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한국사회] 노무현-황우석 동맹과 강양구 동맹

[야!한국사회] 노무현-황우석 동맹과 강양구 동맹 / 우석훈
야!한국사회
한겨레
» 우석훈/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
고정점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비선형적이지만 약간의 규칙적인 운동을 가지고 있을 때 이를 설명하는 이론의 하나다. 이걸 사회 현상에 적용시키면 특유의 무시무시한 쏠림현상을 조금은 설명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도 몇몇 고정점들이 있다. 대통령은 누가 되든 가장 큰 고정점이다. 공개되어 있는 행정행위와 법률행위, 그리고 예산을 움직이는 낮의 행위들은 대통령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반면에 밤 세계, 무의식 세계, 주류 담론 세계, 마케팅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조선일보>였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 이후로 조금 바뀌었다. 대통령은 여전히 중요한 고정점이기는 하지만, 예전과 같은 ‘수렴점’은 아니다. 사람들은 노무현으로 수렴하지는 않지만,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말을 하고, 또 어떤 행위를 할지에는 여전히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또 참고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고정점은 ‘노무현-황우석 동맹’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자연인 황우석은 무대에서 사라졌지만 두 고정점이 합쳐져서 만들어냈던 힘은 해체되지 않았고, <문화방송> ‘피디수첩’ 사태가 극한에 도달했을 때, 98:2라는 수치까지 갔다. 노무현-황우석 동맹은 98%라는 지지자를 확보하고 역사 이래로 가장 강력한 동맹을 형성했다. 이 동맹은 해체되지 않고, 오히려 노무현 대통령이 “이제 덮자”고 한 이후로 더욱 공고화하고 있다. <조선일보>에서 노사모까지, 60대에서 10대 소녀들까지 전부 하나로 묶어주었던 이 노무현-황우석 동맹은 과학과 언론, 그리고 학계를 장악하고 있는 기득권을 핵심으로 하며, 사실상 우리 시대의 자화상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그 당시의 2%한테는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까? 성찰과 반성 없이는 이 세력은 죽고 흩어지고, 한국에서는 사라지게 될 것이고, 진화적으로 멸종하게 될 것인가? 황우석 박사 연구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장 오래 지적했던 <프레시안>의 강양구 기자가 현재로서는 이 2%의 맹주인 셈인데, 이 젊은 기자가 노무현-황우석 동맹의 유일한 대척점이며, 또다른 고정점인 셈이다. 규모는 작아도 이걸 ‘강양구 동맹’이라고 부를 수 있다. 비정규직 과학자, 생태주의자, 생명운동가, 그리고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이 동맹을 지지하고, 여기에는 지율·도법 스님, 문규현 신부, 물리학자 장회익 교수가 들어 있다. 과학과 이론, 제도를 나라의 이름으로 독점하려는 세력과 생명과 평화의 가치로 나누고자 하는 두 동맹의 싸움은 이제 시작되었고, 우리는 두 고정점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랜저와 자전거의 싸움 같은 이 두 진영은, 한국 사회, 한국 문명의 향배를 가를 만큼 큰 충돌이고, 작게는 과학, 넓게는 사회경제가 어떻게 될 것이냐의 가름길이다. 진화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미래의 주인인 10대의 몫이다. 강양구의 <세 바퀴로 가는 과학자전거>를 읽고 이건 영 아니라고 생각하면 노무현-황우석 동맹에 가입할 가능성이 높고, 이 책을 읽고 옳은 얘기라고 생각하면 반 노무현-황우석의 삶을 살 것이다. 기성세대의 강양구 동맹은 2%였다. 지금의 10대는 혹은 10년 후의 10대는? 10대들이 생각하고 스스로 내린 결정이 결국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혹시라도 지금의 2%가 다음 세대에게 20%가 된다면 한국에도 희망의 불씨가 살아날 것이다. 하필이면 강양구냐? 우리에게는 마크 트웨인도 없고, 아인슈타인도 없고, 퀴리 부인도 없기 때문이다.

by 비나리 | 2007/01/10 19:04 | 쪼각글 | 트랙백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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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연애편지 at 2007/01/10 23:07
비나리님 실망스럽네요. 10대요? 386들의 허영이 만들어낸 슬픈 현실을 나몰라하시나요?
별로 공감이 안가네요...

10대들이 생존의 법칙이라는 것을 알까요? 생존을 위해 몸부림 치는 사람들을 그들은 알까요?
Commented by 비나리 at 2007/01/11 00:01
네, 그래도 10대들이 선택은 중요하겠지요. 작고 조그만 선택이라도 이들이 내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지 않나요?
Commented by 붤뤠 at 2007/01/11 01:16
황박수뉨 사태 때 10대 중심 커뮤니티 일수록 줄기교도 신자의 믿음이 더 굳건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99:1 이랄까? 그때부터 뭐 미래 같은거 별로 기대 안합니다. -.-;; 라면 너무 암울하고...
Commented by 새로운세상 at 2007/01/11 01:19
이 글을 읽고 80년대 운동권의 극단적인 편가름이 21세기에 부활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저뿐인가요? 총구는 들이대지 않았지만 '너는 우리 편이냐 저 쪽편이냐'라고 묻는 심문관의 고문처럼 고통스럽습니다.

진정 다음 세대까지 바라보는 장기적 운동을 생각하신다면 이런 글은 적당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흑백 논리에 질식한 10대들은 68세대의 자녀들이 그랬던 것처럼 신보수로 돌아설 테니까요.

기성세대가 '강요'하는 것이 붉은 색이든, 파란 색이든 상관없이 신세대는 그 보색을 선택합니다.

아.... 저부터 가슴이 탁탁 막히는 군요.
Commented by 아영 at 2007/01/11 02:59
그렇죠. 10대 중심 커뮤니티일수록 줄기교에 대한 믿음이 굳건했죠. 그래서 지금의 10대가 아니라 그 다음의 10대에 희망을 걸고 싶은데, 사회가 변하지 않는데 아이들만 변하는 게 가능할지...
Commented by 바리 at 2007/01/11 03:51
황우석사태 때 잠을 제대로 못자면서 신경이 날카로와져 있긴 했지만, (또 진중권이야기라 민망하다는..) 진중권씨가 논객으로서의 절필 선언을 하는 마지막 책의 서문에서 '황우석사태로 사람들이 무서워졌다'는 글을 읽었을 때, 으음... 그 정도 였나 했답니다.
얼굴 없는 네티즌과 진흙탕 싸움이 한 두번이 아니었고 심지어 가족을 포함한 신변위협을 받을 때도, 내가 학창시절부터 쌈을 잘합니다 하거나 기껏해야 시편23편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을 왼다고 하더군요. 그런 그가 이번만큼은 사람들이 무서워졌다고 하더군요. 그것이 그의 절망인지...

그런데 비나리님도 황우석 좋아하는 마음이 더 무섭다고 하셨더군요. 저는 경악했었죠. 놀라움. 그러리라 예상은 했었지만 나의 예상을 훨씬 넘어서는 사람들의 확신과 욕망과 적의...

10대...
제 생각은 비나리님 글 몇개가, 새로운세상님 의견처럼 10대를 흑백 논리에 질식시킬 것 같진않아요.^^ 한편 아이들의 황우석지지는 언론에 의한 측면이 크다고 보구요. 요즘 아이들 워낙 영상매체에 중독이라..

어쨌든 10대에 대한 제 생각은 ...
의외로 아이들은 보수적이라고 하지요. 자라나는 아이들을 옮기지 않는다는 말도 있더군요. 약한 뿌리를 제대로 내리려면 안정적인 지반이 필요하기 때문에 주변이 안정되어 있기를 원한다고요.. 아이들이 친구를 금방 사귀고 외국을 가도 아이가 먼저 적응하고, 모방` 동화라는 과정을 통해서 학습하는 것도 일차적으로 아이가 비판적이 아니라서 그런 거지요. 기성사회에 대한 동화와 어울림이 사라지기 시작하고 자의식이 발달하는 것이 10대 후반부터인데... 우리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할지...무슨 선택을 할지...

419세대, 386세대가 박정희의 자식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고, 반항하고 싸우다 더욱 뻔뻔하게 성장한...
노무현과 386의 자식들인 10대는... 경제가 어려우면 다수가 민주화, 민주주의에 대한 적대자가 될 수도 있고, 우리가... 잘하면 제대로 된 비전과 지도...를 보여주면 다수가 비정규직 실직자일 그들.. 평화와 공생의 길을 찾아 낼 거라는... 지루한 답 외에...
좀 더 책을 읽고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Commented by 연애편지 at 2007/01/11 09:16
다시 생각해보지만 좀더 신중하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요새 십대들이 과연 그 책임을 감당할 만큼 어른들이 너그러웠는지. 또는 생각의 자유를 허용했는지. 글쎄요. 제가 보기에는 공교육 붕괴라는 말보다는 교육체제의 붕괴가 생각나네요.

게임산업을 육성한답시고 아이들이 중독되는 것을 눈감아 오다가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윤리라는 잣대로 그들에게 책임을 모두 전가시키는 뻔뻔한 인간들이 생각네요.

이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아요. 다만 살아간다는 사실을 고마워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네요. 어찌됬든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오늘하루도 평안하시길 ^_^
Commented by 비나리 at 2007/01/11 11:42
황우석 사태 때 생각났던 일 중의 하나인데, 지금의 그 10대가 성철없이 어른이 되고 기득권이 된다면 아마 중국의 문화혁명 같은 일을 일으키고 말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저 같은 사람은 그날이 되면 길거리에서 문화혁명 때 그랬던 것처럼 맞아죽는 일이 벌어지겠지요. 20년후면 지금 10대가 30대가 되어서 사회의 중추가 됩니다. 정말 무서운 일들은 그 때부터 벌어지겠지요. 끝나지 않은 일이고, 길고 긴 사건의 추이는 지금이 갈림길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네요.
Commented by 비나리 at 2007/01/11 11:44
흑백논리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건 일종의 "문예사조 선언" 같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예사조는, 내가 생각하는 예술이란... 이렇게 시작되는 경우가 많지요. 저는 리얼리즘 문학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리얼리즘 시절의 영화와 문예인들이 가졌던 처절함에는 선언과 같은 형식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그런 사조선언을 조금 상상했었습니다.
Commented by sapa at 2007/01/12 00:51
성찰의 힘은 어려서부터 길러야 되는데 말이죠. 문혁기에 청소년이었던 사람들 인터뷰를 보면 그 꿈에서 깼을 때의 혼란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나오더군요. 황우석으로부터도 배울 수 없다면, 아니 가르치려하지 않는다면 더 큰 혼란만이 기다리고 있겠죠.
Commented by 붤뤠 at 2007/01/12 10:14
논술 강의들으면서 압축 성찰하고 있잖아요. 그들의 부모 세대가 겪었던 압축 성장의 교육용 버젼으루다가....
Commented by 바리 at 2007/01/12 13:27
황우석으로부터 가르치려하지 않는다면 더 큰 혼란이 기다리고 있다구요... 생각해 보니...
사건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사실은 그것이 트라우마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이들에게 황우석에게서 뭔가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니 우울해지는 걸 보니 말이에요.
비이성적 광기에게 무얼 가르치나.. 철학의 차원에서 일까, 구체적인 사건의 차원에서 일까... 무기력감, 우울.
Commented by 비나리 at 2007/01/12 13:57
트라우마라면 저에게도 큰 트라우마였겠지요. 우리나라 경제학자 중에 제가 알기로는 저까지 포함해서 두 명이 황우석의 연구에 반대했었습니다. 물론 전국적으로 세어보면 조금 더 있겠지만, 서울대에는 공개적으로는 없었고,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도 마찬가지였었지요. 지방대 선생들 얘기 들어보니까 지방일수록 더 심했고...

문화적으로는 중국의 문화혁명 아니면 독일의 청년... 나찌, 그런 시대의 문화에 아주 가까운 현상이 순간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Commented by sapa at 2007/01/13 00:52
개인적으로는 명랑하게 키움으로써 조금이나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희망합니다.)
명랑...이곳 이름이기도 하지만, 이거 좋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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