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에 관한 나의 생각

나는 9차 개정헌법을 사랑하는 편이다. 87년 체계라고 부르는 이 시스템에는 문제점이 좀 있다. 국민투표의 발의권을 부여하지 않는 것과 같이 구조적인 문제점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헌법이다. 그러나 이 헌법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모습의 헌법 중에서는 가장 민중적인 헌법이고, 감히 부른다면 민중 헌법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농림부에서는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난리를 치지만 "경자유전"이라는 표현이 실제로 헌법에 들어간 것도 이 9차 개정헌법이고, 앞으로 헌법을 전면 개정하는 시기가 오면 이런 표현과 정신은 현재의 분위기로는 살아남기가 어렵다.

원래 이 9차 개정헌법을 바꾸고 싶어했던 사람들 중 맨 앞에 있는 흐름이 전경련과 같은 소위 대기업들이다. 이 헌법이 지나치게 민중적 권리를 많이 규정하고 있고, 소위 '경제 민주화'라는 정신을 명확히 표명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우파 헌법으로 바꾸고 싶어한다.

헌법에 관한 연구들을 좌파들보다 우파들이 더 많이 하고 있던 것은 87년이라는 상황은 그야말로 노동자, 민중이 제헌헌법 이후로 가장 많이 개입해서 헌법을 만들 수 있던 상황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약자들을 보호한다고 재계에서는 이 헌법에 불만이 많다.

환경권 같은 것들은 약간 오래된 헌법이라서 몇 가지 논쟁거리가 있기는 하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환경권을 규정해야 한다는 흐름과 도롱뇽 소송에서 보듯이 동물과 식물과 같은 생명 혹은 비생명들의 환경권을 반영해야 한다는 말이 있기도 하다. 일리는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소유권 중심으로 강화된 환경권을 부여하자는 논의도 있다.

물론 다 타당한 말이기는 한데, 이런 일련의 변화를 헌법에 반영시키기 위해서는 더 폭넓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고, 소위 지지세력들이 필요하다. 다른 법과 달리 헌법은 아이디어와 논리만으로 결정되지 않고, 사회적 힘에 의해서 결정되는 측면이 강하다.

이런 상황에서 오래 전부터 예견되었던 대로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 논의를 열었다. 4년 중임제인가 5년 단임제인가가 문제이기는 한데, 소위 '원포인트 개헌'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꼭 4년 중임이 5년 단임보다 낫다고 말할 근거는 별로 없을 것 같다. 대통령 중간선거의 성격을 갖는 국회의원 선거를 일치시키자는 말을 하기는 하지만, 어차피 지방선거라는 것이 별도로 움직이고 또 계속해서 보궐선거가 있기 때문에 해보는 말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중간선거가 두렵다고 하면, 뒤집어서 생각하면 '안정성'이 아니라 한 그룹에게 너무 많은 힘을 줄 것이라는 생각과 정치집단으로서 정정당당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는 7년 중임제인데, 병으로 물러난 뽕삐두 대통령을 제외하면 대부분 연임까지 다 했다. 14년 동안의 대통령, 젊어서 엘리제궁에 입각했다가 나중에 퇴역할 때에는 정말 늙은 대부가 되어서 물러나게 된다. 미테랑의 경우는 전립선암으로 그야말로 눈물의 14년째를 보냈다.

여기도 2원집정부제 비슷해서 소위 '동거정부(cohabitation)'라는 것이 형성되면 상당한 혼란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런 제도의 개선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지는 않는다.

언젠가 개헌에 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벌어지기는 할테지만, 4년 중임제로 미국식으로 바꿔야 꼭 정치가 선진화되는 것 같아보이지는 않는다.

고로,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논의가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리라고 생각한다.

by 비나리 | 2007/01/11 14:25 | 그냥 잡담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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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sapa at 2007/01/12 00:45
이번만은 자살행위가 아닌가 합니다.
Commented by 붤뤠 at 2007/01/12 10:12
그냥 얼굴만 봐도 피곤과 짜증이 밀려 온다.가 주변 여론. -.-;; 이런 정서적 공감대가 꽤 넓게 분포해 있다는게 심시티 시장님 당선 가능성에 점점 힘을 실어주고 있음. 어쩌면 98:2에서 2가 그의 마지막 남은 임기년도의 지지율 최대치가 될 것 같은 암울함.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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