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가 만나게 될 세상

 

20대에 대한 정의와 구조의 문제 그리고 흐름... 한참 악전 고투 중이다.


제시할 수 있는 출구가 보이기는 하는데, 그게 내 눈에만 출구 같아 보이고, 사람들 눈에는 출구 같아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문제다. 나의 착시일까, 아니면 설득의 실패일까?


하여간 한참 악전고투 중이다.



제 2장. 20대가 만나게 될 세상 : 바깥의 변화, 내부의 변화


1) 현재의 20대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경제학자들은 ‘보편성’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특수해보다는 일반해를 좋아하고, 모든 상황에 다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설명을 좋아한다. 이런 전통은 ‘거대 이론(mega theory)’의 시대가 끝나고 케인즈 이후로는 모든 상황에 적용시킬 수 있는 큰 이론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거장들의 시대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경제학 내에서는 일반 이론을 특수 이론에 비해서 훨씬 높게 쳐주는 경향이 남아있다. 경제학의 만들어내는 일반 이론들은 화려하고 논리적인 추상수준도 대단히 높다. 학문의 미학적 가치를 평가한다면 경제학이 가지고 있는 수리적 전개와 이를 설명하는 그래프 그리고 다시 그러한 결과를 언어를 통해서 설명하는 아름다움은 결코 물리학에 비해서 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물리학과 경제학은 다루는 대상 자체가 좀 다르다. 그래서 경제학 이론들은 종종 역사성과 공간성이라는 두 가지 점에서 의문의 대상이 된다. 시간이 바뀌고 장소가 바뀌어도 똑같은 법칙이 적용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간단해보여도 경제인식론과 같이 본격적으로 경제학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분과에서 본격적인 논의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특수이론에 대해서 경제학 내에서 가장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은 독일 역사학파의 문을 열었던 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 리스트는 아담 스미스에서 데이빗 리카아도에 이르는 소위 고전학파 이론들이 이론 자체가 먼저 발전한 영국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후발주자인 독일의 경우에는 맞지 않는다는 당시로서는 도발적인 주장을 하였고, 당시의 모든 경제학자들을 상대로 논쟁을 한 경우이다. 결과적으로 논쟁에서 경제적 법칙의 보편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기기는 했지만, 보호무역 이론은 리스트의 주장 위에 서 있고 우리나라가 박정희 시대에 전격적으로 도입한 경제발전의 패러다임도 리스트의 이론을 그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미국 경제학계를 기준으로 한다면 제도학파를 열었던 톨스타인 베블렌의 경우가 역사적 상대성과 공간적 특수성을 중심으로 이론을 세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오래된 논쟁은 생각보다 어렵고 복잡한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매번 이론가들은 자신의 이론을 세우거나 새로운 가설들을 만들 때마다 이것이 과연 일반해로 전개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특수한 현상에 대한 특수한 설명틀이 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사회학이나 정치학과 같은 경우에는 최근의 흐름으로는 조금 더 특수한 상황을 정밀하게 묘사하고 싶은 경향이 있고, 수학과 통계학을 더 많이 도입하는 것들은 특수상황을 설정하고, 역사적이거나 공간적인 차이점을 밝혀내기 위해서 사용된다. 그러나 경제학의 경우는 일반화된 설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 경제’라는 질문은 상당히 고약한 질문 같은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국인이 한국경제에 대해서 질문하고 답하는 것은 당연할 것 같지만, 경제학 자체의 눈으로 보자면 한국 경제에 대한 질문은 지역학에 더 가깝다. 국제적인 기준을 적용한다면 특수지역경제이론과 비슷한 것인데, 한국 경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든 혹은 부정적으로 평가하든, 특수 상황에 일반이론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라는 딜레마를 안게 된다. 어쩌면 자신의 나라의 문제에 대해서 접근하려고 하는 모든 경제학자들은 모두 동일한 딜레마를 안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나라를 설명하려는 순간에 아무리 일반이론의 신봉자라고 하더라도 역사성의 문제와 공간의 차이점과 같은 것들을 가지고 올 수밖에 없고, 때때로는 민족구성의 특수성과 같이 경제학의 언어로 다루기 아주 까다로운 상황들을 설명해야 할 것이다. 스위스와 같이 4개의 민족이 4개의 언어를 가지고 움직이는 국민경제를 설명할 때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역사와 공간에 대한 특수성의 언급 없이 접근할 수 있는 길은 없다. 이건 우리나라의 재정경제부의 고위 관료들이 신의 나라처럼 떠받들고 있는 미국 경제에 대해서 설명할 때에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민족으로 구성되어 있고, 주정부별로 전혀 다른 시스템으로 움직이며, 두 개의 정당이 의사결정을 만들어내는 미국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함들에 대한 설명 없이 미국 경제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런데 조금 더 눈을 좁혀서 “지금 한국의 20대”라고 해보자. 이 특수하고도 특수한 상황에 대해서 경제학이 논리적 모순에 빠지지 않으면서 정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사회학이나 정치학 같으면 조금 더 쉬울 수 있다. 공유된 경험이나 사건들을 중심으로 ‘세대’를 정의하는 기법들을 사용한다면 비교적 쉽게 논리모순에 빠지지 않으면서 정의할 수 있겠지만, 경제학에서 이 질문은 “왜 한국에서는 깡패가 사라지지 않는가?”라는 질문보다 훨씬 난이도 높고 어려운 질문이다. 깡패의 문제는 지하경제라는 개념이 있고, 범죄 행위를 설명할 수 있는 개리 베커의 설명틀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현실성은 떨어지더라도 이론적으로는 일관된 설명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지금 우리와 같이 살고 있는 20대를 정의하라고 하면 훨씬 어려운 문제가 된다.


앞장에서 설명한 10대들을 정의하는 문제와 비교한다면, 10대들은 20대보다 훨씬 균일하고 공교육이라는 시스템 내에 공통으로 들어가 있는 집단이기 때문에 개념으로서는 다루기가 훨씬 용이하다. 그러나 20대는 이미 수없는 분할이 시작되어 있고, 가난한 사람과 재벌의 상속인, 이미 독립한 사람과 아직 독립하지 않은 사람, 그리고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간 사람과 벌써 아이를 낳아 부모가 된 사람들을 하나의 범주로 분리하는 것 자체가 추상화된 개념으로 다룰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이런 위험은 세대 혹은 연령별 기준에 의한 범주를 설정하는 순간에 이미 내포적으로 가지고 있는 위험성들과 비슷하다. 이런 문제가 있을 때 사회과학에서는 “개체 차이가 집체 차이보다 크다”라는 말로 표현한다. 예를 들면 경상도는 어떻고 전라도는 어떻고라는 지역감정과 관련된 것이 뻔한 얘기를 들었을 때, 이를 반박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개체와 집체 사이의 차이점을 거론하는 일이다. 남성과 여성에 대한 편견어린 기존 서술 방식에 대해서 반박할 때에도 같은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세대에 관한 이야기들을 전개하게 되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기 쉽고 또 연구자의 편견이 분석과정에 개입하게 된다는 비판에 직면할 위험성이 높다. 게다가 언제든지 사이비 과학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근대 철학에서 사이비 과학에 대한 논란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학문이 바로 골상학이다. 사람들의 얼굴 골상을 보면 그 사람이 범죄자가 될 것인지 아닌지 혹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알 수 있다는 골상학은 19세기 초반 유럽에서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는데, 통계와 관찰 그리고 이론화라는 근대과학이 가지고 있는 모든 형태는 전부 갖추고 있었지만, 이 골상학이 왜 과학이 아닌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헤겔부터 가브리엘 따드에 이르기까지 많은 학자들이 그들의 저술에 상당히 많은 지면을 할애하면서 골상학과 같은 학문은 학문이 아닌 사이비학문이라고 설명하였다. 사람의 골상과 얼굴과 개체의 특징을 연관시킬 수 있는 그야말로 ‘본질’을 입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골상학은 나중에 인종주의와 민족주의로 연결되면서 초기 다윈주의의 연구자들에게 뼈아픈 추억이 되는 ‘사회 생물학’ 같은 것과 불순한 연관을 맺게 된다. 프로이트는 독일 사람들이 이런 사이비 과학과 관련해서 유태인들에게 붙여놓은 여러 가지 딱지들을 ‘작은 차이의 나르시시즘’이라고 불렀다. 한중일 사이에서 벌어지는 민족적 나르시스즘을 고취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담론들은 제 3자의 눈으로 볼 때에는 거의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형제들’ 사이에서는 이런 차이점이 극단적으로 강조되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세대’라는 용어는 이런 위험성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회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종종 세대 담론을 사용하게 되는 이유는 이것이 ‘역사성’과 ‘공간성’이라는 구체성을 추상성에 덧붙여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지금 20대”라는 개념은 제논의 “흘러가는 물은 잡을 수 없다”라는 말과 비슷한 딜레마를 가지게 된다. 매년 20대가 갱신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21세기 초반이라는 특수한 구체성을 부여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20대 소비자 혹은 20대 노동시장의 노동공급자라고 표현하면 이런 개념 속에서 ‘맥락(context)’을 잡아내고 분석하기가 쉽지 않다. 개념 자체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많은 연구자들이 세대라는 표현을 쓰게 되는 것은 보편주의적 접근이 절대로 가질 수 없는 맥락이라는 또 다른 매력적인 성격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지금의 20대’를 ‘경제적’인 의미로 가지고 있는 개념으로 정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공유된 경험(shared experience)’이라는 장치의 도움을 받는다면 “IMF 1세대”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1998년의 IMF 경제위기에 우리나라의 모든 국민이 크건 작건 경제적 삶은 물론 개인적 삶에 대해서 영향을 받았지만, 실제로 이 시기에 10대를 보내고 IMF 경제위기 이전의 한국이 가지고 있던 삶의 방식이나 경제적 규칙의 시대를 경험해보지 않고, 사회생활을 IMF 이후 체계에서 시작하게 된 첫 번째 세대라는 점을 통해서 지금의 20대를 정의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하지만 반드시 기계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개념을 사용한다면 ‘포스트 포디즘 1세대’라고 정의하는 방법도 있다. 1920년대 이후 2차 대전의 복구와 함께 서구 경제의 ‘영광의 30년’이 종료하면서 90년대 초기부터 포디즘의 시대가 사실상 종료하였고, 이에 맞춘 국제경제 시스템이 변화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세계화라는 또 다른 국제분업 체계와 혼돈의 무한경쟁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국제경제의 변화와 함께 한국 경제가 60년대 이후로 누렸던 소위 ‘신 국제분업’ 시대도 종료하게 되고, 우리나라 내부에서도 점차적으로 포스트 포디즘의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객관적인 변화이고, 또 다른 국제경제 시스템이 도래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 경제도 어떠한 방식으로든 겪을 수밖에 없는 외부환경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환에는 몇 가지 가능한 시나리오가 있었겠지만, IMF 경제위기로 인하여 포스트 포디즘은 우리나라에 상당히 전격적으로 진행된다. 포스트 포디즘의 충격은 IMF 경제위기와 반드시 동반될 필요는 없고, 또 격차를 두고 올 수도 있는 충격이라고 하겠지만, 지금의 20대는 이 두 가지 사건을 동시에 겪게 된 세대이다. 그래서 약간은 더 폭력적으로 시대의 변화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한국 현대경제사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동시에 진행되는 일이 우리나라에 발생하게 되었고, 대학에 있거나 초등학교에서, 즉 아직 사회 생활을 시작하지 않은 상태에서 겪은 사람들이 지금의 20대이다.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라는 잣대로 말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가 경제적으로는 충분히 얘기해보고 분석할만한 장기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만은 확실할 것이다. 이런 변화가 없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그런 얘기는 하나마나이다. 이건 개인들이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구조 자체의 변화이고, 문제는 이렇게 해서 새롭게 전개되는 제도의 변화와 행위 방식에 대한 적응의 방식 혹은 그를 완화하기 위한 개인적 혹은 집단적 대응방식이 중요할 뿐이다.


2) 20대를 둘러싼 경제적 흐름에 대한 이해

3) 관찰 1 : 나의 관찰, 지체된 창업의 세대

4) 관찰 2 : 사람들의 관찰,

5) 다양성 1세대가 될 수 있을까?


2) 20대가 만나게 된 시대의 조건


지금의 20대가 대체적으로 만나게 된 세상은 확실히 30대와 40대가 만났던 한국 사회와는 다르다. 옛날 표현대로 하면 대학 졸업장만 있어도 소위 수출시대의 첨병이라고 할 수 있던 종합상사의 문은 크게 열려있었고, 꼭 그렇게 큰 직장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오퍼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소규모 수출대행업자와 같은 것을 혼자 운영할 수 있는 시기가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고용이 문제가 아니라 적절한 인력공급이 어려워서 지방을 해체하며 수도권으로 노동자들을 불러내면서 노동의 지속적 공급이 문제가 되던 시기가 분명히 있었다. 이 문은 이제 닫혔고, IMF 이후에 새롭게 형성된 한국 경제의 질서는 객관적으로 상당히 가혹하다. 박정희에서 전두환 대통령까지 이어지던 일반인에게 꿈만 같던 시기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전혀 다른 형태로 더 가혹한 시대로 진행될 것인가?


지금의 20대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소위 ‘경제인’으로 자리잡기 이전에, 즉 그들이 10대를 보내고 있을 때 한국 경제는 IMF 경제위기라는 한국 경제의 진행과정에서 가장 큰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이 사건 이후에 10년이 지나간 셈인데, 앞의 5년은 김대중이라는 대통령과 함께 보내게 되었고, 그 후의 5년은 노무현이라는 대통령과 함께 보내게 된 셈이다. 흔하게 쓰는 신자유주의라는 표현을 다시 사용하자면, 앞의 5년은 ‘완화된 신자유주의’ 그리고 뒤의 5년은 ‘강화된 신자유주의’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큰 경제기조는 비슷한데, 사회안전망과 노동과 같은 개인들에 대한 정책은 확실히 좀 차이가 있다. 노무현 시절에 우리나라에서의 신자유주의는 더 노골적으로 변했고, 현재로서 주류 경제담론은 신자유주의라는 흐름을 전제하고 그 속에서 “살 사람이라도 살자”라는 형태로 변하고 있다고 보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부의 변화만을 놓고 본다면, 이 기간 동안에 비경제적 관계 즉 가족애, 우정, 사랑과 같은 얘기들과 관련된 얘기들은 상당히 약화되었다. 그야말로 문학이 죽고 시가 죽고 예술이 울던 시기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그 대신에 경제경영과 관련된 말들 그리고 재테크나 부동산 같은 얘기들이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이런 내부적 변화를 사회적인 용어로 사용한다면 ‘승자독식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이 과정에서 패재에게는 거의 아무런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 그야말로 초기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었던 담론체계가 다시 복귀하는 셈이다. 경제학의 용어로 표현한다면, “신자유주의의 전면화”라고 할 수도 있고, “삶의 자본화”라는 사회학 뉘앙스를 강하게 가지고 있는 표현을 쓸 수도 있는데, 표준 경제학의 용어를 사용하면 ‘독과점화의 강화’라고 표현할 수 있다. 기업집단이라고 부르던 재벌의 시대가 IMF 경제위기와 함께 조금 뒤로 물러나면서 상품별, 부문별 독과점화가 진행되었고, 한국 경제의 백가쟁명의 시대라고 할 수 있던 그야말로 “한국식 영광의 30년”이 종료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분야별로 독과점화가 강하게 진행된다. 대부분의 상품이 두 개에서 세 개의 생산업체가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고, 선두 한 개 회사가 2~3위 회사를 합친 것만큼 혹은 이보다 약간 더 큰 일종의 “1:2 법칙”이라고 좋은 정도의 독과점화가 진행되었던 것이라고 지난 10년 간의 내부 변화를 간단하게 요약해볼 수 있다. 이런 상황은 경제학의 표준모델이 전제하고 있는 완전경쟁 시장의 조건과는 현실적으로 매우 다른 상황이다.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생산자와 역시 무한대에 가까운 소비자가 시장을 통해서 공정하게 가격을 발생시키고, 어느 누구도 시장 가격에 대해서 독점적으로 가격을 움직일 수 없다는 완전경쟁의 가정은 경제학자들에게는 ‘꿈’에 해당하는 희망이기는 한데, 원래에도 재벌 시스템에서 한국 경제가 가지고 있던 독과점화 경향이 IMF 이후 10년 동안 강화된다. 모노폴리, 듀모폴리 혹은 올리고폴리라고 부르는 눈을 가지고 들여다보고 특히 선두 1위 업체와 그 뒤의 2, 3위 업체가 경쟁하는 상태라고 보면 상당히 많은 한국 경제의 내부의 경쟁 규칙과 그에 따른 제도들의 변화가 설명될 수 있다. 가장 간단하게 볼 수 있는 라면, 핸드폰, 냉장고, TV 같은 것에서 신문, 방송 혹은 주유소나 은행 그리고 편의점과 대형유통매장까지도 이런 1:2의 법칙에 의해서 움직인다. 그리고 나머지 생산자들은 소위 ‘롱 테일’이라고 부르는 나머지 10% 정도의 작은 시장에서 버티는 형태의 독과점과 강화라는 변화가 지난 10년 동안 일어나고 있다. 당연히 1위들만의 조합으로 살아가는 ‘1등 인생’에 해당하는 것들이 등장하게 되어있고, 이 시스템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승자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 누구나 독점적 위치에 서고 싶고, 또한 1위 업체가 누리게 되는 독점 이윤을 만끽하고 싶어한다. 경제학 교과서에는 독점 이윤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상당히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데, 대부분 특수해와 비슷한 것이고 그래서 그래프와 간단한 수학계산보다는 훨씬 더 구체적인 상황을 잘 반영하는 게임이론이나 시스템 이론 같은 것들이 지난 10년간을 설명하는데 훨씬 더 현실적인 설명틀을 제공하게 된다. 선두업체와 후발업체 사이의 경쟁, 그리고 선두업체와 선두업체들이 시장 간에 벌어지는 경쟁 같은 것들은 전통적인 경제학 분석수단으로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이런 변화는 사실 우리나라에서만 진행된 것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건 90년대 중반 이후 세계적으로 진행된 변화인데, 세계화라는 현상을 금융경제의 시각으로는 금융세계화라는 관점에서 보지만, 또 다른 눈인 실물경제의 눈에서는 기술개발 투자를 위한 금융조달을 위한 다국적기업들의 규모 불리기 그리고 이에 따른 국제적 독과점화라는 눈으로 본다. 예를 들면, 자동차에서는 국제적으로 5개 정도의 회사만이 살아남을 것이고, 철강부문에서도 5개 정도, 가전회사도 5~6개 정도로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들을 90년대에 많이 했었다. 현대자동차가 이런 5개 회사 내에 들어갈 것인가 혹은 삼성이 새로 투자하는 자동차 회사가 과연 그런 5개사 내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심각한 논쟁이 지금의 20대가 중고등학교에서 10대를 보내던 시절에 소위 우리나라의 전문가들이 한국 경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논의하던 시절에 주로 하던 이야기들이었다.


이런 국제적 변화와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변화를 연결시키는 설명의 방식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가장 쉬운 방식인데, ‘IMF 경제위기’를 전면에 내세워서, “총독부의 일본 앞잡이들이...”라고 표현하는 방식을 그대로 IMF라고 불리는 국제통화기금이 우리에게 강제했다고 설명하는 방식이다. “적들”이라는 존재와 음모론을 결합시켜서 설명하면, 이론의 설명력과는 별도로 상당히 그럴 듯하게 보이고, 왜 지금 우리가 이렇게 힘든 것인가를 비교적 일관성있게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라고 대개 총독부 지배시절에 실제로 자국민을 괴롭히던 총독부의 부역자들이 쉽게 사용하는 설명방식과 비슷하다. 이런 종류의 논리는 중남미 책들이나 “젊은 아프리카인”과 같은 잡지들에서 너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외인에 의한 설명은 단기간에 벌어진 급격한 변화를 설명하기에 좋은 장점이 있고, 또 사람들이 그 이유를 납득하기 위해서 눈에 보이는 IMF와 같은 ‘인물’ 특히 악역을 담당하는 캐릭터가 등장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이미지로 상황을 형성화시킬 수 있어서 설명틀 중에서 특히 선호된다. 신화 시대부터 인류는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틀로 세상을 이해하는 것을 아주 좋아했고, 미륵불이나 재림 예수와 같이 누군가가 돌아와서 핍박받는 우리들을 해방시켜주는 얘기를 아주 좋아했다. IMF라는 미국이 통제하는 것이 너무 뻔한 국제기구를 통해서 미국이 우리나라를 핍박했고 그래서 IMF와 경제위기가 발생하였고, 그런 이유로 세상이 너무 살기가 어려워졌다는 설명이나 이와 비슷한 여러 종류의 변형에 의한 설명들은 분명히 진실의 일면을 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설명만으로 전체적인 변화가 이해되기에는 미흡하다. 만약 IMF 경제위기가 없었다면 한국 경제는 지금과 달리 계속해서 ‘영광의 30년’이 영속될 것이고, 한국 경제가 그 시절에 가지고 있던 완전고용의 신화가 이어졌을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두 번째 종류의 설명은 국제경제 시스템의 변화 함께 세계경제 내에서의 한국 경제의 역할이 변화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적응 혹은 부적응들이 발생하게 되었다고 하는 설명방식이다. 90년대 중반 세계적 독과점화라고 부를 수 있는 실물경제의 세계화를 촉발시킨 힘은 세계적인 포디즘의 종말과 함께 도래한 포스트 포디즘 즉 탈포드주의 시대의 도래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포드주의는 자동차왕이라고 불렸던 포드 자동차의 바로 그 포드를 의미하며, 그는 컨베이어 벨트를 자신의 작업장에 도입하면서 회사의 노동자들에게 두 배 가까이 월급을 일시에 올려주었는데, 월급을 높이면서 노동자들의 적극적 협력을 이끌어내지 않으면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에서는 불량률이 너무 높아지거나 아니면 설계 속도만큼의 효율을 낼 수 없기 때문에 모든 노동자들이 조업과정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것이 이런 생산 시스템 작동에 가장 큰 요소라고 보통은 이해한다. 자동차 생산라인이 임금이 싸다고 아무 곳에나 갈 수 없는 것들을 설명하는 가장 큰 요소들로 이런 인적 요소들을 주로 거론하게 된다. 포드가 콘베이어 벨트에 의해서 “노동자들도 탈 수 있는 T형 포드”라는 구호로 시작된 이 변화는 20세기 후반 선진국들의 경제가 움직이는 기본 장치가 되었다. 노동자들에게 안정된 직장과 높은 월급을 지급하고, 그 월급으로 소비시장에 나서서 마음껏 소비하는 대신 공장은 최고의 효율로 돌아가는 이 시스템은 요즘 식 표현대로 하면 윈윈 게임의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은 거대한 공장처럼 신나게 돌아갔고, 70년대가 되면서 갈브레이드를 비롯한 학자들은 ‘풍요의 시대(age of opulence)’라는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방식의 운용원리를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라고 하는데, 만약 제3세계도 이러한 풍요를 조금 나눌 수 있고 지금 세계가 당면한 지구생태계의 위기 같은 것의 위험이 없다면 포드주의 시스템은 가장 멋진 세상일지도 모른다.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두 가지 계급만 세상에 존재한다면 이 시스템은 대체적으로 만족스럽고, 이렇게 인류가 풍요를 만끽하던 시절을 영광의 30년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하다.


대한민국 경제는 이러한 세계경제 시스템에서 저가공산품과 철강, 석유화학, 조선과 같은 장치형 산업을 맡게 되는데, 공산품과 농산품으로 나뉘었던 1차 국제분업에 비추어 이러한 한국 경제의 특화를 일부 학자들은 2차 국제분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박정희 시대에서 노태우 대통령까지의 시대가 자본주의권이 사회주의권을 비웃기도 하듯이 인류 최대의 풍요를 누리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90년대 초반이 되면서 국제경제의 이 안정적일 것 같아보이던 포디즘의 체계는 다음 단계로의 진화를 준비하는 시스템처럼 전혀 다른 방식을 갖추고 있는 새로운 경쟁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 때 등장한 새로운 방식들을 ‘포스트 포디즘’이라고 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소품종 다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이라는 일본의 토요타 자동차에서 시작된 ‘토요타주의(Toyotism)’의 경우이다. 같은 플랫폼에서 여러 유형의 차와 다양한 모델변 변형을 동시에 생산하는 이 토요타주의는 전혀 새로운 방식의 경쟁을 만들어내었고, 30년만에 다국적기업들은 품질 다변화라는 경쟁의 조건을 만나게 된다. 이와 함께 일본 경제가 우리나라 경제의 원형으로 제공하였던 ‘연공서열제’가 일본 내부에서 균열을 만나게 된다. 노동자에게 높은 월급을 주겠다는 포드이 약속이 깨어지고, 또한 일단 입사한 사람들은 무덤까지 책임지겠다는 일본식 연공서열의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변화와 함께 세계화의 또 다른 실물경제의 변화라고 할 수 있는 ‘망산업(network industry)’의 등장에 따른 규모화가 급격하게 진행된다. 영국의 국영기업이던 브리티스 텔리콤의 민영화를 계기로 국민기간망을 가지고 있던 망산업들이 등장하면서 정보통신이라는, 거대 규모를 전제하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 새로운 유형의 기업들이 등장하면서, 규모에 의한 기업들의 합종 연횡이라고 할 수 있는 기업인수합병이 드디어 시대의 전면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가 회생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던 미국 경제에 클린턴 시절의 소위 ‘신경제(New Economy)’라고 부르는 정보통신을 근간으로 하는 화려했던 8년을 만들어내면서 우리가 얘기하는 세계화라는 흐름 속에서의 국제적 변화가 1단락되게 된다.


탈포드주의 시대에 어떠한 경제가 펼쳐질 것인가? 이 변화가 IMF 경제위기 이후에 한국에서 진행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동남아 외환위기라는 세계경제의 주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 유독 한국에서 폭발적으로 파급되었다는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객관적으로 이러한 조건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이 변화는 폭력적으로 진행되었기는 하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다른 대통령이 있었거나 혹은 다른 정치집단이 이 시기에 통치를 했더라도 그 이후에 진행된 10년의 결과가 크게 달랐을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세계적 추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거나 나름대로 이 변화의 진폭을 제어하면서 자신의 길을 찾아갔던 다른 나라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경제적 안정장치와 비경제적 운용장치와 같은 것들을 한국은 애당초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건 나중에 다시 논의해볼 일이다.


일본에서는 연봉서열제가 균열이 가기는 했지만, 일본은 IMF 경제위기 보다 더 심각하게 10년간 진행된 헤이세이 공황을 겪으면서도 연봉서열제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제일 먼저 연공서열제부터 무너져내렸고, 5년 후에 정규직 체계가 무너지게 되었다. 이 문제를 완화시키기 위해서 정부가 할 수도 있는 일이 몇 가지가 있기는 했는데, 그런 일은 우리나라에서 거의 벌어지지 않았고, 특히 그 뒤의 5년에 해당하는 노무현 시기는 누적된 위기들이 폭발하는 시기라고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경제는 어떤 지표로 어떻게 확인하더라도 달러로 표시된 경제성장률 외에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지표들이 별로 없고, 무엇보다 나이 많은 사람과 나이 적은 사람들, 혹은 부자나 가난한 사람들이나 모두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저마다 다른 처방전들을 내고 있기는 하지만, 현 상황이 위기라는 데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그런데 경제 시스템은 경쟁이라는 장치를 가지고 있어서 때로는 이런 경쟁이 규모를 키우면서 모두에게 혜택을 보게 되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도 있지만, 원래 시장경제가 가지고 있는 무질서성이라는 부정적인 방향이 더 크게 발현해서 아무런 질서를 찾을 수 없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시장이 만들어주는 ‘일반균형’이 반드시 작동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어떤 경제학자도 자신하지 못한다. 경제학 교과서에 정 가운데에 등장하는 왈라스(L. Walras)의 일반균형 이론을 조금만 공부해보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균형가격의 도출에 의해서 시스템이 균형에 도달하는 것이 대단히 까다로운 조건들을 만족시켜야 한다.


하여간 이러한 10년 간의 변화를 어떻게 설명하든 간에 흔히 사람들이 표현하는 방식대로 IMF 이후의 변화를 가장 종합적이고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표현하는 말은 ‘승자독식(Winnter-Takes-All)’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 시스템에서 한 표라도 더 많은 정당이 그 지역의 선거인단을 전부 선출하는 이 말은 특히 우리나라에서 지난 수 년 동안 대단히 성공한 말이 되었다. 유럽에서는 ‘정글의 법칙’이라는 말이 더 유행했지만, 한문으로 번역된 승자독식이라는 말이 우리나라에서는 더 성공한 단어가 되었다. 스스로를 좌파계열이라고 가끔 표현하는 노무현 대통령이 말했던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표현하든, 우리나라의 시장사회라고 표현하든, 아니면 게임으로 본다면 내용은 그 본질은 같다. “이기면 그만이다.” 이 시스템이 언제까지 갈지 그것은 모르지만, 일본에서 받아들인 연공서열제가 먼저 우리나라에서 무너지고, 유럽에서 안정화시킨 정규직 체계가 유럽보다 더 급격하게 무너지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번영을 이끌었던 포디즘 체계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현 상황에서 현재 우리나라 20대들에게 주어진 게임의 룰은 승자독식 체계이다. 물론 이 상황은 홉스의 <레비아탄>에 나오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과는 조금 게임 룰이 다르다. 유럽 국가들이 70~80년대를 거치면서 정비해놓은 국민연금 제도가 있고,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비교적 튼튼한 의료보험 제도가 있고, 점차적으로 안전망들이 확충되기는 할 것이다. 그래서 홉스가 얘기했던 것처럼 모두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그야말로 생존 게임을 치러야 할 정도로 극심한 혼란상황은 아직 아니다.


우리나라는 1980년에 0% 성장, 즉 경제성장이 멈춘 적이 한 번 있고, 1998년에 마이너스 성장을 한 적이 한 번 있을 뿐이고, 늘 선진국의 경험에 비추어 낮지 않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경제이다. 다른 말로 하면 한국 경제시스템이 가장 부유한 상황에서 20대를 보내고 있다고 할 수 있고, 상대적 비교 없이 절대적인 경제 수치만을 가지고 보면 “가장 부유한 20대” 시절을 보내게 된 세대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전 세대에 비해서는 맞는 말이기는 한데, 이건 지금의 10대가 20대가 되더라도 적용될 수 있는 말이고, 경제성장률이 0% 보다 높은 한에서는 언제나 옳은 말이기는 하다. 큰 의미는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한국 경제가 나름대로 영광의 30년을 보냈던 시기 그리고 IMF 경제위기 이후의 구조조정을 어느 정도 마치고 난 지금은 앞의 세대가 20대에 가지게 된 게임의 법칙과는 상당히 변형되거나 수정된 게임을 치루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by 비나리 | 2007/01/22 00:30 | 출간 이야기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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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연애편지 at 2007/01/22 15:32
제가 아는 지식은 적지만 대체로 이해가 가고 그 출구에 대해 무척 궁금하면서 알듯 싶습니다.
몇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1. 세대론적인 담론은 위험하지만 비나리님이 시도는 좋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옛날부터 생존의 법칙은 존재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것이 노골화 된게 지금이라고 보고 옛날은 정부에서 일정부분 통제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문제는 그 노골화 된 생존의 법칙을 진정시키거나 미친듯이 폭주시켜서 원점으로 돌리든등 방식은 다양하지만 부딛치는 현실이 달라진 '20대'들은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
(사실 저두 이제 20대거든요..ㅠ.ㅠ)

2. 개인적으로 지금의 20대보다도 10대들이 더 걱정이 듭니다. 기존의 체제가 바뀌지 않는 한 20대보다 더 큰 피해를 입을 쪽이 10대가 아닌가 싶은데요. 승자독식, 생존의 법칙의 위험성은 '정글의 법칙'보다 더 무섭다고 생각됩니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생각하면 10대들의 앞날이 훤하네요.ㅠㅠ

3. 특수이론이라면 어떤이론에 주목하시나요? 제가 보기에는 자본주의의 영광이 정상을 지난것은 알겠는데 그 뒤가 아직은 잘 모르겠네요. 시기적으로 보면 르네상스와 같은 시기일까요?
마녀사냥이 잦았고 예술의 부활이라고 하고. 경제적으로 부유하면서 혼란스러웠던 시기...그런 모순된 시기가 지금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4. 마지막으로 한국은 지금 미국보다도 더 빨리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로 가고 있다는 저의 갠적인 견해를 밝힙니다..ㅎㅎ
Commented by 프리스티 at 2007/01/24 02:20
20대 초반 입장에서 두려움만 가득합니다. 대학 신입생들이 그 무엇보다도 취업과 고시 때문에 진학을 결정하는 모습이 참 안타까우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제 막연한 두려움을 좀 명석하게 구체화할 수 있었던 글이에요.
Commented by 대나무 at 2007/01/26 00:51
제가 속한 세대에 대한 다른 세대의 시각과 생각이라...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긴글인지라 천천히 읽고 리뷰드리겠습니다.

*저도 연애편지 님 처럼 우 교수님 팬클럽에 가입하게 된 것 같습니다... 아님 스토컨가? ㅋㅋ
Commented by 비나리 at 2007/01/26 01:06
아, 네, 전 교수는 아니구여, 그냥 비정규직 시간강사입니다. 앞으로도 교수할 계획도 별로 없고, 그럴 인연도 없는 것 같아서여... 교수라는 호칭이 멋적네여...
Commented by 대나무 at 2007/01/26 08:11
아! 네....강사님하면 왠지 실례가 아닌가 싶어서 알면서도 종종 그럼니다.
그럼 혹시 비나리 님이라고 해도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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