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6월 15일
내가 받았던 가장 기쁜 선물
나는 선물을 즐기는 편은 아니다.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다.
가장 기분 나빴던 선물은 강사 시절 스승의 날 학과장에게 주어야했던 선물이다. 딱 한 번 주었다. 그 시절에 내가 받았던 강사료가 25만원 정도로 기억나는데, 그 시간강사들이 무슨 돈이 있다고 스승의 날 현대 백화점에서 사왔을 것이 뻔한 쇼핑백이 줄을 서 있었다. 그 쇼핑백 줄 맨 뒤에 나도 먹어보지도 못하는 포도주 한 병을 놓고 학과장 방을 나왔던 것이 내가 주면서도 가장 기분 나빴던 선물이다.
다시는 이런 짓을 안하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정말로 다시는 그런 선물을 하지 않았다. 스승의 날 선물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고, 그건 지켰다. 물론 그 댓가는 가혹했지만, 나는 그 댓가를 달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가장 기뻤던 선물은 총리실 근무를 정리하고 에너지관리공단으로 돌아올 때 여직원들이 돈을 모아서 사주었던 잠바였다. 비싼 건 아니지만, 총리실에 왔다갔다 하는 수많은 파견근무자들 중에서 '여직원'이라고 불리는 초급 공무원들이 선물을 사준 것은 처음이라는 말을 건네 들었다. 그 때 내가 인생을 그렇게 막 살지는 않았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물론 내가 해준 것은 별 건 아니고, 파워포인트로 그림을 못 그려서 쩔쩔 매고 있을 때 그림 몇 번 대신 그려준 것, 엑셀 파일 작업 조금 도와준 것, 그런 아주 사소한 도움들이었는데, 5급과 6급 이하 직원 사이에 있는 큰 강 같은 것은 별로 인식하지 않고, 내가 하면 금방일텐데, 그녀들이 하면 몇 시간은 걸린 일을 약간 도와준 정도 이상은 아니다.
그래도 그 때의 선물은 기뻤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때 조금 배운 것 같다.
아마 그 기억이 없었다면 나는 안하무인형 인간이 되었을 확률이 높다. 사실 되돌아보면 나의 30대는 좀 그랬다. 그러나 가끔 그 때 받은 잠바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되면, 가슴이 조금 뭉클해지고,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조금 배우게 된다.
누군가 내가 주었던 선물을 가장 기쁜 선물이라고 기억하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그럴 자신이 없다. 그래도 불쾌한 선물이 되는 것보다는 아예 안 주는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성이 담긴 선물이 좋은 선물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이상하다. 나는 정성이 담긴 선물을 받으면, 머리카락이 쭈뼛해지고 무서워진다. 부담없고 무겁지 않은 것들이 좋다.
그런 점에서는 일본 사람들이 아주 마음에 든다. 일본 사회는 5천원에서 만 5천원 사이의 선물을 잘 발달시킨 사회이다. 그 이상 되는 것들을 주면 결례로 생각하고, 아주 작고 앙증맞은 것들을 선물로 발달시켰다. 골프 회원권, 이게 도대체 선물이냐? 주는 넘도 정신나간 넘들이고, 받는 넘은 미친 넘이다.
내 선물의 원칙은 CD 한 장을 넘지 않는 것이다.
(내 원칙에 비추면 택도없이 아주 비싼 선물이 택배로 배달되어 아파트 경비실에 와 있는데, 고민이 태산이다. 받자니 마음이 걸리고, 돌려 보내자니 그러기도 곤란하고...)
# by | 2007/06/15 04:11 | 파라독스 | 트랙백(2)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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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가장 기쁜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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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이 많은 글이라 이리 덧글달게 되는군요..
정말이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선물을 주고 받는 사회였음 하는 바램입니다..
^^;;
그래서 저도 작고 싸도 , 실용적이거나 오래두고 볼수있는 장식품같은것을 선물받고 선물해주길 선호하게 되더군요...^^ 추천합니다!
반면에 그렇지 못한 경우들은 자명종 같은 확성기를 마치 마음에 지닌듯, 비슷한 경우들앞에 요란하게 울리더군요.
아무나 가질 수 없는것은 죄악이다! 강팍한 신념같지만...
내가 원칙과 신념들을 허물어 타협한다면 세상을 향해 떠드는 내 소리들은 분명 위선이지 싶어요.
그렇게 마음이 담긴, 기쁜 선물을 받는건 참 좋은거 같아요. 선물이란 사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기뻐야 하는 건데 그게 의무가 되고 부담이 되는 경우가 많은거 같아요.
그분이 새벽시장에서 고르고 고른 재료로 손수 만들어주신 귀걸이랍니다.^^
값을 떠나서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눈물날뻔했어요.
전 쿠키나 파이를 구워서 그분이 좋아할만한 책을 골라서 같이 드립니다.
역시 마음이 담긴 선물이 최고죠 ^^b
선물이 지나치면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죠.
하지만 상대를 기쁘게 할 선물 고르는 건 너무 어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