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1월 13일
도이치 그라모폰과 EMI
내가 가진 LP는 대략 1,000장 정도 되는 것 같다. 원래는 더 많을 수도 있지만 에너지관리공단을 그만둔 이후로 LP를 사는 고급스러운 취미는 계속할 수가 없어서 LP 대신 CD를 듣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세어본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가진 앨범 중에 도이치 그라모폰의 것이 절반 정도되고, 나머지는 EMI 그리고 기타등등, 한동안 소니가 앨범 내던 시절에는 소니 것도 있고, 대충 그렇다. 도이치 그라모폰이 많은 것은 그 쪽 음향기술자들의 취향을 좋아해서 그렇다.
꼭 정확하게 그렇게 나뉘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음반사가 어디인가에 따라서 앨범을 곡을 고르는 방법 그리고 지휘자를 선택하는 방법 같은 것들에 좀 차이가 있고, 무엇보다도 음을 다루는 방법이 미세하게 좀 다르다. 물론 이것도 음향 기술자가 누가 총 지휘를 했느냐에 따라서 다르다.
재즈는 이런 클래식 시장을 파고들어야 했기 때문에 음향기술자가 더 전면에 나서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빌리 헐러데이, 빌 에반스와 같은 사람들 뒤에는 쟁쟁한 음향 기술자가 따라붙는다.
가끔 이런 음향 기술자들이 예전에 냈던 것을 최근의 기술로 다시 '라마스터링'해서 발매한다. 몇 장 안 찍고, 우리나라 시장에도 발매 당시에만 잠깐 풀리기 때문에 그때그때 신경써서 안 사면 좋은 음질의 음반은 구경하기가 어렵다.
재즈에는 블루 노트 같은 큰 손들이 대부분의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어서, 블루노트 아닌 음반을 찾기가 오히려 어렵다.
음반을 사러갔을 때 특별한 정보가 없고, 예를 들면 슈베르트, 그리그, 혹은 쇼스타코비치 같은 이름들만 가지고 있다면 음반을 고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연주자나 지휘자를 보고 사는 방법이 보통 사람들이 많이 쓰는 방법이다. 그렇지만 나는 음반 레이블을 많이 보는 편이다.
이것저것 신경쓰기 싫을 때는 그냥 옴비너스판을 사는게 많은 경우는 장땡이다. 몇 번 듣고 던져버릴 음악이라면 옴니버스가 속편하기는 하다. 그러나 누구에겐가 물려주고 싶은 생각이 있거나 100번쯤은 들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레이블을 좀 보는게 좋다.
도이치 그라모폰은 카라얀도 많이 녹음을 했고, 독일계 연주자들이 많이 소속되어 있는데, 그야말로 음악의 전성기였던 60-70년대의 고전적인 방식의 소리를 많이 추구한다. 교과서를 펼치고 싶은 마음으로 음악을 듣는 것이 도이치 그라모폰의 경우라고 하면 약간의 경향성을 읽을 수 있다.
80년대 EMI가 어떤 곳인지 가장 잘 알려주는 것이 막심의 피아노라고 할 수 있다. 하도 새로운 신예가 나왔다고 난리를 쳐서 나도 한 장 샀다가, 또 속았다고 좀 억울해한 적이 있다. 바네사 메이와 막심이 EMI 작품이다. 내 기준으로 바네사 메이는 상당한 예술성이 있고, 그렇게 대중적인 연주 아니더라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연주자이다. 막심은 좀 다르다. 아무래도 싱가폴이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힘과 붕괴 중의 동구 젊은이들이 어쩔 수밖에 없던 한계 같은게 조금은 관여되어 있지 않을까라고도 생각해본다.
바네사 메이 이후로 EMI는 완전히 마케팅으로 돌았고, 그 덩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더 심하게 마케팅을 하기 시작했다. 바네사 메이를 욕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래도 난 그렇게 욕먹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막심 때에는 나도 더 이상 EMI 레이블을 사기가 싫다고 할 정도로... 막심 이후로 난 EMI 레이블은 안 산다.
장한나를 비롯한 한국 연주자들은 전형적인 EMI 표들이다. 대충 클래식 시장을 지배하는 유태인 자본의 세계와 마케팅 포인트 같은 걸 좀 읽으면 기분이 썩 상쾌하지는 않다. 이동규가 EMI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새로 등장한 신예 중에는 거의 유일하다.
물론 나머지 사람들을 욕할 생각은 없다.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욕은 안 하지만 나도 지갑을 열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연주자는 백건우이다. 인생이 아름답고, 또 점잖다. 레슨 같은 거 하면서 살았으면 거부가 되고도 남았을 사람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가난한 삶을 선택했다. 백건우 앞에서는 나도 머리를 푹 숙인다.
요즘 논술시장에서 장사하자고 하는 사람들을 볼 때 나는 백건우를 생각해본다. 남들보다 조금 먼저 보고 논술시장에 들어간 사람은 김용옥이다. 김용옥도 마케팅과 쇼 비즈니스 빼고 나면 별로 남는 거 없는 사람이다.
백건우와 비교하면 속물에 불과하다.
그런 백건우도 베토벤 시리즈의 녹음을 시작하면서 삼성과 손잡았다. 삼성 메케팅이 아니었다면 아마 수 십장 사서 주위에 뿌렸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들을 것 딱 한 장만 샀다. 앞으로 베토벤 소나타 전곡이 다 나오기를 바란다. 먼저 살았던 어른에 대한 예의로 사기는 할 것이지만, 어디 가서 이게 최고라고 할 생각은 전혀 없다.
백건우의 삼성에서 돈 대는 소나타 시리즈는 사실 녹음으로는 최악이다. 최근에 녹음된 것인데다가 좀 신경을 썼을테니까 기대를 가지고 사서 들었는데, 연주는 - 이건 내가 평가할 수준은 아닌데, 페달을 지나치게 밟으면서 수 년 전의 단백했던 백건우의 연주에 비하면 상당히 느끼해졌다는 느낌 정도를 받는다 - 나름대로 맛이 있지만, 녹음만은 정말 처절하다. 이게 2000년대의 녹음이란 말이야? 70년대 메이저 스튜디오와 독립 레이블들이 엔지니어들을 확보하면서 녹음 경쟁하던 시절과 비교해보면, 백건우의 소나타 시리즈는 정말 MP3로 누군가 복사해서 듣는다고 하더라도 달리 첨가할 말이 없을 정도로 최악이다.
최근에 나온 신중현의 녹음이 과연 장비가 좋아지고 맘 먹고 녹음하니까 소리가 다르기는 하군이라고 어쩔 수 없던 것과 비교하면... 역시 삼성돈 받은 넘들이 실력은 개뿔이야라는 평소의 선입견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70년대의 녹음은 도이치 그라모폰만큼이나 EMI의 녹음들도 멋지다. 비틀즈 후기 음악들은 대부분 EMI에서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는데, 이 녹음들도 녹음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한 길을 보여주는 멋진 엔지니어링을 확인할 수 있다.
30년대 주로 활동했던 듀크 엘링턴과 카운트 베시의 시대가 안타까운 것은... 정말 날렸다던 초기 음악들은 녹음 상태가 좀 안좋다. 듀크 엘링턴의 노래에 3분 30초에서 4분짜리 곡들이 많은 것은 그 시절에 LP(Long Play) 양식이 나오기 이전인 초기 SP(Short Play) 시절에는 그렇게 해야 판에 녹음할 때 최적이었다나... 그 때 그런 장비로 베토벤의 심포니 한 곡을 듣는다는 것은 정말 신비하고도 거창한 일이었을 것 같다.
도이치 그라모폰이나 EMI의 전성 시대도 이제는 옛날 얘기이다. 밥 먹고 소리만 생각하던 당대 최고의 엔지니어들이 공들여 음장과 진향 같은 것들을 생각하면서 소리를 만지작거리던 시절은 서양에서도 꿈만 같던 시절이다. 그 음악의 전성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음악이 디지털 녹음 시대로 바뀌면서 음질이 전반적으로 떨어졌을 뿐더러 녹음량 자체도 줄어들게 되었다. 더불어 예술가들은 50년만에 다시 유통자본의 노예가 된 셈이다. 비틀즈 이후로 음악가들에게 너무 많은 권위가 넘어갔다고 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것도 이제 옛날 일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뒷골목에서 수입음반 사서 듣고, 또 이 사람들이 음악을 계속 만들어주기를 바라면서 지갑을 열었던 시대는, 지금 생각하면 그야말로 낭만의 시대이다. 빅밴드의 시대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상업화와 함께 사라진 것처럼 또 다른 흐름이 생겨나는데, 이 흐름은 예술가들에게는 좋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도이치 그라모폰 같은 것들이 나올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핸펀의 다단계판매상 같은 넘들이 중간 이문을 다 챙겨가기 때문이다.
카라얀이 지휘하고 베를린 필하모니가 연주한 그리그의 페르귄트 서곡 한 장을 차분히 앉아서 앞뒤로 다 듣고나서, 이런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오랫만에 먼지제거액을 공들여 뿌려가면서 LP 한 장을 정성스럽게 닦아보았다. 이 LP는 어지간히 애를 먹지 않으면 이제 다시 구하지 못한다. 두 군데 정도 튀는데가 있는데, 10년쯤 지나면 더 많이 튈 것이다. 어쩌랴... 나와 같이 나이를 먹어가는 것인데...
지금 10대나 20대가 낸 판을 사주고 싶다. 별로 잘 보이지가 않는다. 그래서 이동규 판과 이상은 판을 열심히 사주는 정도 밖에 내가 이 사람들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없다.
정확하게 세어본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가진 앨범 중에 도이치 그라모폰의 것이 절반 정도되고, 나머지는 EMI 그리고 기타등등, 한동안 소니가 앨범 내던 시절에는 소니 것도 있고, 대충 그렇다. 도이치 그라모폰이 많은 것은 그 쪽 음향기술자들의 취향을 좋아해서 그렇다.
꼭 정확하게 그렇게 나뉘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음반사가 어디인가에 따라서 앨범을 곡을 고르는 방법 그리고 지휘자를 선택하는 방법 같은 것들에 좀 차이가 있고, 무엇보다도 음을 다루는 방법이 미세하게 좀 다르다. 물론 이것도 음향 기술자가 누가 총 지휘를 했느냐에 따라서 다르다.
재즈는 이런 클래식 시장을 파고들어야 했기 때문에 음향기술자가 더 전면에 나서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빌리 헐러데이, 빌 에반스와 같은 사람들 뒤에는 쟁쟁한 음향 기술자가 따라붙는다.
가끔 이런 음향 기술자들이 예전에 냈던 것을 최근의 기술로 다시 '라마스터링'해서 발매한다. 몇 장 안 찍고, 우리나라 시장에도 발매 당시에만 잠깐 풀리기 때문에 그때그때 신경써서 안 사면 좋은 음질의 음반은 구경하기가 어렵다.
재즈에는 블루 노트 같은 큰 손들이 대부분의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어서, 블루노트 아닌 음반을 찾기가 오히려 어렵다.
음반을 사러갔을 때 특별한 정보가 없고, 예를 들면 슈베르트, 그리그, 혹은 쇼스타코비치 같은 이름들만 가지고 있다면 음반을 고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연주자나 지휘자를 보고 사는 방법이 보통 사람들이 많이 쓰는 방법이다. 그렇지만 나는 음반 레이블을 많이 보는 편이다.
이것저것 신경쓰기 싫을 때는 그냥 옴비너스판을 사는게 많은 경우는 장땡이다. 몇 번 듣고 던져버릴 음악이라면 옴니버스가 속편하기는 하다. 그러나 누구에겐가 물려주고 싶은 생각이 있거나 100번쯤은 들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레이블을 좀 보는게 좋다.
도이치 그라모폰은 카라얀도 많이 녹음을 했고, 독일계 연주자들이 많이 소속되어 있는데, 그야말로 음악의 전성기였던 60-70년대의 고전적인 방식의 소리를 많이 추구한다. 교과서를 펼치고 싶은 마음으로 음악을 듣는 것이 도이치 그라모폰의 경우라고 하면 약간의 경향성을 읽을 수 있다.
80년대 EMI가 어떤 곳인지 가장 잘 알려주는 것이 막심의 피아노라고 할 수 있다. 하도 새로운 신예가 나왔다고 난리를 쳐서 나도 한 장 샀다가, 또 속았다고 좀 억울해한 적이 있다. 바네사 메이와 막심이 EMI 작품이다. 내 기준으로 바네사 메이는 상당한 예술성이 있고, 그렇게 대중적인 연주 아니더라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연주자이다. 막심은 좀 다르다. 아무래도 싱가폴이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힘과 붕괴 중의 동구 젊은이들이 어쩔 수밖에 없던 한계 같은게 조금은 관여되어 있지 않을까라고도 생각해본다.
바네사 메이 이후로 EMI는 완전히 마케팅으로 돌았고, 그 덩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더 심하게 마케팅을 하기 시작했다. 바네사 메이를 욕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래도 난 그렇게 욕먹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막심 때에는 나도 더 이상 EMI 레이블을 사기가 싫다고 할 정도로... 막심 이후로 난 EMI 레이블은 안 산다.
장한나를 비롯한 한국 연주자들은 전형적인 EMI 표들이다. 대충 클래식 시장을 지배하는 유태인 자본의 세계와 마케팅 포인트 같은 걸 좀 읽으면 기분이 썩 상쾌하지는 않다. 이동규가 EMI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새로 등장한 신예 중에는 거의 유일하다.
물론 나머지 사람들을 욕할 생각은 없다.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욕은 안 하지만 나도 지갑을 열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연주자는 백건우이다. 인생이 아름답고, 또 점잖다. 레슨 같은 거 하면서 살았으면 거부가 되고도 남았을 사람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가난한 삶을 선택했다. 백건우 앞에서는 나도 머리를 푹 숙인다.
요즘 논술시장에서 장사하자고 하는 사람들을 볼 때 나는 백건우를 생각해본다. 남들보다 조금 먼저 보고 논술시장에 들어간 사람은 김용옥이다. 김용옥도 마케팅과 쇼 비즈니스 빼고 나면 별로 남는 거 없는 사람이다.
백건우와 비교하면 속물에 불과하다.
그런 백건우도 베토벤 시리즈의 녹음을 시작하면서 삼성과 손잡았다. 삼성 메케팅이 아니었다면 아마 수 십장 사서 주위에 뿌렸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들을 것 딱 한 장만 샀다. 앞으로 베토벤 소나타 전곡이 다 나오기를 바란다. 먼저 살았던 어른에 대한 예의로 사기는 할 것이지만, 어디 가서 이게 최고라고 할 생각은 전혀 없다.
백건우의 삼성에서 돈 대는 소나타 시리즈는 사실 녹음으로는 최악이다. 최근에 녹음된 것인데다가 좀 신경을 썼을테니까 기대를 가지고 사서 들었는데, 연주는 - 이건 내가 평가할 수준은 아닌데, 페달을 지나치게 밟으면서 수 년 전의 단백했던 백건우의 연주에 비하면 상당히 느끼해졌다는 느낌 정도를 받는다 - 나름대로 맛이 있지만, 녹음만은 정말 처절하다. 이게 2000년대의 녹음이란 말이야? 70년대 메이저 스튜디오와 독립 레이블들이 엔지니어들을 확보하면서 녹음 경쟁하던 시절과 비교해보면, 백건우의 소나타 시리즈는 정말 MP3로 누군가 복사해서 듣는다고 하더라도 달리 첨가할 말이 없을 정도로 최악이다.
최근에 나온 신중현의 녹음이 과연 장비가 좋아지고 맘 먹고 녹음하니까 소리가 다르기는 하군이라고 어쩔 수 없던 것과 비교하면... 역시 삼성돈 받은 넘들이 실력은 개뿔이야라는 평소의 선입견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70년대의 녹음은 도이치 그라모폰만큼이나 EMI의 녹음들도 멋지다. 비틀즈 후기 음악들은 대부분 EMI에서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는데, 이 녹음들도 녹음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한 길을 보여주는 멋진 엔지니어링을 확인할 수 있다.
30년대 주로 활동했던 듀크 엘링턴과 카운트 베시의 시대가 안타까운 것은... 정말 날렸다던 초기 음악들은 녹음 상태가 좀 안좋다. 듀크 엘링턴의 노래에 3분 30초에서 4분짜리 곡들이 많은 것은 그 시절에 LP(Long Play) 양식이 나오기 이전인 초기 SP(Short Play) 시절에는 그렇게 해야 판에 녹음할 때 최적이었다나... 그 때 그런 장비로 베토벤의 심포니 한 곡을 듣는다는 것은 정말 신비하고도 거창한 일이었을 것 같다.
도이치 그라모폰이나 EMI의 전성 시대도 이제는 옛날 얘기이다. 밥 먹고 소리만 생각하던 당대 최고의 엔지니어들이 공들여 음장과 진향 같은 것들을 생각하면서 소리를 만지작거리던 시절은 서양에서도 꿈만 같던 시절이다. 그 음악의 전성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음악이 디지털 녹음 시대로 바뀌면서 음질이 전반적으로 떨어졌을 뿐더러 녹음량 자체도 줄어들게 되었다. 더불어 예술가들은 50년만에 다시 유통자본의 노예가 된 셈이다. 비틀즈 이후로 음악가들에게 너무 많은 권위가 넘어갔다고 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것도 이제 옛날 일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뒷골목에서 수입음반 사서 듣고, 또 이 사람들이 음악을 계속 만들어주기를 바라면서 지갑을 열었던 시대는, 지금 생각하면 그야말로 낭만의 시대이다. 빅밴드의 시대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상업화와 함께 사라진 것처럼 또 다른 흐름이 생겨나는데, 이 흐름은 예술가들에게는 좋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도이치 그라모폰 같은 것들이 나올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핸펀의 다단계판매상 같은 넘들이 중간 이문을 다 챙겨가기 때문이다.
카라얀이 지휘하고 베를린 필하모니가 연주한 그리그의 페르귄트 서곡 한 장을 차분히 앉아서 앞뒤로 다 듣고나서, 이런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오랫만에 먼지제거액을 공들여 뿌려가면서 LP 한 장을 정성스럽게 닦아보았다. 이 LP는 어지간히 애를 먹지 않으면 이제 다시 구하지 못한다. 두 군데 정도 튀는데가 있는데, 10년쯤 지나면 더 많이 튈 것이다. 어쩌랴... 나와 같이 나이를 먹어가는 것인데...
지금 10대나 20대가 낸 판을 사주고 싶다. 별로 잘 보이지가 않는다. 그래서 이동규 판과 이상은 판을 열심히 사주는 정도 밖에 내가 이 사람들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없다.
# by | 2007/01/13 13:49 | 문화경제학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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