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가수들

 

독일 가수들


성악을 아주 많이 듣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의 노래는 꽤 찾아가면서 듣는 편이다. 독일의 대표적 바리톤 가수인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는 CD로는 스무장, LP로도 10장이 넘게 가지고 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사는데, 아직도 못 산 게 좀 있다. 이렇게 눈에 보이면 무조건 사는 가수들이 몇 명 있는데, 프리츠 분더리히는 내가 듣는 거의 유일한 테너이다. 헨델의 오페라 Serse에 나오는 Ombra mai fu를 아주 맛갈나게 부르는 가수이다. 라르고라고 기악으로 편곡되기도 한 이 노래도 있으면 무조건 산다.


원래는 슈베르트의 연가곡집을 주로 듣다 보니까 독일 가수들의 노래를 많이 듣게 된 것인데, 이탈리아 가수의 노래로는 아주 옛날 녹음이라서 아쉽기는 하지만 Gigli를 최고로 친다. 한 때 이탈리아에도 아주 미성의 테너들이 활동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60년대 이후 발성량으로 패러다임이 좀 바뀐 것 같다. 요즘은 돼지 멱따는 소리로 소리를 질러대는 이탈리아 계열의 가수들을 사람들이 좋아한다. 난 특별한 편견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닌데, 도밍고 LP를 열 장 정도 가지고 있는데, 영 들어주기가 좀 그렇다.


소프라노 영역의 카운트 테너는 안 들었었는데, ‘돈큐 리’라고 불리는 이동규 때문에 듣기 시작했다. 판 나오면 무조건 사고, 선물할 일 있으면 이동규 앨범을 선물한다. 나의 희망이고,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혹은 모든 비주류들의 희망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열광하며 지켜보는 중이다. 이동규가 더 멋진 것은 언제까지 버틸지 모르겠지만, EMI나 도이치 그라모폰 같은 메이저 음반사가 아니라 캐나다의 작은 마이너 계열의 음반사들과 녹음을 한다.


쪼르르 줄 대고 기획사에 소속되고 싶어 난리치는 잡것들과는 확연히 선을 가르며 다른 삶을 살아가는 드문 예술가다. 메이저 기획사나 음반사와의 싸움은 노예처럼 사육되었던 제프 백에서 시작해서 “한 때는 프린스라고 불렸던 사나이”까지 계속된 슬픈 역사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별 고민들을 안하는 것 같다. 비행기 사고로 비운에 사라진 최고의 라이브 밴드라고 불렸던 Lynyrd Skynyrd의 마지막 실황공연의 첫 곡이 “Working for MCA”였다. 컨츄리와 락이 결합되어 대충은 극우파 음악으로 분류되는 서던 락이 마지막 주자였지만, 기획사와 싸우면서 이런 그룹도 마지막에는 그야말로 투쟁의 대열에 합류한 셈이다.


독일 가수들은 도이치 그라모폰이나 EMI 소속인 경우가 많다. 도이치 그라모폰은 한 때는 최고의 음향기사들을 확보하고, 지금도 최고의 음장을 자랑하는 LP 시대의 명반들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


녹음 얘기에는 재밌는 얘기가 많은데, 판소리에서 내가 최고로 쳐주는 녹음은 일본 NHK에서 70년대 아직 우리나라에 판소리가 살아있을 때 녹음한 녹음들이 최고이다. 일본도 일본 전통음악 살려내기 위해서 상당히 애를 썼는데, 그 시절의 기술과 한국의 거장들이 만들어서 명반들이 나왔다. 우리나라 녹음? 미안한데, NHK의 생생한 녹음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 나면 들어주기가 좀 그렇다.


독일 가곡들은 슈베르트에서 한 번 절정을 맞고, 그 뒤에 슈만과 말러로 이어진다. 슈만의 노래들은 우리나라에서 꽤 인기가 있는 편인데, 나는 ‘지지리 궁상’을 좋아하기 때문에 뻑 하면 자살한다고 그러고 뒤에서 가슴 저린 심정을 노래하는 슈베르트를 오랫동안 좋아했다. 나이를 먹으니까 조금씩 슈만을 듣기 시작하고, 30대 초반에 그렇게 재수없게 생각했던 말러의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를 듣기 시작하게 된다. EMI에서 최고의 명반 중의 하나로 꼽히는 피셔-디스카우가 부른 판을 산 것은 두 달 전의 일이다. 30대 초반에는 그렇게 날이 서서 음악에도 계급성과 사회적 맥락 같은 걸 그렇게 따지더니 마흔이 되고 나니까 이제는 그런 것도 많이 무디어진다.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를 내가 싫어했던 것은 순전히 청담동파들 때문에 그렇다. 90년대 중반에 청담동으로 예술하겠다고 떠난 사람들 - 나중에 보니 김목경도 청담동 카페에서 노래 부르고 있었다 - 중에 내가 알던 사람들이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를 그렇게 좋아했다. 말러가 싫었다기 보다는 그 분위기가 너무 싫었던 것 같다.


홍대 앞이 싫었던 것은 “브리티시 팝”을 좋아한다고 홍대로 떠난 사람들이 싫었기 때문이고, 그러다보니 나는 20대의 음악파에서 30대에 자연스럽게 오디오파로 넘어오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오됴쟁이로 십 년을 보낸 셈이다. 연주회에 올라가고, 음대 대학원에 진학준비하던 그 시절이 과연 내게도 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나도 누군가를 지지하면서 앨범도 사고 편지도 쓰고, 그렇게 하고 싶은데, 사실 지지할만한 사람이 별로 없다. 우리나라 성악가? 이동규 빼고는 대부분 왕재수들이다. 옆에서 밥 한 번 먹고 나면 정말 다시 근처에서 보고 싶지 않을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혁명음악이라고 쇼스타코비치만 줄구장창 듣고 있기도 어렵다. 그래서 그 중간에 타협점으로 독일 가수들의 노래를 듣는 것인지도 모른다.


맥락은... 그들은 자본주의였던 미국과 또 다른 집단주의였던 러시아의 엘리트 교육이 만들어낸 사람들이 아니라 독일 공민교육이 만들어낸 사람들이라서, 듣고 있어도 속에서 격하게 올라오는 “잘 먹고 잘 살아라”와 같은 저주는 없다. 그래서 더 마음이 편한 것인지도 모른다.


예전에 이태리 가곡과 독일 가곡을 황영금 선생한테 배웠었다. 그 양반은 요즘 뭐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그냥 길에서 봤으면 밥맛없을 천상 연대 음대교수였지만, 그래도 가까이에서 인생 살아가는 얘기 조용하게 듣다보면 나름대로 세상의 진리 한 구석은 열어주는 사람이다. 그것도 인연인가? 유학가는 비행기에서 딱 마주쳤었다. “나, 너 알아.” 그리고 한 번 더 만났었는데...


그리고 보면 그리운 얼굴들이 많기는 하다. 음악하던 시절에 같이 했던 사람들, 오페라 만들자고 같이 만났던 사람들, 연극 공부하던 시절의 수없던 연극쟁이들, 영화 공부할 때 만났던 영화쟁이들과 만화지망생들, 요즘은 어디에서 뭘 하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 영화 보다가 가끔 조연출이니 프로듀서 같은 막간에 잠깐 잠깐 이름이나 보게 되는 그 사람들... 안 보기 시작한지 이젠 10년이 된다.


“예술이 죽고 사랑도 죽고”라는 표현처럼, 우리나라에도 예술은 죽어간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어지간하면 신해철 CD 한 장 사주고 싶기는 한데, 난 그의 음악 스타일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다음 달에는 Iron Maiden의 CD 중에 아직 남아있는 것을 싹쓸이하겠다고 요즘 돈을 모으는 중이다. 왜 나는 우리나라 가수들의 노래를 사주지 않는가라고 가끔 반문해서 물어본다. 그래도 음반매장에서 동방신기류의 판들만 쭉 나래비를 펼치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 십 원도 이 기획사들에게 지출하고 싶지 않다. 모르모트 인생이라는 말이 자꾸 입안을 맴돈다.


예술도 기획해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과연 저 젊은이들의 마음 속 그 세상도 그럴까?

by 비나리 | 2007/01/12 13:53 | 문화경제학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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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h00ny at 2007/01/12 18:05
일본 NHK에서 70년대 아직 우리나라에 판소리가 살아있을 때 녹음한 음반들이 무엇이 있는지 궁굼하네요.
Commented by 비나리 at 2007/01/12 18:56
제가 CD로 가지고 있는 건 성창순 판소리 모음집인데, 이 중에 심청가의 '눈뜨는 대목' 15분 짜리는 제가 들었던 판소리 녹음 중에서 눈물나게 멋진 녹음이지요. 옛날 KBS 국악 프로그램에서 이런 녹음들을 종종 들려주고는 했었습니다.
Commented by sapa at 2007/01/13 01:10
오늘 뉴스 올라왔는데, EMI 경영난으로 진통을 겪는 것 같더군요. 뭐가 잘못되었는진 잘 모르겠지만, 메이저도 이젠 옛날 메이저가 아닌 듯 싶습니다. 이러다가 전 세계에 오직 하나의 음반 메이저만 남을 듯 하기도...
Commented by K군 at 2007/01/13 03:35
저는 이상하게 성악곡이 잘 귀에 안 들어오더군요. 거의 유일하게 듣는게 말러의 "대지의 노래"지요. 갑자기 아이언 메이든으로 점프 하시는 바람에 얼마나 기분이 경쾌해졌는지 모릅니다! (왜..?!)
Commented by 삼천포 at 2007/01/13 16:00
K군님 / 부르는 말이 두개 겹치니 난감하네요...^^; 괜한 참견이 하고 싶어서요.
제 말초신경이 허접해서 영화음악때문에 그 장르나 아티스트를 듣게 되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요,
성악곡에 관련해서,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애니메이션 [메모리즈]에서 <마그네틱 로즈>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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