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쿠르트먼트의 기준에 대한 생각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는 말이 있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생각해보면 이 말이 맞기도 하고, 또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두 가지 의미가 다 있는 것 같다. 제 머리를 깎아도 되기는 하는데, 안 깍는게 좋다는 의미도 있는 것 같다.

요즘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하는 말이 자기 책은 못 팔아도 남 책은 잘 팔아준다고... 올해는 워낙 좋은 책 두 권에 설명을 달아줄 일이 있었는데, 책이 좋아서 이 난국에도 그런대로 나가는 모양이라서, 남 책은 잘 팔아준다는... 물론 다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레베카 솔닛의 <어둠 속의 희망>이라는 책에 대해서 서평을 썼는데, 이 책이 생각보다 생각해볼만한 정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고전하는 것 같다. 최근 미국의 시민단체나 민주당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부시가 재선될 즈음에 얼마나 속이 답답했고,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책이다. 아마 나도 서평을 부탁받지 않았더라면 안 읽었을 것 같지만, 읽고 난 내 소감으로는 재밌고, 새로운 정보도 적지 않았던 책이다.

가끔 리쿠르트먼트라고 하는 절차에 관여하게 되는데, 생각해보니까 민간기업, 정부, 국제기구, 시민단체에 정당 소속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가끔은 기관장이나 회사 CEO 리루크르에 전부 관여해 본 경험이 있다. 돌아보면 참 취직도 많이 시켜줬고, 리쿠르트 절차에서 평가하는 일도 많이 해본 셈이다. 물론 내가 추천한다고 해서 꼭 되는 건 아니고,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내 추천 때문에 안 된 경우도 있다. 그리고 주위에서는 전부 내가 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난 아무 말도 한 적이 없고, 아무 일도 한 적이 없는 경우도 있다. 하여간 등등등...

최근에 CEO 두 명이 각각 다른 자리에 사람을 찾아봐달라는 부탁을 했다. 한 자리는 연봉이... 겁나게 높은 임원 자리이고, 또 한 자리는 연봉은 높지 않지만 4~5년 정도 우리나라의 향방을 바꿀 정도로 중요한 기획을 하는 자리이다. 한 자리는 내 생각에는 적임자를 찾았고, 한 자리는 못 찾았다.

취직하고 싶은 사람과 사람을 찾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는 다 있다. 매 번 느끼는 건데, 어딘가에 취직하고 싶은 사람은 자신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없다는 감정을 가지고 있고, 또 사람을 찾는 사람들은 "쓸만한 사람이 없다"이 없다는 고통을 호소한다. 그야말로 사람은 많은데, 쓸만한 사람이 없다고 해석될 수도 있고, 또 정말 괜찮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그야말로 매칭 시스템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리쿠르트먼트 절차에도 약간의 문제가 있고, 또 그 기준에도 문제가 좀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내가 이사로 있는 어떤 공기업에서 대졸신입사원 수 백명을 얼마 전에 뽑았는데, 주위에서 지켜보니까... 정말 최근의 취업경쟁이 실감이 날 정도로 경쟁률도 살벌했고, 취직해야겠다는 사람들의 눈빛이 몇 년 전과는 확실히 달랐다.

요즘은 아닌데, 이런 대규모 공채가 막 끝나고 처음 취직한 직원들의 연수 프로그램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이것도 몇 년 되니까 시대의 흐름 같은 것들이 조금 있기는 하다. IMF 이전에 대규모 공채를 했을 때에는 대졸자들만 있었던 게 아니라 상고나 공고 출신들이 있었는데, IMF 이후에 내가 경험한 큰 공채에는 대졸자로 다 바뀌었고, 최근에는 대학원 졸업생은 물론이고 유학 갔다가 학위까지는 못 받고 중간에 돌아온 사람들이 많이 끼어있었다.

"좋은 직장"이라는 것의 기준도 많이 변한 것 같다. 나는 76학번과 77학번들하고 특히 친했는데, 박사과정 시절에 주로 이 사람들이 학위를 받을 때라서 같이 공부하던 시절의 주변 사람들이 이 또래가 많다. 그 사람들이 생각했던 좋은 직장과 내 친구들이 생각한 좋은 직장, 그리고 나와 같이 일하던 90년대 후반의 사람들과, 또 최근의 사람들의 좋은 직장에 대한 기준이 미세하지만, 중요한 변화들이 생겨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사람을 뽑을 때 가장 큰 기준은 "떠나지 않을 사람"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 얘기 같기도 하다. 불과 5~6년 지났을 뿐인데도 말이다.

내가 에너지관리공단에 팀장으로 직장을 옮길 때 옛날 친구들과 식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삼성화재에 있던 친구들만 따로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큰 이유는 아니고, 그 시절에 4시인가, 그렇게 퇴근을 하고 일찍 집에 가야하니까, 정말 아직 해가 남아있는 그런 때 술 마시기 시작해서 남들이 지하철 타고 퇴근할 때 완전히 떡이 되어서 돌아가던, 그런 삼성 친구들의 시절이라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 요즘 생각하면 최고의 직장이라는 평가를 받는 그런 삼성에 있던 친구들이 공단으로 간다고 얼마나 부러워하던지... 막상 월급 명세서를 받아보면 생각이 바뀔지 몰라도, IMF 직후에 삼성에 있는 친구들의 불안과 인생에 대한 회의도 대단했었다.

주변의 국회의원 몇 사람들과 간단한 얘기를 해봤는데 - 이 중에는 회사를 운영했던 사람들도 있다 - 영어 성적과 업무 실적 사이에는 특별한 상관관계가 없다는 점에 대부분 동의를 했다. 물론 영어를 잘 하면 특정한 업무는 더 잘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기는 하지만, 또 토플 성적 특히 GRE 성적과 영어를 잘 하는 것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약간 구상 중인데, 법률의 효력이 닿는 범위 내에 들어가 있는 공기업 채용에서 지금과 같은 영어 열풍을 좀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건 주택공사가 이미 시행한 적이 있는데, 영어능력시험을 한국어능력시험으로 바꾸었는데, 나름대로는 효과가 좋았다는 평가가 있던 것으로 들었다.

민간기업에서의 리쿠르트먼트에 대해서 법률로 이래라 저래라 하기는 어렵다. 그어야 완전 자기들 맘이기 때문에 특별히 뭐라고 할 것은 없는데, 그래도 대한민국이라는 일종의 통합 시스템에서 현대자동차나 삼성전자 같은 데에서 영어능력 대신에 조금 더 세밀화된 특수 직군으로 나눠서 리쿠르트먼트의 채용 기준을 만들면 어떨가라는 생각을 종종 해본다. 물론 진짜로 할 생각만 있다면, 굳이 법률같이 거창한 장치가 아니더라도 권고나 지원방침과 연계해서 시스템을 바꾸는 일은 해볼 수 있다.

일전의 서울시 공무원 채용 시험에 전국에서 몰려온 이 사건을 보고 소위 우리나라의 고위층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심각한 위기의식을 좀 느낀 것 같다. 이러한 대규모의 낭비를 두고서 이 나라가 굴러갈 수 있겠느냐... 아저씨들 고민은 그런 거다. 그런 생각의 연장선 내에서 온 국민이 별로 사용할 일도 없는 영어를 두고서 이 난리를 치는게 정상적인 일이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다.

이걸 시스템으로 해석해보면 이 문제를 풀기에 가장 좋은 길목이 리쿠르트먼트 기준을 바꾸는 일이다. 토플 점수 죽어라고 늘려봐야 별 도움 안된다는 방식으로 시스템이 진화하면 아마 가장 쉽고 빠르게 이 상황을 정상으로 돌릴 수 있을 것이다. 대학 입학과정이나 이런 데에는 의사결정 체계가 워낙 복잡해서 손 대기가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면 영어가 아니라면 뭘 하면 좋겠느냐? 국어도 있고, 국사도 있고, 수학도 있고, 물리도 있고, 원한다면 컴퓨터 프로그래밍 능력도 있을 수 있고... 어차피 누가 열심히 살았느냐를 평가하는 것이라면 영어 말고도 대안은 무긍무진하지 않을까?

가을이 건강이 좀 회복되면 2년 동안은 법률 만드는 일은 손 댄던 것이 없는데, 공기업부터 시작해서 소위 경제조직들 리쿠르트먼트 기준을 바꾸는 일을 좀 해볼까 목하 고민 중이다. 영어 말고 다른 걸로 평가한다고 해도 취업 준비의 비중이 줄어들거나 경쟁이 완화되지는 않는다. 그건 확실하다. 신자유주의 체계라고 되어 있는 이 상황에서 정규직 체계와 국가 생산체계가 전격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전환되기 전에는 취업의 살벌한 경쟁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확실하다.

그러나 기왕 취업을 위해서 머리 박고 공부해야 할 거라면 자신들에게도 뭐라도 좀 도움이 되는 방식의 공부를 해줄 수 있게 해주고, 기왕이면 공기업이나 민간기업에서 현장에서 조금 더 사용하기에 적합한 지식들을 습득하도록 해주는게 좋지 않겠는가? 게다가 이런 식으로 진화를 하면 최소한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의 이상한 영어 과외열풍은 조금이라도 완화시킬 수 있을 것 같다.

부담스러운 것은... 파스꾸아라는, 극우파와 초강경 우파 사이에 위험하게 선을 타는 아주 딱딱한 프랑스 정치인이 있었는데, 이 아저씨가 90년대 초반 시락이 이끄는 우파들이 내각을 장악하면서 만든 법안이 프랑스법, 그래서 공공용어는 전부 불어로 써야 하고, 음악방송에서도 프랑스 노래를 몇 퍼센트 꼭 틀어줘야 하고... 이런 극우파 분위기 풀풀 풍기는 법을 시행한 적이 있었다. 정부는 우파 정부였지만, 이 때의 불어공용 사용에 관한 법률은 상당히 극우파 분위기를 담보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전통적으로 보자면 영어 열풍을 줄이고, 그 대안으로 국어능력을 제시하는 것들은 좌파전통이라기 보다는 우파들 특히 극우파들이 종종 제시하는 정책이다. 그래서 영어 교육을 좀 완화시키고, 그 대안으로 국어나 수학 아니면 물리 같은 것들 혹은 철학 같은 것들을 제시하는 것들이 부담스럽기는 하다.

하여간 현재 대로라면... 지금의 시스템이 위기는 위기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한전이나 가스공사에서 영어 잘 해서 뭐하겠는가. 토공이나 주공과 같이 국민들을 상대로 봉사하는 공기업에서 영어능력은 내부 승진할 때 일정한 기준을 정해서 하는 정도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이건 온 국민이 영어만이 살 길이다라고 외치는 상황을 조금이라도 완화시키는게 좋지 않겠는가.

하여간 해보고 싶은게 몇 개 있기는 한데, 그 중에 리쿠르트먼트 기준을 바꾸는 일이 돈 많이 안들이고,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by 비나리 | 2007/07/15 12:21 | 그냥 잡담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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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비나리 at 2007/07/15 13:10
발라뒤르는 시라크가 임명했고, 당시 총선은 시락이 총지휘했었지요. 발뤼뒤르가 뒤에 시라크와 결별하고 독자 노선을 노골적으로 걸었던 것은 그 후의 일이구여. 문화장관은 작크 투봉이 맞기는 하는데, 이 일련의 강경파 흐름의 실질적인 수장에 해당하는 사람이 내무부 장관이었던 파쿠꾸아이구여...
Commented by 지수화풍 at 2007/07/15 16:55
저중 한곳에서 월급쟁이 하는사람입니다만.. 영어가 실무에 도움이되는경우가 있긴하죠,,기계매뉴얼볼때랑 (사실 볼일도 거의없슴)사람들 자랑할때..해외영업부서조차 영어 고둥학교정도의 실력만있으면 충분하더군요,,아마 우석훈님의 영어파괴?정책이 정부에먹혀든다면 취업생들의 원성이 자자할걸요,,아무리 좋은제도라도 준비생들은 하나의 통과시험일뿐,,도리어 다른걸로 전환하는것에대해 부담감을 느낄 뿐이랍니다. 게다가 국사가 시험이라면 토익장벽안에서 자기들만의 아성을 쌓았던 공기업준비생들이 피를 토할겁니다.ㅋㅋ 저도 생각없는 영어시험추종은 반대하지만,그래도 어떤 기준이 있써야 하는데 그나마 영어가 그런것같아요,,덕분에 토익회사가 때돈을 벌지만,갑자기 다른 시험대체를 한다는 것도 입안자는 그냥 대의적 행동이겟지만 초를다투며 불안함으로 시간시간을 보내는 수험생들한테는 극약처방일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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