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7월 15일
대중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생각
내가 소속으로 사용하는 금융경제연구소라는 곳이 있다. 좀 더 자주 가서 이것저것 틀도 잡고, 논의도 같이 하고 싶은데, 아직은 몸이 멀쩡하지 않아서 자주 나가지는 못한다. 이곳은 금융노조에서 운영하는 연구소이다.
몇 년 전부터 금융경제와 관련되어서 방어선을 쳐야 한다는 논의가 내부에서 있었고, 특히 금융지주 회사에 관한 논란에서 나름대로는 방어선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설득력을 가지고 진행되고 있었는데, 하다보니까 결국 금융연구소 주변에서 임시로 경제학자들이 좀 모여들게 된 셈이다.
유사한 논의를 할 때 10년 전에는 고려대학교 주변에서 모였었다. 고대 경제학과의 김균 선생과 연대의 홍훈 선생 그리고 동국대의 박순성 선생이 엄브렐라 역할을 해주고, 고대 82학번들이 주축이 되고 여기에 나같은 초짜들까지 모여서 한사경 내부에 정치경제학 중에서 사상사 관련된 공부를 했던 사람들이 고대 주변에 모여있었다. 요즘은... 그 때의 이름이 진화제도경제학연구회라는 이름이었었는데, 결국 나중에 뿔뿔히 흩어지게 되었고, 나는 생태경제연구회 중심으로 활동을 했었다. 물론 생각보다 열심히 하지는 못했다.
홍기빈이 몇 달 전에 대중 교육 프로그램을 하나 열어보자는 얘기를 해서, 나도 그렇게 하면 좋겠다고 동의를 했고, 약간의 얼개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다가 다들 먹고 사는게 힘에 겨워서 진행을 못 시킨 일이 하나 있다.
원래의 구상은 금융노조에서 약간의 지원을 받아서 3개월 혹은 6개월짜리 경제 아카데미 같은 걸 열어서 소위 신자유주의가 아닌 경제학 접근이나 분석에 대해서 조그만 교육 프로그램을 열어보는 것이었다.
20년 전에는 이런 종류의 고민이 보통 세 갈래로 나갔었는데, 신고전학파의 분석법을 사용하는 진영과 케인즈 진영 그리고 정치경제학을 비롯한 나머지 것들을 전부 모아놓은 이단적 접근 혹은 비주류 접근, 이렇게 세 갈래로 논의가 진행되었었다. 그 시절에 나는 비주류에 속해있었다.
10년이 지난 이후에 신고전학파에서도 별 얘기가 안 나오고, 케인지안들은 네오 캠브리지안으로 바뀌었지만 역시 별 또렷한 미래에 대한 대안을 내지 못하고, 자본론을 중심으로 했던 흐름은 지지부진하다가 사실상 괴멸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정규과목으로 자본론을 배우는 대학이 아마 전세계적으로 얼마나 남아있는지 잘 모르겠다. 파리 10대학의 경우에도 작크 발리에의 자본론 원강이 대학원에 있었는데, 내가 배웠던 수업이 마지막이었다. 자본론은 이제 현실적 분석으로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학설사 과목으로 완전히 전환된 상태로 알고 있다. 파리 8대학 그리고 미국의 뉴 스쿨 정도가 남아있지 않을까...
그 이후에 대안에 관한 논의는 사실상 전멸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생태경제학으로 주활동 분야를 바꾸면서 정말 목숨만 붙어있는 상태로 겨우 21세기로 넘어왔다.
나는 수학과 공학에서 다음 길을 찾은 경우에 해당한다. 죽어라고 수학공부하면서 왈라시안이 아니면서 시카고 학파와는 다른 말을 할 수 있는 근거를 조금 열었다. 물론 나의 이론틀도 아직은 전체를 관통할 정도는 아니지만, 몇 가지 방어를 할 수 있는 근거지 정도 확보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별 거 아니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에도 내 능력 부족으로 그야말로 겨우 숨만 남아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하는 경제학은 훈고학은 아니다. 그리고 정책학도 아니고, 경제 체계론에 조금 더 가까운 모습을 가지게 되었고, 원래 20 때의 내가 하고 싶었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이질적 요소와 비경제적 장치들을 포함해서 국민경제를 설명할 수 있는 약간의 틀걸이를 가지게 된 셈이다.
홍기빈은 훨씬 더 폴라니안 쪽으로 가려고 한다. 나도 폴라니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나는 폴라니안은 아니다. 이제 폴라니로 가는 것 보다는 나는 폴라니로부터 나오면서 이론을 찾은 경우에 해당한다.
이종태는 아직은 어디로 가야할지 명확한 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이종태도 국가주의로부터는 많이 벗어났다.
참여정부 초기에 국정의 틀을 잡는 청와대 정책담당이었던 이정우 교수의 경우가 이론적 고민이 너무 없고, 또 지나치게 국가주의의 편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몇 가지 우연적인 요소들이 결합되어서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은 오리지날 극우파 버전이 되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문제는... 대중 교육 프로그램을 연다고 하더라도 결국 가르칠 사람들이 통일된 하나의 시각이나 틀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자기도 헷갈리는데 남까지 헷갈리게 만들 위험이 높다는 점이다.
내가 교육에 대해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는 경우와 자기도 모르면서 자꾸 가르치려고 하는 경향이 생겨나는 거이다. 10년 전에 내 수업은 약간 인기가 있어서 계단강의실에 수 백명씩 모아놓고 했었는데, 그 시절을 반성하면... 내가 딱 그랬던 것 같다. 깊은 반성을 하고, 적어도 내 수업에서 뭔가 도움이 되는 것을 배워갈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그럴 준비가 안 되었다면 수업은 안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게다가 난 원래... 강의하는 걸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걸 너무 나중에 알게 되었다.
하여간 이런 고민들이 몇 가지 있기는 한데, 홍기빈과 내가 동의하는 것은 지금 상태로는 안된다는 것이고, 다른 접근들이나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적어도 경제학에서 지금 얘기해주는 곳이 너무 없다는 점이다. 교육 프로그램 자체가 일종의 창작이 되는 셈이다. 어떻게 설명을 하면서 지금은 모르지만, 전혀 다른 결론에 서로 도달할 수 있을까...
하여간 여름방학은 이렇게 서로 준비없이 지나가버리게 되었고, 연말의 겨울방학에는 조그만 프로그램이라도 열고자 한다면... 가을에는 몸을 좀 움직여보는 수밖에 없는데... 이래저래 생각이 많다.
몇 년 전부터 금융경제와 관련되어서 방어선을 쳐야 한다는 논의가 내부에서 있었고, 특히 금융지주 회사에 관한 논란에서 나름대로는 방어선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설득력을 가지고 진행되고 있었는데, 하다보니까 결국 금융연구소 주변에서 임시로 경제학자들이 좀 모여들게 된 셈이다.
유사한 논의를 할 때 10년 전에는 고려대학교 주변에서 모였었다. 고대 경제학과의 김균 선생과 연대의 홍훈 선생 그리고 동국대의 박순성 선생이 엄브렐라 역할을 해주고, 고대 82학번들이 주축이 되고 여기에 나같은 초짜들까지 모여서 한사경 내부에 정치경제학 중에서 사상사 관련된 공부를 했던 사람들이 고대 주변에 모여있었다. 요즘은... 그 때의 이름이 진화제도경제학연구회라는 이름이었었는데, 결국 나중에 뿔뿔히 흩어지게 되었고, 나는 생태경제연구회 중심으로 활동을 했었다. 물론 생각보다 열심히 하지는 못했다.
홍기빈이 몇 달 전에 대중 교육 프로그램을 하나 열어보자는 얘기를 해서, 나도 그렇게 하면 좋겠다고 동의를 했고, 약간의 얼개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다가 다들 먹고 사는게 힘에 겨워서 진행을 못 시킨 일이 하나 있다.
원래의 구상은 금융노조에서 약간의 지원을 받아서 3개월 혹은 6개월짜리 경제 아카데미 같은 걸 열어서 소위 신자유주의가 아닌 경제학 접근이나 분석에 대해서 조그만 교육 프로그램을 열어보는 것이었다.
20년 전에는 이런 종류의 고민이 보통 세 갈래로 나갔었는데, 신고전학파의 분석법을 사용하는 진영과 케인즈 진영 그리고 정치경제학을 비롯한 나머지 것들을 전부 모아놓은 이단적 접근 혹은 비주류 접근, 이렇게 세 갈래로 논의가 진행되었었다. 그 시절에 나는 비주류에 속해있었다.
10년이 지난 이후에 신고전학파에서도 별 얘기가 안 나오고, 케인지안들은 네오 캠브리지안으로 바뀌었지만 역시 별 또렷한 미래에 대한 대안을 내지 못하고, 자본론을 중심으로 했던 흐름은 지지부진하다가 사실상 괴멸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정규과목으로 자본론을 배우는 대학이 아마 전세계적으로 얼마나 남아있는지 잘 모르겠다. 파리 10대학의 경우에도 작크 발리에의 자본론 원강이 대학원에 있었는데, 내가 배웠던 수업이 마지막이었다. 자본론은 이제 현실적 분석으로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학설사 과목으로 완전히 전환된 상태로 알고 있다. 파리 8대학 그리고 미국의 뉴 스쿨 정도가 남아있지 않을까...
그 이후에 대안에 관한 논의는 사실상 전멸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생태경제학으로 주활동 분야를 바꾸면서 정말 목숨만 붙어있는 상태로 겨우 21세기로 넘어왔다.
나는 수학과 공학에서 다음 길을 찾은 경우에 해당한다. 죽어라고 수학공부하면서 왈라시안이 아니면서 시카고 학파와는 다른 말을 할 수 있는 근거를 조금 열었다. 물론 나의 이론틀도 아직은 전체를 관통할 정도는 아니지만, 몇 가지 방어를 할 수 있는 근거지 정도 확보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별 거 아니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에도 내 능력 부족으로 그야말로 겨우 숨만 남아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하는 경제학은 훈고학은 아니다. 그리고 정책학도 아니고, 경제 체계론에 조금 더 가까운 모습을 가지게 되었고, 원래 20 때의 내가 하고 싶었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이질적 요소와 비경제적 장치들을 포함해서 국민경제를 설명할 수 있는 약간의 틀걸이를 가지게 된 셈이다.
홍기빈은 훨씬 더 폴라니안 쪽으로 가려고 한다. 나도 폴라니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나는 폴라니안은 아니다. 이제 폴라니로 가는 것 보다는 나는 폴라니로부터 나오면서 이론을 찾은 경우에 해당한다.
이종태는 아직은 어디로 가야할지 명확한 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이종태도 국가주의로부터는 많이 벗어났다.
참여정부 초기에 국정의 틀을 잡는 청와대 정책담당이었던 이정우 교수의 경우가 이론적 고민이 너무 없고, 또 지나치게 국가주의의 편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몇 가지 우연적인 요소들이 결합되어서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은 오리지날 극우파 버전이 되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문제는... 대중 교육 프로그램을 연다고 하더라도 결국 가르칠 사람들이 통일된 하나의 시각이나 틀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자기도 헷갈리는데 남까지 헷갈리게 만들 위험이 높다는 점이다.
내가 교육에 대해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는 경우와 자기도 모르면서 자꾸 가르치려고 하는 경향이 생겨나는 거이다. 10년 전에 내 수업은 약간 인기가 있어서 계단강의실에 수 백명씩 모아놓고 했었는데, 그 시절을 반성하면... 내가 딱 그랬던 것 같다. 깊은 반성을 하고, 적어도 내 수업에서 뭔가 도움이 되는 것을 배워갈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그럴 준비가 안 되었다면 수업은 안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게다가 난 원래... 강의하는 걸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걸 너무 나중에 알게 되었다.
하여간 이런 고민들이 몇 가지 있기는 한데, 홍기빈과 내가 동의하는 것은 지금 상태로는 안된다는 것이고, 다른 접근들이나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적어도 경제학에서 지금 얘기해주는 곳이 너무 없다는 점이다. 교육 프로그램 자체가 일종의 창작이 되는 셈이다. 어떻게 설명을 하면서 지금은 모르지만, 전혀 다른 결론에 서로 도달할 수 있을까...
하여간 여름방학은 이렇게 서로 준비없이 지나가버리게 되었고, 연말의 겨울방학에는 조그만 프로그램이라도 열고자 한다면... 가을에는 몸을 좀 움직여보는 수밖에 없는데... 이래저래 생각이 많다.
# by | 2007/07/15 15:44 | 그냥 잡담 | 트랙백 | 덧글(6)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안부댓글 살짝쿵~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