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1월 17일
논쟁을 즐기는 법
난 농담을 즐기지 논쟁을 즐기지는 않는다. 그래서 논쟁이 벌어질 것 같으면 도망간다. 원래 그렇게 살았다.
잘 정의되어 있고, 상대가 적절하게 논쟁할 상대가 아니라면 무조건 도망간다. 깨갱하고 도망가며 조롱받는게, 나중에 두고두고 불쾌해지는 것 보다는 훨 낫다. 명예? 내가 지켜야할 명예같은 건 애시당초 키우지를 않는다.
그런데 나에게 논쟁의 의무를 던져놓고 간 사람이 있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하승창 선배가 미국 유학가기 직전에, 나에게 당신들이 논쟁하지 않으니까 우리가 최장집-백낙청 논쟁을 지금 논쟁이라고 봐야 하는 거 아니냐... 허걱... 도대체 왜 그 할아버지들 말싸움 하는데, 내가 그 똥바가지를 써야하지?
공감 가는 얘기는 아닌데, 하여간 얼마 전부터 영감쟁이들이 나한테 논쟁 안하면 죽인다고 종조목을 들이댄다. 하승창 선배는 그 일련의 종조목 중에 맨 앞에 서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억지로 했던 논쟁이 이재영과의 논쟁이다. 세상에 내가 진짜로 믿는 몇 안되는 사람이다. 4회 정도 논쟁이 진행되었는데, 나와 이재영의 논쟁은 사실 재미는 없다. 두 사람이 친하다는 것과 의견이 공통된 것이 더 많다는 것을 다 아는 상황에서 둘이 벌이는 논쟁은 아무리 과격해 보여도 재미는 없다.
그렇지만 그 댓가로 맥주 한 잔 마시자고 억지로 앉았던 자리에서 별로 얼굴도 보지 못했던 선배한테 "씨발넘아, 니가 그럴 수가 있어"라는 말이였다. 이름대면 다 알만한 사람이다. 황당하기는 한데, 이해는 가기는 한다. 이재영과 내가 티격태격하는 와중에 엄한 사람들이 피해를 본 경우였다.
그래도 박사 12년차가 되면 별의별 논쟁을 다 해보게 된다. 모르고도 버티는 경우, 잘 알고도 진 경우, 1 대 18, 뭐 이런 수없는 논쟁을 해보기는 했는데, 재밌는 논쟁은 별로 없었다. 이겨도 별고 없고, 져도 별 거 없고... 쓰잘데기 없는 논쟁일 뿐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잘 정의되어 있고, 생산적인 논쟁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없지는 않은데,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다. 결국 서로 불쾌해지고, 다시는 안 본다가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내 인생의 최대 논쟁은 고등학교 2학년 때 국어선생님과 했던 논쟁인데, 결국 부모님이 학교에 끌려와서 선생님한테 사과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 번도 말 안하다고 결국 내가 국문과를 안가게 되었을 때 딱 한 번 다시 나한테 말을 걸었다.
"섭섭해."
논쟁을 즐기는 법 같은게 있으면 좋겠다. 우월적 지위에서 더 많은 정보와 잔인한 생각을 가지면 논쟁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매번 살떨리면서 다음 얘기를 생각해야 하는 논쟁, 그리고 이겨도 결국은 상처 밖에 없을 것이 뻔한 논쟁을 즐긴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신이상자 아니면 곤란할 것 같다.
정치 맨 앞에 있는 사람과는 논쟁을 안 하려고 한다. 많은 경우 논쟁은 커녕 대화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웃고 인사하고 집에 돌아온다. 그리고 전화를 꺼버린다.
논쟁을 즐기기는 어려워도 논쟁을 피하는 즐거움은 만끽할 수 있다.
잘 정의되어 있고, 상대가 적절하게 논쟁할 상대가 아니라면 무조건 도망간다. 깨갱하고 도망가며 조롱받는게, 나중에 두고두고 불쾌해지는 것 보다는 훨 낫다. 명예? 내가 지켜야할 명예같은 건 애시당초 키우지를 않는다.
그런데 나에게 논쟁의 의무를 던져놓고 간 사람이 있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하승창 선배가 미국 유학가기 직전에, 나에게 당신들이 논쟁하지 않으니까 우리가 최장집-백낙청 논쟁을 지금 논쟁이라고 봐야 하는 거 아니냐... 허걱... 도대체 왜 그 할아버지들 말싸움 하는데, 내가 그 똥바가지를 써야하지?
공감 가는 얘기는 아닌데, 하여간 얼마 전부터 영감쟁이들이 나한테 논쟁 안하면 죽인다고 종조목을 들이댄다. 하승창 선배는 그 일련의 종조목 중에 맨 앞에 서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억지로 했던 논쟁이 이재영과의 논쟁이다. 세상에 내가 진짜로 믿는 몇 안되는 사람이다. 4회 정도 논쟁이 진행되었는데, 나와 이재영의 논쟁은 사실 재미는 없다. 두 사람이 친하다는 것과 의견이 공통된 것이 더 많다는 것을 다 아는 상황에서 둘이 벌이는 논쟁은 아무리 과격해 보여도 재미는 없다.
그렇지만 그 댓가로 맥주 한 잔 마시자고 억지로 앉았던 자리에서 별로 얼굴도 보지 못했던 선배한테 "씨발넘아, 니가 그럴 수가 있어"라는 말이였다. 이름대면 다 알만한 사람이다. 황당하기는 한데, 이해는 가기는 한다. 이재영과 내가 티격태격하는 와중에 엄한 사람들이 피해를 본 경우였다.
그래도 박사 12년차가 되면 별의별 논쟁을 다 해보게 된다. 모르고도 버티는 경우, 잘 알고도 진 경우, 1 대 18, 뭐 이런 수없는 논쟁을 해보기는 했는데, 재밌는 논쟁은 별로 없었다. 이겨도 별고 없고, 져도 별 거 없고... 쓰잘데기 없는 논쟁일 뿐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잘 정의되어 있고, 생산적인 논쟁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없지는 않은데,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다. 결국 서로 불쾌해지고, 다시는 안 본다가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내 인생의 최대 논쟁은 고등학교 2학년 때 국어선생님과 했던 논쟁인데, 결국 부모님이 학교에 끌려와서 선생님한테 사과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 번도 말 안하다고 결국 내가 국문과를 안가게 되었을 때 딱 한 번 다시 나한테 말을 걸었다.
"섭섭해."
논쟁을 즐기는 법 같은게 있으면 좋겠다. 우월적 지위에서 더 많은 정보와 잔인한 생각을 가지면 논쟁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매번 살떨리면서 다음 얘기를 생각해야 하는 논쟁, 그리고 이겨도 결국은 상처 밖에 없을 것이 뻔한 논쟁을 즐긴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신이상자 아니면 곤란할 것 같다.
정치 맨 앞에 있는 사람과는 논쟁을 안 하려고 한다. 많은 경우 논쟁은 커녕 대화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웃고 인사하고 집에 돌아온다. 그리고 전화를 꺼버린다.
논쟁을 즐기기는 어려워도 논쟁을 피하는 즐거움은 만끽할 수 있다.
# by | 2007/01/17 04:41 | 그냥 잡담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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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하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반론에 답하기 위해 굴러가지 않는 머리를 쥐어짜내는 건 그래도 저에겐 좋은 자극이 되어줍니다. 매일 그러면 정말 피곤하겠지만서도. 일단 눈 딱 감고 한 번 꽉 깨물어보지 않으면 모르겠더라구요. 상대방의 미소도, 진심도. 그 덕에 외톨이지만. 어차피 머리가 나쁘니까 누구하고도 말 상대가 안되는 것이 진실이긴 하지요. =)
그저 작은 해안변 캄캄한 바다를 향해 묵묵히 불 밝히는 등대...
그 등대의 '등대지기'로 남아 우리에게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음, 저도 역시 empty1000 님의 덧글과 같은 의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