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6월 01일
표지에 대한 원래 내 생각
나는 제목은 좀 신경쓰는 편인데, 내가 썼던 제목 중에서 내 마음에 드는 제목은 '음식국부론' 딱 하나다. 그런데 제목 때문에 안 팔린다는 원성을 듣고, 2판 때 이 제목도 뺏겼다. 원래 난 자존심 다 털어버리고 사는 C급 경제학자다.
음식국부론은 두고두고 마음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책이다. 편집 과정에 짤린 내용들 - 거의 절반이 짤렸다 - 중에 정말 재밌는 얘기가 많았는데, 그 충격으로 다시는 음식 얘기는 쓰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을 했다.
표지에 대해서 내가 경험적으로 알게 된 것은... 별 상관없다이다. 제목도... 사실 판매와는 별 상관없다. 돈을 아주 많이 들였서 디자인한 적도 있고, 아주 조금 들여서 디자인한 적도 있고, 제목도 몇 가지 버전으로 사람들이 다양하게 시도했었는데, 결론은...
다 안 팔렸다...
그래서 내 경험상으로는 "상관없다"이다. 홍기빈 박사가 냈던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작년에 책 표지 디자인상을 받았는데. 이 책도 겁나게 안 팔렸다. 제목 때문에 안 팔렸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는데 내 생각으로는 제목을 바꾸어도 안 팔릴 거다. 무조건 안 산다는 데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내 책은?
무조건 안 팔린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결국 진화하게 되는 방향이 표지에 돈 들이지 않고,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고, 그저 책 비슷하게 생기면 그만이라는게 평소 지론이다.
왜 안 팔리나? 물론 내용이 개판이라서 안 팔리는 거다. 냉정하지만 이게 진실이다. 그래서 표지나 제목으로 진화할 생각은 별로 없고, 공을 들인다면 내용에 더 공을 들이려고 하는 편이다. 사회과학, 무조건 천 권 팔리는 시장이고, 그나마 운이 안 좋으면 50권에서 60권 팔리고 마는 시장에 내가 서 있다. 표지, 제목, 다 중요하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표지 예쁘다고 책을 사지는 않을 것이다. 대체적으로 그렇다.
나도 나를 돌아보면 책 표지 보고 책 산 적은 한 번도 없고, 제목 보고 책 산 적도 없다. 내 책처럼 골 아프고 따분한 책을 살 사람들은 다른 함수로 움직이게 되는데, 그야말로 내용이 없으면 어떤 재주를 부려도 도통 소용없는, 바로 사회과학이 내가 움직이는 분야인 셈이다.
"88만원 세대"는 출판쟁이들이 안 팔릴 거라고 이미 품평이 끝난 책이다. 그래서 출판사 찾기가 어려웠고, 내가 내린 선택은 정통파 방식이다. 20대가 읽지 않을 20대 얘기라서, 출발부터 비극 속에서 잉태된 책이다. 대체적인 분석은 다른 해 같았으면 5,000~6,000부는 무난히 넘기고 만 권도 기대할 수 있는 책이지만, 지금 같아서는 천 권 겨우 넘길 가능성이 높다는게 냉정한 판단이라고 한다.
20대가 아마 100권 이상 사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 판단은 섬뜻하도록 냉정하지만, 내가 객관적으로 생각해봐도 아마 100명 정도의 20대가 사는 선을 넘어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이 책을 주로 살 고객이라고 사람들이 분석해준 것은 386 일부와 50대 일부란다. 한겨레 신문 읽는 사람들과 월간조선 사보는 딱 두 집단이 우리나라에서 사회과학을 사는 집단인데, 이 책 역시 그 범주에 들어간다. 그래서 몇 개의 출판사에서 나에게 요구한 것이 기왕 그렇다면 386 취향에 딱 맞춰서 다시 써달라는 것이었다. 그건 내가 못한다고 그랬다. 그 과정에서 두 달이 지난 것인데, 지금은 다들 지친 데다가 돈도 없어서 뭘 더 해보기가 쉽지가 않다.
더 늦어지면, 이 책이 안 팔리는 것 까지는 괜찮은데 다음 일정이 무너져서 이것도 곤란하다. 간단한 문제인데, 전면 개정을 할 것인지 마이너 튜닝만 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만 내려지면 된다. 6월에 나올 것인지 7월에 나올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와 비슷하다.
출판사의 판단은 대체적으로 냉정하다. 내 이름은 평소에 5천부, 요즘은 천 부짜리 이름이다. 아주 강력한 예산제약에 걸려있는 셈이다. 요즘처럼 왜 20대 문제같이 골 아픈 문제에 손을 댔는지 후회하는 때가 없다. 책 내기가 너무 힘들어서 정말로 요즘은 후회한다. 힘들어도 너무 힘들다. 전체의 힘을 100이라고 한다면 책 쓰는데 쓴 힘은 20밖에 안되고, 나머지 80은 출판사 찾고 출판사랑 신랑이 하거나 원고 쓰는 것과 상관없는 일을 해결하는데 쓴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만약에 '모욕'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이 책만큼 나에게 많은 모욕을 준 책은 없었다. 내가 이런 모욕을 당하면서까지 책을 내야하는 생각이 굴뚝 같았는데, 아마 공저자인 박권일씨가 없었다면 벌써 이 책 원고는 다른 책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쓰레기통에 들어갔을 것이다. 원래 나는 자존심도 없고, 어지간한 모욕은 잘 참는데, 이 책과 관련해서는 참기 어려운 경우를 몇 번 당했다.
딱 한 번... 억울해서 울었다. 사람들은 공저자인 박권일씨의 기여에 대해서 가끔 질문하는데, 그가 없었다면 이 책은 벌써 몇 달 전에 쓰레기통으로 들어갔을 책이다. 나는 나의 원고를 쓰레기통으로 보내는데 망설이거나 아까와하는 인간형이 절대로 아니다. 작년에만 네 권의 책이 쓰레기통에 들어갔다(윈도우 바탕 화면의 쓰레기통에 원고지 1,200매 짜리 원고를 집어넣고 정말 지우겠느냐는 질문에, 당연하지라고 클릭 하는 순간의 쾌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에디터나 사장이 나에게 뭐라고 한 마디만 하면 지체없이 나는 쓰레기통을 선택한다.)
이 책은 정말이지 박권일씨가 겪게 될 곤욕이 아니었다면 쓰레기통행을 피하기 어려운 운명이었다.
참 난감하다. "아픈 아이들의 세대 2'를 쓰레기통에 보냈던 순간과 "청소년을 위한 경제학 입문'이라는 책을 쓰레기통으로 보내고 클릭했던 순간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더 이상 이 원고를 이렇게 고쳐라 저렇게 고쳐라는 참기 어려운 주문들을 들어도 되지 않는다는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아시는가?
책 표지와 부제, 대체저으로 민감한 내용이다. 난 늘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데, 개인적으로는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의 제목과 표지를 받아들었을 때의 그 곤혹스러움이란... 그 표지를 보고 눈물이 찔끔 날 것 같았는데, 그 때도 참았고, 한 마디도 안 했다. 고생했다고 말했지만, 그건 나의 진심은 아니었다. 내가 C급 경제학자라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그냥 참았다.
지금껏 책을 내면서 난 표지에 관여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좋으면 좋은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그냥 참았는데, 이건 나와 했던 약속 중의 하나다. 표지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나와 한 이유는 표지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이게 또 무한대의 정성이 들어가는 일이라서, 그런 일은 이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의 판단에 맞기겠다는 생각이기도 하고, 작은 내 자존심이기도 하다. 표지 덕분에 잘 팔렸다는 일은 참기가 어려운데, 현실적으로 그런 일들은 사회과학에서 벌어지지는 않는다.
이제 고민스럽다. 표지에 대해서 안 보겠다고 한 걸 그래도 한 번은 봐야하지 않겠느냐고 해서 보게 된 것이다. 원칙대로라면 난 책이 나오는 순간에 비로서 표지를 보게 되는데, 사실 앞의 책들은 전부 그랬다. 출간 전에 표지를 보게 된 첫 번째 사건이 지금 벌어진 것인데, 원칙을 지킬지 말지, 고민스럽다.
별 이상한 원칙도 다 있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지만,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런 수많은 원칙들이 필요하고, 나는 원칙들을 보통은 지키려고 하는 편이다.
여기에 대한 기술적 솔류션은 딱 하나다. 공저자인 박권일씨에게 일임하는 얍쌀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어차피 나를 속이는 일이라는 점은 마찬가지이고, 그런 잔수는 길게 봐서 좋은 일은 아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한 번 표지에 관여를 하기 시작하면 매번 관여해야 직성이 풀릴텐데, 나도 꼼꼼을 떨기 시작하면 한 꼼꼼 하는 성격이라서 아예 손을 대지 않는 편이 길게 보면 도움이 된다는... 논리적인 문제이다.
부제와 표지, 사실 나는 전부 마음에 들지 않는데, 이런 일이 생길까봐" 나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이미 3년 전에 세워놓았다. 작지만 중요한 딜레마에 부딪힌 셈이다.
# by | 2007/06/01 03:22 | 출간 이야기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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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처럼 오후4시퇴근하면 많이들볼래나...아 TV 땜에 안되겠구나...
좋은 방법일 듯 합니다만, 여건상 어려우시겠죠.
아래에 있는 표지와 부제는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내용은 너무 궁금하군요.
어제 새벽까지 아픈 아이들의 세대를 보고 건축하는 사람으로서 많은 걸 느꼈습니다.
건필하시고 건강하십시요.
사회과학에 관심있는 20대가 많아져야죠... 너무 비관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른바 책시장에서의 사회과학서적은 그야말로 악전고투입니다.폴라니를 소개하고 아직 번역도 안된 고전들을 옮기고자하는 모든 노력들(번역에 한정한 출판책들)이 '이렇게 하면 돈번다'(와 같은 책)앞에 고개 속이는 현실입니다.내 이름을 걸고 같이 우리사회에 대해 이런 관점으로 생각좀해보자는 진지한 노력들은 오죽하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책(물건이 아니고 책이라 부를 만한)을 지켜내는 방법은 '객기'와 '의리' 뿐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나저나 원칙을 세우신 건 좋은데, 팔려고 작정하시는 것도 좀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돈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읽히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