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1월 07일
이 블로그는 어떻게 운영을 할까?
네이버에 있던 블로그는 원래 만들려고 만든게 아니라 하다 보니까 만들게 된거고, 그래서 정말 개념없이 엉망으로 운용이 되었었다. 그건 내가 운영을 잘못한 거라서 별로 할 말은 없다. 그렇지만 그 상태로 몇 년이 지나가버려서 정색을 하고 "나의 생각은"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결정적으로 네이버에서 떠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삼성 야구단 좋아하는 넘들이 너무 많아서 그랬다. 그렇게 삼성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데에서 내가 복닥거리면서 같이 뒤엉키고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차피 우리나라의 대부분 사람들은 삼성을 좋아하거나 삼성을 무서워한다. 크게 보면 같다.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끼리 있으면 된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상업화된 붉은 악마류와 한류칭송자들이다. 그러면 안돼? 물론 된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과 엉키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원래의 붉은 악마? 그 시절에는 나도 붉은 악마 지지자였고, 구단들과 싸울 때에는 붉은 악마 지지하는 글도 몇 번 썼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라는 구호가 그 시절에는 "수원삼성"이었다. 그래도 그 때에는 삼성도 축구에서는 별 거 아니었기 때문에 수원삼성이라는 구호에 대해서 문제 삼거나 재수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다른 구호도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블로그에 대해서 제일 바라는 것은 글을 쓰거나 책을 쓸 때 조금 더 친밀하고 밀접하게 생각을 나누고 날카로운 비판을 서로 퍼불 수 있는, 그런 1차 독자 혹은 '상의자' 같은 사람들로서 생각한다. 블로그에 다른 데에 기고한 글들을 전부 올리지 않고, 계속 생각해봤으면 하는 글만 선별적으로 올리는 것은 그런 이유이다.
게다가 중요한 생각들의 원 프로토타입은 대개 블로그에 먼저 올린다. 여기 올라오는 글들은 길게 보면 1차 메모에 해당하는 글들인데, 그렇게 하는 것은 생각들에 익숙해지고, 약간은 상식의 수준을 같이 높이는 일종의 '공진화'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블로그를 개인적인 배설의 장소이거나 혹은 자기과시의 장 아니면 토설의 장으로 사용하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다.
일종의 '공진화'로서 의미있는 소통의 장 같은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삼성식으로 여기오는 분들을 "고객"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장사하는 것이 아니기도 하지만, 나도 누구한테 "고객"으로 대접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고객 관계, 그건 좋은 건 아니다.
2.
이 블로그에는 하루에 보통 150명에서 200명 정도가 온다. 아주 재미없는 글들 게다가 UCC - 난 이걸 우씨~~씨 라고 부른다 - 는 고사하고 이미지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 아주 고전적인 텍스트를 고집하는 이 블로그에 그 정도면 정말 많이 오는 셈이다. 이 사람들에게는 나도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 엑기스를 꺼내서 같이 공유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혼자 통밥이라면 절반 정도는 아주 오래 전부터 나를 알고 있던 사람들이거나 내 제자들일 것이고, 절반 정도는 또 그와는 별도로 나름대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숫자를 중시 여기지 않는 것은... 나는 황우석 파동 때의 2%에 해당했던 사람들이고, 보통의 경우 2%를 대변한다. 나머지 98%는 TV와 신문 그리고 대부분의 정당들이 알아서 대변해준다. 나는 그 때 2%가 결국 죽지 않도록 공간을 열고 숨을 쉴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나름대로는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2%를 위해서 글을 쓴다.
여기에 오는 사람들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 2%에 해당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뭐,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때의 98%는 사과하거나 고해성서를 한 적도 없고, 인생관이 크게 바뀐 적이 없으므로, 만약 "2007년판 황우석건"이 생기면 다시 2% 밖에는 없을 것이다. 객관적인 수치로 내가 보는 세상은 그렇다.
3.
현대에서 과장으로 먹고 살 때 나도 리눅스를 지지했었다. 그 당시 리눅스를 개선하는 일에 유럽의 많은 엔지니어들이 매달렸었는데, 한 달에 28일 동안 '카피 레프트' 운동을 한다는 사람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러면 나머지 이틀은? 부끄럽게도 먹고 사는 일을 한다고 대답했다. 멋지기는 하다. 한 달에 이틀만 일해서 먹고 살고, 나머지 28일은 카피 레트르를 위해서 움직이는 삶은 생각만해도 짜릿하게 멋지다.
이 조건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뭔가를 잘 해야 하고, 또 쓰는 돈의 규모도 적정선에서 유지가 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 수는 없지만, 내가 지향하는 삶은 대개 이런 카피 레프트를 위해서 살았던 엔지니어의 삶과 비슷하다. 그러나 물론 나는 그렇게 능력있지는 않다. C급 경제학자라서 겨우 먹고는 살지만, 내가 먹고 사는데 쓰는 시간은 하루에 한 시간 정도 들이는 것 같다. 시간을 늘일 생각은 별로 없지만, 카피 레트프를 위해서 쓰는 시간과 먹고 살기 위해서 쓰는 시간이 적절한 조화를 찾을 수 있도록 약간의 노력은 하는 편이다.
대자보라는 매체가 있다. 5년 전부터 내가 쓰는 글은 대자보에 실리는데, 여기에는 원고료를 안 받는다. 일종의 카피레프트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서 내가 무료봉사하는 매체라고 할 수 있는데, 물론 가끔만 정색을 하고 기고를 하고 대부분의 글들은 블로그에 실린 글들이 올라간다. 조금 더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더 잘해야겠지만, 현재로서는 나도 내 코가 석자다. 그러나 내가 하는 모든 노력들이 '경제 메카니즘'에 들어간다면 난 조금 더 극단적인 실천을 위한 다른 장치를 찾아야 한다. 현재로서는 이 정도에서 나름대로 조그만 균형이 생긴 셈이다.
4.
그렇지만 진짜로 이 블로그에서 하고 싶은 것은 책을 내기 전에 원고를 같이 읽어보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들로서 일종의 동료 관계 혹은 동지 관계 비슷한 것들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약간의 기술적 제약이 있기는 하다.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데, 평소에 많은 얘기를 하거나 많은 글들을 공유해서 토론과 나눔이 가능할 수 있는 매우 어려운 정신적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두 번째 문제는, 어차피 웹이라는 조건에서 공개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 공개하고 나눌 수 있느냐는 점도 골치 아프기는 하다. 옛날 같았으면 따로 사이트를 만들고, 패스워드를 교부해도 되지만, 난 그렇게까지 열심히 세상을 살지는 않는다.
어차피 완벽하게 충족되기는 어렵지만, 상황에 따라서 적절한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한다.
5. 올해의 일정
몇 년 전부터 앓기 시작하다가 작년에는 완전히 작파하고 드러누웠었다. 사실 지난 4년 동안 나는 계속 아팠다. 그리고 작년에는 많이 아팠다. 그래서 나도 이제는 조력자가 필요하다. 2년 전에 나를 도왔던, 그래서 2년 동안 파트너로 지냈던 류성희씨가 올해는 유학을 간다. 류성희씨는 농업과 관련된 내가 움직였던 일들에 파트너로 일했던 사람인데, 올해는 도움을 받기가 어렵다. 해 준 것이 너무 없어서 미안하기만 할 따름이다. 집에서 놀던 스피커 하나 빌려준 게 전부다. 면목이 없다.
류성희 말고 파트너처럼 손발을 몇 번 맞춰봤던 사람은 말지의 박권일 기자다.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의 에디팅은 박권일 기자가 했다. 지난 여름부터는 스터디를 같이 하기 시작했다.
올해에는 작년부터 밀려온 것들이 너무 많은데, 어지간하면 올해는 한 번 마감을 짓는다는 생각으로 정리를 하려고 하고 있다. 나도 부담을 좀 덜기 위해서 박권일 기자와 공저로 움직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혼자서는 못하기 때문이다.
컴에서 놀고 있는 원고들과 정리되지 않은 테제들을 모으면 6개에서 7개의 책이 올해 나가게 될 것 같다. 물론 수 년전부터 모였만 있던 것을 정리하는 일이라서... 그 중에 대부분은 정말 돈 안될 거라서, 그 생각만 하면 마음이 아프다. 1,000권 팔릴 보장만 있었어도 벌써 다 정리했을 일인데, 출판사에서는 60권에서 100권 정도 팔릴 거라고 예측을 한다.
물론 이 상태로는 아무도 안 내준다. 올해는 나도 머리를 좀 써야 하고, 진화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이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조금 알려주고, 같이 진화하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좀 해본다. 잘 될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하루에 4시간 정도 깨어서 움직일 정도의 건강만 된다면 쓰는 걸 못할 일은 아니다.
6. 이상훈 버전과 국정홍보처의 그녀 버전
몇 개가 밀려있기는 한데, 제일 먼저 정리해야 하는게 경제 대안 문제이다. 이건 옆에서 목조르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내가 버틸 수가 없다. 좌완투수 이상훈 버전으로 생각을 해봤는데, 박권일 기자가 이런 걸로는 안 된다고 한단다. 그래서 다시 국정홍보처의 그녀 버전으로 새롭게 출발을 시작했다...
이런 걸 몇 개 더 만들어보고, 방향이 잡혀야 실제 내용을 쓸 수가 있게 된다...
두번째 시도 : 신자유주의 말고 뭐 없어?
<에필로그>
1. 지도에 대한 그리움
요즘은 미리 길에 대한 정보를 DB로 내장하고 있는 네비게이터라는 그리 싸지 않은 악세서리를 달고 있지 않은 차량이 별로 없다. 나는 네비게이터를 아직도 사용하지 않는다. 물론 길이 익숙하지 않은 대구나 부산 같은데 갈 때면 가끔 이런 물건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기도 하지만, 일상적인 삶에서는 크게 필요하지는 않다. 가끔 네비게이터를 가지고 있는 승용차를 운전할 기회가 생기고는 한다. 지리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나는 이미 대구-진주 고속도로를 타고 있음에도 끊임없이 “다음 출구에서 나가십시요”라고 대구로 가서 경부 고속도로를 타라고 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애교에 가까웠지만, 네비게이터의 친절한 그녀가 나에게 알려주는 길은 늘 애용하는 빠른 길을 두고 돌아가는 길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네비게이터의 그녀가 언젠가는 나보다 훨씬 똑똑해지고 더 많은 일들을 해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도 그녀와 함께 살아가는 날에 익숙해지고 그녀가 시키는 대로 말을 잘 듣고 꽉꽉 막히는 8차선 도로에서 서 있어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아직은 네비게이터의 그녀가 운전대를 잡고 놓는 순간까지 옆에서 계속 속삭이고 있는 시간 보다는 음악을 듣고 있는 편을 선호한다. 오랫동안 타던 왜건형 프라이드에는 중고차값보다 훨씬 비싼 스피커들이 달려 있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네이게이터의 그녀들과 익숙해지지 못한 이유는 이 스피커들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기껏 이 목소리를 잘 들으려고 내가 이렇게 스피커를 설치했단 말인가! 분명 어느 한 밤중에 이런 생각을 하면서 갑자기 부아가 돋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네비게이터의 그녀를 나의 차에 들이는 일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 마음 그 깊은 곳은 나도 알기가 어렵다.
그러나 네비게이터가 없기 때문에 지도와 함께 나침반이 내 차에 붙어있다. 나침반으로 방위를 보면서 운전하는 고전적 방식을 선택한 편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다양한 모델의 나침반이 있었지만, 요즘은 네비게이터에 밀려서 그런지 자동차용 나침반은 한 두 종류 밖에 팔지 않는다. 야광 페인트로 밤에도 볼 수 있는 나침반을 찾아서 한동안 돌아다녔는데, 우리나라 시장에는 그렇게 생긴 차량용 나침반은 더 이상 팔지 않는다. 물론 전혀 걱정될 것은 없다. 직접 만들어도 상관없지만, 언젠가는 비행기에서 사용하는 진짜 야광 나침반을 구해서 달겠다고 철썩같이 마음을 먹었다. 네비게이터 보다는 항공기에서 오랫동안 진짜로 하늘을 날았던 진짜 나침반이 훨씬 더 폼이 날 것이다.
네비게이터보다 지도와 나침반을 더 선호하는 것에 엄청난 철학적 선택이 들어가 있지는 않고, 그저 하다보니까 그렇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보다 더 기계를 좋아하고, 그래서 반드시 수동 운전을 고집하는 것과 약간 연관되어 있을 수도 있지만, 늘 내가 옛날 것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얼리 아답터보다 더 먼저 제품 개발단계에서 미리 써보는 베타 테스터 역할도 꽤 오래 했고, 시중에 나와 보지도 않은 전자제품들을 미리 쓰고 성능이나 의견을 전달하는 일도 꽤 즐겁게 생각했던 일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나는 네비게이터의 그녀와 익숙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일단 목소리가 음악적이지 않고 너무 사무적이다. 한 마디로 그 목소리는 내 취향 아니다.
네비게이터의 그녀만큼 지하철을 타거나 라디오나 TV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전자음의 목소리가 또 하나 있다. 대개는 성능이 좋지 않은 지하철 스피커로 나오는 목소리라서 그렇기는 하지만 천 만원이 가볍게 넘어가는 우리 집 마루에 설치한 소위 하이엔드 오디오를 따라서 나오는 그녀의 목소리도 왠지 전자음의 둔탁하면서 우뇌 한 끝을 쑤시는 듯한 전자음이 섞여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내 삶에서 잘 떠나지 않는 그녀는 국정홍보처의 그녀이다. 나는 그녀를 전혀 사랑하지 않고, 또 기회가 닿는다고 해도 실물로 얼굴을 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분명히 많은 사람들 혹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를 사랑하거나 그녀의 목소리를 사랑하는 것 같다. 네비게이션의 그녀들은 서로 다른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데, 국정홍보처의 그녀는 하나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메조 소프라노 톤의 그녀는 웅변과 독화술 같은 재주를 가지고 있는 듯하고, 마치 동굴 깊숙한 곳에서 울려나오는 듯한 성악식 발성법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많은 여성 아나운서들이 있는데, 이 아나운서들과 국정홍보처의 그녀의 차이점은 두 가지가 있다. 아나운서들은 얼굴을 보여주고 말을 하지만, 국정홍보처의 그녀는 그림을 보여주면서 말을 한다. 우리는 한 번도 그녀의 얼굴을 본 적이 없지만, 어쨌든 우리나라 국민이 가장 많이 듣는 목소리는 부모나 식구의 목소리 혹은 노무현 대통령의 목소리가 아니라 바로 국정홍보처 그녀의 목소리이다. 많은 국민들이 그녀의 목소리를 사랑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장관이나 국장급 고급 공무원은 물론 소위 우리나라의 ‘오피니언 리더’라고 불리거나 이회창이나 중앙일보식 표현으로 ‘파워엘리트’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그녀의 목소리를 아주 좋아하는 것 같다. 그 사람들 중에 단 한 명이라도 그 목소리에 불평을 했으면 이렇게 오랫동안 한 목소리가 전국의 국민들과 이렇게 오랫동안 만나게 될 일은 없었을테니 말이다. 진짜 우리나라 전국민의 연인은 ‘동백아가씨’를 불렀던 이미자나 ‘땡벌’의 강진이 아니라 국정홍보처의 그녀이다.
이 여인이 뉴스 시간의 아나운서들과 다른 점은 또 하나가 있다. 아나운서들은 맞건 들리건 하여간 ‘사실’이라고 그녀들이 믿는 어떤 사항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려고 애쓰지만, 국정홍보처의 그녀는 온 국민에게 지시를 하는 관계이다. 그녀의 말은 세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할 수 있다”, “믿어라” 그리고 “해라”라는 세 가지의 문장 구조로 되어있다. 짧은 30초 동안에 그녀는 이 세 가지의 문장을 다양하게 활용하면서 간결한 어투로 사람들에게 지시를 한다. 기호학적으로 이 세 가지의 문장을 합치는 방법이 몇 가지가 있기는 한데, 기본적으로는 종교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종교적으로 이렇게 세 문장을 합치면 “살려주겠다”는 말이 된다. 종교는 이렇게 세 가지 문장들을 합쳐서 구원을 약속한다. 그래서 종교 안에 들어가서 이 세 문장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복수와 갈등 혹은 어색한 불편 같은 것이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국정홍보처의 그녀가 외치는 말들을 합치면 종교와는 조금 다른 문장이 하나 튀어나오게 된다. “덤비면 죽인다.”
목소리는 여성의 목소리이지만, 사실 국정홍보처의 그녀와 국민들의 관계는 ‘매 맞는 부인’의 가부장적이며 무서운 남편과의 전도된 관계와 마찬가지이다.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잘 하면 남편은 월급을 가져다주고, 어지간하면 집에는 들어오기는 하겠지만, 만약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라오지 않으면 매를 맞게 된다. 국정홍보처의 그녀와 국민과의 관계가 그렇다. 간결하지만 그녀가 알려주는 메시지대로 움직이면 일단 매는 맞지 않지만, 대들거나 질문하거나 혹은 고분고분하게 따라오지 않으면 매를 맞게 된다. 구조는 그렇다.
최근 그녀는 한미 FTA에 관심이 많다. 마음 속으로 혼자 “아닐지도 몰라”라고 생각하는 것은 봐주지만, 농민들이나 일부 노동자들처럼 서울에 와서 “그건 아니쟎아”라고 대놓고 그녀에게 아니라고 그랬다가는 매 맞게 된다. 많은 사람들도 그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거부하는 것은 매 맞는 것을 감수하는 일부 소수자의 일에 가깝다. 그녀는 한동안 그녀는 기업에 관심이 많았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외치고 있었는데 요즘은 한미 FTA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 더 자주 등장을 한다.
기본적으로 국정홍보처의 그녀는 운전할 때 사용하는 네비게이터의 그녀와 하는 역할이 같은데, 지도의 역할이다. 운전대를 붙잡고 있으면서 지도를 보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에 네비게이터 그녀의 목소리에 따라서 길을 찾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제생활을 하면서 일일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어려우므로 국민들에게 길 안내를 하는 것이 국정홍보처의 그녀가 하는 역할이다. 지도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차이점은 조금 있다. 지도는 보다가 덮으면 그만이지만, 네비게이터의 그녀는 자신이 원치 않는 길을 갈 때에는 그 길로 돌아갈 때까지 몇 번이고 “U턴”을 외친다. 그렇지만 정말로 운전자가 그 길로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 때에는 “경로를 다시 계산하겠습니다”라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운전자와 타협을 시도한다.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고집을 부리다가 적절한 선에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약간 고집스럽고 말 많은 연인의 관계와 비슷하다. 그러나 국정홍보처의 그녀는 조금 다르다.
만약 네비게이터의 그녀가 자신이 원하는 길로 운전을 하지 않았다고 바로 기계에서 튀어나와 곤봉이나 방패로 머리를 때린다고 생각해보라. 그 날로 네비게이터는 분해처분될 것이지만 보통의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분해하기 전에 발로 몇 번을 밟을 것이다. 그러나 국정홍보처의 그녀는 좀 다르다. 무섭고, 가끔 잔인하기도 하다. 물론 무서운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가끔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는 거의 온 국민이 전자음의 목소리에 섞인 미소와 협박을 같이 가지고 있는 이중적 여인과 함께 살아간다.
국정홍보처의 그녀가 속삭이는 목소리의 메시지, 그걸 외국 사람들은 ‘신자유주의’라고 부른다. 만약 영국이나 프랑스 혹은 미국과 같은 곳에서 우리나라 국정홍보처의 그녀 같은 사람이 있었다면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같은 세상이 펼쳐졌다고 한바탕 소동이 났을 것 같지만, 우리나라에서 그 정도 가지고 불평하는 사람은 없다. 하긴 박정희의 선글라스나 전두환의 어색한 안경을 보고 있는 것에 오랫동안 익숙했던 사람들이라서 국정홍보처의 그녀 시절이 훨씬 나은 것인지도 모른다. 군복에서 “그녀”로 바뀐 것만 해도 20년 사이에 세상 정말 발전한 것이기는 하다. 조금씩 세상은 좋아지고 있기는 하다. 그걸 부정할 수는 없다.
지도, 지도를 찾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는 것 같다. 한국식 ‘빅 브라더’의 시대에서 국정홍보처의 ‘큰 누님’ 시대로 세상은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지도를 가지고 나침반 정도로 세상을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 같기는 하다. 지도가 어디 없을까라고 외치지만, 큰 누님의 시대에 지도 따위가 존재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런 건 이미 예전에 사라져버린지 오래이다.
2. 그 많던 지도들은 어디 갔을까?
지도는 특징이 틀리면 안 된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없는 것 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틀린 지도도 팔리게 된다. 틀린 지도를 가진 사람들은 언젠가는 낭패를 보게 되겠지만, 그건 그 때의 일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믿으면서 사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사실 인생이라는 것이 그 누구에게 목표와 여정이 정해져있을까? 열려진 길을 따라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인생이기는 하다. 그래서 목표에 대한 간단한 몇 개의 메시지만 있더라도 삶의 지도 역할을 할 수는 있고, ‘행복한 인생’을 외부의 눈으로 간단하게 재단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틀린 지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 큰일 날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후반까지는 소위 ‘지도책’들이 많이 만들어졌고, 맞든 틀리든 사람들은 기꺼이 지도책을 보면서 다가올 21세기에 대해서 저마다 부푼 꿈을 가지고 새로운 세기를 맞은 것 같다. 오랫동안 계속되던 군사정권이 시기가 끝나기도 했지만, 외부적으로는 냉전이라고 부르는 사회주의 국가들과 이념적으로 대치하던 시기가 끝나면서 변화의 시대와 함께 지도들이 많이 나왔었다. 그것을 보통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의 ‘사회과학의 르네상스’ 시대라고 부르는 것 같다. 그 당시 나온 많은 지도책들이 옳은 것이었는지 아니었는지를 알기는 어렵지만, 그것들은 ‘희망’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거나 ‘철학’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르네상스라는 이름이 그렇듯이 낭만적인 시절이기는 한데, 이 당시의 지도책들의 특징은 ‘거대담론은 안 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자본주의는 좋다”와 “사회주의는 좋다”와 같이 한 번에 모든 것들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좋지 않다는 것이 이 시절에 나왔던 지도책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름다운 말이다. 거대 담론이 아닌 부드럽고, 또 상황에 따라 수없이 변화하는 아름다움의 시대, 즉 ‘미학의 시대’가 우리나라에서도 열릴 것이라고 희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러나 이 시기는 우리나라에서 열매를 맺고 자신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증명하거나 혹은 아무 것도 생산하지 못하는 불임이라는 것을 보여주거나 그 어느 쪽도 아닌 상황에서 종료하게 되었다. IMF 경제위기라고 불리는 새로운 돌발변수가 생겼기 때문이고, 사람들은 원하든 혹은 원하지 않았든 신자유주의 혹은 ‘한국형 신자유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시대로 불쑥 공간 이동을 하듯 넘어가 버리게 되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문뜩 넘어온 또 다른 세계는 이전에 만들어진 지도책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지만, 상황이 다르다고 사람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을 때에는 문득 10년이 흘러가 버렸다.
그 동안에 지도책이라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사라져버렸고, 맞든 지도이든 틀린 지도이든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이 그런 종류의 물건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경제적 삶’의 준거는 국정홍보처의 그녀가 약간 강압적인 네비게이터처럼 알려주는 목소리 한 가지와 “자신의 일은 자신이 하자”는 딱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갖추고 있는 자기계발서 두 종류 밖에 없다.
이 두 가지는 결국은 같은 얘기이다.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곳에 마치 홀로 서 있는 것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을 자기계발서들은 끊임없이 외치고 있는 셈이다. “아무도 당신을 도와주지 못합니다, 이 책을 보고 강해지시오.” 그리고 그 수없이 살아남고자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녀냐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질서를 부여하는 거대한 조정자는 바로 국정홍보처의 그녀이다. 시스템으로는 그렇다. 이런 걸 한국에서 작동하는 신자유주의의 질서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소위 시장주의 경제에 대한 첫 번째 생각을 만들어낸 사람은 크롬웰의 보낸 킬러들을 피해 여생을 숨어 살았던 영국의 홉스라는 사람이다. 그는 <레비아탄(Leviathan)>이라는 저서에서 사람들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면 너무 피곤해서 결국 그가 ‘레비아탄’이라고 불렀던 군주 혹은 정부에 개인들이 자신의 권한의 일부를 넘겨주고 사회적 질서를 만들게 된다고 생각하였다. 이 생각이 나중에 ‘사회계약론’으로 정리가 되고, 그러한 사회계약론이 결국 ‘시장’이라는 장치의 도움으로 사람들은 분업과 교환 속에서 평화롭게 살게 될 것이라는 게 원래 경제학적 의미에서의 자유주의자들이 생각했던 세상에 대한 설명이다. 홉스의 세계에서 “만인의 대한 만인의 투쟁”이 종료되면서 사회계약이 시작되고 세상이 지금처럼 작동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그가 처음에 만들었던 세상에 대한 설계는 레비아탄의 세상에서 벗어나서 자본주의 사회로 오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얘기되는 신자유주의는 또 다른 이름인 ‘정글의 법칙’ 처럼 사람들에게 무한대의 경쟁을 요구하고 있다. 홉스의 세계관 혹은 그가 처음에 만들었던 지도에 따르면 인류는 지금 어디에선가 길을 잃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미 펼쳐진 상황에 대해서 탓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원래의 지도가 잘못되었더라도 지금 이 상황에서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라고 한 번쯤 질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세계와 외국의 거대한 흐름이라는 질서에 대한 질문은 차지하고라도, 당장 수 년 전 당시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었을 때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에게 제시되었던 지도는 이렇게 생긴 곳으로 목적지가 표시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명확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이 모습이 아니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지금 얼기설기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지도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남아있는 지도는 그야말로 국정홍보처의 그녀 목소리 밖에는 없다.
그 많던 종류의 지도들은 모두 어디로 가 있는 것일까?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냘픈 지도라는 것은 얼마 전까지 ‘국민소득 2만불’이라고 단 한 줄로 적혀있던 이정표 밖에 없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 이정표의 ‘2’자가 ‘3’자로 바뀌었고, “이제는” 이라는 글자가 추가된 정도이다. “이제는 국민소득 3만불...” 그게 사실상 현재 우리에게 제시된 일정표의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는 거야, 3만불. 그렇다면 어떻게? 국정홍보처의 그녀에게 물어봐.
3. 문이 닫힌다 : 첫 번째 징후
신자유주의면 나쁜 것인가? 세상에 어느 명제나 어떤 사상 혹은 경제 방식도 그 자체로 좋고 나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을 하자면 히틀러가 운용했던 경제는 쉽게 동원경제(mobilization economy)라고 사람들이 말을 하지만, 그것은 전쟁이 벌어진 다음의 일이다. 기본적으로 히틀러의 경제정책은 ‘강화된 케인즈주의’라고 말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재정정책을 중심으로 당시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던 마르크화의 인플레이션 현상을 잡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당연한 것이 1929년의 대공황에 가장 직접적인 충격을 받았던 것이 미국과 독일이고, 두 개의 ‘리짐(regime)’은 같은 기원을 갖기 때문에 루즈벨트의 빅딜과 히틀러의 ‘강한 독일’은 케인즈의 생각에서 그렇게 많이 다르지 않은 두 시스템이다. 게다가 히틀러의 경제는 아마 역사상 존재했던 그 어떤 경제보다 ‘중산층’에 대해서 강조점을 두고 있었다. 당연한 것이 1차 세계대전 이후 퇴역한 군인들, 공무원들, 그리고 기술자들은 한 쪽으로는 기업가들이 스스로의 세계를 구축하고, 노동자들은 노동자들끼리 유니언을 중심으로 모이는 데에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중산층의 불안은 히틀러의 민족주의 사회당, 즉 나찌(National Zocialist)라는 민족주의 좌파정당에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만약 히틀러의 독일 경제가 조금 더 일찍 회생의 전기를 찾았다면 어쩌면 독일은 민족주의의 다음단계였던 인종주의적 패권주의로 넘어가지도 않았을지도 모르고 세계 역사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환되었을지도 모른다. 요즘 식으로 얘기하면 독일의 중산층이 지지해서 생겨난 유럽의 자체적인 좌파 정당이 그렇게 짧은 시간에 인종주의 정당으로 전환되어 대학살극과 세계대전을 벌이게 될지 당시의 다른 유럽의 엘리트들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었다. 원래 경제 시스템이라는 것이 그런 특징이 있다. 표방하고 있는 정신과 실제 구현되는 과정에서의 다양한 변이에 대해서 미리 예단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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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시도
노무현 시대의 악몽을 넘어 : 좌파 경제의 대안
1. 우완 기교파 투수 전성시대
1. 좌익-우익 vs 좌파-우파
요즘은 잘 쓰지 않는 말이지만 ‘좌익’과 ‘우익’이라는 말을 한국 사회에서 사용하던 시절이 있었다. 축구의 레프트 윙과 라이트 윙을 가리키는 말이라면 좀 즐거운 말이겠지만, 같은 영어에 대한 번역어이지만 좌익과 우익은 훨씬 무서운 말이다. 해방에 즈음해서 우리나라는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서로 암살하던 시절이 있었다. 멀쩡한 대낮에 권총으로 사람을 살해하던 그 시절은 분명히 무서운 시절이고, 그 때에 좌익과 우익이라는 단어는 정말 무서웠다. 너 좌익이야? 빵... 너 우익이야? 빵... 언제까지 우리나라에서 정치적 암살이라는 것이 존재했을까? 약사봉 절벽에서 밀었다는 사상계의 장준하 시절까지 잡는다면, 70년대까지는 우리나라에서 정치적 암살이라는 것이 존재한 것 같다. 그 때에 좌익이나 우익으로 몰린다는 것은 무서운 시절의 일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영국에서는 이런 식의 정치적 암살을 ‘여우사냥’이라고 부른다. <레비아탄>의 저자인 홉스에게 크롬웰이 보낸 킬러들이 평생 따라다녔다고 하니, 영국도 생각보다 무서운 나라였던 것 같고, 약간 후대의 루소도 생명의 위협을 피해 스위스의 시골로 도망다녔다고 하니, 근대국가의 형성 과정에서 유럽도 잔혹한 정치적 전통을 가지고 있던 것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지금 와서 뒤돌아보면 홉스와 루소와 같은 우리나라 우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시장주의’의 원형을 만들어낸 사회계약론자들도 그 시대에는 전형적인 좌파들이었던 셈이다. 왕이 지배하던 군주제 사회에서 하늘이 왕에게 권한을 주었다는 ‘왕권신수설’을 부정하고, 왕이 누리고 있는 약속에 의해서 부여된 것이라는 주장을 하였으니 역사적 맥락에 의해서 생각해본다면 칼 맑스의 <자본론>보다 더 무시무시한 얘기를 한 셈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우익, 좌익과 같은 정치적 암살이 횡행하던 시절의 무서운 단어보다는 좌파와 우파라는 단어를 대신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대결의 양상마저 부드러운 것은 아닐지라도 그래도 서로 암살하는 관계는 아니라는 정도의 사회적 합의가 암묵적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훨씬 부드러운 말이다. 좌익과 우익은 왠지 한하늘을 이고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불구대천의 원수관계인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좌파라는 표현은 어딘지 조롱섞인 말이고, 영어로 얘기하면 anasynchrony, 시대착오적이고 고색창연한 느낌을 준다.
너 좌파야?
이 말에는 “아직도”라는 감탄사가 따라붙을 것 같다. 아니, 아직도 좌파라니, 도대체 어떻게 먹고 살려고?
2. 좌파 신자유주의, 재밌었다
종이 신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노무현 대통령은 ‘좌파’이고, 참여정부라고 스스로 불리고 싶어했던 노무현 정권은 ‘좌파 정권’이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그 스스로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한미 FTA 추진과 관련된 자신의 정체성을 그렇게 밝힌 셈이다. 참 어지러운 형용모순이 발생했다. 도대체 한반도에서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좌파이고, 어디서부터 우파인지에 대해서 규정하기가 너무 어렵고, 또 어디가 소위 종이 신문들이 표방하는 ‘보수’인지 구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21세기 들어서 우리말 어휘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그야말로 마음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표현들이 난무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하나의 준거점을 찾을 수 있기는 하다. 한미 FTA라는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노무현 대통령과 그의 조력자들에게 좌파라는 규정을 사용하는 것은 그렇게 과학적이지는 않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좌파라는 이름은 그렇게 명예로운 이름도 아니고, 대체적으로 ‘빨갱이’를 가름해서 사용되는 말이다. 자랑스럽지도 않고 고상하지도 않은 ‘좌파’라는 규정 대신에 사용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을까? FTA주의자? 대체적으로 노무현 정권의 많은 성격을 설명하기는 하는데, 어쩐지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다. 민족주의자? 많은 부분을 설명하기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너무 미국식 경제와 미국식 경쟁력 담론을 사랑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특징들이 잘 설명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또 어떤 용어를 생각할 수 있을까? 쉽게 ‘신자유주의’라는 비교적 어려운 용어를 노무현 대통령에게 들이대기는 하는데, 내 조심스러운 생각으로는 신자유주의라는 규정도 노무현 대통령에게 어울리지는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세계화와 종종 개념적 쌍으로 우리나라에서 자주 사용되는 신자유주의라는 말은 생각보다는 어려운 말이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도 하나의 이념으로서 일관성을 가지고 있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실제로 내세운 정책과 이념 중에서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에 가장 걸맞은 사람은 손학규 전 경기지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 되면 신자유주의라고 해도 어느 정도 설명이 되는데, 노무현 대통령과 그 조력자들의 경우에는 신자유주의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어정쩡하다. 지구상에 있는 그 어떤 신자유주의 정권도 농업을 노무현 정부처럼 포기하고, 교육을 철저하게 경쟁력의 잣대로 들이대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용어 그 자체만으로만 볼 때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두 서로 상충되는 단어의 화학적 결합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그 조력자들이 청와대 깊은 곳에서 그 어떤 내가 알지 못하는 특별하고 독특한 이데올로기들을 정의하고 사용하고 있는지는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이 사람들이 세상에 보여준 정책만으로만 생각해본다면, 정확하게 신자유주의는 아니고, 좌파는 더더군다나 아니다. 그럼 뭘까? 복잡하고 심각하게 생각하면, 농업을 포기하고, 한미 FTA를 목숨 걸고 추진하고, 황우석의 줄기세포를 지지하고, 비정규직을 사랑하며, 또한 지방의 학교들은 문을 닫는 것이 개혁이라고 생각하는 이 규정하기 어려운 시스템은 그냥 ‘노무현’이라고 부르는 것이 훨씬 더 일관성 있는 설명이다.
노무현은 그냥 노무현일 뿐이다. 어떤 경제사상이나 정치사상으로도 규정되지 않는다. 본질적으로는 좌파, 우파, 이런 어떤 말과도 상관이 없고, 노무현 정부에서 입에 달고 다니던 ‘혁신’이라는 말이나 사방에 달아놓은 ‘균형’과 같은 개념으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뭔가 분류하고 의미를 찾으려고 할수록 노무현 시대의 경제정책들은 점점 더 미궁으로 들어가버린다. 그러나 마음을 편히 갖고, 그냥 노무현일 뿐이라고 생각해보자. 의외로 이 어렵고도 복잡한 퍼즐들을 조금 쉽게 풀어나갈 수 있다. 좌파나 우파 혹은 기타 정치적인 의미로 달아놓은 수식어들에서 잠깐 벗어나 재밌는 퍼즐을 풀어나간다고 생각하고,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말은 그냥 웃자고 해본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한 발 뒤로 물러서보면 상황을 조금 명쾌하게 읽을 수 있다.
3. 좌완 정통파 투수와 우완 정통파 투수 그리고 기교파 투수들
사우스포라는 말이 있다.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 지역에 왼손잡이들이 많아서 이들을 사우스포라고 불렀는데,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사람 중에 가장 대표적인 사우스포로 이소룡을 거론할 수 있다. 절권도라는 무술로 영화의 새로운 장을 연 이소룡은 대표적인 왼손잡이이며, 그야말로 ‘몸의 예술’로는 거의 절정에 달했던 사람이다. 일찍 눈을 감은 그의 생애가 안타까울 뿐이다. 요즘도 이소룡과 같이 오른발을 앞에 내놓고 왼발 타격을 준비하는 자세를 사우스포 혹은 이소룡 스텝이라고 부른다. 얼마나 이 폼이 유명했는가하면 오른손잡이 중에서도 사우스포 스타일이 적지 않은 것을 보면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던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투수놀음이라고 하고, 때로는 ‘졸면서도 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 놀림을 받기도 하지만, 어쨌든 우리나라에서 야구의 인기는 좀처럼 식을 줄을 모른다. 나는 LG의 좌완정통파 투수인 이상훈을 너무 좋아했고, 미국에서 돌아온 다음에 간간히 구원투수로 등판하는 모습을 어쩌다 경기장에서 보게 되면 서른 중반까지도 마음이 설래이고는 했다. 이상훈이 좌완투수라서 좋아했는지 좋은 투수라서 좋아한 것인지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어쩌면 정통파 투수라서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우완정통파 투수로 최동원을 그렇게 좋아했던 것을 생각하면 정통파라서 좋아했을지도 모르지만, 두 사람의 특징은 불같은 성격과 직선적인 투구폼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얼마나 이상훈을 좋아했을까?
언젠가 코리안 시리즈 마지막 게임을 운전하면서 들은 적이 있었는데, 한남대교를 건너갈 때 8회말 마해영에게 만루홈런을 맞고 역전을 허용하고, 연이어 올라온 이승엽에게 남산 1호터널을 통과할 때쯤 연타석 홈런을 맞은 적이 있다. 라디오로 야구 중게를 들을 뿐인데, 왜 그렇게 눈물이 흐르던지... 너무 눈물이 나서 운전을 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는데, 왜 그렇게 서롭고 눈물이 났던 것인지 지금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금은 가수의 삶을 살고 싶어하는 이상훈이지만, 내 마음 속에는 영원한 좌완정통파 투수로 남아있다.
난 지금도 팽팽한 투수전을 좋아하는 편이고, 정통파 투수들이 맞대결하는 그런 게임을 좋아한다. 정통파 투수들에게는 시원시원함이 있고, 홈런을 맞더라도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즐겁다. 물론 DJ DOC가 노래하듯이 홈런 맞은 투수이야 비참하겠지만, 어차피 확률적으로 맞는 홈런이라면 정통파 투수편이 더 시원하다.
그러나 누구나 정통파 투수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튼튼한 어깨가 있어야 하고 좋은 운동신경이 있어야 한다는 하나마나한 얘기들을 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정통파 투수가 되기 위해서 더 중요한 것은 중고등학교 때 혹사당하지 않아야 성인이 되었을 때 좋은 정통파 투수가 될 수 있다. 대학에 가기 위해서 순위권에 들어야 하고, 또 대학에 들어갔을 때에도 팀성적을 유지하기 위해서 좋은 투수들이 혹사당할 수밖에 없는 토너먼트 대회에 나가게 된다. 아주 좋은 감독을 만나지 못한 많은 투수들은 청소년 시절에 지나치게 어깨를 혹사당해서 결국 변화구 위주의 기교파 투수가 되거나 성인이 되고 채 꽃도 피어보지 못하고 쓸쓸하게 사라지게 된다. 고등학교 때 좋았던 투수가 성인이 되어서 채 잠재력을 발휘해보지도 못하고 무대의 뒷길로 사라지는 것은 슬픈 일이기는 하다.
학문으로 따지자면 나는 좌완정통파의 우완정통파 모두를 높게 치는 편인데, 좋은 정통파 투수가 드문 것처럼 좋은 학자들은 매우 드물다. 야구의 경우에 우완과 좌완 모두를 던지는 사람은 없지만, 경제학의 경우에는 양쪽에서 모두 인정을 받는 정통파 학자들이 드물기는 하지만 존재한다. 현존하는 최고의 경제학자라고 할 수 있는 케네스 애로우(K. Arrow)가 그런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대해서는 등장할 때부터 신화 같은 전설들이 많이 있지만, 아직도 최고의 학자인 셈이고, 나는 애로우가 자신의 논문 여기저기에 남겨놓은 조언과 설명들에 상당히 귀 기울이려고 하는 편이다. 투수로 치자면 애로우는 전형적인 우완전통파이고, 등장할 때부터 노벨상을 탈 것은 물론이고, 박사학위도 애로우가 쓴 것이므로 어련히 잘 썼겠느냐고 지도교수들이 논문의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수여되었다는 후문이 있다. 그렇게 해서 세상에 등장한 법칙이 그 유명한 ‘불가능성 정리(impossibility theorem)’이다. 애로우의 박사 학위 논문은 서문과 결론을 다 합쳐도 열 페이지가 되지 않지만 이 열 페이지가 던진 질문이 애로우가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케인즈주의자들의 몰락을 수십년 동안 막고 있었다. 또한 그 후에 비선형 경제학이나 시스템이론 혹은 경제철학으로 넘어가는 새로운 길들에는 어김없이 애로우의 조언과 논문들이 숨어 있다. 그런 면에서 애로우를 좌파와 우파로 분류하는 것은 크게 의미는 없다. 그는 그냥 아담 스미스부터 내려오는 정통파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경제학에서 대표적인 우완정통파라는 비유를 사용한다면, ‘균형성장’ 이론을 최초로 이끌어낸 솔로우(Solow) 같은 사람을 거론할 수 있을 것 같다. 시장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경제가 균형성장으로 수렴할 수 있다는 것을 최초로 입증한 솔로우라면 우완정통파라고 해도 크게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혹은 시제도학파의 창시자로서 시장과 조직이라는 두 가지 관점으로 기업의 마케팅 전략을 분석하는 윌리암슨(Wiliamson)이나 정보경제학의 길을 만들어낸 아케로프(Akerlopf) 같은 사람들을 우완정통파라고 해도 크게 무방하지 않을 것 같다.
세계은행 총재를 지낸 스티글리츠 같은 사람의 경우는 조금 애매하다. 나는 대체적으로 우완전통파에 해당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세계은행(IBRD)과 국제통화기금(IMF) 사이에서 무조건적인 금융세계화에 대해서 견제하는 역할을 했고, 또 저개발국가에서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또 그런 견해들을 표방한 적이 많기 때문에 일종의 좌완투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있다. 하여간 조금 애매하다.
그렇다면 좌완정통파 투수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애석하게도 좌파에서는 1류급 투수들을 거의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랑스의 금융적 접근을 생각했던 베네띠(Benetti)와 꺄뜰리에(Cartelier) 혹은 조절학파에 속한 사람들 혹은 유럽 화폐통합의 기준을 만들어내다시피한 미셀 아글리에따(M. Aglietta) 같은 사람들을 거론할 수 있겠지만, 이 사람들 역시 선발등판해서 5이닝 이상 3실점 이내로 게임을 막을 수 있는 소위 퀄러티 피칭을 할 수 있는 선발요원들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야구의 비유를 사용하자면, 구위가 좀 떨어지거나 좌완타자 혹은 우완투자들 모두에게 강점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아무래도 우완투수들이 잘 설명하지 못하는 특수분야나 현대 자본주의의 전환과정 같은 곳을 설명하는데 적합한 롱 릴리프 혹은 구원투수에 가까운 편이다.
대체적으로 다음 세대의 정통좌완파 투수는 시스템이론이나 진화경제학 같은 곳에서 나오지 않을까라고 예상하지만, 이렇게 시대를 풍미할 수 있는 정통좌완 투수는 잘 등장하지 않는다. 더 기다려야 할 것인가 아니면 좌완정통파의 시대는 이렇게 종료한 것일까? 현 시점에서 판단하기는 어려운 것이, 경제학의 역사는 언제나 시대의 위기 속에서 유명한 경제학자들을 배출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극우파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하이에크의 경우는 야구로 치면 어떤 유형의 투수일까? 경제학 자체의 시각만으로 본다면, 우완기교파 투수에 가깝다. 물론 정치학의 시각을 사용한다면 이데올로그로서 냉전 시대에 스탈린주의자들과 맞서 거의 선발투수로 강속구를 뿌려댄 우완정통파라고 볼 수 있지만, 경제학으로 본다면 기교파에 가깝다. 원래 경제학의 정통파라고 한다면 가격 현상을 중심으로 세상을 생각한다면 우완, 그리고 ‘가치’ 현상으로 세상을 본다면 좌완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학을 일종의 과학 특히 자연과학과 같은 경성과학(hard science)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던 시절의 얘기인데, 하이에크는 여기에 ‘시장과정(market process)’라는 새로운 개념을 가지고 와서, 이전의 경제학과 전혀 다른 방식의 시장에 대한 담론들을 만들어내었다. 정통파의 시각으로 본다면 훨씬 더 이데올로그에 가까운 셈인데, 그런 면에서 그는 기교파 투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우완 언더핸드 투수로 가끔 영봉의 기록을 만드는 완투 가능한 투수라고나 할까? 경제학자로서 좋은 경제학자라고 할 수는 있는데, 경제학을 가격현상에 대한 과학으로 생각했던 1세기 전 경제학자들이 그를 보았다면 이런 것도 경제학이라고 약간 투덜거렸을 법하다.
4. 우리나라의 투수들
그냥 편하게 내 얘기부터 시작해보자. 야구의 비유를 계속 사용하자면 나는 좌완정통파이기는 한데, 구속이나 구질에 문제가 있어 선발투수에는 올라갈 수 없는 3류 투수라고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도 경제학으로 밥을 먹고 살고 있으니까 억지로 보면 프로 선수라고 할 수는 있지만, 해마다 시즌이 끝나면 재계약여부를 늘 신경써야 하는 원포인트 릴리프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연봉도 낮고, 언제까지 현역으로 뛸 수 있는지 노후가 걱정되지만 너무 야구가 좋아서 야구를 계속 한다는, 시즌이 시작될 때 잠깐 자신의 말을 하는 우리나라 구단의 수없는 무명투수들과 비슷한 처지라고 하면 거의 정확하다.
경제학의 눈으로 본다면 우리나라에도 좌완 투수도 있고, 우완 투수도 있는데, 정통파 투수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고 하면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주로 기교파 투수들이 그렇게 만족스럽지 못한 연봉을 받으면서 겨우겨우 리그를 꾸려나가는 편에서는 현재 우리나라의 프로리그보다는 축구인 K-리그에 조금 가깝다. 그래도 인문학이나 다른 사회과학이 거의 ‘한데볼’이라고 스스로 부르는 핸드볼과 같은 완전 비인기 리그에 비해서는 조금 사정이 낫기는 하다. 정통파 투수들이 잘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워낙 우리나라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학문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 하기도 하지만, 똑같이 한화 김인식 감독이 이끌었던 대표팀이 미국과 유럽 대표팀을 연파한 것과 비교하면 딱히 그럴듯한 설명이 되지는 않는다.
물론 우완정통파들이 우리나라에서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정통파 중의 정통이라고 할 수 있는 수리경제학(mathematical economics) 전공자들은 좌파경제학들보다 인생 살기가 더 고달픈 경우를 종종 보기 때문에, 꼭 우리나라에서 우완들이 더 대접받는다고 하기도 어렵다. 물론 좋은 정통파 투수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야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등판 기회를 잘 갖지 않거나 스스로 게임에 잘 나서지 않는 경우는 종종 있다. 가끔 아주 기본기가 잘 갖추어지고 구속도 뛰어난 좋은 투수들을 발견하기는 하는데, 이제 너무 나이가 많아 게임에 나서는 것이 두렵다고 말하는 얘기를 들을 때가 있다. 좌파와 우파를 떠나서 좋은 정통파 투수들이 잘 등장하지 않게 되는 것은 마음이 아프다. 우리나라에서 정말 좋은 정통파 투수를 알고 있는데, 너무 어려운 얘기를 한다고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훌륭한 투수들은 따로 있는 법이다.
우리나라에서 시합에 등판하는 투수들은 대개 기교파 투수들이다. 우완 기교파 투수들을 쉽게 표현하면 구질이 너무 지저분하다. 정통파 투수들에게 볼 수 있는 가슴이 시원해질 정도의 속구보다는 너무 변화가 심한 지저분한 볼이 많고, 응원단의 일방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때때로 볼에 이물질을 몰래 바르는 부정투구도 종종 있지만, 심판이 이를 적발하는 경우는 별로 없기 때문에 투수보다는 레슬링의 ‘반칙왕’에 가까운 경우도 많다. 한 마디로 게임 매너가 별로 좋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서 좌완 투수들은 기본기가 약한 경우가 많고 가운데 몰리는 밋밋한 볼을 주로 던져서 어쩌다 등판하면 그야말로 통타 당하기가 일쑤다. 기교파라면 현란한 변화구가 필요하지만 너무 가끔 경기에 오르기 때문에 실전용 투수라기 보다는 연습볼 투수에 가까운 사람들이 많다. 새로운 구종을 개발하는 좌완 투수는 정말 드물고, 볼 판정이 끝나도 계속 우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역시 게임 매너가 좋지 않다는 지적을 받는 투수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 투수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현역 투수에 비해서 감독급 선수 혹은 코치급 선수들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너무 금방 실전에서 물러나기 때문에 그야말로 골프의 ‘티칭 프로’에 해당하는 원로급 선수들이 많은 방면에 실전에서 뛰는 투수들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하다. 외국의 경우가 상당히 나이를 먹어도 실전에서 논문과 저술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것에 비해서 우리나라 투수들은 너무 일찍 실전 감각이 떨어지고 티칭 프로로 물러선다는 문제점을 좌완투수나 우완투수들 모두 가지고 있다. 길게 보면 새로 등장하는 투수들이 별로 없고, 연습생도 줄어든다는 문제점이 있기는 한데, 인문학과 같은 다른 리그에 비하면 아직 불평할 정도는 아니다.
좌완정통파의 경우는 완투할 수 있는 선수는 물론이거니와 선발출장할 수 있는 선수가 거의 없고, 또 좌완정통파를 지향하는 선수는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리그에도 거의 없다. 그래서 길게 보면 재미있는 좌완과 우완이 균형을 맞춘 재미있는 게임이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게다가 여성 좌완정통파는 우리나라에 거의 없다. 로자 룩셈부르크나 조안 로빈슨과 같은 정통파 투수들이나 ‘제로 성장론’을 주장한 도넬라 메도우즈 여사 같이 멋진 여성 투수들의 역사가 존재하는 것을 볼 때 우리나라에 여성투수 특히 여성 좌완정통파 투수들이 연습생 시절을 뛰어넘어 현역 등판의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하는 것도 안타까운 일 중의 하나이다. 물론 아쉬운 것으로 따지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어차피 정통파 투수가 아니라면 구질이 다양한 것도 게임을 보는 재미를 높이고 좋은 야구를 만드는 한 가지 방법이기는 한데, 우리나라의 기교파 투수들은 좌완이든 우완이든 구질이 너무 단조롭다. 그래서 다이나믹한 게임이 벌어지기 보다는 타자들에게 통타당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투수전이 벌어지는 일은 별로 없고, 응원단을 대량 동원하는 난타전이 되기 일쑤다.
우완정통파 투수가 우리나라에서 귀한 것처럼 좌완정통파 투수는 우리나라에 거의 없다. 그렇다고 최근 프로 야구에서 그랬던 것처럼 국제 기준과 다르게 스트라이크 존을 좁혀준다거나 투수에게 유리하게 마운드를 높이는 황당한 일을 하는 해서는 안 된다. 김재박 감독의 대표팀은 아시안게임에서 대만은 물론 일본의 사회인 리그에게도 통타당하고 망신을 산 적이 있다. 그야말로 좌완투수든 우완투수든 더 분발하는 수밖에 없다.
5. 노무현 시대는 어땠을까?
만약 야구에 비교한다면 노무현 시대는 우완과 좌완을 떠나서 지나치게 기교파 투수들이 많이 나왔던 시기라고 할 수 있고, 다양한 볼이 구사되는 소위 ‘팔색조’ 야구의 시대라기보다는 반칙 투구가 난무했던 시절이라고 할 수 있다. 기교파 투수들이 전면에 나섰던 것은 정통파 투수들이 별로 없는 상황 때문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노무현 시대에는 투수들이 아니라 구단의 데스크 직원들이 해외연수 몇 번 받고, 옆에서 조언 몇 번 듣고 직접 게임에 나선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외교부에서 직접 국가의 장기운용계획과 형태까지 결정하게 될 한미 FTA를 들고 나선 것은 대표적으로 황당한 일이기는 한데, 이런 식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이 가끔 벌어진 일이 아니라서, 오히려 정상적으로 진행된 일이 오히려 드물다고 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벌어졌는데, 이런 일들은 좌완이나 우완과 같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의 차이로 보기에는 너무 이상했다.
일부 기교파 우완투수들이나 조선일보의 응원단장 같은 사람들은 이렇게 된 것이 노무현 야구단에 좌완투수가 너무 많아서 그렇다고 지적을 하기는 한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경제 정책에 대해서는 별로 맞는 말은 아니다. 실제로 청와대에 이정우 정책실장과 정태인 비서관 정도가 좌완이라고 할 수는 있는데, 이 두 사람 모두 정통파라기보다는 기교파에 가깝고, 그나마 이정우 정책실장의 경우에는 현역 투수보다는 티칭프로에 가까운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이정우 정책실장의 후임으로 상당히 장기간 청와대의 정책을 맡았던 김병준 정책실장의 경우는 내가 아무리 상식을 가지고 이해해보려고 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말 특별한 사람이다. ‘구질’로만 보자면 전형적인 우완투수라고 할 수 있는데, ‘점잖은 보수’가 가지고 있는 학문적 성실성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냥 부패한 사학재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저그런 보직교수와 다를 바가 별로 없는 사람이다. 이런 눈에 보이는 점들과 지면으로 공개하기 어려운 뒤에서 벌어진 여러 가지 일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노무현 정부는 좌완투수들이 전면에 나선 경기를 벌인 적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거의 유일하게 노무현 정부가 좌완투수들 중심으로 경기를 벌였다고 우익 서포터즈들이 외치는 것이 부동산에 관한 보유세 개념을 도입한 종합부동산세 정도라고 할 수 있는데, 조금 정교하게 얘기하자면 이런 세제상의 조정은 좌파들의 접근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대체적으로 모든 선진국에서 좌파와 우파를 막론하고 다 실시하는
# by | 2007/01/07 06:09 | 출간 이야기 | 트랙백 | 덧글(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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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후에 다시와서 읽어 봐야겠습니다.
80 : 20이 아니라 비나리's law는 98 : 2 군요.
2%에 해당한다는것이 어떤것인가는 곰곰 생각해봐야 할것같습니다.
"건강이 최고다"라고 하지만 팍팍한 삶을 살아가다보면
건강하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잊고 살때가 더 많습니다.
그래도 인사로는 가장 무난(?)합니다.
새해에는 건강하시고 쓰고 싶은글 하고 싶은말 하시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경제학을 공부한지 1년도 되지 않아서 위대한 경제학자 이름만 들어서
새롭습니다.^^
황박사 사건때 저는 98%와 2% 양다리를 걸쳤었는데, 요즘은 점점 2%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 같습니다. 그런 여정속에서 우석훈 님의 글이 많은 자극이 됩니다.
아직 이쪽 분야에 문외한인 편이라..
히틀러의 경우는 이미 예정되었지 않았나 싶네요. 미국과 달리 자원이나 시장?이 없고 일본처럼 군사에 미친듯이 투자했으니 예정된 결과는 아닐지....싶어요.
98:2라...99:1만 안되면 감사죠..ㅠ.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유익한 글 잘 보고 갑니다.
날선 칼을 들고 사회를 바라보는 것이 힘들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어야 이 사회가 썩어갈 때 잘라내지 않겠습니까...
힘들고 어려운 길이지만, 그 길을 걷는 사람을 응원하는 말없는 사람이 많다는 것만 잊지 말아주십시오.
사실 전 음식국부론 책을 동생이 사와서 우연히 읽었는데, 블로그를 알면서 책에서 느낀 우석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깨닫고, 진지한 고민을 하는 소수가 왜 중요한지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새해에는 무엇보다 건강하십시오.
(왠지 허접하다..ㅠ.ㅠ)
음... 책이라..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이후. 음식국부론를 샀는데. 더 질러야지...;;;ㅋㅋ
책 더 많이 내셨으면 좋겠어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