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1월 25일
최근 노무현의 음악적 해석
아마 현 정부에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 비판적인 글을 가장 많이 쓴 사람 중에 한 명이 나일지도 모른다. 정권 시작하자마자 이거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2003년 하반기부터 참여정부의 각종 정책에 대해서 정면에 나서서 비판했으니까, 대통령에게 투표한 사람 중에서 비교적 초기에, 그리고 비교적 적극적으로 비판한 셈이다.
요즘은... 신경 안 쓴다.
신경 쓸려고 하면 숨이 가쁘도록 연일 쏟아내는 대통령의 말들은 음악으로 치면 포르테로 거의 프레스토 박자를 몰아나가는 경우다.
얘기를 듣고 있으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생업을 어느 정도 접고 이 얘기만 듣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불행히도 이 가공할 박자로 몰아가는 대통령의 음악에는 미학적 요소가 별로 없다. 아름다움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보게 된다.
대편성곡이라고 쉽게 부르는데, 하여간 정부는 오케스트라로 구성된 음악과 비슷하다. 실내악도 있는데, 우리나라 정치집단 중에서 실내악의 수준에 달하는 잔잔하면서도 꽉 찬 음악을 만드는 집단은 없다.
현재 지휘자에 해당하는 대통령은 총주를 원하는 것 같다. 교향곡은 1악장은 보통 속도, 2악장은 아주 느리게, 그리고 3악장과 4악장에서 점점 속도를 높이다가, 마지막 피날레에서 최고속도에 달하고, 또한 그 동안 조금씩 참여했던 개별악기들이 모두 자신의 주제를 가지고 마지막 "꽝"을 향해 질주한다. 이 순간을 총주라고 부른다.
총주의 꽝이 끝나면 "빠빰"하면서 음악이 끝나고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지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표가 비싸면 관객들이 일어나고, 비싸게 팔지 않은 표에는 관객들이 일어나지 않는다.
제 돈 내고 온 관객은 20% 밖에 되지 않고, 수십만원짜리 콘서트라도 어찌나 그리 공짜 관객이 많은지. 보통 기립 박수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제 돈 내고 들어온 사람은 아니고 하여간 연주회 관람티켓에 찍힌 돈이다.
대통령의 빠밤이 끝나면 사람들은 기립 박수칠까? 내가 보기에는 안 칠 것 같다. 왜냐? 아무리 국가의 운명을 걸고 하는 교향곡이라도 너무 음악적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돌 날라가고 손에 들고 있던 물통까지 날라갈 것 같다.
10년 전에는 현대음악 콘서트에 가보면 중년이 아저씨들이 가끔 야유하는 경우가 있었다. 나는 그냥 "좋은 거겠지"하고 참고 들었다. 요즘은 그래도 관객 수준이 높아져서 졸면 졸지 야유하지는 않는다.
음악 장르로 친다면 대통령이 만드는 음악은 정갈하게 정돈된 고전음악 계열은 아니고 극도로 난해한 현대음악에 해당한다. 아마 관객이라고 생각한다면 많은 관객들은 이미 야유를 보내고, 총주가 끝나자마자 돌을 던질 것을 생각하면서 언제 돌을 던질 것인가 시점을 생각하는 것 같다.
나같은 경우는... 더 이상 연주회장에 있는 걸 참지 못하고 그냥 집에 돌아온 경우에 가까울 것 같다.
연주회의 결과는 신문에 나온다. 참지 못하고 중간에 나온 연주일 경우라도 신문에는 "화려한 공연", "현대적 해석" 혹은 "새로운 지휘자의 탄생", 뭐 이런 소리들이 나오기는 한다.
대통령의 총주는 2중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먼저 대통령의 독주를 하면, 나머지 악기들이 다음날 받아서 합주하는 형태이다. 이런지 꽤 되었는데, 요즘은 이런 총주가 극도의 불협화음이라는 특징이 있다.
이 연주회가 가끔 머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불협화음과 완벽한 고전적 화음이 엇갈리면서 나오기 때문이다. 한미 FTA와 지방의 개발사업, 즉 신자유주의의 강화에 해당하는 대통령의 선창에는 그야말로 I도, IV도, V도와 같은 고전파 시절에 사용한 것과 같은 기계같은 화성이 나온다. 여기에 서로 다른 주제들을 교묘하게 연결하는 바하의 대위법과 같은 신자유주의의 진전이라는 대위법이 진행된다. 가끔 민주노동당이나 시민단체에서 삑사리를 내기는 하지만, 하여간 전체적으로 놀랍도록 고전적인 화성학이다.
보통은 열린우리당 거시기들이 고음부를 맡고, 한나라당 뚜벅이들이 저음부를 맡거나 잘 들리지 않는 허밍을 맡는다.
그리고 이런 것과 상관없는 "누가 왕 할까요?"와 관련된 대통령의 독주에는 현대음악의 9도 13도는 물론이고, 현대 화성학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거침없는 불협화음이 엇박으로 총주를 구성한다.
물론 관악은 관악끼리, 현악은 현악끼리 자기 속도와 화성을 가지고 있는데, 모아보면 전위음악도 이런 전위음악이 없다.
현대음악들은 "우주 영혼에 대한 초대" 혹은 "미래로 열린 문" 아니면 "고요한 아침의 불타는 정열"과 같은 제목들을 가진 음악들이 종종 있다. 가끔은 "전자 세계로의 촉진"과 같은 이데올로기적인 제목을 가지고 있는 음악들이 있다.
문제는 나 정도 되는 허접한 음악 소양을 가지고는 작곡가의 의도와 형상을 음악을 들으면서 떠올리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도대체 왜 이 소음 같은 소리에서 작곡가는 우주 영혼을 얘기할까?
대통령의 신년연설은 이런 현대음악을 뛰어넘는 전위음악의 요소를 다분히 가지고 있고, 쟝르로 해석해본다면 초현실주의 전자 전위음악에 해당한다.
감동의 눈물 대신 귀를 막고 싶은 고역스런 시간이 지나가지만, 나는 이보다 몇 배 어려워서 뛰쳐나오기 싶던 전위음악을 들어본 기억이 있다. 한 번은 파리에서 열리는 아방가르드 페스티발에 가서 며칠 동안 그런 전위음악만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음악적 감동 대신 나의 음악적 소양에 대해서만 정확히 이해하고 오게 되었다.
쇤베르그의 화성학적 진보에 비한다면, 확실히 대통령의 화성학은 전체적으로는 진보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대통령의 총주에는 독주 파트가 너무 빈번히 그리고 주기적으로 등장한다는 특징이 하나 있고, 언제나 씽코페이션과 같이 엇박으로 들어온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새로운 정보가 없다는 특징이 또 하나 있다.
음악 용어로 사용한다면 "나는 정말 잘 한다"는 제 1 주제와 "나만 믿으면 경제는 살아난다"는 제 2 주제로 구성되어 있는데, 4장에서 5장으로 넘어오면서 제 1 주제가 다시 반복되며 점차 크게 최초 주제형식으로 돌아오는 일종의 론도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음악적 의도는 이쯤에서 관객들이 박수를 쳐주기를 바라지만, 관객들은 돌을 던질 준비를 하고 있다는 데에 약간의 해석상의 차이가 있다.
물론 이런 것은 너무 음악이 전위적이고, 시대를 앞서가기 때문에 그렇다.
벌써 5년 째 점점 총주의 피날레를 향해서 가는 이 음악을 들으면서 전에는 모르던 음악적 사실 한 가지를 태어나서 처음 깨달았다. 중간의 쉼, 가끔은 간주 혹은 어떤 사람들은 "고요"라고 표현하는 것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혹은 왜 사람들을 그렇게 많이 모아놓은 오케스트라에서 거의 들리지도 않는, 숨을 완전히 죽이고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고요한 연주 부분을 집어넣었는지 요즘에야 조금 이해가 된다.
오케스트라 연주 연습에 가보면 지휘자들이 "들리지 않게 해, 아예 들리지 않게 하란 말이야"라고 고함치는 소리를 가끔 듣게 된다. 아니, 소리로 예술하는 사람들이 들리지 않으면 어떻게 해?
라르고에 모든 힘을 빼고 들리지도 않게 연주하는 부분들이 얼마나 아름다왔던 것인지 처음으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러나 음악 공부 잘 했다고 박수치기에 대통령의 오케스트레이션은 조금 황망하다.
요즘은... 신경 안 쓴다.
신경 쓸려고 하면 숨이 가쁘도록 연일 쏟아내는 대통령의 말들은 음악으로 치면 포르테로 거의 프레스토 박자를 몰아나가는 경우다.
얘기를 듣고 있으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생업을 어느 정도 접고 이 얘기만 듣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불행히도 이 가공할 박자로 몰아가는 대통령의 음악에는 미학적 요소가 별로 없다. 아름다움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보게 된다.
대편성곡이라고 쉽게 부르는데, 하여간 정부는 오케스트라로 구성된 음악과 비슷하다. 실내악도 있는데, 우리나라 정치집단 중에서 실내악의 수준에 달하는 잔잔하면서도 꽉 찬 음악을 만드는 집단은 없다.
현재 지휘자에 해당하는 대통령은 총주를 원하는 것 같다. 교향곡은 1악장은 보통 속도, 2악장은 아주 느리게, 그리고 3악장과 4악장에서 점점 속도를 높이다가, 마지막 피날레에서 최고속도에 달하고, 또한 그 동안 조금씩 참여했던 개별악기들이 모두 자신의 주제를 가지고 마지막 "꽝"을 향해 질주한다. 이 순간을 총주라고 부른다.
총주의 꽝이 끝나면 "빠빰"하면서 음악이 끝나고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지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표가 비싸면 관객들이 일어나고, 비싸게 팔지 않은 표에는 관객들이 일어나지 않는다.
제 돈 내고 온 관객은 20% 밖에 되지 않고, 수십만원짜리 콘서트라도 어찌나 그리 공짜 관객이 많은지. 보통 기립 박수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제 돈 내고 들어온 사람은 아니고 하여간 연주회 관람티켓에 찍힌 돈이다.
대통령의 빠밤이 끝나면 사람들은 기립 박수칠까? 내가 보기에는 안 칠 것 같다. 왜냐? 아무리 국가의 운명을 걸고 하는 교향곡이라도 너무 음악적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돌 날라가고 손에 들고 있던 물통까지 날라갈 것 같다.
10년 전에는 현대음악 콘서트에 가보면 중년이 아저씨들이 가끔 야유하는 경우가 있었다. 나는 그냥 "좋은 거겠지"하고 참고 들었다. 요즘은 그래도 관객 수준이 높아져서 졸면 졸지 야유하지는 않는다.
음악 장르로 친다면 대통령이 만드는 음악은 정갈하게 정돈된 고전음악 계열은 아니고 극도로 난해한 현대음악에 해당한다. 아마 관객이라고 생각한다면 많은 관객들은 이미 야유를 보내고, 총주가 끝나자마자 돌을 던질 것을 생각하면서 언제 돌을 던질 것인가 시점을 생각하는 것 같다.
나같은 경우는... 더 이상 연주회장에 있는 걸 참지 못하고 그냥 집에 돌아온 경우에 가까울 것 같다.
연주회의 결과는 신문에 나온다. 참지 못하고 중간에 나온 연주일 경우라도 신문에는 "화려한 공연", "현대적 해석" 혹은 "새로운 지휘자의 탄생", 뭐 이런 소리들이 나오기는 한다.
대통령의 총주는 2중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먼저 대통령의 독주를 하면, 나머지 악기들이 다음날 받아서 합주하는 형태이다. 이런지 꽤 되었는데, 요즘은 이런 총주가 극도의 불협화음이라는 특징이 있다.
이 연주회가 가끔 머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불협화음과 완벽한 고전적 화음이 엇갈리면서 나오기 때문이다. 한미 FTA와 지방의 개발사업, 즉 신자유주의의 강화에 해당하는 대통령의 선창에는 그야말로 I도, IV도, V도와 같은 고전파 시절에 사용한 것과 같은 기계같은 화성이 나온다. 여기에 서로 다른 주제들을 교묘하게 연결하는 바하의 대위법과 같은 신자유주의의 진전이라는 대위법이 진행된다. 가끔 민주노동당이나 시민단체에서 삑사리를 내기는 하지만, 하여간 전체적으로 놀랍도록 고전적인 화성학이다.
보통은 열린우리당 거시기들이 고음부를 맡고, 한나라당 뚜벅이들이 저음부를 맡거나 잘 들리지 않는 허밍을 맡는다.
그리고 이런 것과 상관없는 "누가 왕 할까요?"와 관련된 대통령의 독주에는 현대음악의 9도 13도는 물론이고, 현대 화성학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거침없는 불협화음이 엇박으로 총주를 구성한다.
물론 관악은 관악끼리, 현악은 현악끼리 자기 속도와 화성을 가지고 있는데, 모아보면 전위음악도 이런 전위음악이 없다.
현대음악들은 "우주 영혼에 대한 초대" 혹은 "미래로 열린 문" 아니면 "고요한 아침의 불타는 정열"과 같은 제목들을 가진 음악들이 종종 있다. 가끔은 "전자 세계로의 촉진"과 같은 이데올로기적인 제목을 가지고 있는 음악들이 있다.
문제는 나 정도 되는 허접한 음악 소양을 가지고는 작곡가의 의도와 형상을 음악을 들으면서 떠올리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도대체 왜 이 소음 같은 소리에서 작곡가는 우주 영혼을 얘기할까?
대통령의 신년연설은 이런 현대음악을 뛰어넘는 전위음악의 요소를 다분히 가지고 있고, 쟝르로 해석해본다면 초현실주의 전자 전위음악에 해당한다.
감동의 눈물 대신 귀를 막고 싶은 고역스런 시간이 지나가지만, 나는 이보다 몇 배 어려워서 뛰쳐나오기 싶던 전위음악을 들어본 기억이 있다. 한 번은 파리에서 열리는 아방가르드 페스티발에 가서 며칠 동안 그런 전위음악만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음악적 감동 대신 나의 음악적 소양에 대해서만 정확히 이해하고 오게 되었다.
쇤베르그의 화성학적 진보에 비한다면, 확실히 대통령의 화성학은 전체적으로는 진보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대통령의 총주에는 독주 파트가 너무 빈번히 그리고 주기적으로 등장한다는 특징이 하나 있고, 언제나 씽코페이션과 같이 엇박으로 들어온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새로운 정보가 없다는 특징이 또 하나 있다.
음악 용어로 사용한다면 "나는 정말 잘 한다"는 제 1 주제와 "나만 믿으면 경제는 살아난다"는 제 2 주제로 구성되어 있는데, 4장에서 5장으로 넘어오면서 제 1 주제가 다시 반복되며 점차 크게 최초 주제형식으로 돌아오는 일종의 론도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음악적 의도는 이쯤에서 관객들이 박수를 쳐주기를 바라지만, 관객들은 돌을 던질 준비를 하고 있다는 데에 약간의 해석상의 차이가 있다.
물론 이런 것은 너무 음악이 전위적이고, 시대를 앞서가기 때문에 그렇다.
벌써 5년 째 점점 총주의 피날레를 향해서 가는 이 음악을 들으면서 전에는 모르던 음악적 사실 한 가지를 태어나서 처음 깨달았다. 중간의 쉼, 가끔은 간주 혹은 어떤 사람들은 "고요"라고 표현하는 것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혹은 왜 사람들을 그렇게 많이 모아놓은 오케스트라에서 거의 들리지도 않는, 숨을 완전히 죽이고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고요한 연주 부분을 집어넣었는지 요즘에야 조금 이해가 된다.
오케스트라 연주 연습에 가보면 지휘자들이 "들리지 않게 해, 아예 들리지 않게 하란 말이야"라고 고함치는 소리를 가끔 듣게 된다. 아니, 소리로 예술하는 사람들이 들리지 않으면 어떻게 해?
라르고에 모든 힘을 빼고 들리지도 않게 연주하는 부분들이 얼마나 아름다왔던 것인지 처음으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러나 음악 공부 잘 했다고 박수치기에 대통령의 오케스트레이션은 조금 황망하다.
# by | 2007/01/25 14:38 | 그냥 잡담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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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덜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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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말 하기 뭣하지만 박정희라는 사람에게 좋은 것이 있기는 했는지 살짝 의문이 가네요^_^
그래도 박정희는 지 죄값에 따라 비참한 댓가를 치렀지만 노무현=참여정부는 사과는 커녕 반성은 하고 있을지 궁금하네요.
인권변호사라는 옛 직업이 무색하게 임기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너무 많은 이들이 울었네요. 그럼에도 변함없이 잔인한 노대통령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