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폴라 익스프레스를 사다

요즘 DVD를 꽤 샀다. 책을 덜 사는 대신에 DVD를 엄청 샀다. 머리 아프고 몸 아플 때는 자빠져서 영화나 보고 있는게 신선놀음이다.

묵공과 폴라 익스프레스를 놓고 고민을 하다가... 묵공은 나중에... 폴라 익스프레스도 몇 달 전까지만 해도 3만원 가까이 했는데, 드디어 9,900원으로 내려갔다.

DVD 구매는 참 묘하다. 아주 특별한 경우 아니면 본 영화만 사게 된다. 수 만원씩 주고 영화를 사는데, 보지 않은 영화는 자신이 없어서 사지를 못한다. 본 영화 중에서도 열 번은 넘게 볼 것 같은 영화를 사게 된다.

처음 내가 DVD 콜렉션을 마련하려고 생각했던 것은 시골에 내려가서 살 준비를 했을 때의 일이다. 동네 사람들한테 조그만 영화관 같은 거라도 운용을 하고 싶어서 이것저것 모으기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영화를 보면서 20세기 문명사과 경제사 같은 것에 대한 강의를 한 번 만들어볼 생각이 있어서 드문 영화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물론 '어딕션' 같이 꼭 구하고 싶은 영화들은 DVD로 발매가 되지 않아서 구하지 못했지만, 아마 더 이상 내가 공부를 할 수 없는 날이 오면, 어디 아카데미 같은데 앉아서 영화 틀어주면서 주목해서 봐야할 것에 대해서 강의나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안 올 것 같다. 좋아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한반도>에 보면 그런 교양강습에서 잔뜩 화내고 나가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 나는 그럴 것 같다. 문제를 일이킬만한 종류의 일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굳게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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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폴라 익스프레스는 포스트 포디즘, 약간 과장해서 해석하면 토요티즘에 대한 찬가와 비슷하다. 거기에 약간의 우수어린 낭만과 아름다움, 이런 것들이 섞여 있다. 좌파 영화는 아니지만 미국 좌파들이 몇 년 전에 포디즘이 끝나가는 미국 사회를 어떻게 보았는지에 대한 촌스런 시각 같은 것들이 담겨져 있다. 공장 영화다.

거의 같은 시기에 팀 버튼의 <찰리의 초콜렛 공장>이 나왔다. 이 영화도 공장 영화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포디즘 시기에 미국 기업들이 외국 가서 어떤 나쁜 짓을 했는지와 아이들에 대한 아주 살벌한 메시지들이 범벅이 되어 있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좌파 영화다. 여러분들이 공산당이 되지 않는 것은, 여러분들이 나쁜 사람들이기 때문이에요, 아시겠어요.

이렇게 직설법으로 얘기하면 아무리 천하의 팀 버튼이라도 목이 열 개가 있어도 살아날 길이 없지만, 하느님이 보우하사, 팀 버튼에게는 재능이 있었다.

스필버그가 만화 시리즈로 죽쒀놓은 것을 긴급히 틀어막은 사람이 팀 버튼인데, 그 시절에 팀 버튼이 만든 만화 중에서 비틀 쥬스 시리즈는, 정말 명작이다. 팀 버튼은 색깔을 다루는데 마법사이고, 그로테스크한 환상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정말 천재다.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인데, 그 모든 것을 유머에 담아서 세상에 던지기 때문에 팀 버튼의 목은 언제나 안전하다.

정말로 닯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건 팀 버튼인데, 팀 버튼이 갔던 길은 내가 갈 수 있는 길은 아니다. 조금 슬프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하늘이 나에게 그런 능력을 주지 않았는데 말이다. 예술성으로 따지면 채플린이 한 수 위일지는 몰라도, 정말 유머로는 팀 버튼이 더 윗길이다. 채플린은 너무 직설법을 좋아했고, 모노로그 안에 뻔한 얘기들을 담는 걸 좋아했다. 그렇지만 그런 뻔함을 예술로 만드는 것은 그의 천진과 기법들이다. 말년의 채플린은... 좀 슬프게 되었다.

팀 버튼과 비교하면 톰 행크스는 좀 머리가 나쁘고, 너무 뻔한 길을 간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안 보지만 톰 행크스는 미국 내에서는 대표적인 좌파 배우로 분류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독해가 어려운 영화인데, 사회적인 맥락도 그렇게 간단히 독해가 되는 영화는 아니다. 그저그런 배우 중에서는 좀 나은 사람이기는 한데, 미국에는 마초 배우들 중에 좋은 배우가 너무 많다. 진 해크만 같은 사람은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왔을지 모를 정도로 마초 배우지만 정말 잘 한다 (잭 니콜슨은... 배트맨에서 죠커로 나왔을 때가 제일 멋있었는데, 어디서 인터뷰를 보니까 자기도 그렇게 얘기를 했다.)

톰 행크스가 맘 먹고 만든 영화가 폴라 엑스프레스인데, 역시 그저 그렇고 자기도 무슨 얘기를 해야할지 모르다가, 그야말로 무의식의 한 면을 얼떨결에 보여준 셈이다 (폴라 엑스프레스와 찰리의 초콜렛 공장을 비교한 영화평은 예전에 쓴 것이 있다.) 톰 행크스는 좋은 배우이고, 좋은 제작자이기는 한데, 사실 그저 그렇다.

그래도 나는 톰 행크스의 영화들을 열심히 보는게, 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머리가 나쁘면 머리가 나쁜 사람들이 쓰는 전략을 사용해야지, 내가 팀 버튼처럼 하겠다고 설쳤다가는, 그야말로 그로테스크한 촌극을 연출하게 될 것이다. 그 정도는 나도 안다.

예술성으로 톰 행크스보다 윗길에 있는 사람은 키아누 리브스이다. 키아누 리브스가 제일 연기를 잘 한 영화는 <리플레이스먼트>이고 (여기에도 진 해크만이 나온다),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로 나온 영화는 <콘스탄틴>이다. 둘 다 메시지 하나는 확실하다. WASP, 너희는 정말 싫어... 그래서 해리슨 포드의 잭 라이언 시리즈가 아무리 민주당을 지지하는 좌파계열의 감독들과 스탭들이 죽어가는 민주당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만든 잭 라이언 시리즈라도 결국에는 WASP 영화이고, 우파 영화이다 (게다가 원작자인 톰 클랜시는 대표적인 극우파에 아마 정치를 했다면 무솔리니 정도로 꼴통이 되었을...)

키아누 리브스는 미국 내에서 포지션이 아주 독특하다. 백인 우파는 절대로 아니고 그렇다고 흑인 계열도 아닌... 하와이 출신에 하와이 이름을 가진, 그리고 아시아의 피를 가진... 그래서 흑인도 못되는 또 다른 소수 마이너리티들을 대변하고, 그 자신도 그런 역할들을 좋아한다. 미국 내에서도 하와이 원주민 계열이라는 위치는 정말 어색한 마이너리티이기는 한데, 그는 구질구질하게 자신을 도와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할렘 분위기와는 다른 또 다른 마이너리티 내에서 길을 찾아간 거의 첫 번째 케이스에 해당한다 (그를 보면 체로키 피플과 인디언 레저베이션의 후속 버전을 보는 것 같다.)

게다가 예술성이 높은데, 톰 행크스와는 달리 점점 연기도 늘고, 진화한다. 언젠가 키아누 리브스가 좌파의 대표 배우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며 지켜보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키아누 리브스도 내가 갈 수 있는 길은 아니다. 그건 잘 생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 굳이 비유를 들자면 폴 스위지 같은 사람이 키아누 리브스에 가까운 학자라고 할 수 있다. 선생이 슘페터였고, 사무엘슨의 시기를 받던 슘페터의 애제자였다. 사무엘슨이 2등으로 하버드 대학원을 졸업할 때 1등이 스위지였다는 전설이... 

이래저래 폴라 익스프레스를 열심히 보면서 톰 행크스가 뭘 잘못 생각했고, 어떤 실수를 저지른 것인가를 열심히 복기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실수를 줄이는 길이다. 평소에 주제파악을 잘 하는 것이 보약보다 낫다. (9,900원짜리 슈퍼에서 파는 DVD 한 장 사면서, 내가 왜 이 돈을 지불해야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너무 구구하게 생각한 느낌이 없지 않다.) 

by 비나리 | 2007/05/25 00:36 | 영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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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붤뤠 at 2007/05/25 08:55
금융경제연구소 우편함 뒤져 보세요. ㅋ
Commented by 아큐라 at 2007/05/27 12:12

팀버튼을 보면서 환장하다가 열등감으로 찌질거리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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