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1월 09일
두려움...
두려움이란 단어는 참 정의하기 어려운 단어이다. 두려움 없이 세상을 사는 사람이 있을까? "겁대가리 짱 박았다"는 표현이 참 어울리는데, 그런 사람은 없다. 어떤 방식이든지 사람은 두려움을 갖지 마련이다.
아무리 행복하고, 자신의 삶을 철옹성처럼 만들어도 두려움을 극복하기는 어렵고, 또 그건 극복되는 대상은 아닌 것 같다. 잉글 베르히만 감독은 영화마다 철학적 질문을 하나씩 집어넣고 영화를 만드는데, 두려움 중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관한 영화가 <제 7의 봉인>이다. 스웨덴어를 잘 모르니까 이 길고 흑백으로 지리하게 지나가는 영상들을 잠을 자지 않고 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까 싶지만, 보고 나면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만한 영화이기는 하다.
대충 자신을 우파라고 생각하고 '건전한 보수'라고 칭하는 사람들에게도 두려움은 크다. 언제 무너져내리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성공한 사람들, 지금 TV에서 영웅이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 내가 10년 전에 측근거리에서 보았던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그 사람들도 두려움들을 가지고 있다.
좌파들도 두려움이 있다. 삶을 얘기하면 개인적 좌절과 함께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것과 아무런 상관없어보이는 생활인들도 두려움이 있다. 그거야 정말 어쩔 수가 없을 것 같다.
희망과 두려움은 같이 다니는 것 같다. 두 가지의 존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두려움이 없다면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굳이 골치 아픈 "활동" 혹은 "삶" 같은 걸 할 필요가 없어보인다. 그러나 늘 두렵기 때문에 희망을 필요로 한다. 제일 좋은 사회는 희망도 필요없는 사회가 아닐까. 재미는 없어보여도 그런 상태가 좋다.
인류 역사상 "자유인"들이 그런 상황에 가 본 적이 가 본 적이 몇 번 있기는 하다. 서양을 중심으로 얘기하면 희랍 시절의 아테네 시민들이 그랬고, 로마 시절에 로마 시민들이 그랬고, 미국에서 맨하탄 주민들이 그렇다. 우디 알렌의 영화 <맨하탄>의 철학적 질문은 그렇다.
로마 시절에는 그 평온한 로마주민들이 정치적 힘을 결집시킨다는 명목으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검투사를 즐겼다. 우디 알랜의 눈에 비친 맨하탄 주민들은 연애없이는 잠시도 못사는 연애중독증을 보였다.
엄청나게 자신있어 보이는 사람들, 그리고 목소리 크게 외치는 사람들일 수록 더 많은 두려움이 있지 않을까? 자식이 죽어 울부짓던 임수경에게 저주를 퍼부어서 결국 검찰에게 선처를 부탁했던 사람들도 두려움이 많았던 사람들이지도 모른다. 특히 두려움이 많았던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두려움 보다 두려움을 먹고 사는 이데올로기가 더 무섭다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아무리 행복하고, 자신의 삶을 철옹성처럼 만들어도 두려움을 극복하기는 어렵고, 또 그건 극복되는 대상은 아닌 것 같다. 잉글 베르히만 감독은 영화마다 철학적 질문을 하나씩 집어넣고 영화를 만드는데, 두려움 중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관한 영화가 <제 7의 봉인>이다. 스웨덴어를 잘 모르니까 이 길고 흑백으로 지리하게 지나가는 영상들을 잠을 자지 않고 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까 싶지만, 보고 나면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만한 영화이기는 하다.
대충 자신을 우파라고 생각하고 '건전한 보수'라고 칭하는 사람들에게도 두려움은 크다. 언제 무너져내리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성공한 사람들, 지금 TV에서 영웅이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 내가 10년 전에 측근거리에서 보았던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그 사람들도 두려움들을 가지고 있다.
좌파들도 두려움이 있다. 삶을 얘기하면 개인적 좌절과 함께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것과 아무런 상관없어보이는 생활인들도 두려움이 있다. 그거야 정말 어쩔 수가 없을 것 같다.
희망과 두려움은 같이 다니는 것 같다. 두 가지의 존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두려움이 없다면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굳이 골치 아픈 "활동" 혹은 "삶" 같은 걸 할 필요가 없어보인다. 그러나 늘 두렵기 때문에 희망을 필요로 한다. 제일 좋은 사회는 희망도 필요없는 사회가 아닐까. 재미는 없어보여도 그런 상태가 좋다.
인류 역사상 "자유인"들이 그런 상황에 가 본 적이 가 본 적이 몇 번 있기는 하다. 서양을 중심으로 얘기하면 희랍 시절의 아테네 시민들이 그랬고, 로마 시절에 로마 시민들이 그랬고, 미국에서 맨하탄 주민들이 그렇다. 우디 알렌의 영화 <맨하탄>의 철학적 질문은 그렇다.
로마 시절에는 그 평온한 로마주민들이 정치적 힘을 결집시킨다는 명목으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검투사를 즐겼다. 우디 알랜의 눈에 비친 맨하탄 주민들은 연애없이는 잠시도 못사는 연애중독증을 보였다.
엄청나게 자신있어 보이는 사람들, 그리고 목소리 크게 외치는 사람들일 수록 더 많은 두려움이 있지 않을까? 자식이 죽어 울부짓던 임수경에게 저주를 퍼부어서 결국 검찰에게 선처를 부탁했던 사람들도 두려움이 많았던 사람들이지도 모른다. 특히 두려움이 많았던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두려움 보다 두려움을 먹고 사는 이데올로기가 더 무섭다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 by | 2007/01/09 10:13 | 그냥 잡담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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