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는?

책이라는게 돌발 상황 같은 게 생각보다 많다. 88만원 세대의 경우는 내가 냈던 책 중에서 가장 돌발상황과 우여곡절도 많고, 에피소드도 많은 책이 되었다. 아마 열흘 정도 지나면 시중에 나와서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다. 레디앙에서 나오는 첫 번째 책으로 그야말로 출판사 하나 만들면서 책이 나오게 생겼다.

좀 메이저 출판사에서 마케팅의 도움도 받고, 이런저런 기획의 도움을 받으라는 사람들의 충고가 있었는데, 그런 건 별로 내 성격에 안 맞아서... 중간에 출판사가 붕 떠서 약간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럴 때에는 가장 어려운 데를 도와준다는 평소의 소신대로... 그런데 정말 출판사에서 돈이 없어서 책을 출간할 수가 없다는 상황에서는 좀 당황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우리나라 좌파들이 돈이 없어도 이 정도로 없다는 사실은 슬프지만, 2007년, 내가 딛고 있는 이 사회의 현실 그대로인 셈이다.

그래도 88만원 세대가 길을 열면서 목수정씨의 외국인과 살아가는 법에 대한 책이 그 다음에 나올 거고, 그렇게 몇 권이 더 나올 모양이다. 책을 놓고 진화하는 일들은 현 상황에서 좌파들이 해볼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수단인 셈이다.

전체적으로는 1권이 버벅거리면서 나머지 일정들이 빠뜻하게 되어서, 극도로 게으르게 운기조식 하면서 쉬엄쉬엄 지내는 나에게 약간 부담이 되었다. 지금으로서는 칼럼집과 이 책이 같은 주에 나오는 해괴한 불상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정도가 내가 해볼 수 있는 작은 조정인데, 그것도 쉽지가 않다.

어쨌든 한국경제대안시리즈는 대체적으로 골격이 잡혔다.

1. 88만원 세대 : 세대간 불균형
2. 시장, 경쟁 그리고 협동 : 조직론으로 본 한국 자본주의
3. DJ 독트린을 넘어서 : 한중일 지역경제와 국제무역의 대안
4. IMF 10년, 그 이후는 : 일반과 특수

지금까지는 1권이 출발을 못해서 몇 달 지체된 상황이고, 2권은 거의 끝나서 며칠 내로 내 손을 떠나간다. 2권은 아주 재밌다. 전체적으로 4권 중에서 2권이 가장 하이라이트에 해당하고, 내가 가진 걸 거의 다 꺼내놓은 책이 될 것 같다. 그렇지만 팔리기는 3권이 팔리기는 할 것 같다.

2권과 3권은 묶어서 일본 출간을 생각하는 중인데, 일본에서는 아직 출판사를 못 찾았다. 2권, 3권 모두 일본에서는 상당히 팔릴 거라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잘 모르겠다. 하는 김에 영문 출간도 하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영문으로는 아직은 당분간 낼 생각은 없다. 영문으로는 내년 정도에 이 4권에 대한 것을 다시 한 번 정리해서 한 권짜리로 할 생각이 있기는 한데, 아마 일정상 영문 발간은 당분간 어려울 것 같다. 연말쯤 지나서 확실한 명제가 정리가 되면 생각해보고, 별 거 없으면...

원래의 생각으로는 한국, 베트남, 스위스, 중남미, 멕시코, 이렇게 4개의 경제모델이 각자 어떻게 진화하게 되는지를 모아서 영문 발간을 할 생각이 있었는데, 그것도 2년 전 생각이라서 요즘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꼭 영어로 낼 필요가 있나? 목하 고민 중이다.

4권은 앞의 책 팔리는 거 보고 쓸지 말지 생각을 해보려고 한다. 원래는 공황론의 틀을 가지고 74년 맑시스트 르네상스 시절에 공황론 이론가들이 했던 것 같은 작업을 하고 싶었던 건데, 여기에 들어갈 내용들이 이미 상당 부분 앞의 작업에 들어가게 될 것 같아서, 앞의 것들이 좀 팔리면 최종정리본처럼 마지막 점을 찍고, 별 볼 일 없으면... 별 내용도 없을 것을 굳이 같은 내용을 또 쓴다는 소리를 들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쨌든 기왕 손을 댄 거 4권까지는 어떻게는 가보고는 싶은데, 이게 영 출판사 사정이 여의치가 않다. 나름대로 쉽게 한다고 꽤 노력하는 편이기는 한데, 주제 자체가 워낙 묵직하고,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도 소개되지 않았던 이론들과 얘기되지 않았던 영역을 다루는 셈이라, 얘기가 쉽지는 않다.

이게 책이라는게 우습다. 아무리 이론적인 얘기라도 결국은 이걸 읽게 될 사람들의 취향과 생각을 어느 정도는 따라가게 되는데, 일부러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니지만, 결국 동아시아에서 이런 얘기들을 읽을 사람들이 남은 곳은 일본 밖에는 없는 셈이기 때문에 상당 부분 일본 시장을 따라가게 된다. 내 경우도 좀 그렇다. 어쩔 수 없이 사줄 넘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하게 되는데, 어떤 일이 벌어져도 우리나라에서는 안 팔릴 거라는 것은 출판사도 알고, 나도 알고, 주변 사람들도 다 아는 상황이라서...

그래도 해보는 데까지는 해볼 생각인데, 에디터들한테 내용이 어렵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다. 내가 이해가 안 되는 건... 쉽고 다 아는 얘기를 왜 사람들이 돈을 내고 사봐야 하지? 물론 재밌게 만들 능력이 없는 나 같은 사람들이 해보는 얘기이기는 하지만... 마시멜로 이야기 같이 써야 한다는 얘기를 들을 때는 억장이 무너지고, 경제학 콘서트 같은 싸구려 책들과 비교될 때는, 다 접고 로잔느 대학 같은데 가서 조그만 세미나나 하나 개설해서 몇 명 모아놓고 후기구조주의 경제학, 이런 식으로 작은 간판이라도 걸어놓고 하고 싶은 거나 마음 편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굴뚝같지만... 별 수가 없기는 하다. C급 경제학자라서 그렇다.

하여간 세대간 불균형에 관한 88만원 세대가 우여곡절 끝에 나오기는 나올 모양이다. 나를 아주 힘들게 했던 책이다. 이 책이 중간에 붕 떠나닌 가장 큰 이유는 20대에 관한 얘기이지만, 20대는 사회과학 책은 완벽하게 안 읽는다는 것이 거의 상반기에 시장에서 증명된 상태라서, 386들의 책들로 바꿔달라는 수 많은 주문에... 조까 하면서 버틴 게 제일 힘들었다. 얘기는 20대의 돌파구에 관한 것이지만, 지금 우리나라에서 사회과학 책을 읽는 집단은 40대 운동권 세대와 50대 보수주의자들 밖에 없다는 데야... 딱 욕하면서 한겨레를 읽는 사람들과 여전히 월간조선을 보는 사람들, 그렇게 두 집단 밖에 안 남았단다...

그래도 해볼만큼은 해볼 생각인데, 상황이 녹녹지는 않다. 희망은?

언제까지 이러지는 않을 거라는 별로 근거없는 낙관을 가져본다. 세상이 개판이 되면 세상은 또 묘하게 균형을 찾기 위한 다른 힘이 움직이기 마련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렇기는 하다.

그래서 바리케이트와 짱돌이라는 생각을 머리 속에서 지울 수가 없다. 세상은 도서관에서 발전하거나 바리케이드와 짱돌로 발전하거나 두 가지 방법 밖에는 없다. 그게 내가 약간의 지역학과 관련된 생각으로 역사와 여러 경제 모델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내린 결론이다. 승자독식을 벗어나는 길은 룰을 세팅하는 넘들에게 짱돌을 날리는 길 외에는 별로 없다. 게임 내에서의 폐쇄 회로 구조에서는 솔류션이 안 나온다.

지금의 20대가 될지, 아니면 지금 10대가 다시 20대가 되어서일지, 그도 아니면 지금 열 살 어린 아이들이 20대가 될 때의 일인지... 언젠가 우리나라에도 다시 바리케이드와 짱돌이 등장하게 된다. <백 드래프트>가 한 번은 생겨날텐데, 그게 도서관 형태가 되면 좋겠다는게 내 소박한 희망인데, 아무래도 바리케이드와 짱돌이 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원래 역사는 이런 식으로 움직여온 것 같다.

by 비나리 | 2007/05/25 07:12 | 출간 이야기 | 트랙백(1)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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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성공회대 구성원들의 b.. at 2007/05/26 14:37

제목 : 성공회대 구성원 블로그 인터뷰4-비나리
낭만과 해학으로 함께 가는 길 by 비나리 http://economos.egloos.com 1..블로그를 언제 어떻게 접하게 되셨나요? &gt; 한동안 홈페이지를 운영했었는데, 너무 옛날 방식이라서 접고 쉰지가 좀 됩니다. 별 특별한 생각 없이 책을 같이 읽고 느낌 정도를 공유하자는 생각으로 시작을 했는데, 이게 벌써 3년이 넘었군요. 광고도 너무 많이 올라오고, 욕설도 너무 많아져서, 지금 사용하는 블로그로 옮긴지는 반 년 정도 되는 것 같습......more

Commented by at 2007/05/25 09:27
4권까지 꼭 출간 되었으면 좋겠어요.
요즈음 책을 거의 읽지 않았지만 출간되면 꼭 구입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Commented by 연애편지 at 2007/05/25 12:30
꼭 내셔야 해요(떼쟁이 버전)
안 내면 섭섭해서 어떡해요...ㅠㅠ

씁쓸하네요... 나두 88년생인데... 하필이면 88만원세대라니...
Commented by 연애편지 at 2007/05/25 13:10
1. 88만원 세대 : 세대간 불균형
2. 시장, 경쟁 그리고 협동 : 조직론으로 본 한국 자본주의
3. DJ 독트린을 넘어서 : 한중일 지역경제와 국제무역의 대안
4. IMF 10년, 그 이후는 : 일반과 특수

4권을 다 읽을수 있다면... 그렇지만 책을 낼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하긴 출판사들도 중소라면 열악하겠지요.. 하지만 386 적인 책으로 내면 안된다고 믿어요... 어떻게 하면 도와드릴수 있으려나...흑흑

일본이라...그나마 일본에서라도 잘 팔린다면 다행이네요...

우박사님을 믿어요... 아무리 사람이 싫어도 희망을 갖는 존재가 사람이니까... (어째 종교적인 느낌이 ㅋㅋ)
한가지 여쭈어 본다면... 아직도 스위스가 대안이라고 생각하세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스위스를 싫어했던 이유는 그 나라가 금융국가라는 생각에서였어요. 검은돈이 모여드는 스위스 은행... 생태주의, 직접민주주의라고 하지만... 전 그 나라를 신뢰할수 없었어요.

스웨덴 역시 먼나라 이야기고.. 굳이 한다면 독일은 어땠을까?
요새 들고 있는 불길한 느낌은 중남미 사회를 앞지르는 신자유주의 실험덕택에 한국형 경제라는 이상한 경제체제가 생길거라는 기분이... 에이 상상에 불과한다고 생각했지만

왠지...
Commented by 비나리 at 2007/05/25 13:13
스위스 비밀은행 제도 없앤지 몇 년 됩니다.
Commented by 연애편지 at 2007/05/25 15:33
그렇나요?? --;; 무식이 뾰록나버린 연지 OTL ㅋㅋ
Commented by 장서 at 2007/05/25 19:38
내 의식를 정돈하는 기회로 삼자 다짐하며,우선생님의 책을 기다립니다.
아직은 남아있다는 '객기'와 '의리' 로서 말입니다.
Commented by sehee at 2007/05/25 23:59
책 꼭 사볼테니, 4권까지 완간하십시오!
Commented by melancolia at 2007/05/26 00:13
책 왜 안나오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꼭 사서 보겠습니다!
Commented by 샤피로 at 2007/05/26 00:47
'배틀로얄 제네레이션'이 '88만원 세대'로 나오는 건가요?

20대로서 사회과학 책을 보는 전 꼭 사서봐야 할 책이네요. ^^
Commented by 지수화풍 at 2007/05/26 00:59
쩝,,, 책은 역시나 무지하게 안 팔리는군요,그와중에도 사회주의책은아니지만 진중권이나 박노자샘,글고 홍세화정도는 좀팔리지않나요? 뭐 이중에 논란에있는분도 계시지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제기억으로도 신촌에 서강인,연대앞에 그뭐더라...암튼 각대학앞에는 유명한 사회서점들이 있던걸로기억하는데 제가 제대후에 하나씩 없어지더군요,,그자리들에 완벽하게 아케이드식 쇼핑몰,벅스커피숖이들어선거보고...자본주의가 동구무너뜨린게 결코 구라가 아니구나 하고느껴지던걸요,,저도 그렇게 전문적인 사회과학책들은 잘안보지만 한번은 건축도시문화에 대한 흥미가 생겨서 자료찾다가 한울출판사의 공간시리즈를보고 감동먹었던적이..한편으로는 이런책을 내면서도 버티는게 신기하다는....제갠적성향은 맘에드는책이나오면 일단은 삽니다..그러고 시간있을떄 대충읽다가 어려우면 담에 읽어야지 하고 집에 책장에두고 음이하는 편이죠..ㅜㅜㅋ 아직 총각이라 그런지 경제적부담없이 사고싶은거하고사네여,,,지금 친구는 저의 엽기적인 서적모음 취미를 보고 자꾸 협박하고 기겁을 하길래 "그비싼책들을 쓸데도없이..."
그래서 절교를 할까도 하지만ㅋㅋㅋ 암튼 책 쓰세요,, 별로좋아하는말은아니지만 " 배움을 익히고 제대로 쓰이지않으면 그건 쓸모없는거" 래잖아요...사실 회사에서도 같은나이때 동료들 책을 거의안사요..뭐여자애들은 에세이정도 읽고요 남자애들은 술 , 여자,판교, 주식에 정력을뺏겨서..그러니 귀족이라고욕먹지..
Commented by 대나무 at 2007/05/26 14:51
이 글이 '출간이야기'가 아니라 '파라독스'라니...
선생님이 느끼시는 곤란함을 대변하는 카테고리 같습니다. 허~
그래도 이런 수차례 어려움 끝에 큰 성공 사례가 많다는 사실들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마크 트웨인의 작품이 30번을 넘게 출판사로부터 퇴짜를 맞았다거나 '어머나'가 원래 주현미 곡이였다가 퇴짜를 맞고 장윤정 한테 넘어와 큰 성공을 안겨주었다는 그런 성공사례들...(너무 한 면만 봐서 그런가??)

*전에 선생님이 써주신 이메일 인터뷰 글 학보에 잘 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blog party에 올린 글 이제서야 트랙백으로 연결하고 갑니다. ^^;;
Commented by 백발소년 at 2007/05/27 01:05
그래서 공병호가 책을 잘 파는 것 아닐까요 -_-

열심히 살고 앞서가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 맞습니다, 그래야 잘 살죠 !!!
-> 오 그래, 당신 최고야

써놓고 보니 암울하네요
Commented by 길벗 at 2007/11/21 20:03
이런 때도 있었군요.
지금 88만원세대의 선풍적 인기(?)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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