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음악을 좋아하기는 하는데, 내가 주로 듣는 음악에 대해서 글을 써본 적은 별로 없다. 음악가에 대해서는 열여덟살 때부터 많이 썼었는데, 정작 음악에 대해서는 안 써봤다. 이제 마흔살인데, 스무살 때에 비하면 확실히 취향도 변하고, 더 대중적인 음악들을 들으려고 하는 게 좀 느껴진다. 심심할 때마다 즐겨듣는 음악을 가벼운 마음으로 조금씩 정리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전혀 전문적이지 않은 눈으로 좀 편하게 음악을 듣는다면...

확실히 마흔이 되니까 옛날보다 덜 날카롭고 음악 소절의 마디나 변조 아니면 화음구성이나 대위법 진행 같은 것보다는 그냥 앉아서 분위기로 듣는 것 같다. 멍청해졌다고 하면 딱 맞다. 오십살이 되면 지금보다 더 멍청해질까, 아니면 다시 날카로와질까? 그건 잘 모르겠지만, 조금은 기록을 남겨보고 싶다.

생활인 오됴쟁이가 듣는 생활음악 시리즈 정도라고 생각하면서... 범주 하나를 새로 열어본다.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슈베르트는 생각보다 복잡한 사람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굉장히 단순하고 우울증 환자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 선율은 아름다운데, 듣고 있다보면 우울증 분위기가 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슈베르트의 노래는 굉장히 많다. 가곡만으로도 800개 정도라고 하니 정말 가난하게 시대에 맞서서 음악을 만드는 것 외에는 한 게 별로 없는 인생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재능에 비해서 인생은 불행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집안 사정 때문에 실내악이 의외로 인기를 끌었는데, 일본과 우리나라의 음악감상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라고 한다. 일본도 집이 작고, 공동주택에 사는 경우가 많고, 작은 공간에 몰려사는 가난한 지식인이나 예술가가 겁나게 시끄러운 음악을 듣기가 어렵다. 10인치 이상의 우퍼를 가지고 있던 JBL 4312 시리즈의 스피커를 5인치짜리로 줄여서 정말 앙증맞게 만든 JBL 4312M이라는 미니어처 버전을 보면 일본 예술가들의 삶이 보인다. 몇 만개 정도가 팔려나갔다고 하는데, 스피커에서 이 정도면 정말 확실한 성공이다. 소형 모니터 스피커로 사용되는 이 스피커는 작은 집에서 음악을 만들거나 영화 작업 같은 것을 하거나 혹은 그 정도의 공간에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않고 음악을 듣기에 적합하게 만들어진 스피커이다. 원형은 미국제이지만, 일본 JBL에서 자국민들을 위한 독자 모델을 만들면서 아주 작아졌다. 크기 때문에 60헤르쯔에서 저음을 잘라버렸지만 작은 방에서는 크게 티가 나지 않는다.


대체적으로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일본과 한국까지 실내악들이 이러한 공간상의 문제로 상당히 인기를 끈다. 반면에 넓은 주거공간을 가지고 그야말로 “빵빵”하게 음악을 틀을 수 있는 미국에서는 심포니와 같은 총주 음악들이 더 인기를 끄는 경향이 있다.


슈베르트의 실내악들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유럽, 일본 그리고 한국까지 고루 인기를 가지고 있는 음악들이 많은데, 가장 대표적인 ‘숭어’는 가곡에서 먼저 사용한 주제를 현악4중주로 편곡해서 실내악에서 가장 대표적인 음악이다. 유럽에서 Chamber Orchestra라고 하는 형식을 각 지자체에서 가지고 있는 것들은 이런 실내악 강성 분위기를 반영한 셈이다.


우울하지 않은 분위기에서 슈베르트의 곡 중에서 대표적인 곡을 하나 꼽아보라면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아르페지오네는 6줄의 기타처럼 생긴 첼로 이전에 사용되던 악기인데, 잠깐 유행하다가 사라졌고, 이 악기를 위해 작곡된 곳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현대까지 넘어온 것이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이다. 1악장은 너무 유명해서 누구나 들으면 편하고 경쾌한 마음으로 들을 수 있다. 어디선가 다 들었을 그런 클래식 메뉴 중의 하나이다. 뉴댈리의 힐튼 호텔에 갔을 때 라운지에서 이 곡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곡을 작곡했을 때가 슈베르트는 27살이었는데, 백작의 딸과 사랑에 막 빠져들었던 시기와 겹치고, 사람들은 그래서 이 곡이 상당히 밝고 경쾌한 것은 뒤늦은 사랑의 힘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슈베르트가 서른살을 즈음해서 이전의 형식을 파괴하며 반음을 자유롭게 사용하던 현악사중주 시리즈를 만들기 이전에 만들어진 곡이다.


그 시절 슈베르트의 일기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은 무척 유명한 구절이다.


“나의 작품은 음악에 대한 나의 이해와 나의 슬픔의 표현입니다. 슬픔으로서 만들어진 작품만이 사람들을 가장 즐겁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슬픔은 이해를 날카롭게 하고 정신을 굳세게 해줍니다. (1824년)”


요즘 스물 일곱살이면 군대 갔다와서 고시준비 하거나 취직하려고 바둥거리고, 결혼에 대해서 설래임과 좌절을 동시에 느끼면서 주택청약예금을 신청하는 삶을 살게 되는데, 이 시절의 슈베르트는 그의 음악적 삶의 후반부로 접어들기 위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던 시절이다. 이 뒤의 슈베르트의 음악은 아름답지만 확실한 우울증표 음악으로 전환된다.


이 중간의 이를테면 새로운 길의 모색기에 작곡된 아르페지오 소나타는 당시에 아르페지오라는 악기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하던 사람들이 요즘 말로 하면 잘 나가던 젋은 작곡가에게 부탁을 해서 만들어진 곡이라고도 한다. 요즘은 첼로와 피아노 2중주 양식으로 많이 연주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앨범은 RCA에서 74년에 녹음한 것인데, 바리톤 가수인 맥 해럴의 아들인 릴 해럴과 그와 황금 듀오를 이루었다는 피아니스트 제임스 레바인의 연주하였다. 알레그로 1악장은 너무 유명해서 음악을 전혀 들어보지 않은 사람도 경쾌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들어도 좋은 노래이고, 어린이도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정말 유명한 악장이다. 2악장의 아다지오는 첼로의 저음이 슈베르트의 깊은 마음을 묘사하는 듯하다. 편한 옷을 입고 시골길을 어슬렁거리면서 낙엽을 만지작거리면서 살아온 날들을 생각하는 듯한 분위기로 들을 수 있다. 챌로와 피아노의 만남 중에서 상당히 격조있는 곡이라는 평을 받는 악장이다. 3악장은 알레그레토, 경쾌하며 그 당시 슈베르트가 거주하고 있던 헝거리의 분위기들을 묘사하기 위한 익살스러운 리듬들이 편안하게 펼쳐진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인생의 깊이와 예술에 대한 이해 같은 말들을 붙일 수도 있는 실내악이기는 하지만, 그냥 사람들 집에 와서 왁자지껄 밥해먹고 놀 때에 배경음악으로 틀어놓아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곡이다. 심각하게 들으면 낮게 까리는 첼로의 선율들을 감상하면서 원하는 모든 철학적 해석을 붙일 수 있지만, 요즘 표현대로 하면 ‘라운지 뮤직’에 해당하고 실제로도 그렇게 많이 활용된다.


내가 가지고 있는 RCA 녹음 버전은 엔지니어가 녹음과정에서 손을 너무 많이 대서 음질은 좋은데, 왼쪽의 첼로와 오른쪽의 피아노의 음상이 자연스럽게 그려지지는 않는다. 그렇게 권해주고 싶은 녹음은 아니다.


인생의 전환기는 자신이 알고 있는 동안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부지부식 중에 약간의 우연이 겹쳐서 생겨나는 일이 많다. 슈베르트가 27살의 전환기에 만들었던 음악이라고 생각하면서 또 다른 것들을 상상하면서 들으면 의외로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음악이다. 아울러 70년대 연주를 찾아서 들으면 음악 전성기 시절의 엔지니어들의 녹음 철학을 몇 개의 앨범을 비교해보면서 볼 수 있는 일종의 출발점으로는 괜찮은 소나타이다.

by 비나리 | 2007/01/14 18:50 | 마흔살에 듣는 음악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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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K군 at 2007/01/14 22:44
앗, 기대되는 카테고리가 하나 생겼네요. ^^
슈베르트. 저는 요즘 리히터가 연주한 D960(BBC)을 즐겨 듣고 있습니다. ^^;
Commented by 붤뤠 at 2007/01/15 00:03
전 음악은 잘 모르겠구. 테잎 시절의 폴리그램에서 나오던 크롬 테잎을 광적으로 수집했던 때가 생각납니다. ㅋ
Commented by 비나리 at 2007/01/15 00:33
크롬 테입, 그 시절이 있었군요. 돌비 보다 한 단계 나갔다고 광란하던 그 시절의 기억이 저에게도... 그 때 들었던 브라질 음악 몇 곡을 20년째 찾고 있는데, 아직도 제목을 모른다는 아픈 사연과...
Commented by 바리 at 2007/01/18 14:56
저는 음악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는 축에 속하는데...--;; 그래도 아무것도 몰라도 취향이라는게 있네요..
몇년 전에 아주 우울하던 어느 늦은 밤 캄캄한 도로 위에서 우연히 바흐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는 걍 바흐만 듣는다는... 맑고 담담하고 연민이 가득한 전진. 맑히고 맑히고 끌어올리고 끌어올리는 기도... 내겐 그렇게 들려요.^^ 익숙해져서 그러는지, 하나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발동하는 것인지, 바흐음악에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지 그걸 모르겠어요. 모짜르트도 베토벤도 슈베르트도 시도 해봤는데 바흐만큼 나에게 쉽지가 않아요. 이게 무슨 조화인지 가끔 궁금함.^^
Commented by 비나리 at 2007/01/18 15:28
원래 클래식의 장르에 속하는 음악이 요즘은 백화점처럼 듣기 보다는 우연히 혹은 운명처럼 만나게 된 곡과 작곡가를 듣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해봅니다. 바하, 엄청난 사람이지요. 대위법을 실제로 정리하고, 음악이 가장 수학에 가까왔던 시기가 그 시기가 아닐까. 바하 전공했던 존 로드가 디퍼플의 작곡자이자 키보드 주자였는데, 하이웨이 스타 같은데 나오는 애드립에서는 바하 대위법 느낌을 살려보려고 무척 애썼던 흔적이... 에이프릴 같은 경우는 아예 바하 스타일을 전면에 내세운 곡이기도 하구여...
Commented by 바리 at 2007/01/19 16:25
우연 혹은 운명적으로 만난다구요... 으음, 남들도 그렇군요.^^
학교 때는 디퍼플의 Soldier of Fortune을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나요. 비나리님의 안내를 받아서, 다시 찾아서 들어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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