 말이다. 불가에 나오는 많은 얘기들은 부처님 말씀인데, 이 말은 유마가 한 얘기이다. 세상이 이렇게 어지러운데, 내가 어떻게 아프지 않을 수 있겠느냐. 참 속도 오지랍히 넓다.

웰빙족이라는 것이 한참 유행하던 시절에 세상이 이리 어지러운데, 어찌 너 혼자 아프지 않으려고 하느냐라는 농담이 잠깐 유행한 적이 있다.

(음식국부론에 유마경에 관한 얘기를 자세하게 써놓았었는데, 편집 과정에서 너무 어렵다고 짤렸다. 해인사 토깽이 얘기도 짤렸다...)

말은 유마의 한 마디이지만, 이 말이 여성이고 나이어린 문수 보살에게는 충격적이었나 보다.

나중에 문수보살이 입적할 때가 되었을 때, 소위 유마에게 병문안 가지 않고 쌩까던 선배들도 다 부처가 되었는데, 문수보살은 부처가 되지 않고 보살로 남았다. 그리고 그가 남긴 말이 모든 중생들이 해탈할 때까지 자신도 해탈할 수 없다는 말이다.

보살 중에 유명한 사람들이 좀 있다. 지장보살이나 미륵보살이 그런데, 문수보살은 좀 독특한 논리를 대표하는 셈이고, 불가 내에서는 지혜의 상징을 쓸 때 문수보살을 사용한다.

"네가 아프니 내가 아프다"라는 말을 우리나라에서는 감성 코드로 사용하는데, 워낙에는 지혜의 여신인 아테네에 해당하는 문수보살을 상징하는 말이다.

불가에서는 이런 마음이 바로 지혜로 연결되는 마음이라고 생각된다.

"새만금, 네가 아프니 내가 아프다"라는 책이나, 새만금의 여성들에 관한 여성학자들이 글을 쓸 때 "아프다"라는 표현이 종종 들어가는데, 우리나라에서의 기원은 유마경과 관련되어 있다.

요즘 사람들은 남이 아프면,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인터넷 민주주의 같은 말에 10년 전부터 한 번도 동조해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도 그렇다. 인터넷 너무 오래 하다보면 남을 아프게 해야 기분 좋아지는 증상으로 넘어가기 딱 좋다.

물질로 보면, 유마경은 물질 관계에 잘 설명하기 어려운 사회적 연관관계를 설정하고 있는 셈이다. 온라인이라는 것은 비물질 관계이기는 하지만, 정보라는 관점에서 사실은 너무나 물질적 관계이다. 유마경과는 정 반대에 위치한 소통 방식인 셈이다.

얼굴도 보지 않고 이름도 모르는 존재의 아픔을 아파하는 것이 유마경의 얘기라면, 인터넷은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존재를 아프게 하면 기분 좋아지는 매체로 갈 확률이 높다. 우리나라에서는 말이다. 익명성이라고 쉽게 표현하지만, 그 보다는 나의 고통을 남에게 전가하면서 기분 좋아지는 일종의 정신상담소 역할을 대신하는 셈이다.

정신분석학에서는 해소되지 않은 에너지가 밖으로 나가면 공격적인 sadism이 되고, 안으로 들어가면 masochism이 된다고 설명한다. 자학적이 되고 우울증에 가까와질 것인지, 아니면 공격적이 되고 편집증적인 것이 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인 셈이다.

황우석을 안타까와할 수 있지만, 지나치게 안타까와하는 것은 obsession이라고 부른다. 심리사회학에서는 편집증-매저키즘 커플에서 많이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해석한다.

유마경의 얘기들이 황우석을 만나면 정말 골 아프게 된다. 황우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 이런 사람들이 아직도 적지 않은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한 서양에서는 유마경과 가장 비슷한 말을 한 사람은 에밀 뒤르케임이다. 그를 학자로 활동할 수 있게 해준 자살론 이후에 나온 그의 대표적 저서인 "사회분업론"에 나오는 "유기적 연대(solidarite organique)"이라는 표현은 "기계적 연대(solidarite mechanique)"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시장을 중심으로 약간 해석이 골 아픈 측면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극우파들의 논리가 이런 논리와 비슷하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까 사회가 어려워지고, 그래서 서민들이 이렇게 괴로와하는 것 아니냐...

한국 사람들은 "아프다"라는 단어와 "괴롭다"라는 단어에 여전히 잘 반응하는 것 같다. 유마경의 세상과 전혀 다르지만, 사실 박근혜가 하는 얘기도 유마경처럼 얘기해서 "그러므로 나를 대통령 시켜주세요"라고 표현할 수 있다.

나와 타자라는 근원적 질문 같은 것을 한 번 해보면 재밌을 것 같기는 한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울증을 집단적으로 즐기는 것과 같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그러나 문수보살은 우울증을 상징하지 않고, 지혜를 상징한다. 이 사이에 뭐가의 고리 하나가 우리나라와 황우석 지지자들에게는 빠져있는 셈이다. 스스로 지혜를 추구하라는 말인 셈인데, 우리나라 국민들은 스스로 무엇인가 하기 보다는 누군가를 지지하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월드컵의 경우가 딱 그렇다.

by 비나리 | 2007/01/27 16:17 | 그냥 잡담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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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아큐라 at 2007/01/28 20:03
정반대 아닌가요? 남한 사람들 중에 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예민하고 내면을 조금이라도 보는 사람은 10% 정도고, 지갑의 두께가 남들보다 얇으니까 우울한 사람이 꽤 많은데 이 사람들은 우울증을 즐길 수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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