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6월 15일
눈은 정말 믿을 것이 못된다
사람의 얼굴은 참 묘한 존재다. 그 얇은 피부로 약간의 묘함을 가지고 구분되는 이 작은 차이로 생겨나는 표정과 얼굴의 차이, 그런 것들에서 읽을 수 있는 것들은 참 표하다.
난 내 얼굴이 싫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이 얼굴을 싫어했는데, 어쩌겠나. 그래도 고칠 생각은 안 해본 것이, 막상 고칠려고 생각하면 고칠 데가 한 두 군데가 아닌 것 같아서 그냥 이 얼굴로 살아가기로 고등학교 3학년 때 마음을 먹었다.
얼굴을 고쳤으면 인생이 바뀌었을까?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얼굴을 고쳐서라도 인생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면 아마 치료의 대상은 얼굴이 아니라 마음일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마음을 고쳐먹으면 삶이 바뀌지만, 얼굴을 고쳐서 삶이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요즘은 얼굴을 고치면 인생이 바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믾기는 정말 많다.
수경스님은 잘 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보고 있드면 기분이 좋아지는 얼굴이다. 삼십년 면벽을 했다는데, 그 벽이 얼굴도 바꾸었을까? 삼보일배 때 생긴 녹내장으로 인하여 짙은 선그라스를 끼고 계시는데, 하여간 그 얼굴은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불경 원전연구에서는 선생격인 종림스님의 얼굴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난 그런 얼굴은 아니다. 어쩌겠는가. 이 얼굴로 나머지 삶을 받아들일 생각이다.
정치인 중에서 보고만 있어도 기분 좋아지는 얼굴을 가진 사람이 있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못 봤다. 너무 마음 고생들을 많이 해서 그런 것 같다. 개인적인 삶으로만 보면 참 안된 사람들이다. 화려한 것 같지만, 그 화려함은 자신의 것이 아니고, 사람의 삶으로 친다면 행복한 삶은 아닌 것 같다.
케네디는 사진으로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얼굴이기는 하다. 그의 사생활의 힘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철학의 힘도 아닐 것 같지만, 뭐가 케네디에게 그렇게 멋진 얼굴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는지 잘 모르겠다.
난 언제부터인가 눈을 거의 믿지 않는다. 내 눈으로 판단한 것들은 대부분 틀렸다. 그래서 나는 눈을 믿지는 않는다. 내가 선량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들은 거의 틀렸다. 사실은 마음 속에 독사가 또아리를 튼 것처럼 불쾌한 기억만을 남긴 사람들이 대부분 잘 생기고, 멋졌다. 그래서 내 눈을 잘 믿지 않는다.
내 눈이 나에게 판단하도록 만든 것들은 대부분 틀렸다. 내가 내 눈을 믿던 시절, 나는 우울증 중증이었고,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심한 대인기피증의 상처를 나에게 남겨주었다.
사람? 난 거의 믿지 않는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사람들과 만나야 하는 일이 생기기 때문에 몇 년 전부터는 눈을 감는다. 눈을 감으면 목소리가 들리고, 숨쉬는 호흡과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횡경막과 성대가 떨리는 모습들이 보이게 된다.
눈을 감으면, 많은 경우 저 사람이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진실이 아닌 것을 말하고 있는지, 편하게 말을 하고 있는지, 잔뜩 긴장하고 말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전화 목소리로도 진실을 말하는지 아니면 다른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목소리는 표정과 얼굴 보다는 조금 더 진실을 말해주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눈을 감고, 목소리와 소리로 많은 것을 판단한다. 그러나 이 판단도 종종 틀린다. 어쩌면 그렇게 천연덕스러운 목소리로 거짓말을 말할 수 있는지 참 신기하기도 하다.
편하게 해주는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종종 있기는 하다.
눈은 사람에게 가장 많은 정보를 주는 감각기관이지만, 가장 많은 오류를 주는 기관이기도 하다. 나는 눈보다는 귀가 더 발달한 편이다. 세상은 공평하다. 내 눈은 형편없이 아주 최소한의 정보를, 그것도 틀린 정보를 주지만, 그 대신 귀가 발달해서, 목소리와 목소리의 작은 떨림으로 많은 것들을 판단한다.
그러나 정말 발달시켜야 할 것은 마음이다. 나는 아직 마음을 읽을 경지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목소리를 들으면 저 사람이 분노한 상태인지, 아닌지는 알 수 있지만, 정말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지는 그것만으로 잘 모른다.
이제 마흔, 겨우 눈을 감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상태에 왔다. 예순이 되면 눈을 감고, 소리도 막고,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상태에 갈 수 있을까? 그건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진실을 안다는 것은 고통스럽기는 하겠지만, 가보고 싶은 경지이기는 하다.
나이 마흔이 되면서 생각해보니까, 좌파인가, 우파인가, 그런 건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다. 누구나 조금씩 치사하고, 누구나 조금씩 진실하다. 그래서 스무살 때에는 도저히 하지 못할 것 같은 진실하지 못한 사람과도 밥을 가끔은 같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거짓 위에 자신의 삶을 세운 사람들은 여전히 싫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걸러내고 내 주위에서 물리치려고 조금 노력하는 편이다.
최근에 만난 젊은 활동가들이 몇 명 있다. 그들은 너무 분노하고 있었는데, 정작 자신이 왜 분노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안타까왔다. 최근에 본 정치인들이 몇 명 있다. 그들은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몇 가지 얘기를 했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사람들의 목소리에서 진실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은 이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경지에는 가지 못햇고,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마흔이 되면 그래도 자신의 것을 일부 내어줄 수 있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는 것 같은데, 어떤 사람들은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들의 생이 결국에는 불행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예상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점은 아니다.
정말로 아름다운 사람은 눈을 감고, 목소리도 듣지 않아도, 아름다운 마음이 전해지는 그런 사람일 것이다. 나도 그런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싶은데, 방법을 잘 모르겠다.
눈을 감는 것은 자기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지는 못한다. 나이 마흔, 아직은 "아름다움"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나이인 것 같다.
난 내 얼굴이 싫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이 얼굴을 싫어했는데, 어쩌겠나. 그래도 고칠 생각은 안 해본 것이, 막상 고칠려고 생각하면 고칠 데가 한 두 군데가 아닌 것 같아서 그냥 이 얼굴로 살아가기로 고등학교 3학년 때 마음을 먹었다.
얼굴을 고쳤으면 인생이 바뀌었을까?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얼굴을 고쳐서라도 인생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면 아마 치료의 대상은 얼굴이 아니라 마음일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마음을 고쳐먹으면 삶이 바뀌지만, 얼굴을 고쳐서 삶이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요즘은 얼굴을 고치면 인생이 바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믾기는 정말 많다.
수경스님은 잘 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보고 있드면 기분이 좋아지는 얼굴이다. 삼십년 면벽을 했다는데, 그 벽이 얼굴도 바꾸었을까? 삼보일배 때 생긴 녹내장으로 인하여 짙은 선그라스를 끼고 계시는데, 하여간 그 얼굴은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불경 원전연구에서는 선생격인 종림스님의 얼굴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난 그런 얼굴은 아니다. 어쩌겠는가. 이 얼굴로 나머지 삶을 받아들일 생각이다.
정치인 중에서 보고만 있어도 기분 좋아지는 얼굴을 가진 사람이 있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못 봤다. 너무 마음 고생들을 많이 해서 그런 것 같다. 개인적인 삶으로만 보면 참 안된 사람들이다. 화려한 것 같지만, 그 화려함은 자신의 것이 아니고, 사람의 삶으로 친다면 행복한 삶은 아닌 것 같다.
케네디는 사진으로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얼굴이기는 하다. 그의 사생활의 힘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철학의 힘도 아닐 것 같지만, 뭐가 케네디에게 그렇게 멋진 얼굴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는지 잘 모르겠다.
난 언제부터인가 눈을 거의 믿지 않는다. 내 눈으로 판단한 것들은 대부분 틀렸다. 그래서 나는 눈을 믿지는 않는다. 내가 선량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들은 거의 틀렸다. 사실은 마음 속에 독사가 또아리를 튼 것처럼 불쾌한 기억만을 남긴 사람들이 대부분 잘 생기고, 멋졌다. 그래서 내 눈을 잘 믿지 않는다.
내 눈이 나에게 판단하도록 만든 것들은 대부분 틀렸다. 내가 내 눈을 믿던 시절, 나는 우울증 중증이었고,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심한 대인기피증의 상처를 나에게 남겨주었다.
사람? 난 거의 믿지 않는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사람들과 만나야 하는 일이 생기기 때문에 몇 년 전부터는 눈을 감는다. 눈을 감으면 목소리가 들리고, 숨쉬는 호흡과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횡경막과 성대가 떨리는 모습들이 보이게 된다.
눈을 감으면, 많은 경우 저 사람이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진실이 아닌 것을 말하고 있는지, 편하게 말을 하고 있는지, 잔뜩 긴장하고 말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전화 목소리로도 진실을 말하는지 아니면 다른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목소리는 표정과 얼굴 보다는 조금 더 진실을 말해주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눈을 감고, 목소리와 소리로 많은 것을 판단한다. 그러나 이 판단도 종종 틀린다. 어쩌면 그렇게 천연덕스러운 목소리로 거짓말을 말할 수 있는지 참 신기하기도 하다.
편하게 해주는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종종 있기는 하다.
눈은 사람에게 가장 많은 정보를 주는 감각기관이지만, 가장 많은 오류를 주는 기관이기도 하다. 나는 눈보다는 귀가 더 발달한 편이다. 세상은 공평하다. 내 눈은 형편없이 아주 최소한의 정보를, 그것도 틀린 정보를 주지만, 그 대신 귀가 발달해서, 목소리와 목소리의 작은 떨림으로 많은 것들을 판단한다.
그러나 정말 발달시켜야 할 것은 마음이다. 나는 아직 마음을 읽을 경지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목소리를 들으면 저 사람이 분노한 상태인지, 아닌지는 알 수 있지만, 정말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지는 그것만으로 잘 모른다.
이제 마흔, 겨우 눈을 감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상태에 왔다. 예순이 되면 눈을 감고, 소리도 막고,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상태에 갈 수 있을까? 그건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진실을 안다는 것은 고통스럽기는 하겠지만, 가보고 싶은 경지이기는 하다.
나이 마흔이 되면서 생각해보니까, 좌파인가, 우파인가, 그런 건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다. 누구나 조금씩 치사하고, 누구나 조금씩 진실하다. 그래서 스무살 때에는 도저히 하지 못할 것 같은 진실하지 못한 사람과도 밥을 가끔은 같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거짓 위에 자신의 삶을 세운 사람들은 여전히 싫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걸러내고 내 주위에서 물리치려고 조금 노력하는 편이다.
최근에 만난 젊은 활동가들이 몇 명 있다. 그들은 너무 분노하고 있었는데, 정작 자신이 왜 분노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안타까왔다. 최근에 본 정치인들이 몇 명 있다. 그들은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몇 가지 얘기를 했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사람들의 목소리에서 진실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은 이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경지에는 가지 못햇고,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마흔이 되면 그래도 자신의 것을 일부 내어줄 수 있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는 것 같은데, 어떤 사람들은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들의 생이 결국에는 불행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예상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점은 아니다.
정말로 아름다운 사람은 눈을 감고, 목소리도 듣지 않아도, 아름다운 마음이 전해지는 그런 사람일 것이다. 나도 그런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싶은데, 방법을 잘 모르겠다.
눈을 감는 것은 자기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지는 못한다. 나이 마흔, 아직은 "아름다움"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나이인 것 같다.
# by | 2007/06/15 03:01 | 파라독스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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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잖아요...^^
자신을 아는 사람보다 더 현명한 사람은 없을것 같아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