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원했던 직업, 만화평론가 혹은 만화가게 주인

 

정말 원했던 직업, 만화평론가 혹은 만화가게 주인


1.


세상을 살다보면 직업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나도 그런 생각을 종종 하고는 했다. 먹고 사는 것에 대해서 진짜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거의 없고, 대체로 ‘재미’를 위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곰곰 생각해보면 진짜로 하고 싶었던 것은 만화평론가였던 것 같고, 그걸 위해서 준비해야 할 일은 만화가게 주인이 되는 일이었던 것 같다. 만약 눈이 조금만 좋았더라면 보석세공사를 만화평론가의 부수 직업으로 가졌을지도 모른다. 만화평론가 정도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보석세공사도 전문직으로 아주 나쁜 직업은 아니다. 무엇보다 교육과정이 2년 이내라는 장점이 있다.


주변에 루브르 학교에서 고미술 복원하는 일을 하고 싶었던 친구들이 많았다. 이것도 나쁜 일은 아닌데, 진짜로 고미술을 복원하는 멋진 일을 하게 되는 사람은 별로 없고, 시시껄렁한 그림들이 모조작업을 하게 되는 경우를 더 많이 보았다. 이런 일들은 보람은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다.


작은 기술을 몸에 붙이고 이걸로 크게 욕심부리지 않고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내가 직업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생각이다. 하다못해 에스프레소 한 잔을 잘 뽑아내면 크게 욕심 부리지 않는 조그만 카페의 주인이 되는 것도 행복한 삶 중의 하나일 것이다.


나는 엄청나게 생태적인 삶이나 그런 생태주의를 지지하지도 않고, 또 그런 것들이 지고지순한 삶과 사회에 대한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욕심을 늘여봐야 좋을 것이 없다는 정도의 생각은 하면서 살아간다. Marshall Sahlins는 우리나라에는 별로 소개되지 않았지만, 경제인류학 분야에서는 한 획을 그었던 사람이고, 현대에 대한 철학적 접근에서도 상당히 고급스러운 석학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stone age economics'라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저술에는 “want not, lack not!”이라는 70년대 좌파지식인들이 가졌던 일말의 꿈을 잘 설명해주는 표현이 나온다. 억지로 복잡하게 분석을 하면 want니 need니 혹은 사회적 구조니 하는 말들이 나중에 덕지덕지 붙기도 하고, 인류학자들이 보는 nomade에 대한 원형이 나오는 책이기도 하다.


간단히 요약하면, 개인으로 욕망을 아무리 늘려봐야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현대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 말인 것 같지만, 인류의 오래된 역사를 생각해보면 이게 딱이다.


한겨레가 한 해의 책 20권을 정리해서 추천하면서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이라는 책을 떡허니 올리고, 그 많은 다산의 책 중에서도 경영 마인드와 관련시킨 책을 올렸다.


이런 생각과 살린스의 “석기시대 경제학”은 딱 정 반대에 있다. 사람들은 이런 생각들을 ‘세련’되지 않았다고 간단히 폄하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모두가 욕망 위에 자신의 삶을 세워서 시스템이 돌아가지 않을뿐더러 개인도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된다.


아주 오래된 책들, 성경이나 부처님 말씀 혹은 그 어떤 성현의 책을 읽어보아도 요즘 잘 팔리는 처세술류의 책을 쓴 적은 없다. 있다면 가장 오래된 화석민족이라고 할 유태인들의 처세술 책인 탈무드 정도일텐데, 탈무드와 구약성경의 ‘10계’는 판박이 철학의 또 다른 얼굴이라고 할 정도로 처세술과는 거리가 멀다.


요즘 공무원으로 몰려가는 사람들 혹은 예전의 ‘종합상사 직원’이라는 말이 20년 만에 바뀌어서 새로 정착된 ‘대기업 임직원’이라는 말들, 행복의 보증수표는 아니다.


2. 역전은 가능할까?


인생 역전을 꿈꾸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내 주위에도 형편없이 망가져서 그야말로 정신세계가 황폐해진 사람들이 없지 않다. 그래도 해줄 수 있는 말이 거의 없는 게, 대체적으로 30대 중반쯤 된 이 사람들은 정치적으로는 극우파에 해당하고, 경제적으로는 ‘돈독 오른 사람’에 해당하고, 교회를 아주 열심히 다니거나, 음악은 거의 듣지 않기 때문에,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없다.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사람들에게 인생의 역전이 가능할까? 요행히 돈을 벌지는 모르지만, 행복이 깃들기는 어려울 것 같다. 쾌락과 과시 그리고 행복이 같이 다니지 않는 것이라서 그럴 것이다.


‘보람 있는 삶’이라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말이다. ‘보람’이라는 말이 영어가 뭘까? 번역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걸 보면, 삶이 보람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대단히 한국적인 생각일지도 모른다. 약간은 객관적이면서도 자기 주관과 관련되어 있고, 그렇다고 강하거나 격렬하지 않은 보람이라는 단어는 순우리말이고, 예전에 우리 할아버지들이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말인 것 같다.


통장에 돈이 늘어가고 아파트 평수가 늘어가면 뿌듯할지 몰라도 그런 걸 보고 “보람있다”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진짜 한국식 처세술이라면 ‘보람’이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난 세계에서 가장 긴 왕조로 표현되는 조선조의 삶의 방식과 시스템에 대해서 약간의 긍지를 느끼는 편인데, 교과서나 사학자들이 거의 주목하지 않는 뭔가의 비밀이 여기에 숨어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보람찬 하루”라는 표현은 70년대 유신경제에서 공장들이 노동자들에게 던지는 표현이기도 하다. 사람들에게 열심히 일해서 돈 벌라고 자본가들이 설득할 때에도 ‘보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는 했는데, 워낙 오랫동안 우리나라 문화 속에서 체화되어 있는 개념이라서 그런 것 같다.


그러나 21세기에 보람이라는 말은 해석하기가 쉽지 않다. 난 다단계판매에 들어간 사람들은 삶이 지옥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도 만나고, “행복한 삶”을 꾸린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 사람들에게 보람이라는 말은 무슨 뉘앙스를 가지고 있을까?


지금의 구질구질한 삶에서 보람찬 삶으로의 역전은 가능하고, 이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룰 수 있지만, TV가 알려주는 방식으로의 인생 역전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행복은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3.


행복과 자유는 같이 움직일 수 있는 개념인 것 같다. 행복하면서 자유로울 수 있고, 자유롭고도 행복한 삶은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단어들은 욕망과 같이 움직이지는 않는다. 욕망도 채우고, 행복하고, 자유롭고... 서태후가 행복했을까? 아니면 히틀러가 자유로왔을까?


사실 사람들은 정주영이 되고 싶은게 아니라 정주영 아들이나 딸 혹은 손주가 되고 싶은 거 아닐까? 너무 슬프게 우울병에 시달리다 자살하게 된 이건희의 딸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가끔 숙연해진다. 행복? 그녀는 행복할 수 있었겠지만, 행복한 삶을 살지는 못한 것 같다. 부디 넋이라도 천국 아니면 중간계 그 어느 곳에서라도 편하게 자리를 잡기를 기원한다.


헤겔은 너무 딱딱하고 뻔한 정답을 향해서 삶에 대한 얘기들을 풀어나가는 경향이 있지만, 주인이 아니라 노예로부터 절대진리가 출발한다는, 예나 시절의 청년 헤겔의 그 생각만큼은 정말 낭만적이고 아름답다. 물론 원문의 이 대목은 전세계에서 가장 읽기 난해하다는 구절 중의 하나이지만 말이다. 뭔가 만드는 사람들 즉 창조에 해당하는 일을 하면 좋겠다는 아주 평이한 말로 바꿔도 요즘 같아서는 뜻이 통할 얘기이다.


선불교의 오래된 책들을 보면 고승을 만나는 장면이 가끔 나온다. 우리 시대에도 고승 혹은 깨달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이 가끔 있다. 이런 사람들을 직접 만나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대개 큰 돈도 없고, 멋지게 휘두른 장삼을 제외하면 눈으로는 별 볼일 없다. 대개 크게 잘 생긴 사람들도 아니고, 또 키도 왜소한 경우가 많다. 그래도 돌아가시면 나중에 사리가 한 주먹씩은 나오실 분들이다.


특별한 후광효과가 없다면 요즘 같다면 많은 사람들은 이런 고승을 만나봐야 별 감흥없을 것이다. 이건희 손을 잡고 싶어, 도법스님 손을 잡고 싶어? 물론 이건희 손이겠다. 이명박 손을 잡고 싶어, 지율스님 손을 잡아보고 싶어? 물론 이명박 되겠다.


옛날 춘추전국 시대에도 고승이 근처에 거하고 있다면 왕이 전쟁하러 나가던 길을 잠시 세우고 알현을 하고 지나갔다. 고승은 한 번 만나기만 해도 인연이 되어 해탈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억겁의 연을 끊고 언젠가는 극락에 가고 싶은 사람이 손은 고사하고, 일면식이라고 하고 싶어했고, 말이라도 한 번 나눌 수 있으면 더 없이 큰 삶의 기쁨으로 여겼었다.


만약 이런 고승과 같은 큰 어른들을 만나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면, 삶에 뭔가 깊은 문제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그야말로 인생으로 치면 ‘막 사는 인생’에 다름 아니다.


소크라테스에 보면 이런 삶에 대한 묘사가 많이 나온다. 아직 그리스 세계의 패주가 되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안정적인 경제와 정치기반을 갖추고 지도자 노릇을 하기 시작한 당시 그리스의 시대상은 현재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치와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아보인다. 서울 그리고 한국의 모습을 보고 싶으면 너무 기억력 좋았던 플라톤이 어린이 시절에 보았던 소크라테스의 여러 만남을 적어놓은 대화록들을 보면 그야말로 지금 우리나라 모습과 딱이다.


행복과 자유는 같이 가지만, 권력, 탐욕, 이런 말들과 같이 가지는 않는 것 같다. 한 가지를 놓아야 한다면 무엇을 놓을 것인가? 지금 ‘평균적 한국인’이라면 아마 자유를 놓을 것 같다. 돈이 많고, 행복한 거, 그러나 자유롭지는 못한 삶,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걸 선택할 것 같다. 돈이 그대를 자유케 하리라!


4.


조그만 만화가게 주인이 되어서 하루 종일 만화책 보고, 가끔 새로 나오는 만화에 대해서 평을 쓰는 만화평론가 같은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생각은 내 30대 중반의 꿈이었다. 월급쟁이 생활할 때 매일 나를 달래주던 꿈은 언젠가는 만화가게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나를 달래고는 했었다.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본소라는 것들이 너무 금방 무너져버렸고, 만화산업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일찍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근대국가가 성립되면서 프러이센에서 처음 시작된 공민교육이 이제는 너무 획일화된 꿈을 사람들에게 흩뿌리는 장치의 역할을 너무 심하게 한다. 지표로 보여주기는 어렵지만, 이런 획일화된 교육은 아마 우리나라 학교가 가장 심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신이라도 100명이 다 똑같은 것을 원하는데,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전부 충족시켜줄 수가 있으랴! 그런 시스템은 애당초 존재할 수가 없다. 백인백색은 아니더라도, 백인일색인 현재의 우리나라 시스템은 너무 이상하다.


호접몽은 꿈 속에서라도 자유롭고 싶다는 도교의 이상을 얘기하는 것이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평균적 삶”은 꿈 속에서도 고통스러운 것 같다. 자, 어쩌면 좋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 답해보고 싶다.

by 비나리 | 2007/01/03 03:44 | 그냥 잡담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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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연애편지 at 2007/01/03 12:21
삶이 뭐 그런거죠. 끝없은 욕망으로 시작해서 욕망으로 끝나는 거.
아마 한국은 미국도 이르지 못한 새로운 자본주의를 시작한거죠.

그러고 보면 박정희어르신과 그 세대분들 386 어르신들은 대단해요.
조만간 미국보다 선진국이 될날이 찾아올지도 ㅋㅋ
Commented by 비나리 at 2007/01/03 15:25
미국도 가보지 못한 새로운 자본주의라... 말은 멋진데, 이걸 숫자로 보여주기가 쉽지가 않군요. 욕망을 수치로 바꿀 수도 없고, 마케팅이라는 대리 변수를 사용해도 정확하지가 않을 것 같구...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Commented by 무명 at 2007/01/03 17:37
"세계에서 가장 긴 왕조로 표현되는 조선조의 삶의 방식과 시스템에 대해서 "

간송미술관 최완수 관장님은 조선조가 그렇게 오래 유지되었던 이유에 대해,
조선은 전반 250년과 후반 250년이 전혀 다른 원리로 운영된 나라였다고
설명하더군요. 원리와 철학이 다르니 시스템도 문화도 달랐고, 그것이 문화전반에
차이를 나타냈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Commented by 비나리 at 2007/01/03 17:54
무명님... 어려운 질문이기는 한데, 조선조가 정도전의 프로그램에 의해서 운용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대체적으로 광해군 정도에서 시스템이 크게 한 번 바뀌게 되지요. 아마 중국이나 일본처럼 그 때 망하는게 정상적이었을텐데, 정도전 프로그램이 워낙 잘 되어서 그런지 어떻게 어떻게 버텨서 영정조까지 가게 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관료들은 녹봉으로 살아가고, 토지를 전유하게 되는 영주나 지방토호들은 관직에 쉽게 올라오기 어려운 그 묘한 분리제도는 거의 마지막까지 상당 부분 유지되는 묘한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도 아직은 몇 가지 생각의 단초를 그저 정리해보는 정도라서...
Commented by 아큐라 at 2007/01/03 22:28
딸들에게 정말 얘기하고 싶다. 아빠는 견실한 노동따위는 믿지 않는 사람이니까 새아빠 찾아 가렴.ㅋㅋ 우선생님 2세가 없었다니까 좀 뜻밖이군요. 뭐 특별한 뜻은 없습니다. 선생님 책 제목이나 글에서 풍기는 분위기에 왜그런지 2세가 있을 법한 느낌이 었는데. 역시 직관이나 감은 믿을 수 없군요.

우샘 글을 읽다 보면 정말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저같은 경우에 실제로 '미국과 일본 만화에 있어서 선악의 문제'라는 글을 준비하다가 주변에서 하도 면박을 주어 포기했는데 만약 그 글을 당시(91년 정도)에 만화 주간지에 응모했더라면 한국 최초(우왝)의 만화 평론가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고요. 백제대 같은데서 만화과 교수로 일하고 있을 지도 모르고요. 고1때 담임에게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해서 경악시켰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질문 1. 경제인류학 관련하여 꼭 읽어야 할 책 목록이 있다면? 일단 국어 번역본으로.

질문 2. 노무현 개인에 대하여 혹 애증이 있는 건지? 저는 그저 엘리트 중 말단에 있는 사람도 대통령이 될 수 있구나하고 대충 넘어갔거든요.

질문 3. 꼭 선물하고 싶은 책이 있는데 아무 때나 정하시면 한 번 온수역에서 성공회대 일대에서 식사를 한 번 할 수 있는지요?
Commented by 비나리 at 2007/01/04 01:00
경제인류학 책은 폴라니 책들이 "Great transformation"을 비롯해서 다수 번역되어 있고, marcel mauss 책들도 좀 번역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노무현한테.... 개인적으로야 암 생각없지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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