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6월 07일
여성 인물 이야기 7 : 로자 룩셈부르크

(56-57)
"우리는 지금 더 나쁜 쪽으로 나아가고 있어."
마지막 모임이 끝나자마자 로자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고집센 사람들은 폴란드의 독립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고 있어. 그 다음에 노동자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투쟁한다는 거야. 하지만 만약 모든 노동자들이 단결하지 못한다면 국가가 국경에 대한 구분도 없는 거야. 지금 상황에서 폴란드가 독립한다고 해도 노동자들에게 좋아질 건 없어. 공장 주인이 러시아 사람에서 폴란드 사람으로 바뀌는 것일 뿐이야!"
"그렇지만 너도 기왕이면 같은 동포한테 창취당하는 게 낫지 않나?"
로자를 발끈하게 만드는 걸 좋아하는 바르스키가 끼어들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널 죽여 버릴 거야!"
"우리에게 화내 봤자 소용 없는 일이야. 로자, 너는 항상 민주 정치론자라는 걸 과시하쟎아. 민족주의를 상대로 멋진 의견을 준비해서 회의 때 발표하자. 거기서 그 의견을 통과시키는 거야. 국제노동자 협회가 몇 달 남지 않았어."
(60)
'노동 대의' 첫 호는 정확하게 1893년 7월에 나왔다. 사설은 필명으로 로자가 썼다. 자본주의를 상대로 한 투쟁, 러시아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투쟁, 그리고 폴란드를 포함한 모든 나라의 노동 운동에 대해 국제적으로 옹하하는 내용이었다. 폴란드 사회당에서는 이 모든 일에 크게 화를 냈다. 자신들을 폴란드 사회주의자라고 선언한 피라미들이 어떻게 감히 조국 폴란드의 독립 문제를 완전히 무시한 내용의 사설을 쓸 수 있는가?
(130)
그런데 얼마 전부터 로자가 걱정하는 일이 있었다. 독일 사회민주당의 지도자들이 러시아 황제의 영토 확장 정책과 식민지 정책을 점점 더 강력하게 지지한다는 사실이었다. 독일에서만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유럽 전체가 긴장된 분위기였다. 그러나 로자는 식민지배자인 러시아 황제의 정책을 결코 따를 수 없었다.
_________________
내 글은 종종 여자의 글이라는 오해를 받는다. 최소한 고등학교 때 부터는 여고생의 글이라는 오해를 받았고, 대학교 때 내가 쓴 글들도 서명이 없었다면 여학생이 쓴 글로 종종 오해를 받고는 했다. 문을 닫은 이메일 계정들의 일부에는 "이 년"으로 시작하는 욕과 협박이 가득 담긴 멜들은 이제 지겨워서 아예 열어보지 않은지 오래 된다.
아이세움 출판사에서 나온 "로자 룩셈부르크 : 불꽃 같은 삶을 산 여성 혁명가"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책은 여성 인물 이야기 시리즈의 7번이다. 8번은 마거릿 미드이다.
오래된 책은 결코 아니다. 2006년 2월에 나온 책이고, 임지현이 해설을 붙였다. 내 주위에는 임지현에 대해서 "별 거 없다"고 혹평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제로 내가 임지현의 글을 읽은 것은 이 해설이 처음이다.
잘 썼다. 로자가 얼마나 감성적인가를 설명하는 데에 너무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내가 알고 있는 로자와 임지현이 소개한 로자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지독한 사회주의자에게 "붉은 창녀"라고 부르지 않는 것이 어디인가! '꺽어진 장미'가 사회주의자들이 로자에게 붙여준 최고의 호칭이지만, 지금도 로자는 '붉은 창녀'라는 이름으로 주로 불린다.
핑크빛 표지를 달고 있는 이 책은 가능하면 소녀들이 읽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득 담고 있는 책이다. 약간 유치하기도 하지만, 나는 이런 유치한 종류의 위인전을 즐겨 읽는 편이다. 어슬프게 잘 모르면서 이론적인 견해를 억지로 담으려고 하는 평전 보다는 아예 "독자에게 감동을"이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크게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담아낸 책들이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어 더 편하다. 평전은 그 시대의 맥락 속에서는 감동적이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버려도 오히려 우스꽝스러운 주장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사실 나도 로자 룩셈부르크의 평전을 쓰기 위해서 준비했던 적이 있었다. 아마 이 책이 준비되었던 시기와 비슷한 시기였을 것 같다. 로자 룩셈부르크, 조안 로빈슨 그리고 도넬라 메도우즈, 이 세 사람을 소개하는 책을 생각했었던 적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소녀들과 나는 대화하는 법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잠시 접어놓은 적이 있었다.
우연일지 아닌지는 모른다. 경제학자로서 나를 만든 이론틀은 공교롭게도 세 명의 여성학자들이었다. 여기에 한 명을 더 집어넣으라면 센의 전부인인 센이 들어갈 것이다.
_______
우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소설로 엮인 소녀들을 위한 로자룩셈부르크 전기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정치적 논의와 너무 똑같다. 이래서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인가? 폴란드와 러시아 그리고 독일 사이의 관계와 그 속에서 진행되는 수많은 토론들이 마치 한겨레, 조선, 창비를 놓고 풀어보면 정확하게 일치할 정도로 같다. 참 신기한 일이다.
다른 점은... 불행히도 스팔타쿠스당이 없다. 로자가 우리에게는 없어서 그런가?
한신대의 김윤자 선생이 계시다. 싫어하는 사람은 아주 싫어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아주 좋아하는 분이다. 자주 만나서 얘기하거나 토론하는 관계는 아니지만, 내가 선배로서 드물게 존경하는 분이다.
김윤자 선생이 조금 더 섬세하였다면 로자 같은 사람이 되었을까? 내가 정치경제학을 공부하던 시절에는 여학우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잘 모른다. 그 중에 한 명이 지금은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연봉이 1억원이 넘어갔다.
내가 돈이 없어서 생활을 꾸려나가는 것도 곤경에 처했던 순간에 다른 친구를 통해서 도와주겠다는 말을 건네 듣기는 했지만, 마음만 고맙게 받겠다고 했다. 아마 그녀가 조금만 더 문학적 감성이 있었거나 교회를 조금만 덜 열심히 나갔다면 로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시절에 "레닌을 존경한다"고 했던 여학우가 두 명이 있었다. 한 명은 치과에 치열교정 받으러 갔다가 인생을 교정하게 되었다는 뒷얘기를 남기면서 치과의사와 결혼했다. 또 한 명은 미국에서 아주 유명한 국제변호사가 되어서 연봉을 가늠할 수 없는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가끔 그 시절에 로자나 힐퍼딩 같은 책들을 읽던 시절들이 생각나고, 그 시절의 그렇게 강력한 포스를 구사하던 그녀들의 삶에 대해서 궁금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대장금의 김영현 선배가 같은 그룹에서 책을 읽었던 사람 중의 한 명이다.
_________
지금의 10대들이 이 로자 룩셈부르크의 소설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하기는 하다. 옛날에는 숨어서 읽던 이런 책들이 이제는 "청소년을 위한 마시멜로 이야기"와 말도 되지 않는 그림으로 보는 경제학책과 같이 꽂혀서 경쟁하는 중이다. 경쟁이 될리가 없다.
이 책을 찾아보니까 졸저 <아픈 아이들의 세대>보다 더 알라딘 포인트가 낮다. 어느 정도 팔렸는지 금방 감이 온다. 내 책 보다도 안 팔렸으면 심각한 상태일 것이다.
그래도 꿋꿋하게 책을 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오히려 뭉클한 느낌이 들었다.
임지현도 해설은 공들여서 썼다. 이 해설을 읽기 위해서라도 8,000원의 지불 비용은 거의 헐값이다. 주위에 10대 소녀가 있다면 이 책을 선물해주시기 바란다.
인류가 배출한 가장 멋진 여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 by | 2007/06/07 03:38 | 책 이야기 | 트랙백 | 핑백(1) | 덧글(5)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경제학자 우석훈의 추천글을 보고 읽게 된 책. 폴란드 출신의 국제 사회주의자를 소개한 청소년용 위인전인데, 단숨에 읽게 된다. 길지 않은 분량에다가 중간중간 그림들도 참 예쁘고, 혁 ... more
당시 그누나는 굉장히 자상하기도하지만 화날때는 자기분을못이겨서 펄펄뛰고 그런 정신적 극단성때문인지 나중에는 괴장히 몸이 아펐다는,,근데 위에 쓰신 지인여성분들 얘기는 좀 비판의?어조로 들리는듯해요,,
하긴 소위 예전에 운동했다는 여성분들..많이들 부르조아가 되긴 하더라구요,,남자도 그렇긴하지만..
여자들은 정말 남자따라 인생이 바뀌는건지..알수없네요,,
지금까지 거칠고 딱딱했던 스탈린주의자들이 사회주의자라고 생각했지만
로자를 보면 생각이 바뀐다는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