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1월 25일
20대 작가들이 더 필요하다
난 전문 작가는 아니지만, 하여간 글을 조금 쓰다보니 출판사나 잡지사의 에디터들을 만날 기회가 종종 있다. 그 때마다 빼놓지 않고 하는 얘기가 20대 작가들의 글을 발굴하고, 어렵더라도 좀 20대의 논의가 전면에 나설 수 있게 하는게 좋을 것이라는 말을 한다.
앞에서만 하는 얘기인지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는 얘기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하여간 20대의 글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 곳은 아직 보지 못했다.
이 사람들이 늘 하는 얘기는 20대에 글 쓰는 사람이 없다, 있으면 소개시켜 달라는 말을 하고는 한다.
사실 나도 딱히 소개시켜줄 사람이 없기는 하다. 그러나 이건 20대에 글 쓰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워낙 사람들을 잘 안 만나고 혼자 지내기 때문에 그렇다.
많이 있을 것이다. 시나리오 작가 되겠다고 골방에서 수 년째 컵라면으로 많은 끼니를 때우면서 혼자 글 쓰는 연습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만 수만명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소설가가 되고 싶은 사람은 훨씬 적고, 시인이 되고 싶은 사람은 훨씬 적은 것으로 알고 있다.
당장 내 근처에 있는 매체만 생각해보더라도 '인물과 사상'이나 녹색평론 같은 곳에서도 좋은 20대 작가들의 글을 발굴하고 싣고 싶어하는데, 뭔가 서로가 원하는게 잘 연결이 안되는 느낌이 있다. 왜 그럴까? 이유야 몇 가지를 금방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하여간 그런 이유에도 불구하고 20대의 목소리가 더 사회 전면에 나설 수 있게 해야할 것 같다.
내가 만나본 얼마 되지 않는 20대들은 대부분 노무현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정치 전면에 나서서 정치기획을 주로 하는 사람들은 80년대 초반학번의 서울대를 졸업한 사람들이 많은데, 느낌상으로는 이 소위 정치꾼들보다 더 노무현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같이 할 수 있는 얘기가 별로 없었다.
네, 열심히 사시구여, 바라시는 일 잘 되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노무현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도 만나보았다. 샘플에 문제가 있기는 할텐데, 이 사람들은 거만했다. 배 내밀고 의자 뒤로 젖히고 나에게 "날 한 번 설득해봐"라고 말했던 50대 만큼이나 어떤 20대들은 거만했다.
네, 훌륭하신 분 만나서 영광스러웠구여, 생에 늘 영광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노무현을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내가 만난 20대들은 아주 슬픈 표정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거만했다. 살아있는 생활인의 표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잘 없었다.
왜 그럴까 가끔 생각해본다. 너무 이상한 사람들만 내가 만나게 되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런 모습도 우리가 같이 살아가는 시대의 모습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20대의 목소리가 더 앞으로 나오고, 더 많은 20대 작가들이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를 지망한다는 20대를 전혀 안 만나본 것은 아니다. 나한테 뭔가를 따지는 것 같은데, 사실 나는 그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내가 이해한 유일한 얘기는 술을 같이 마시고 싶다는 얘기 밖에 없었다.
난 20대의 삶과 애환에 대해서 잘 모른다. 내가 아주 알았던 아주 작은 수의 20대는 너무 이상하거나 너무 뻣뻣했다. 50대 만큼이나 뻣뻣하고 유연하지 않았다.
그래서 '공진화(co-evolution)'라는 개념에 대해서 가끔 생각해보게 된다. 소위 전문가라고 이마에 딱 딱지를 붙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비슷한 질문을 해봤다.
우파들은 20대를 마케팅의 대상으로 생각했고, 좌파들은 20대를 증오하는 것 같아 보였다.
교수들은 어떻게 '좋은 학생'을 받아서 조교로 부려먹을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같고, 기업의 본부장이나 공기업의 처장들은 유달리 높은 경쟁률로 자신의 회사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20대들은 다 자신의 발 아래에 있다고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이 많은 '대기자'들은 지금의 20대 기자들이 근성이 없다고 실망하는 얘기를 많이 했고, 예술가라고 자처하는 사람은 오히려 솔직하게 20대에 대한 혐오를 드러냈다. "넘들은 예술을 몰라..." 내가 보기에는 예술은 나를 포함해서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
내가 지난 3주 동안 집중적으로 20대에 대해서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는데, 이중에 유일하게 20대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얘기한 사람은 녹색평론 발행인인 김종철 선생 정도였다.
60명 정도의 작은 샘플 수지만, 내가 들은 얘기들을 종합해보면, 우리 사회의 지식인과 전문가들은 일종의 20대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묘한 현상이다.
50대쯤 되는 공무원 국장이나 실장들, 즉 1, 2급 정도의 사회가 고위공직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20대에 대해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혐오감을 피력하였다. 사교육 받아서 대학들어간 넘들이 뭘 자기 손으로 할 수 있겠느냐는 소위 건전한 보수들의 반응은 약간 특별했다.
지금의 20대는 좌파에게나 그리고 우파에게나 환영받지 못하는 묘한 세대인 것 같기는 하다.
나는 20대가 아니므로, 20대의 운명을 개척하는 것은 그 세대의 몫인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이런 작은 조사를 통해서 내가 가지게 된 생각은, 20대에게는 너무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20대에 나라를 세웠던 건국세대가 아니더라도 다른 세대들이 20대에 할 수 있었던 것들에 비해서 지금 20대에게는 너무 기회가 없었던 것 같고, 이건 지금의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결책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게시판에서 서로 초딩이라고 놀리면서 난장질을 하던 20대 몇 명을 직접 알고 있다. 둘 다 자신들이 초딩하고 꼴 사납게 굴었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지만, 나는 두 사람을 다 안다. 20대도 20대의 글을 익명으로 읽으면 저 사람은 분명 초딩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조금 있다.
난 장난을 좋아하기 때문에 두 사람을 만나게 해줄까 하다가 나중에라도 너무 큰 가슴의 상처가 서로 남을 것 같아서 그냥 참았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탈출구를 찾아낼 수 있을까?
이렇게 질문해보자. UCC라고 난리치며, UCC 마케팅의 새로운 길을 찾으려고 하는 큰 회사의 기획자들이 정작 20대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혹은 블로그로 한 장사 하고 있는 포탈의 운영자들이 음악 파일과 그림 파일을 잘 올릴 수 있게 해달라고 생각하는 20대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조금 더 생각해보면, '기획'이라는 단어처럼 기분 나쁜 말은 없다. 그런 기획사에서 기획사 문을 두드리는 수많은 20대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이 무서운 한국 사회에서 뿔뿔이 흩어져 있는 지금의 20대는 그야말로 마케팅의 밥이다. 마치 10대가 무방비 상태에서 1318 마케팅의 밥인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밥이 아니다"라고 외칠 더 많은 20대 작가가 필요하다는 나의 짧은 생각이다. 어느 한 세대도 다른 세대의 밥이 되어서는 안되지만, 내버려 두면 그렇게 된다.
이 이상한 사회적 균형은 어디에서인가 균열을 내기 시작해야 한다. 그 첫 균열자가 어디에서 등장하게 될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중인데, 잘 등장하지 않는다.
내가 본 유일한 균열자는 카운터 테너 이동규이지만, 이동규는 대한민국 시스템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캐나다 교육시스템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그는 20대가 될 때까지 햄버거집에서 햄버거를 뒤집는 일을 하고 있던, 한국이라면 그 뒤의 미래가 너무나 뻔한 알바 인생을 살고 있었을 뿐이다.
파리넬리라는 영화 한 편을 친구들과 비디오를 빌려서 보다가, "나 저거 해보고 싶다"고 20대 초반의 이동규가 생각을 했다. 그가 음대에 진학하게 되고, 결국 음반을 낼 때까지의 과정은 눈물없이 볼 수 없는 한 편의 드라마이다.
가끔 그런 사례들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기획사에서 가짜로 만들어낸 허상들이다. 그래서 더 슬프다.
길이 있을까? 길을 조금이라도 만들고 싶고, 나의 작은 힘을 조금이라도 그런 곳에 보태고 싶다. 되지도 않고, 의미도 없는 일에 길지 않게 남은 나의 인생을 쓰고 싶지는 않다.
그런 생각을 조금 해보고 나니까, 조금은 구조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만난 20대들이 가지고 있던 영혼없는 표정같은 얼굴에서 배어나오는 슬픔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에서만 하는 얘기인지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는 얘기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하여간 20대의 글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 곳은 아직 보지 못했다.
이 사람들이 늘 하는 얘기는 20대에 글 쓰는 사람이 없다, 있으면 소개시켜 달라는 말을 하고는 한다.
사실 나도 딱히 소개시켜줄 사람이 없기는 하다. 그러나 이건 20대에 글 쓰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워낙 사람들을 잘 안 만나고 혼자 지내기 때문에 그렇다.
많이 있을 것이다. 시나리오 작가 되겠다고 골방에서 수 년째 컵라면으로 많은 끼니를 때우면서 혼자 글 쓰는 연습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만 수만명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소설가가 되고 싶은 사람은 훨씬 적고, 시인이 되고 싶은 사람은 훨씬 적은 것으로 알고 있다.
당장 내 근처에 있는 매체만 생각해보더라도 '인물과 사상'이나 녹색평론 같은 곳에서도 좋은 20대 작가들의 글을 발굴하고 싣고 싶어하는데, 뭔가 서로가 원하는게 잘 연결이 안되는 느낌이 있다. 왜 그럴까? 이유야 몇 가지를 금방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하여간 그런 이유에도 불구하고 20대의 목소리가 더 사회 전면에 나설 수 있게 해야할 것 같다.
내가 만나본 얼마 되지 않는 20대들은 대부분 노무현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정치 전면에 나서서 정치기획을 주로 하는 사람들은 80년대 초반학번의 서울대를 졸업한 사람들이 많은데, 느낌상으로는 이 소위 정치꾼들보다 더 노무현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같이 할 수 있는 얘기가 별로 없었다.
네, 열심히 사시구여, 바라시는 일 잘 되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노무현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도 만나보았다. 샘플에 문제가 있기는 할텐데, 이 사람들은 거만했다. 배 내밀고 의자 뒤로 젖히고 나에게 "날 한 번 설득해봐"라고 말했던 50대 만큼이나 어떤 20대들은 거만했다.
네, 훌륭하신 분 만나서 영광스러웠구여, 생에 늘 영광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노무현을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내가 만난 20대들은 아주 슬픈 표정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거만했다. 살아있는 생활인의 표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잘 없었다.
왜 그럴까 가끔 생각해본다. 너무 이상한 사람들만 내가 만나게 되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런 모습도 우리가 같이 살아가는 시대의 모습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20대의 목소리가 더 앞으로 나오고, 더 많은 20대 작가들이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를 지망한다는 20대를 전혀 안 만나본 것은 아니다. 나한테 뭔가를 따지는 것 같은데, 사실 나는 그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내가 이해한 유일한 얘기는 술을 같이 마시고 싶다는 얘기 밖에 없었다.
난 20대의 삶과 애환에 대해서 잘 모른다. 내가 아주 알았던 아주 작은 수의 20대는 너무 이상하거나 너무 뻣뻣했다. 50대 만큼이나 뻣뻣하고 유연하지 않았다.
그래서 '공진화(co-evolution)'라는 개념에 대해서 가끔 생각해보게 된다. 소위 전문가라고 이마에 딱 딱지를 붙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비슷한 질문을 해봤다.
우파들은 20대를 마케팅의 대상으로 생각했고, 좌파들은 20대를 증오하는 것 같아 보였다.
교수들은 어떻게 '좋은 학생'을 받아서 조교로 부려먹을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같고, 기업의 본부장이나 공기업의 처장들은 유달리 높은 경쟁률로 자신의 회사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20대들은 다 자신의 발 아래에 있다고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이 많은 '대기자'들은 지금의 20대 기자들이 근성이 없다고 실망하는 얘기를 많이 했고, 예술가라고 자처하는 사람은 오히려 솔직하게 20대에 대한 혐오를 드러냈다. "넘들은 예술을 몰라..." 내가 보기에는 예술은 나를 포함해서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
내가 지난 3주 동안 집중적으로 20대에 대해서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는데, 이중에 유일하게 20대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얘기한 사람은 녹색평론 발행인인 김종철 선생 정도였다.
60명 정도의 작은 샘플 수지만, 내가 들은 얘기들을 종합해보면, 우리 사회의 지식인과 전문가들은 일종의 20대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묘한 현상이다.
50대쯤 되는 공무원 국장이나 실장들, 즉 1, 2급 정도의 사회가 고위공직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20대에 대해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혐오감을 피력하였다. 사교육 받아서 대학들어간 넘들이 뭘 자기 손으로 할 수 있겠느냐는 소위 건전한 보수들의 반응은 약간 특별했다.
지금의 20대는 좌파에게나 그리고 우파에게나 환영받지 못하는 묘한 세대인 것 같기는 하다.
나는 20대가 아니므로, 20대의 운명을 개척하는 것은 그 세대의 몫인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이런 작은 조사를 통해서 내가 가지게 된 생각은, 20대에게는 너무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20대에 나라를 세웠던 건국세대가 아니더라도 다른 세대들이 20대에 할 수 있었던 것들에 비해서 지금 20대에게는 너무 기회가 없었던 것 같고, 이건 지금의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결책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게시판에서 서로 초딩이라고 놀리면서 난장질을 하던 20대 몇 명을 직접 알고 있다. 둘 다 자신들이 초딩하고 꼴 사납게 굴었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지만, 나는 두 사람을 다 안다. 20대도 20대의 글을 익명으로 읽으면 저 사람은 분명 초딩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조금 있다.
난 장난을 좋아하기 때문에 두 사람을 만나게 해줄까 하다가 나중에라도 너무 큰 가슴의 상처가 서로 남을 것 같아서 그냥 참았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탈출구를 찾아낼 수 있을까?
이렇게 질문해보자. UCC라고 난리치며, UCC 마케팅의 새로운 길을 찾으려고 하는 큰 회사의 기획자들이 정작 20대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혹은 블로그로 한 장사 하고 있는 포탈의 운영자들이 음악 파일과 그림 파일을 잘 올릴 수 있게 해달라고 생각하는 20대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조금 더 생각해보면, '기획'이라는 단어처럼 기분 나쁜 말은 없다. 그런 기획사에서 기획사 문을 두드리는 수많은 20대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이 무서운 한국 사회에서 뿔뿔이 흩어져 있는 지금의 20대는 그야말로 마케팅의 밥이다. 마치 10대가 무방비 상태에서 1318 마케팅의 밥인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밥이 아니다"라고 외칠 더 많은 20대 작가가 필요하다는 나의 짧은 생각이다. 어느 한 세대도 다른 세대의 밥이 되어서는 안되지만, 내버려 두면 그렇게 된다.
이 이상한 사회적 균형은 어디에서인가 균열을 내기 시작해야 한다. 그 첫 균열자가 어디에서 등장하게 될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중인데, 잘 등장하지 않는다.
내가 본 유일한 균열자는 카운터 테너 이동규이지만, 이동규는 대한민국 시스템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캐나다 교육시스템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그는 20대가 될 때까지 햄버거집에서 햄버거를 뒤집는 일을 하고 있던, 한국이라면 그 뒤의 미래가 너무나 뻔한 알바 인생을 살고 있었을 뿐이다.
파리넬리라는 영화 한 편을 친구들과 비디오를 빌려서 보다가, "나 저거 해보고 싶다"고 20대 초반의 이동규가 생각을 했다. 그가 음대에 진학하게 되고, 결국 음반을 낼 때까지의 과정은 눈물없이 볼 수 없는 한 편의 드라마이다.
가끔 그런 사례들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기획사에서 가짜로 만들어낸 허상들이다. 그래서 더 슬프다.
길이 있을까? 길을 조금이라도 만들고 싶고, 나의 작은 힘을 조금이라도 그런 곳에 보태고 싶다. 되지도 않고, 의미도 없는 일에 길지 않게 남은 나의 인생을 쓰고 싶지는 않다.
그런 생각을 조금 해보고 나니까, 조금은 구조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만난 20대들이 가지고 있던 영혼없는 표정같은 얼굴에서 배어나오는 슬픔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 by | 2007/01/25 00:24 | 그냥 잡담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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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년 이전까지는 그래도 이전에 알아왔던 것들(?)이 남아있던 시기이기도 했던 듯 싶어요. 이를테면 학회나 학생회라는 조직이라던가, 하다못해 불심검문이나 사복경찰까지도 00년 언저리까진 남아있었고, 일종의 힘의 균형 상태(?)랄만한 96~01년을 지나고나서야 신자유주의가 대학가를 완전히 잠식해버린 듯 싶어요. 거기엔 학부제라는 제도적 이유도 어느정도 기능했을테고요 (그리고 그 힘의 균형상태(?)에서 적당한 타협점으로 나타난 존재들이 바로바로 '노빠'라고 불리우던 바로 그 분들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전 99학번입니다만, 96~01년까지 자기소개같은거 하라그러면 고정된 멘트가 있었죠. 'XXX운동의 끝물을 붙잡고 어쩌고저쩌고'
IMF만 아니라면 일종의 대학가의 카오스세대(?)랄 만한 96~01 학번들이 딱히 슬픈세대다라고 말하기는 뭣한 구석도 있는것도 같네요. '시대적으로' 많이 배려받아온 연령대라는 생각도 들거든요. 저만해도 80년대 민주화가 어쩌네해도 기억에 남는건 '우리또래'가 전적으로 열광했던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당시 초딩들에겐 엄청나게 긴 '가을방학'이 주어지기도 했었죠), 엄청나게 성업(?)했던 프로야구였고, 중고등학교 들어와서 어슴푸레 용돈모아 음반 살 나이가 될땐 서태지나 김건모같은 '우리또래'가 좋아하는 가수들이 주현미, 현철을 꺾고(?) 가수왕을 먹던 시절을 봤고, 대학에 들어와선 갑자기 영화'산업'이 급성장해서 우리또래의 여가시간 고민을 덜어주지 않나 심지어 어쨌거나 '우리또래'가 유의미하게 지지했던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걸 봤으니까요. 재밌는건 그 또래들이 그것들을 '소비'하고 뜨는 순간 차례대로 황폐해졌다는 점-_-;;;;;;
제가 10년 전에 어느 어른과 술자리에서 "왠지 앞으로 세상이 전혀 달라질 것 같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의 그 불안함, 오리무중, 뭔가 거대한 것에 짓눌린 듯한 느낌이 거의 그대로 실현된 듯 하고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아요. 그냥 이렇게 살아가는 거죠. 맑스같은 분이 재림하지 않는 이상은...
분명 20대들은 시대에 파묻혀 자신들의 삶을 잃어가지만 그렇게 부정적이라고 평가받을 세대는 아니라고 봐요. 어떤 시대든 그 기준이 어땠든 살아가는 것은 변함없으니까요.
저는 기성세대들에게 연민이 들어요.
나이가 들어 과거의 자신을 버리고 결국에는 파멸에 이를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편견으로 색안경을 낀 사람들.
지금의 사람들은 마케팅과 기획으로 얼룩지고 붕괴되고 있다지만 그 시점에서는 아직도 살아가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20대든 10대든 젊은 사람들을 혐오하는 중년들을 보면 혐오를 지나 연민이 드네요.
자신들의 태생인 농촌을 잔인하게 짓밟고 집에 매달려 공허한 꿈에 매달린 그들에게 연민이라는 감정이 드네요..
댓글 중 음 님이 쓰신 분석에도 100% 동의하구요. (아! 여기서 20대 정체성을 공유할 수 있다니...)
굳이 글쓰는 작가는 아니여도 다른 분야의 작가도 필요하겠지요? 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20대는 없을 듯. 물론 글이 모든 것의 기본이지만 지금 20대는 이미지 세대고 디지털에 능하지 않습니까? ^^
균열자라고 하니 예전 애플의 TV광고가 떠오릅니다. 어떤 여자가 달려와서 벽을 깨부수는...
(어? 이것도 기획된 이미지인가? 광고이니...더해서 요즘 꿈을 주제로 말하는 광고들을 보면 그 잇속이 뻔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특히 가장 가입자가 많은 통신회사 브랜드의 광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