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받았던 가장 기쁜 선물

나는 선물을 즐기는 편은 아니다.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다.

가장 기분 나빴던 선물은 강사 시절 스승의 날 학과장에게 주어야했던 선물이다. 딱 한 번 주었다. 그 시절에 내가 받았던 강사료가 25만원 정도로 기억나는데, 그 시간강사들이 무슨 돈이 있다고 스승의 날 현대 백화점에서 사왔을 것이 뻔한 쇼핑백이 줄을 서 있었다. 그 쇼핑백 줄 맨 뒤에 나도 먹어보지도 못하는 포도주 한 병을 놓고 학과장 방을 나왔던 것이 내가 주면서도 가장 기분 나빴던 선물이다.

다시는 이런 짓을 안하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정말로 다시는 그런 선물을 하지 않았다. 스승의 날 선물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고, 그건 지켰다. 물론 그 댓가는 가혹했지만, 나는 그 댓가를 달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가장 기뻤던 선물은 총리실 근무를 정리하고 에너지관리공단으로 돌아올 때 여직원들이 돈을 모아서 사주었던 잠바였다. 비싼 건 아니지만, 총리실에 왔다갔다 하는 수많은 파견근무자들 중에서 '여직원'이라고 불리는 초급 공무원들이 선물을 사준 것은 처음이라는 말을 건네 들었다. 그 때 내가 인생을 그렇게 막 살지는 않았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물론 내가 해준 것은 별 건 아니고, 파워포인트로 그림을 못 그려서 쩔쩔 매고 있을 때 그림 몇 번 대신 그려준 것, 엑셀 파일 작업 조금 도와준 것, 그런 아주 사소한 도움들이었는데, 5급과 6급 이하 직원 사이에 있는 큰 강 같은 것은 별로 인식하지 않고, 내가 하면 금방일텐데, 그녀들이 하면 몇 시간은 걸린 일을 약간 도와준 정도 이상은 아니다.

그래도 그 때의 선물은 기뻤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때 조금 배운 것 같다.

아마 그 기억이 없었다면 나는 안하무인형 인간이 되었을 확률이 높다. 사실 되돌아보면 나의 30대는 좀 그랬다. 그러나 가끔 그 때 받은 잠바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되면, 가슴이 조금 뭉클해지고,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조금 배우게 된다.

누군가 내가 주었던 선물을 가장 기쁜 선물이라고 기억하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그럴 자신이 없다. 그래도 불쾌한 선물이 되는 것보다는 아예 안 주는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성이 담긴 선물이 좋은 선물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이상하다. 나는 정성이 담긴 선물을 받으면, 머리카락이 쭈뼛해지고 무서워진다. 부담없고 무겁지 않은 것들이 좋다.

그런 점에서는 일본 사람들이 아주 마음에 든다. 일본 사회는 5천원에서 만 5천원 사이의 선물을 잘 발달시킨 사회이다. 그 이상 되는 것들을 주면 결례로 생각하고, 아주 작고 앙증맞은 것들을 선물로 발달시켰다. 골프 회원권, 이게 도대체 선물이냐? 주는 넘도 정신나간 넘들이고, 받는 넘은 미친 넘이다.

내 선물의 원칙은 CD 한 장을 넘지 않는 것이다.

(내 원칙에 비추면 택도없이 아주 비싼 선물이 택배로 배달되어 아파트 경비실에 와 있는데, 고민이 태산이다. 받자니 마음이 걸리고, 돌려 보내자니 그러기도 곤란하고...)

by 비나리 | 2007/06/15 04:11 | 파라독스 | 트랙백(2)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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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Luv Pill at 2007/06/17 18:18

제목 : 내가 받았던 가장 기쁜 선물
최근에 받았던 가장 기쁜 선물이라면....음악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일일이 선곡해서 블루스 명곡으로만 가득담아 구워다 준 씨디 6장_: 파랑새 님 고맙습니다_ (__)빈 그릇만 돌려주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며 예쁘게 담아주었던 맛난 군것질거리_: K양, 잘먹었어요 '-'귀찮아하면서도 늦은 밤, 집앞까지 데려다주고는 다시 되돌아갔던 고마운 기억_: S군, 땡깡부려서 쏘리,,길가다가 보고는 내 생각이 나서 샀다며 건네준 개구리 모양......more

Tracked from Remap the So.. at 2007/06/17 21:00

제목 : 가장 기쁜 선물
내가 받았던 가장 기쁜 선물 선물.. 글쎄.. 나도 그리 주고 받은 경험은 없다. 중학교 때 졸업하면서 정말 친한 친구에게 책 한권 대학교 때 정말 친한 선배 졸업할 때 책 한권 두 번 뿐이지만 내 주력은 아무래도 책인가 한다. 전자는 너무 오래되서 모르겠고, 후자의 경우에는 내 선물이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았으리라 사료된다. 받고도 정말 기쁜 선물.... 초속 5cm를 보면서 느꼈던 은은한 감......more

Commented by apoptosis at 2007/06/15 04:16
안녕하세요..랜덤타고 들렸습니다.
공감이 많은 글이라 이리 덧글달게 되는군요..
정말이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선물을 주고 받는 사회였음 하는 바램입니다..
^^;;
Commented by 아뤼 at 2007/06/15 08:11
전에는 몰랐는데 사회생활하면서부터 저도 이런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저도 작고 싸도 , 실용적이거나 오래두고 볼수있는 장식품같은것을 선물받고 선물해주길 선호하게 되더군요...^^ 추천합니다!
Commented by ephemera at 2007/06/15 08:14
저도 CD 한장, 책 한권이 딱 좋더군요.
Commented by 장서 at 2007/06/15 09:22
아기자기한 타협들은 지나고 보면 조용한 소금들이었고 두고두고 되새기곤 합니다.
반면에 그렇지 못한 경우들은 자명종 같은 확성기를 마치 마음에 지닌듯, 비슷한 경우들앞에 요란하게 울리더군요.
아무나 가질 수 없는것은 죄악이다! 강팍한 신념같지만...
내가 원칙과 신념들을 허물어 타협한다면 세상을 향해 떠드는 내 소리들은 분명 위선이지 싶어요.
Commented by 연애편지 at 2007/06/15 10:15
부담이 가지 않는 선에서 적당한것 같아요..
Commented by JoysTiq at 2007/06/15 16:08
잘 읽었습니다. 공감이 가는 글이군요. 저도 여태까지 정말 기뻤던 선물보다, 그저 저도 줬기 때문에 받았던 그런 선물들이 많은 것 같아요. 난 어떻게 살아왔었나 돌아보게 되네요.
Commented by 은현 at 2007/06/15 17:15
감동을 주는 선물이라 힘든 문제에요;
Commented by kidkaito at 2007/06/15 19:13
이오공감 타고왔어요.. 확실히 공감가는 말이예요. 의례적으로 받는 그런 선물보다는.. 아이가 거리낌 없이 주는 과자 한조각이 저에겐 더욱 고맙게 여겨져요.. 비싼건 나를 기분좋게 해주는것이다. 가 아닌거죠. 무슨 날이라고 해서 받는 선물보다는 작게작게 고마움을 표시해주는 선물이 더 좋아요.
Commented by 뉴비틀타고슝 at 2007/06/16 00:00
마음가짐 배우고 갑니다.
Commented by 워니홍 at 2007/06/16 01:55
이오공감에서 왔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담긴, 기쁜 선물을 받는건 참 좋은거 같아요. 선물이란 사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기뻐야 하는 건데 그게 의무가 되고 부담이 되는 경우가 많은거 같아요.
Commented by 제절초 at 2007/06/16 10:02
선물의 기쁨은 해준다는데 있다고 생각해요.(웃음) 작지만 서로에게 부담이 없을만한 가벼운 책 한 권, 꽃 몇 송이, 과일 몇 개. 이런게 참 좋은 선물이겠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LaJune at 2007/06/16 15:06
정말 좋은 선물, 상대에게 기쁨을 주는 선물은 하기도 힘들고 받기도 힘들지요.
Commented by ppink at 2007/06/16 16:15
제가 받은 선물 중 제일 기뻤던 것은
그분이 새벽시장에서 고르고 고른 재료로 손수 만들어주신 귀걸이랍니다.^^
값을 떠나서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눈물날뻔했어요.

전 쿠키나 파이를 구워서 그분이 좋아할만한 책을 골라서 같이 드립니다.
역시 마음이 담긴 선물이 최고죠 ^^b
Commented by eunky at 2007/06/17 09:12
열심히 골랐을 보석같이 숨어있던 책 한 권,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요 : )
Commented by greenmovie at 2007/06/17 22:45
이오공감 타고 왔습니다. 돈으로 치장해서 주는 선물은 이미 선물이 아니고 뇌물인데 마음도 없는 그 따위 받는 사람들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짧고 간결한데 여운이 깁니다.^^
Commented by 루크 at 2007/06/28 02:33
저도 이오타고 왔습니다.
선물이 지나치면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죠.
하지만 상대를 기쁘게 할 선물 고르는 건 너무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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