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시도

첫 번째 시도는, 정동 좌파를 표방하며 야구 얘기로 시작했는데, 뒤의 얘기가 너무 뻔하다는 문제점과 별로 지켜주고 싶지 않은 가끔 우리가 구좌파라고 부르는 골통 좌파들을 등 뒤에 두어야 한다는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아쉽지만 좌완 정통파 얘기는 다음 기회에 마저 마무리하기로 하고, 첫번째 시도를 접었다.

두 번째 시도는, 국정홍보처의 그녀의 목소리를 모티브로 정권에서 시도하는 국정홍보를 뒤집으며, '소리 '라는 감각을 시각화시키면서 얘기를 풀어가는 것이었다. 나는 소리에 대해서 아주 민감하기 때문에 적절한 소재이기는 하고, 이런 방식으로 노무현식 경찰국가에 대한 얘기와 불안해하는 중산층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파시즘과 결합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경제사에서 많이 나오는 얘기들을 같이 엮으려는 게 이 두 번째 시도의 모티브였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문제가 생겼다. 소소한 것으로 따지자면 너무 우울하다는 점이고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나 조금 올라가면 <도망자> 같은 데에서 등장한 통제사회의 우울함과 불안감을 모티브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내가 쓴 글에 대해서 연합뉴스가 했던 첫 번째 서평이 "등골이 오싹하다"였다인데, 그 이후로도 내가 맘 먹고 썼던 글들은 공포특집이나 '일상잔혹극' 같은 평가를 종종 받는다. FTA의 경우도 전혀 그렇게 의도하지 않았었는데, 미래에 대한 예견 때문에 몇 사람들은 공포특집이라는 얘기를 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공포특집이라는 얘기는 그래도 선의로 평가한 것이고, 만약 내가 지금 평가를 내린다면 앞의 세 책은 전부 우울증 시리즈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 대안에 대해서 얘기하기 위한 이번의 책이 또 다른 우울증 시리즈의 컬렉션에 하나를 더 더하고 싶지는 않다. 진짜로 출간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출판사에서 준비하고 있는 내 칼럼집도 우울증 시리즈가 될 가능성이 높다. 국정홍보처의 그 바리톤 목소리의 그녀라는 느낌으로 그냥 간다면 내 평소 문체상 납량특집에 우울증 시리즈가 될 가능성이 거의 100%이다.

명랑 정신에 안 맞는다. "괴로우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이걸 더 예술적으로 풀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는데, 그렇게는 못해도 머리 앞으로 디밀고 우울증의 세계로 갈 수는 없다.

게다가 현실적인 문제도 조금 더 있는데, 노무현 시대의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도저히 기호학적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오히려 정신분석학적인 범주에 더 가까운 이 용어를 중심으로 얘기를 풀어서 경찰국가라는 단어와 결합시키면... 노무현 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인 분석 같은 것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야하는데, 노무현 얘기를 앞으로 듣고 싶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부터 노무현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짜증부터 나는데, 누가 그 짜증스런 얘기를 직시하면서 들으려고 할 것인가...

우울증 시리즈에 왕짜증 시리즈를 만들어놓고, 대안이라고 한다면 정말 웃길 것 같다. 진지하게 뭔가 얘기한 것 같지만 조금 돌아서 생각해보면 셜록 홈즈이고 싶어서 홈즈 흉내를 내는 와트슨 같이 보일 것이다. 와트슨은 와트슨인 것이 좋다. 난 홈즈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 홈즈를 조금 더 친근하게 볼 수 있게 해주는 와트슨 역할에 불과하다.

그래서 결국 세번째 접근을 시도하게 되었다. 10대 얘기로 시작을 하는데,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10대들이 이 책을 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좀 고민을 했었는데, 그냥 정통파 접근으로 가기로 했다. 홀링의 Panarchy와 폴라니의 "The ancient Roman empire and trade"에 나온 테제 두 가지를 엮어서, 세 번째 재생산에 관한 문제를 다룰 생각이다. 물론 홀링에 대한 얘기나 폴라니에 대한 얘기를 자세하게 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홀링은 너무 어렵고, 폴라니는 너무 말랑말랑하기 때문이다.

이 시도에서는 다양성을 모티브로 할 생각인데, 그렇다고 다양성이라는 용어에 챕터를 할애하거나 그러지는 않을 생각이다. 읽고 나서 다양성이라는 단어를 사람들이 생각해낼 수 있다면이라는... 난 늘 그렇게 책에다 퍼즐을 몇 개씩 집어넣는 걸 좋아하는데, 내 책에 들어가 있는 퍼즐을 푼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도 난 퍼즐 집어넣는 걸 좋아한다.

하여간 이 세번째 시도의 부제는 "문과쟁이를 위한 실전 경제학"이다. 10대에 대한 같은 제목을 공유하고, 2권은 이미 절반 이상 준비되어 있는 "이공계생을 위한 생태경제학"과 붙여서 1, 2권으로 만들어볼 생각이다. 두 개를 하나로 연결시켜 주는 모티브는 가장 흔한 생태경제학 주제이다. "다음 세대"...

우리말을 써야한다는 제약이 없다면, 스타트렉 분위기로 넥스트 제너레이션이라고 하고 싶기는 한데, 우리나라에는 스타트렉파가 별로 없고, 또 어지간하면 책 제목에는 우리말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서...

하여간 안 해본 질문을 새로 해보고, 새로 답변을 해보고 싶기는 한데, 역시 이번의 시도도 한국 경제학계로 치면 전위적인 시도인 것 같기는 하다.

난 아방가르드 좋아한다...


 

10대들이 행복하면 세상은 천국이다 : 문과쟁이들을 위한 실전 경제학


1부. 10대와 20대를 위한 사랑의 노래

2부. 어떻게 어른들은 다음 세대를 착취하는가?

3부. 당신들의 천국이 세상의 행복이다


제 1장. 첫 섹스의 경제학 : ‘세대’의 문을 열자


1) 우리나라에서 이팔청춘의 첫 번째 섹스는 왜 슬픈가?


나이와 섹스에 관한 질문은 18세기 이후 경제학에서는 큰 질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인구론의 말더스는 출산에 관한 이야기 하나로 한 시대를 풍미하는 이론가가 되었고, 후에 인구경제학이라고 부르는 분과는 말더스의 이론을 여전히 기본 축으로 하고 있다. <자본론>을 쓴 칼 마르크스의 동료이자 평생에 걸친 그의 후원자였던 엥겔스는 결혼제도에 아주 관심이 많았는데, 폴리가미라고 부르는 난혼 시절에서 어떻게 모노가미라고 불리는 일부일처제가 등장하게 되었는가 혹은 모계제 사회에서 어떻게 아버지 중심으로 사회가 구성되는 지금의 가족 제도가 나오게 되었는가를 규명하는데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 그의 저서 <가족의 기원>은 여전히 경제사 분야에서는 처음 출발할 때 읽는 기본 교과서 같은 것으로 자리하고 있고, 경제인류학이라는 접근에서는 흔들리지 않는 고전의 자리를 갖고 있다. 북으로 월북하면서 남한에서는 잘 읽지 않는 <조선상고사 연구>라는 저술에서 우리나라가 일본에 지배받던 민족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엄마’, ‘이모’, ‘고모’, ‘아줌마’와 같은 소위 ‘마’ 계열 단어들을 연구해 우리나라에도 독자적인 모계제 사회와 석시시대 문명이 존재했음을 입증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사료가 없던 시절에 일본이 과거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식민지 시대의 가설을 깨기 위한 눈물나는 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 경제학에서도 나이와 섹스에 관한 얘기는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평생소득 가설이나 항상소득 가설과 같은 얘기들은 거시경제학의 핵심 이론 중의 하나이다. 나이에 따라 사람의 소득이 어떻게 되는가에 관한 얘기들은 모두 노벨상을 탔다. 게다가 현재 표준경제학의 기틀을 만든 폴 사무엘슨의 ‘세대간 중첩모델(over-lapping generation)’은 아버지와 자식 사이에 어떻게 가족간의 부를 다음 세대에게 이전시켜주는 것인가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시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또 다른 노벨상 수상자인 게리 베커는 ‘인적자본론’이라는 가설을 통해서 왜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더 많은 교육을 시키려고 하는지를 설명하면서 교육 경제학이라는 틀을 정형화시키는데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 게리 베커의 약간은 극단적인 ‘경제학주의’를 사용하면 섹스나 범죄 심지어는 마피아의 형성까지도 순전히 경제적인 동기만을 가지고 설명할 수는 있다. 물론 설명은 되지만 그렇다고 이게 세상의 모든 진실이라고 하기는 좀 어렵기는 하다.


좀 무식한 접근이기는 하지만 순전히 수요와 공급이라는 틀만 가지고 세상은 90% 정도는 쉽게 설명이 된다. 80년대까지 수없는 여인들과 그 부모들을 공포에 떨게 하던 봉고차의 ‘인신매매범’은 우리나라에서 왜 사라진 것일까? 그 시절보다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들이 갑자기 더 유능해졌거나 CSI와 같은 과학수사기법이 전면적으로 도입되었기 때문에 생겨난 일은 결코 아니다. 표준 경제학의 논리를 어느 정도 훈련받은 사람이라면 “공급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답변할 것이다. 말은 맞다. 더 많은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공급된다고 말하면 대체적으로 90점 이상의 점수를 받을 수 있는 답변이 완성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100점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이 왜 공급이 늘었느냐라는 정말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과 마찬가지이다. 조금 더 종합적인 대답을 원한다면, 아무래도 사회적 의식의 변화나 문화적 변화 혹은 단순히 수요와 공급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래서 직접적으로는 경제와는 상관없는 얘기들이 개입되지 않는다면 이 질문은 100점짜리 질문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인신매매범은 불법 행위이기 때문에 블랙 마켓이라고 지하시장과 지하경제와 같이 표준화시키기 어려운 개념들까지 언급을 해주어야 어느 정도 균형 잡힌 얘기들이 가능하게 된다.


이런 몇 가지 간단한 상식을 가지고 ‘첫 번째 섹스’라는 질문을 경제학이라는 틀 내에서 한 번 해보자. 몇 살에, 어떤 식으로 그리고 누구와 첫 번째 섹스를 하는 것이 가장 ‘최적’인가라고 질문하는 방식이 하나 있다. 이 질문은 생각보다 어렵다. 복잡한 얘기들을 빼고 쉽게 설명한다면, ‘사랑’을 수학적으로 정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것에 아무런 이유를 두지 않고, 동물들의 짝짓기와 마찬가지인 “보다 좋은 유전자” 혹은 “보다 많은 부”라고 문제를 설정하면 너무 단순한 문제로 변해버리고, 순전히 게임이론의 문제일 뿐이다. 누구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나은 배우자를 만나고 싶다고 전제하고 게임을 구성하면 해법은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절대치가 같은 점에서 균형이 나온다. “끼리끼리 만난다”라는 것을 복잡하게 설명하면 이렇게 되지만, 이런 답변은 너무 허탈하다. 이 질문이 너무 어렵거나 혹은 너무 단순해져 버리는 것은 ‘사랑’이라는 말을 수학적으로 적절하게 해석하기가 어려워서 그렇다. 이런 ‘사전적(ex ante)’인 접근말과 최근 경제학의 유행에 따르면 또 다른 접근방식이 가능하다. ‘사후적 접근(ex post)’이라고 부르는 현황을 놓고 문제를 다시 이해하는 방식으로 이 ‘첫 번째 섹스’라는 문제를 볼 수도 있다. 10년 전에는 이런 접근을 ‘실험경제학’이라고 부르고 경제학의 최전선에 서 있던 적이 있다. 요즘은 유행이 약간 시들해졌다.


역사적으로 사람들은 언제 첫 번째 섹스를 했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 필요한 데이터는 은밀한 세상이기도 하고, 또 근대적 이론체계인 통계학 같은 것이 정립되기 이전의 일이므로 결혼백서 같은 것들이 존재할리 없으므로 조금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대표적인 10대들의 사랑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고전으로는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우리나라의 구전소설인 <춘향전> 같은 걸 생각해볼 수 있다. 모두 10대들의 불같은 사랑과 열정에 관한 이야기이고, 전부 어른들이 읽기를 권장해주는 양서목록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들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에 빠졌던 것은 16세의 일이고, 춘향이와 이도령이 어른들도 시껍해 할 정도의 고급 체위로 섹스를 했던 것도 16세의 일이다. 이 나이를 ‘이팔청춘’이라고 부른다. 역사적인 자료들을 보면 이 나이면 대개 가장이 이미 결혼했을 나이이고, 또 아이도 낳았을 것이 당연한 나이이다. 남자들의 경우에 생물학적으로 16세에서 18세가 성적 에너지가 가장 높은 나이로 보는데, 이 경우의 성에 대한 충동은 살인의 충동만큼 높게 나온다고 의사들은 말해준다. 잘 만들어진 사회 디자인이라면 이 나이에 정상적인 섹스가 가능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맞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사료만으로 확인한다면 여성들의 경우는 남성보다 성숙도가 훨씬 빠르다. 중국과 우리나라의 왕비들이 처음 궁에 들어가서 세자와 결혼하는 나이가 보통 13살이였고, 세자빈이 되는 나이가 바로 그 나이였던 셈이다. 지금의 소녀 13세는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이지만, 예전 기준으로 하면 그 나이에 벌써 섹스는 물론이거니와 한 나라의 어머니가 되었던 나이라고 할 수 있다. 조숙한 소녀들이 13세에 벌써 세자빈이 되어 국모가 될 훈련을 하면서 왕비의 길을 갔던 것을 놓고 생각을 해보면, 대체적으로 16세 이상이 되면 육체적으로는 완전한 어른이고, “상투틀고” 어른이 되었던 셈이다.


물론 지금 고등학교 1학년이나 2학년 소년이 섹스를 즐기겠다고 공공연히 말했다가는 집에서 큰 일 나고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게 되겠지만, 수요와 공급 그리고 ‘선호도’라고 부르는 선호함수만으로 놓고 보면 문제가 될 것은 없다. 16세 이상이 되었는데 섹스를 제도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은 긴 인류의 역사로 보면 자연스러운 일은 아닌데, 이 상황을 표준경제학적으로 설명한다면 ‘예산제약’이라는 용어가 필요하다. 원하는 것은 섹스 혹은 결혼생화인데, 이를 뒷받침할 수 없는 ‘예산’이 없기 때문에 청소년은 섹스를 참고, 결혼을 뒤로 미루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된다. 사람의 말로 바꾸면 “돈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 나이에 성적 충동이 없고,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루어서 같이 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는 경제학의 연구 대상이라기 보다는 심리학의 연구 대상에 더 가깝다.


우리나라의 이팔청춘의 첫 번째 섹스는 대개 슬프게 끝이 난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자유로운 조건에서 만나서 섹스하게 되는, 인류 보편의 잣대로 바로 100년 전의 전세대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가지고 있었던 권리를 누릴 수 없을뿐더러, 결혼 혹은 동거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너무 뻔히 알고 있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불안한 섹스일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경우 첫 출산을 기준으로 생각해본다면, 16세에서 정상적인 출산까지 14년이 더 흐르게 된다. 만약 남자 배우자가 군대를 간다고 생각해본다면 군대를 7번 갔다 올 시간까지 우리나라의 소녀는 평균적으로 결혼이나 동거와 같은 삶을 살 수가 없는 셈이다. 만약 사회학의 용어를 사용한다면, 이는 이 ‘세대’에 대한 ‘사회적 통제’가 진행되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누가 어떠한 의도로 통제하는 것인지를 설명하기가 곤란한 루이 알뛰세의 “국가 이데올로기 기구”와 같은 개념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혹은 세대간 갈등과 같은 고답적인 개념을 끌어올 수도 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이 문제를 설명한다면, 전 세대에 비해서 10대들이 더 가난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것은 국민소득과 같은 화폐적 소득으로는 잘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10대들이 가난해진 것은 확실하고, 이팔청춘이라고 불렀던 특정 나이대의 소년들과 소녀들이 매우 가난해진 것은 정말 확실하다. 예전에는 가정을 꾸리고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자신이 원하는 배우자와의 삶을 살 수 있을 상황이었는데, 지금의 16세는 세대주로서 독립하거나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기가 평균적으로는 대단히 어렵다. 그만큼 가난해졌다고 표현할 수 있다.


가난해서 이루어질 수 없는 16에서 18세까지의 사랑은 그래서 슬프다. 사랑하면 꼭 결혼해야 하는가? 물론 그런 건 아니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존재는 16세부터 배우자를 찾거나 섹스를 원하게 되어있고, 그런 자신의 섹스 파트너와 가정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방식은 최소한 3,000년 동안은 인류가 안정적으로 스스로를 재생산하면서 만들어낸 일종의 역사적 균형인데, 지금의 청소년들은 근 3,000년만에 사랑하고 결혼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결혼할 수 없도록 집단적인 통제를 받고 있는 집단이 된 셈이다.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가난해진 이 청소년들은 가정을 꾸릴 수 있는, 오랫동안 그 또래의 집단이 누렸던 자유를 가지고 있지 못한데, 만약 윤리나 규범과 같은 것으로 억압되고 있다면 경제학이 관심을 가질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가난하고 돈이 없다는 이유로 정상적인 나이에 누릴 수 있는 사랑과 결혼 혹은 동거와 같은 권리들이 통제되고 있다면, 경제학의 대상이 된다.


가난해서 결혼할 수 없고, 그래서 10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우리나라 이팔청춘들의 사랑은 슬프다. 그러나 사랑이 제약받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지금의 청소년들의 삶이 슬픈 것은 아니다. 그들은 상상도 하지 못한 더 큰 음모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2) 다른 선진국의 경우는 어떨까? : 동거의 권리를 중심으로


대부분의 나라에서 기존 세대들은 다음 세대들을 통제하고 그들을 착취하고자 하는 경향을 보인다. ‘경제적 권리’라고 얘기를 하지만 우리 주위에 있는 사소해 보이는 권리 하나라도 그냥 생겨난 것은 거의 없고, 길고 긴 다툼과 긴장 속에서 조금씩 생겨난 것들이다. 여성들의 투표권이 그렇고, 장애인 이동권, 크고 작은 환경권이나 심지어는 교육의 권리 같은 것들도 그냥 주어진 것은 없다. 우리나라에는 청소년들에게 두발의 자유가 없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스스로는 머리에 대한 자유를 확보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지 못한 ‘소수자’ 혹은 ‘경제적 약자’라고 우리나라의 청소년을 정의한다면 논리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다양한 종류의 크고 작은 권리들이 있다고 할 때,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은 자신의 머리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는 아직 얻어내지 못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모든 권리들이 순서대로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이라는 단 하나의 줄에 세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취향과 문화적 선택 같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부에서 관찰한다면 우리나라의 ‘중고등학생’이라는 집단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볼 때, 이 집단은 스스로 독립하지 못할 정도의 경제 수준을 가지고 있고, 또 자신의 머리모양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정도의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한 집단이라고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자신의 권리는 스스로 싸워서 획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당사자 우선의 원칙”이라고 부른다.


두발의 자유가 없는 상태라는 점을 감안하면 “동거의 권리”와 같은 조금 고급스러운 권리는 우리나라에는 없다는 것이 객관적인 현재 상황일 것이다.


“엄마, 나 이제 동거하기로 마음을 먹었어.”


16세 소녀가 집에서 이렇게 말을 했다고 생각해보자. 조용했던 집안의 평화는 사라지고, 심지어는 평온했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딸의 관계는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16세 소녀의 동거선언은 그만큼 큰 일일 것이다. 그러나 자연적으로 그 나이의 소녀가 어떤 소년을 사랑하고 같이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은 인류 역사의 긴 흐름을 생각해볼 때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은 벌어질 수도 없고, 벌어져서도 안 되는 일이다. 무엇인가 자연스러운 흐름을 막고 있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다. 무엇일까?


만약 프랑스나 독일에서 이러한 질문이 벌어졌다고 생각해보자.


“학교는?”


엄마가 질문한다.


“학교는 다닐거야.”


“대학은?”


다시 엄마가 질문한다.


“바깔로레아는 볼 생각이고, 진학도 할 거야.”


16세의 동거는 이런 유럽 사회에서도 조금 빠른 질문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부모는 딸의 미래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그야말로 식구들 사이의 토론이 시작될 것이다. 대개의 경우 이런 토론은 ‘축복’으로 끝이 난다. 딸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어린 아이 같기만 한 딸이 드디어 출산과 가족에 대해서 고민한다는 이 상황에서 저주를 퍼부을 부모는 인류 역사상 별로 없다. 아마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위한 2년까지의 시간에 대해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혹은 출산의 문제들에 대해서 고민을 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절대로 이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부모로서의 본성과 딸의 삶에 대한 애정의 문제가 아니다. 뭔가 조금 다른 것이고, 슬프게 다른 것이 존재한다. 뭐가 다를까? 첫 눈에는 문화가 다르고 사회가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이 경우에는 사실 경제가 다르다. 조금 살펴보자.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나라에서도 16세의 동거는 조금 불편한 주제이다.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상태에서 동거를 선진국의 부모들이라도 축하해주기에는 조금 어색한 측면이 없지 않다. 보통 자식들이 부모를 떠나서 첫 동거를 시작하는 나이는 평균적으로 20세 전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경우라면 2년 정도 기다려보자는 정도의 얘기를 부모들이 할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만약 아까의 16세 소녀가 강렬하게 동거를 원하고 사랑을 주장하고 있다면? 약간의 실랑이가 있겠지만 결국은 축복하게 될 것이다.


여러 가지 가족관계나 사회적 관계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가장 편한 설명은 ‘동거권’이 주어져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과 섹스를 하고 같이 살 수 있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역사는 그렇게 길지 않다. 물론 아직도 전면적인 섹스의 자유 같은 것은 현재와 같은 폴리가미의 상태에서 일반화되어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적어도 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16세 이후의 청소년들에게는 동거권의 형태로 별도의 가족을 꾸릴 수 있는 권리들은 우리나라를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확보되어 있다.


이 길을 가장 먼저 열었던 것이 프랑스의 청소년들이라고 하는 데에는 국제적으로 이견이 별로 없다. 물론 시대가 변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기는 하지만, 상징적인 사람을 거론하자면 ‘계약결혼’으로 한 시대의 논란의 한 가운데 들어갔던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느 보부아르 사이의 특별한 애정이 이러한 담론을 열었다는 점을 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사팔떼기라고 우리고 낮추어 부르는 지독한 사시를 가지고 있던 샤르트르는 엉망인 외모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지성과 예술성으로 많은 프랑스 여인들에게 지적인 연인처럼 평생을 살았던 사람이다. 그런 샤르트르를 3수만에 파리 고등사범에 입학한 시몬느 보부아르는 합격통지서를 받고 처음 들어선 분수대 뒤에서 처음 보았다고 한다. 이 멋진 연인들의 사랑은 계약결혼이라는 시대를 뒤흔들었던 결혼 양식으로 세상을 흔들었는데, 정말 변화를 만든 것은 샤르트르가 저술한 “존재와 무”라는 대단히 어렵고도 매혹적인 철학책 한 권이었다. 이 책은 실존주의 철학이라는, 당시로서는 새로운 철학의 길을 열었는데 지금 전문가들이 읽어도 해석하기가 쉽지 않은 이 철학책을 1960년대 중반의 고등학생들은 자신들의 자유를 위해서 반드시 읽어야 했던 책의 하나가 되었다. 이 실존주의 철학으로 읽었던 프랑스의 고등학생들은 결국 1968년 프랑스 사회를 온통 뒤흔들면서 그 유명한 “68혁명”이라는 것을 만들어내었고, 그와 함께 동거의 권리를 사회적으로 얻어내게 되었다. 이 동거의 권리가 프랑스에서 완성된 것은 결혼한 부부와 동거한 부부 사이에 태어난 아이에 대한 법적인 권리를 동등하게 인정받는 것을 시작으로, 실질적으로 두 삶의 형식을 같게 만들면서 완성되었다.


이렇게 동거와 함께 삶을 시작한 당시의 여학생 중의 한 명이 바로 지금 프랑스의 사회당 대통령 후보로 혜성과 같이 등장한 루아얄 여사이다. 부모들이 원했던 배후자와 얼굴만 보고 살아야했던 결혼생활과 자신들이 원했던 배우자와의 동거 생활 사이에 아무런 사회적이거나 법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작은 상징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동거’와 ‘결혼’ 사이에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 가족사에는 크고 작은 갈등의 차이가 있겠지만, 프랑스에서는 법적으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즉 정부 혹은 국가라고 우리가 이름붙인 그 어떤 ‘주체’는 결혼과 동거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면서 선진국들에서 생겨난 변화인데, 물론 이 과정이 그냥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내 아들 뱅상은 스무 살이 되자 곧 이 우울한 집을 떠났다. 뱅상은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그리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던 까닭에 열일곱 살에 외국어 전공 준비반에 등록했고 대학에서 전문 기술영어를 전공하고 있었다.


제 할머니를 많이 닮은 그 아이는 오래 전부터 자기 집의 구석방처럼 조용한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원했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면 아주 문학적인 텍스트나 기술 관련 서류를 번역하는 작업실에 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프랑수아 밀로가 적극적으로 뱅상에게 용기를 주었는데 에어버스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행정문서와 기술 관련 문서를 번역하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게다가 뱅상은 일본어에도 능숙했다. 그 아이는 일본어를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이해했는데, 그건 여자친구인 유코 스부라야에게서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두 사람의 평온한 태도나 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관계를 보면 놀라웠다. 그들이 점심 식사를 하러 집에 올 때마다, 나는 이렇게 사는 커플이 옛날에도 있었는지 궁금해지곤 했다. 그들을 둘러싼 단단한 포장, 광물질 같은 외양이 세월의 침식작용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줄 것이라고 상상했다. 내 아들은 누구에게서 이런 동양적인 신중한 풍모를 물려받았을까? 안나와 나의 유전자 조합은 부모가 자식에게 제공할 수 있는 최악의 생물학적 조건을 나타낼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안나나 나에게서 물려받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장폴 뒤부아, <프랑스적인 삶>)


위의 소설의 인용 구절은 어느 한 프랑스 가정의 아들이 스무 살이 되어 독립하게 되고, 또 두 살 많은 일본인 여자친구와 동거를 시작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에 대한 묘사이다. 어머니가 젊은 변호사 연인과 사귀게 되고 재산을 빼돌려서 파산과 급작스러운 헬기 사고로 죽고, 이 과정에서 여동생이 실어증에 걸리게 되는 가정사의 급박한 변동을 앞두고 아들이 자연스럽게 독립해서 별도의 삶을 꾸려나가는 이 과정은 평온하고, 또 소설 내에서 스무살에 동거를 시작한 이 아들 커플은 유일하게 불행의 급변을 비켜나가는 사람들로 묘사되어 있다.


이 과정은 선진국에서는 대부분의 집에서 벌어지는 아주 평범한 과정이다. 보통 열 여섯에서 열 일곱 사이에 청소년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지고, 가정을 꾸릴 것에 대해서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집에서 독립해서 별도의 삶을 가지게 되는 나이는 조금 빠르면 열 여덟 그리고 대개는 스무 살이 되었을 때에는 부모와 독립한 별도의 경제주체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대학에 진학하게 되면 집을 떠나고, 꼭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전문교육을 받게 되는 ‘공방’과 같은 장인의 길을 떠나거나 혹은 자신만이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아서 자연스럽게 부모와는 다른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많은 젊은이들이 이 나이 즈음에 첫 동거를 시작하면서 그야말로 ‘시민’으로서의 사회적 삶을 살아가게 된다.


물론 스무 살이 넘어서도 부모와 같이 사는 자식들도 없지는 않다. 유럽에서는 이렇게 부모와 같이 사는 사람들을 그 또래 그룹에서는 “아기(bébé)”라고 부르면서 약간 놀리는 분위기가 있다. 예를 들면 같이 커피 한 잔씩을 마시고는 이 ‘베베’에게 찻값을 내라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부모와 같이 사니까 돈이 있을 것 아니냐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문화적인 요소들이 조금 개입하기는 한다. 최근에는 이렇게 오랫동안 부모들과 사는 사람들을 ‘캥거루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동거를 하나의 권리라고 생각한다면, OECD 국가 중에서 실질적으로 18세에서 20세의 청소년들에게 동거의 권리가 주어지지 않은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같은 동양계라고는 하지만 일본에서도 동거권은 일종의 권리처럼 주어져 있는데, 일본의 청소년들은 우리나라보다는 덜 하지만 유럽이나 미국의 청소년에 비해서는 확실히 이 동거권을 잘 행사하지 않는다. 차이점을 조금 살펴보면,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일본의 부모와 같이 살게 되는 경우 일본에서는 생활비를 부모에게 지급한다. 물론 주머니돈이 쌈짓돈이라고 제대로 된 소득이 없는 자식의 주는 돈을 부모가 받을까 싶지만, 받는다. 이미 나갔어야 했던 자식이 아직 나가지 않는 것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건 우리나라와 일본이 분명히 다른 점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청소년’이라는 말 자체가 일본식 교육 문화에서 온 현상인데, 우리나라도 일제 때 일본식 교육의 틀을 받았기 때문에, 이 때부터 다른 선진국들과는 구분되는 특별한 현상이 한국과 일본에서 벌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군국주의는 청소년들에게 교복을 입히고, 두발을 획일화시키면서 일종의 ‘황군’으로 청소년을 길러내는 방식을 채택했는데, 유럽과의 차이점이라면 60년대를 거치면서 유럽의 청소년들은 동거권을 중심으로 이런 전 세대가 만들어놓은 ‘세대 재생산’의 틀을 깼는데, 우리나라와 일본은 아직 그 체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두발단속 같은 것을 하는 것이고, 청소년의 동거권 같은 것을 강하게 압박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조금 더하다. 동거권은 물론이고, 법적으로 결혼연령을 상향조정하게 되어있는 희한한 나라이다. 프랑스는 법적 결혼연령이 여성은 15세 남성은 18세로 되어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나이를 계속 올리려고 한다. 물론 이해는 되는 일이기는 한데, 이러한 변화는 생물학적이거나 사회적인 이유가 아니라 바로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700명 정도의 여성이 17세에 혼인을 하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그 이전에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더 많을 것이지만 그들에게 결혼의 자유를 부여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문제 때문이다. 그 나이에 어떻게 경제생활을 할 수 있을까?


10대에게 동거권이 부여되지 않는 이유는 종교와 법적인 문제 혹은 윤리적인 문제와는 관련되어 있지 않다. 조선시대의 석학들도 다 그 나이에 결혼하고 아이 키우면서 과거 준비하고, 나름대로의 학문생활을 했고, 최고의 천재여성이라고 보아도 무방한 난설헌 허초희의 경우도 그 나이에 아이 키우면서 시를 만들어서 동양 최고의 여성시인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청소년들에게 16세에서 18세 소녀와 소년들에게 동거권이 현실적으로 부여되지 않는 것은 경제적인 문제인데, 그렇다면 18세까지 기다리면 다른 나라의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집을 나오고 독립하고, 동거도 하고 결혼도 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이런 식의 문제를 크게 보면 경제 시스템의 문제라고 할 수 있고, 조금 더 본격적으로 얘기를 짚어보자면 한국 자본주의의 특수성 문제의 하나라고 얘기할 수 있다. 다른 모든 나라가 스무 살이 되면 실질적으로 하나의 세대를 형성하면서 자신의 삶을 시작하는 것이 평범한 일상의 삶이 되어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 일상과 삶에 대한 것들이 시장과 정부 그리고 기업들의 다양한 관계와 하나의 흐름을 만들면서 연결되고, 때로는 재생산되거나 확대되어 간다.


청소년들에게 동거권이 주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 문제를 일으킬 것인가? 얼마나 많은 청소년들이 16세에서 18세 사이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부모와는 독립된 삶을 살고 싶어하는지 정확한 통계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동거권을 실제로 행사하느냐와 주어져 있지 않다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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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렇게 질문을 시작했다고 한다면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는 몇 가지 가능성이 열려 있다. 교육경제학에서 접근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고, 아직 출발단계이기는 하지만 성별경제학(gender economics)라는 분과에서 학위를 받을 수 있다. 이 분야는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미개척지에 해당하기 때문에 자신이 여성이고 언젠가 대학교수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도전해보는 것도 진지하게 고려해볼 만하다. 조금 더 심각하게 공부를 하고 싶다면 게임이론 같은 것을 활용해서 세대간의 독립에 따른 균형 모델 같은 것도 가능하고, 시스템 이론을 통해서 공공서비스와 재화의 요소 가격들과 연동시킨 아주 심각한 시뮬레이션 모델을 만드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 비선형경제학이라는 수학을 아주 많이 사용하는 나름대로 뿌듯한 공부를 할 수 있다.


수학을 전혀 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칼 폴라니의 ‘본질적 경제학(substantial economics)’라는 가설을 빌려서 경제인류학적 접근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실제로 경제주체가 어떻게 재생산되는가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수도 있다. 10년 전에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접근이기는 한데, 서양 사람들은 아직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이 특수한 현상들 특히 박정희 이후의 약간 특수한 한국 경제에서 벌어진 다양한 사회문화적 현상들에 대해서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매우 우수한 논문을 쓰고, 발전경제학의 새로운 길을 여는 석학이 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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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왜 우리나라의 10대는 18세에 독립의 꿈을 꾸지 못하는가?


우리나라를 제외한 선진국의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16세부터 사랑을 시작하고, 18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독립을 희망한다. 물론 조금 늦거나 조금 빠를 수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사교육에 묶여서 대학입학 준비를 하고 있는 그 순간에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스스로의 문제를 풀어갈 준비를 시작한다. 정서적인 발달로 본다면, 대체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생각하게 되는 나이가 여성의 경우 25세에서 26세 정도라고 본다면, 10년 정도 차이가 나는 셈이다. 이 10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남자들의 경우는 군복무라고 하는, OECD 국가에 비해서는 아직 부담스러운 2년이라는 기간을 중심으로 일부 설명할 수는 있다. 만약 18세의 어느 신체건강한 대한민국 청년이 부모님에게 “저, 사랑하는 여인이 생겼습니다. 독립하겠습니다.”라고 선언을 했다고 생각해보자. “이 자식아, 군대나 갔다 오고 나서 말해라.” 그렇다고 이 사랑하는 여인과의 삶을 위해서 군대부터 갔다오겠다고 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만약 ‘프레임’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면, 사회가 준비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의 표준적 남자들의 삶’이라는 것에는 18세 독립은 물론이고 20세 독립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학에 가야하고, 그 다음에도 빼곡하게 준비되어 있는 삶들이 준비되어 있다. 병역 서비스라고 부를 수 있는 국방의 의무를 제외한 나머지 일들은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노동 시장’이라는 한 단어로 이 모든 것들은 대부분 설명된다.


의무교육인 초등학교 교육을 제외한 중고등학교에서의 중등교육 과정 그리고 대학교육 이후의 고등교육 과정은 순전히 노동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하기 위한 노동공급자로서의 자신의 ‘질(quality)’을 높이기 위한 과정에 해당한다. 이중에 아주 일부는 노동시장과 상관없이 예술이나 창조와 같은 것에서 자신의 삶을 의미를 찾게 될 아주 행복하고 선택받은 소수의 길을 삶을 살 수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10대는 이 과정을 통해서 노동자로서 재생산되기 위한 일련의 교육 과정에 들어가게 된다. 싫어도 이러한 메카니즘은 어쩔 수가 없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근대 국가체계에서 자본주의 경제체계를 운용하는 국가들은 전부 이렇게 노동시장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사회구성원들을 노동상품으로 구매하도록 하고, 그렇게 해서 임금 체계를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칼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상품이 실제로 시장에서 어떻게 구매될지 모르는 상태를 ‘부정부성’이라고 설명했고, 상품이 시장에 나가서 실제 판매되는 과정을 ‘위험한 도약(saut périlleux)’이라고 불어판 서문에서 강조해서 설명하였다. 이 얘기는 특히 우리나라의 10대들에게 잘 맞는다. 수능과 내신 그리고 학교별 논술을 합쳐서 일컫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는 우리나라의 표현은 마르크스의 위험한 도약이 한반도에서 어떻게 구현되는가를 너무 잘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노동시장 앞에 선 개인들은 불안하기 마련이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10대들에게 펼쳐진 상황, 조금 정확히 얘기하면 13세에서 18세까지 소위 ‘1318 세대’에게 펼쳐진 상황은 조금 심하다. 만약 이들의 수업량을 정상적인 노동으로 환산해서 계산을 하면 어떻게 될까? 게다가 학생들이 하는 ‘공부’라는 이름으로 하는 것은 단순한 육체노동이 아니라 지적노동에 해당하고, 그 안에서 경쟁이라는 명확한 틀을 가지고 하는 노동이기 때문에, 일반적 노동의 분류로는 화이트 칼러 노동에 해당한다. 중소기업의 일반 스탭의 임금기준 연봉 2천만원과 노동강도를 고려한다면, 대체적으로 중고등학교 6년 동안에 평균적으로 학생 한 명당 1억 2천만원의 임금에 해당하는 고강도의 노동을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공부한다고 해서 아무도 돈을 주지는 않기 때문에 해보나마나한 계산이겠지만, 하루 8시간 노동과 토요일의 세 시간을 합쳐서 43시간 노동에서 40시간으로 3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이 사회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를 생각해보면 현재 10대들의 공부는 좀 가혹하다는 것을 금방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주5일제가 시행되면서 우리나라에는 현재 40시간의 노동이 표준 노동시간이 되어있지만, 10대들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영어나 불어나 ‘노동하다’와 ‘공부하다’는 work 그리고 travailler로 같은 동사를 사용한다. 독일어의 arbeiten은 아르바이트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시간제 조업의 의미로 일본의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에서도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 서양의 관념에서는 공부와 노동은 같은 의미로 언어체계에서는 이해된다. 공부와 관련된 가장 유쾌한 상상을 만든 문명권은 중국 문명권이고, 홍콩 사람들만이 공부를 명랑하게 받아들인다. 홍콩의 관동어에서 ‘공부(功夫)’는 ‘쿵푸’라고 발음된다. 그런 공부라면 얼마든지 즐겁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노동의 준비 단계로서의 우리나라에서의 공부는 노동과 관련된 노동권과 비유한다고 하더라도 너무 가혹한 조건에 해당한다. 만약 정상적인 노동행위의 경우였다면 주 40시간 노동과 같이 공부에 대해서도 적절한 시간 조절에 관한 이야기들이 시작되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그러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일상적인 노동 시간과 노동 강도만으로 얘기한다면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은 사랑에 대해서 고민하고 자신의 독립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을 정도, 즉 성인 기준의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할 정도로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공부에 할애하고 있다. 이 정도면 기본권 침해라고 생각할 정도이지만, 학생들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인권에 관한 얘기는 우리나라에서 심각하게 제기된 적도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정말로 10대들을 기다리고 있는 미래의 고통은 이러한 공부의 부담만은 아니다. 공교육과 사교육까지 총동원되어 마치 전쟁의 6년처럼 진행되는 대학입시를 향한 긴 대장정과 관련되어 있는 기본적 인권과 사회적 효율성과 같은 문제는 또 별도로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 과정을 사회가 지시하는 대로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통과한 사람이 과연 다른 선진국의 10대들처럼 독립할 수 있을까? 물론 상식적인 생각으로는 불가능하다.


가. 주거권의 문제


일단 살 집이 있어야 할텐데, 서울의 평균 주거비용을 생각해볼 때 그리고 부모한테 용돈 받아서 핸드폰 사고 핸드폰 비용 감당하기가 벅찬 10대들이 생각할 때 주거비용이라는 것은 상상해볼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는 돈이 아니다. 쪽방이나 옥탑방과 같은 용어들이 10대들에게 어색하지 않은 것은 18세에 독립을 생각해야 하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현실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전체 국민의 50%가 집이 없는 현재의 상황들을 생각해볼 때, 10대나 20대 초반의 동거 커플의 주거권 같은 얘기들이 사회적으로 논의하는 사회적 의제가 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매우 멀다. 외국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되었기에 18세에서 20세 사이에 독립을 하게 되는 것일까? 물론 주거 비용이 싸기 때문이라는 점이 있다. 방 하나나 두 개를 빌려서 살 때 월 40만원에서 50만원 정도, 그리고 지방에서는 이보다는 훨씬 저렴한 가격에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 나이에는 당연히 소득이 적을 것이기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는 혼자 살거나 혹은 커플로 동거를 하더라도 50%에서 60% 정도의 월세보조를 지급한다. 동거의 경우에 더 많은 보조금을 지급하는 지방단체가 있는 경우도 있고, 학생의 경우에 대해서 학생보조금을 추가로 지급하기도 한다. 저소득층에 적용되는 사회안전망이 당연히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의 젊은 커플들에게도 적용된다. 조금 큰 눈으로 유럽의 경우를 살펴보면 이 새롭게 출발하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주거권과 생활지원을 다양한 방식으로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사회적 합의는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서 지금 한참 논란이 되는 것은 동성애 커플을 동거로 인정할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지금 논란이라고 할 수 있다. 결혼과 동거를 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간 단계이고, 현재로서는 동성애 커플의 동거도 당연한 시민의 권리로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동성애 커플은 출산의 가능성이 없으므로 출산의 가능성이 있는 동거인들에게 지급하는 일종의 출산장려금의 성격을 가진 동거수당을 지급할 수 없다는 의견이 가끔 팽팽하게 갈려서 사회적 논의에 테이블에 올라오기도 한다. 새로 출발하는 동거인들에게 주택보조와 생활보조 그리고 출산보조금들을 지급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관한 문제는 20년 전에 대부분 사회적 논의에서 정리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국민소득이라는 잣대로 보면, 유럽 국가들이 1인당 국민소득 1만불 대에서 18세에 삶을 독립하는 새로운 시민과 새로운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 젊은 동거인들에게 어떻게 사회 안전망을 적용할 것인가라는 논의를 시작했고, 1만 5천불 늦으면 2만불 대에서 기본적인 제도의 정비가 완료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국가별로 좀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젊은 동거인들을 사회의 첫 번째 단위로 인식하는 방식은 1만 5천불 정도에서 어느 정도 정착이 된다.


‘구청 결혼’이라는 것이 등장한 시기가 바로 이 시기이다. 모든 지자체에서 이런 것을 시행하고 있지는 않지만, 더 많은 젊고 활기에 넘치는 젊은이들을 각 지역에 정착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유럽 국가에서는 구청 결혼이라는 것을 시행한다. 말이 결혼이지 구청장이 직접 5분 동안 간단하게 주례사라는 형식의 축복의 말을 전하고 간촐한 결혼 반지 끼워주는 것으로 행사는 끝이 난다. 동거와 결혼의 중간 정도 형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미국 영화에서 흔히 보는 목사님이 두 부분의 ‘성혼 선언’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보통은 토요일 오전에 이런 결혼을 신청한 사람들을 모아서 구청장이 직접 결혼을 선언해준다. 우리나라 TV에서 보는 결혼과는 전혀 다른 형식이다. 이런 일의 과정에 부모가 개입하는 일은 별로 없고, 그야말로 독립된 두 사람이 동거와 결혼 사이의 중간 형식을 갖추어 한 가정을 만드는 출발점이다. 이런 ‘구청 결혼’이 사회적으로 가능한 것은 동거인들의 새로운 출발을 사회적으로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서 그렇다. 구청에서 결혼을 하면 그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임대주택과 주택 보조에 대해서 우선적인 지원을 받을뿐더러 사회적 일자리는 물론이고 해당 지역의 다양한 문화 및 교육기관에 대해서 우선적인 접근을 보장해준다. 그리고 이렇게 구청장이 직접 주선해서 만들어진 새로운 커플의 아이들은 안전하게 사회적 안전망 내에서 자라나게 되고, 보육시설을 비롯해서 의료 서비스까지 그야말로 한 차원 높은 공공 서비스 내에서 살아가게 된다. 심지어는 그렇게 구청장이 성혼해준 커플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은 구청에서 만들어낸 여러 가지 일자리에 대한 보호를 받고, 각 지역에서는 이렇게 구청장이 주례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커플들을 자랑스러워 하고, 그들이 낮은 아이들이 지역 사회의 새로운 주축이 되기를 희망한다.


우리나라에서 스무 살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지옥이 펼쳐질 것이다. 그러나 유럽의 스무 살이라면 구청에 전화해서 구청장이 주례를 서주셨으면 좋겠다고 한 마디를 하는 순간에 일련의 절차가 움직일 수 있도록 되어있다. 구청에서 육아 보육과 같은 아르바이트로 생활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고, 구청에서 마련해준 공공임대주택에서 살면서 하나의 가족이라는 형태로 출발을 하게 된다. 물론 모든 청소년들이 이렇게 동거라는 ‘수단’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청소년들이 둘이서 문제를 풀어보겠다고 생각을 하면, 선진국은 선진국답게 일련의 장치를 가동하게 된다. 헐리우드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서양의 선진국 청년들이 모두 호화스러운 결혼식을 하고, 며칠씩 잔치를 벌이는 결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것들은 부자들이 하는 일이고, 3만불에서 4만불에 해당하는 국민소득을 가지고 있는 나라의 중산층들은 이렇게 자신의 첫 번째 독립과 가정이라는 삶을 시작한다.


물론 미국과 유럽은 좀 다르다. 더 넓게 동거의 자유를 인정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평생 혼인신고라는 것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가난하거나 무조건 빈민층을 형성하지는 않는다. 미국의 경우는 동거권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결혼 이전의 동거 생활이 유럽만큼 자유롭지는 않고, 또 사회보장에 대한 기본장치가 잘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흑인들이나 유색계통의 민족들의 삶 그리고 하층 백인의 삶과 유럽에서 동거로 시작하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이 좀 다르다. 물론 미국도 스무살이 되면 많은 젊은이들은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삶을 시작하지만, 유럽의 경우보다는 조금 살아가기가 빡빡하다.


젊은이들의 주거권과 관련해서 크게 보면 미국형과 유럽형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을 해서 젊은이들이 혼자 살거나 혹은 동거를 시작할 수 있는 첫 출발을 보조하는 편이고, 미국은 넓은 국토이기 때문에 외곽의 저렴한 주택을 기본 장치로 움직인다고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원래는 일본형의 아류였는데, 현재로서는 일본형과도 많이 달라져서 한국형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일본형은 “알아서 해라”에 가깝다. 그 대신 아르바이트와 같은 청소년들의 노동에 대해서 우리나라보다 10배 정도의 비용을 지불한다. 동경과 같이 국제적으로 집값이 비싼 경우를 제외하면 이런 일본형 시스템은 대체적으로 잘 작동한다. 물론 1990년대 초반부터 10년간 일본 사회를 뒤흔든 ‘헤이세이 공황’이 발생할 정도로 집값이 너무 높게 잡히면 일본형은 작동하지 않는다. 이 시절에 일본에서는 이 전 세대와 같이 독립하지 못하게 된 세대가 등장하게 되었고, 이런 변화가 ‘오타쿠’라고 불리는 집단이 등장하게 된 사회경제적 배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형은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 절대로 독립을 인정하지도 않고, 독립할 수 있는 경제적 질서와 제도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 한국형 청소년 시스템은 부자 부모를 둔 소수의 청소년을 제외하면 나머지 청소년들은 정상적인 시민으로 전환될 수 없는 “극단적인 알아서 해라‘형이라고 할 수 없다. 중등교육이라고 하는 고등학교 교육까지 마치고 난 10대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삶 혹은 자신만의 삶과 같은 독립이 아니라 절망과 좌절 밖에는 없다.


그렇다면 1만불 시대에 유럽이 시작했던 그 진화는 왜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일까? 이 정도 경제소득을 갖추면서 선진국이 1만불 시대를 즈음해서 시작했던 이 ‘사회적 진화’는 왜 우리나라에서 생겨나지 않았던 것일까? 사회학이라면 이 문제를 조금 더 문화적인 가치관의 형성과 세대간의 동양 특유의 갈등 문제로 보게 될 것이고, 정치학이라면 선거권과 10대의 정치 주체로서의 자신에 대한 대변과 민주주의의 또 다른 문제라고 보게 될 것이다. 미학이나 문화인류학 같은 곳에서는 조금 더 정색을 하고 압축성장과 주변부 문화나 또래 문화의 형성과 같은 시각으로 볼지도 모른다. 만약 철학이라면? 그건 잘 모르겠지만, 지난 수년 동안의 우리나라 철학계에서 나온 얘기들을 참고로 한다면 그게 무슨 말인지는 잘 몰라도, 철학계 내부에서 한참 같이 논쟁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마 잘 이해하기 어려운 형태로 말을 할 것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by 비나리 | 2007/01/13 23:48 | 출간 이야기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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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궁금 at 2007/01/14 03:49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동거랑은 약간 다른 얘기긴 합니다만, 요즘은 10대 독립을 얘기하기 머쩍게, 20대 후반~30대 초(혹은 부모가 경제적 능력이 있을 때까지 쭈욱!)의 캥거루족들이 많지 않나요? 한국에서 심각한건 주위를 둘러봐도 알 수 있고, 외국 경우는 어떨지 몰라 검색해봤는데 한국만큼은 아니겠지만 전반적인 추세인거 같습니다. 주류경제신문에서도 매우 걱정하는 상황이기까지 하던데요.
Commented by 비나리 at 2007/01/14 12:17
신자유주의가 강화되면서 생겨나는 현상을 찾다보니 동거까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게임이론이나 진화경제학 틀에서 생각해보면 더 재밌을 것 같은데요...
Commented by 연애편지 at 2007/01/14 19:14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한가지 더 첨부한다면 혹시 메이플 스토리라는 게임을 해보시는것은 어떨까 제안하고 싶습니다.

그쪽에서 놀다 보면서 어린 초딩. 중딩. 고딩. 대딩을 비롯해서 30~40대까지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사회를 이루는 듯한 게임인데요... 그곳의 돌아가는 머니 상황은 참 당황스러울정도로 현실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한번 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저두 그곳에서 장사를 하면서 느끼는 건데 애덜 장사하는 게 현실이랑 넘 비슷해서 ㅎㅎ
현실을 반영한 온라인 세계라고 해야 할까요...
Commented by 연애편지 at 2007/01/14 19:18
그리고 비나리님 책 무섭지 않아요.. 슬프죠..
슬퍼서 읽기에는 거북하다고 해야 할까요..

아마도 다른 사람들은 비나리님의 감정없는 듯한 평온한 느낌이 무서울꺼예요.
도둑이 제발 저린다는 격으로...
Commented by 붤뤠 at 2007/01/15 00:01
연애편지님의 답글에 이어 별로 안좋아하시겠지만, 이인화씨의 게임 폐인 생활 수기도 참고해보세요. ㅋ
Commented by 아큐라 at 2007/01/15 10:48
1. 알고보니 우선생님 문체에 대한 악평이 많더군요. 그런데 내 뉴런에 착착 감기는 이 맛은 뭐야 대체?

2. 부정부성 -> 무정부성 , 관동어 -> 광동어 입니다. 개념어같은 데 오타가 있으면 제 맘이 아파요.

3. 지난 학기에 생각하곤 했던 것이 '비선형적 학제'라는 겁니다. 학교에는 이미 배움과 가르침이

본원적 의미에서 너무 멀어진 지가 또한 너무 오래되어 이 사태를 어떻게 박살낼까 고민하던

과정에 나온 어처구니 없을 수 있는 착상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배움에 전혀 뜻이 없는 아이들은

1년 만에 졸업시켜서 본인 희망등을 참고하여 일자리를 제공하는 겁니다. 당연히 임금은 제대로

지급하도록 준비해야죠. 예를 들어 출산률 저하로 인해 앞으로 교실이 남아돌 학교에 노인과

아이들을 위한 시설을 구비하고 그곳에서 케어 노동을 제공하도록 할 수 있겠죠. 농사를 짓는

법을 배우면서 노작교육을 병행한다든가 하는 일도 나쁘지는 않을 거고요. 그러다가 문득

학업을 더 하고 싶으면 상담을 통해 본인이 받고 싶은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을 찾아가는

겁니다. 교사의 경우 본인이 원하는 다른 교과나 현재 교과과정에 없는 내용을 가르칠 수 있도록

하고요. 물론 소정의 과정이 필요하겠죠. 시설의 경우 현재 주택가의 학교나 역세권의 수험산업

현장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당장은 불가능하죠. 돈에 눈먼 어른들이 시간당 이천원도 안되는 일거리로 아이들을 혹사할테니

노동관련법도 개정하여야 하고 표준화된 교과과정을 유동적이고 말랑말랑하게 만들려면 교육철학

이나 사회학의 기초부터 재정립하는 과정이 따라야 하니까요.


재작년에 고령화 저출산에 대한 고민과 독서를 꽤 했었는데 기본적으로 불보듯 뻔한 미래에 대한

준비를 제대로 당사자들이 하자는 거였죠. 학령인구로 따지면 70만 * 16년 = 1160만명의 시대 (2007

년까지)에서 40만*16년 = 660만명의 시대(2023년)로 순식간에 이행할 텐데 뭔가를 개혁하건

혁신하건 변혁하건 간에 사회 디자인을 원점에서 다시 설계하면서 살 사람끼리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자는 거였는데 이민을 고민하면서 중단했죠.

지금은 기본적인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출발점에서 향방에 대한 고민과 실천이 제대로

잡히면 남한사회도 지금보다 더 좋아질 가능성이 충분한데``` 나같은 사람이 할 일은 아니다.
Commented by mogiiii at 2007/01/18 16:57
재밌게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론 이번 것이 제일 좋네요. 조금만 더 쉽게 다듬는다면 10대들도 즐겁게 읽을수 있을거라 봅니다.
보다 많은 10대들을 포섭(^^)하기 위한 힌트를 하나 드리자면요, 동성애와 관련한 이야기를 중간중간 넣는걸 고려해보셨으면 합니다. 읽다보니 글이 이성애중심적으로 흐른 측면이 있구요, 여고와 남고가 많은 우리의 중고등교육 현실상 20대 이후의 세대보다 10대들이 더 퀴어(^^)한 것이 사실이거든요. 아직 호모포비아적인 기성사회의 때가 덜 내면화되기도 했구요. 독자범위확장의 차원에서 해가 될거 같진 않습니다.
건강하십시오. 그럼 이만.
Commented by 비나리 at 2007/01/19 01:32
그런 질문이 있었군요... 한 번 진지하고 깊게 생각해보겠습니다. 못해본 생각을 알려주셔서 느무느무 고맙구요, 혹시 제가 알 수 있게 단서를 드리면, 책 나오면 꼭 한 보내고 싶군요.

던져주신 질문은 최대한 고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Commented at 2007/01/19 09:4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비나리 at 2007/01/19 21:32
mogiiii님...

네 여러가지 측면에서 더 깊게 생각해봐야겠군요. 다른 맥락이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이라서, 가능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는 저도 훨씬 더 깊은 생각이...

지적은, 무척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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