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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 on y allez jusqu'au bout... (1990. A. Nicolai)

by 비나리 | 2007/08/05 02:26 | 그냥 잡담 | 트랙백 | 덧글(8)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 출판사 서평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는 오타의 바다와 같다... 결국 1쇄를 빨리... 2쇄에는 오타없는...

저자에게는 통상 20권 정도를 주는데, 공교롭게도 첫번째 증정본이 심상정 의원에게, 두번째 증정본이 정태인 선배에게 갔고, 세 번째 증정본은 한미 FTA 대책본부 구성을 놓고 파업 중인 서준섭에게 갔다... 그리고 4권째가 간암으로 투병 중인 서울대 김정욱 교수에게 갔고...

어쩔 수 없이 신세진 사람들 중 그 시절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증정본이 가게 되는데, 이 책은 워낙 쎈 사람들이 조언을 많이 해줘서, 그야말로 이 스무권의 증정본 리스트가... 무척 쎄질 것 같고, 식구들에게도 차례가 가기가 어려울 것 같다.

추천사는 예전에 현대자동차 CEO였던 이계안 의원이 해줬다. 그가 조직에서는... 내 첫 번째 상사였다.

현대 쪽에 있는 사람들은 초고 상태에서 원고를 본 사람들이 몇 명 있는데, '지독한 진실'이라고 평가해주었다. 현대자동차에서 강연을 해주면 어떻겠냐고 건너건너 왔는데, 역시 평소의 소신대로, 천 만원 밑으로 주면 안한다... (강연은 안한다는 말을 이렇게 돌려말하는 방법도 있기는 하다. 아마 한전이나 서부 발전 같은 곳에서는... 남이라고 하기가 곤란해서 한 번쯤 발전사에서는 할지도 모르겠는데, 이게 또 5개사라서 한 번 하면 다섯 군데 다 해야하는... 한전이 분사되면서 사장이 여섯 명이 되어서, 간부들은 요즘 좋아한다...)

오타를 제외하면... 책은 재밌다. 한미 FTA의 경우는 하고 싶었던 말을 소위 프레임 때문에 못한 게 많았었는데, 이 책은 약간 12년 동안의 경험을 박권일씨의 도움을 받아 총정리하는 마음이 약간 담겼다. 내가 세상사에 대해서 어떤 생각들을 평소에 가지고 있는지... 아마 문화경제학과 조직론 책 두 개가 C급 경제학자 시절의 생각들을 모은 두 축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만약 내 책 중에 한 권을 추천하라고 누군가 부탁하면... 오타를 제외하면, 이 책을 추천하게 될 것 같다. <88만원 세대>는 눈물 없이는 보기 어려운 책이라면... (그래도 이재영은 마지막 교열을 보면서 계속해서 책상을 치면서 웃어대서 옆에 있는 내가 조금 민망했다. 웃으라고 쓴 책은 아닌데...) 반면에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는 좀 웃기는 얘기들이 많이 들어가 있는데, 50살이 넘은 회사 간부들이 자신의 젊은 시절이 생각나서 몇 번 울었다고 전언해준다. 참... 울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의 책에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길 것 같다고 생각한 책에 눈물을 흘렸다고 하니...

이 책 뒤에는 참고문헌 목록을 달고 싶은 충동을 참느라고... 내가 참고문헌을 잘 달지 않는 것은 2/3가 불어책이라서, 산솔류와 니꼴라이에게 처음 이런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잔뜩 논문 제목들 달아봐야, 별 도움이 안될 것 같다. 워낙 유명한 책들과 세기의 전환이라고 평가받는 주요 논문들을 중심으로 인용구들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 구글로 1분 내에 전부 찾을 수 있는 자료들이다.



우석훈
서울에서 태어나 프랑스 파리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인생의 1/4을 독일ㆍ프랑스ㆍ영국ㆍ스위스 등의 외국에서 지냈고, UN 기후변화협약의 정책분과 의장과 기술이전분과 이사를 마지막으로 국제협상과 공직생활에서 은퇴했다. 『한겨레』에 「명랑국토부」를 연재하던 시절을 행복했던 기억으로 가지고 있으며, 고액연봉 대신 ‘가난한 자유’를 선택하고 비로소 인생의 행복을 찾았다. 『아픈 아이들의 세대』 『음식국부론』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 『88만 원 세대』의 저자이며, 이한동 총리 시절 만들었던 「한국 기후변화 협약 2차 종합대책」이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현재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고, 서부발전의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늘 자신을 C급 경제학자로 소개하고 있다.

박권일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고 있다. 대학에서 철학과 사회학을 공부했고, 월간 『말』에서 3년간 기자로 일했다.?노동ㆍ경제 분야 기사를 주로 썼다. 2007년 현재 우석훈 박사와 함께 한국 경제 대안 시리즈를 쓰고 있다. 그림을 전공하고 싶었던 문학청년이며, 많은 50대들이 얼굴만 보아도 이유 없는 불쾌함을 느낄 정도로 혈관에 비주류 정서를 채우고 살아간다. 미니멀리즘을 사랑하고, 부산 출신이면서도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하지 않아 주위 사람들과 갈등했던 전력이 있다. 경제성보다는 예술성이 그가 세상을 견뎌내는 무기다.
삼성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대표적인 한국 기업의 회장들이 이른바 ‘샌드위치 위기론’을 거듭 경고하고 나섰다. 쉽게 말해 미국과 일본을 축으로 한 선진경제의 거센 저항과 중국의 추격으로 한국 경제가 설 자리를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 위기 외인론(外因論)에 해당하는 이 주장을 완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공동저자인 우석훈 박사는 한국에서 샌드위치 위기론은 경제적 담론이라기보다 정치적 담론에 가깝다고 말한다. 즉 정치인들이 정권의 경제정책을 정당화하거나 기업인들이 정부에 무언가를 요구하기 위한 배경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담론이지만, 과학적 경제 진단은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업이라는 존재 자체는 이미 국외 혹은 국내에서 경쟁적 조건에 있기 때문이다. 즉 ‘샌드위치 위기론’이란 사실상 하나마나한 이야기이며, 도대체 한국 기업이 샌드위치 위기에 직면하지 않은 적이 있었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 위기의 본질적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저자는 위기가 바로 기업 내부에 도사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지금 기업이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기업 내부를 들여다보는 일이며, 이를 위해서는 ‘조직론’이라는 필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왜 조직이 문제인가
저자는 한국 자본주의가 조직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볼 때 유신시대의 군대 모델이 위기에 봉착한 이후에 새로운 조직 모델의 대안을 찾지 못해서 방황하는 중이라고 진단한다. 더 나쁘게는 IMF 경제위기 이후 한국에서 군대ㆍ가정ㆍ교회와 같은 상식적인 조직 모델들은 뒤로 밀려나는 중이고, 불법다단계 모델이나 조직폭력배 모델을 차용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의 경제조직들은 정상적인 ‘조정’을 조직 내에서 성공적으로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으며, 소위 세계화 국면에서의 변화들에 적응하거나 적극적으로 대응하기에 적절한 조직의 형태들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저자는 만약 이렇게 조직에서 생겨난 비효율성이 금융자본의 순환에 문제를 끼치고 있거나 최근 독립된 하나의 생산 변수로 간주되고 있는 기술 변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조직에 대한 본격적인 검토 없이 한국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특정한 작업에 오랫동안 특화되어 숙련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해고되었을 때, 이는 당연히 불량률의 증가나 숙달도의 하락에 의한 생산성 하락 같은 경제적 결과를 발생시키게 된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효율성 하락의 책임이 저임금을 받으며 생소한 작업에 투입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있는 것일까 아니면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노동과정을 구성한 회사의 조직담당자에게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러한 비숙련 노동자들의 비율 증가로 노동과정에서의 ‘소프트 이노베이션’이라고 부르는 연성혁신들이 지체되거나 실종되었을 때, 이러한 문제점을 과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저자는 구체적으로 이렇게 조직이라는 관점에서 생겨나는 문제들은 수없이 많은데, 이런 것들이 단순히 사소한 어떤 한 기업 혹은 정부기관의 어느 한 작은 부서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만약 이런 문제들이 한 지역경제 단위 혹은 국민경제 단위에서 발생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도대체 문제점이 뭔지도 모르면서 노동자와 회사 측이 갈등을 하게 되는 일은 물론이고, 별로 상관도 없는 금융자본의 흐름이 문제라고 하는 잘못된 진단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지금 한국 자본주의가 바로 이런 ‘조직의 덫’에 빠져 있다고 말한다.

조직론이 제시하는 위기 극복을 위한 키워드 5가지
그렇다면 한국 기업조직이 빠져 있는 가장 큰 함정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함정을 빠져 나가는 길은 무엇일까? 저자는 조직론이라는 관점에서, 한국 기업이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극복해내야 할 키워드 5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캐비어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캐비어란 쉽게 말해 경제행위를 하는 개인들이 기대하는 경제수준을 말하는 것인데, 이는 임금이 될 수도 있고 부동산이 될 수도 있으며 조기유학이나 과외가 될 수도 있다. 이 문제가 해결돼야 하는 이유는 캐비어 문제가 바로 조직 구성원의 노동 숙련도 및 창조 능력의 문제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기업조직은 구성원의 임금을 낮추는 대신 더 높은 고용 안정성을 제공해야 하고, 포스트 포디즘 시대에 적합한 ‘창조 잠재력’을 높이는 형태의 조직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동시에 캐비어의 비용을 낮추도록 사회와 정부에 제안해야 한다. 캐비어를 먹을 수 있는 일부만 조직 내부에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외부화하거나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식으로는 포스트 포디즘 이후 극도로 높아진 창조 능력 경쟁에서 버텨나갈 수 없다.
둘째, 귀공자 자본주의의 함정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한국 기업들은 루키들을 선발할 때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귀공자들 위주로 선별한다. 이들은 주로 사회 상층부에서 로열젤리만을 먹고 자라며 토플이나 회화 능력, 출신 학교 등 획일화된 선발기준을 통과한 사람들이다. 귀공자 자본주의의 진짜 위험성은 조직 내의 ‘다양성’을 심각하게 떨어뜨린다는 데 있다. 지방대 출신이나 장애인 혹은 단순 언어 구사능력 외에 다른 장기나 특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일부러 뽑고 이들이 내부 경쟁에서 즉각적으로 패배하지 않도록 보호 장치들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런 노력들이 조직의 다양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의 조직 내부에서 예상치 않은 기여를 하게 되는 일이 많은 것도 다 같은 이유로 설명된다. 또한 이렇듯 ‘승자’들만을 모아서 조직을 운용하면 기업 내부에 경쟁도가 지나치게 높아져서 ‘협동진화’가 사라질 위험이 높다. 자본주의가 성공한 가장 큰 역사적 배경은 평민들의 근면과 창의력 그리고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갖추었던 숙련도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 한국의 귀공자들은 단단히 왕자 행세하고 있는데, 이들은 10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천재가 아니고, 오히려 10만 명이 이런 귀공자 한 명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희생되어야 하는 것이 역사적 진실이다.
셋째, 마초 자본주의를 넘어서 여성들과 일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한국은 해방 이후 등장한 신여성을 ‘완전히 때려잡고 굴복시키는 방식’으로 진화했는데, 이 시스템은 그 이후 거의 변하지 않은 채 여성들을 접대부 정도로만 생각하면서 21세기를 맞은 셈이다. 한국 기업처럼 상층부에서 하층부까지 전부 여성 접대부가 나오는 술집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나라는 없다. 여성들이 고위 직급에 잘 올라가지 못하는 근본적인 장애요인 중 하나가 바로 이 ‘밤의 비즈니스’라는 황당한 현상 때문이다. 주요 경제 조직에서 거의 똑같이 40~50대 마초집단이 장악하고 있는 한국 자본주의는 아직도 여성들과 일하는 법을 전혀 모른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얘기는 ‘남성과 여성의 기회의 형평성’ 정도인데, 이 극단적이고 기형적인 경쟁 구조에서 여성들은 출산을 포기하거나 골프를 배우고 폭탄주를 배워서 남성들과 같은 공간에서 움직일 수 있도록 개인 전략을 선택하고 진화할 수밖에 없게 된다. 스위스나 스웨덴에서 행하고 있는 ‘주 이틀 노동제’나 장기간의 ‘육아 휴가’와 같은 약간의 공공 보조 장치만으로도 고급 여성인력이 기업에 기여할 수 있다. 더군다나 마초들의 주지육림 자본주의를 굴려가기 위한 숱한 접대와 향응비용을 줄이고 마초들의 임금을 조금만 낮추어도 여성들이 일할 자리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여성들이 일하기 어려운 조직은 남성들 중 ‘다른 방식으로 똑똑한’ 사람들도 일하기 어려운 조직이다. 결국 다양성과 창조성에서 극히 제한을 받는 경직된 조직이 될 수밖에 없고 이런 조직은 살아남을 수 없다.
넷째, 토호들의 ‘짝패’ 자본주의를 타파해야 한다. 한국 기업들은 지역과 잘 지내는 법을 모른다. 현재 한국 기업들이 지역사회에서 사용하는 기본 전략은 ‘고용을 만들어준다’는 것인데, 그들 스스로 필승전략이라고 자화자찬하는 이 전략은 다른 보조 요소의 도움을 받지 못할 경우 그렇게 오래가지 못한다. 대부분의 한국 기업은 지역민의 눈높이가 아니라 지역 토호의 눈높이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즉 기업과 지역 기득권들끼리 ‘짝패’가 되어 지역민을 극단적으로는 ‘천민’ 취급하는 것이 현실이다. 기업이 단지 부동산 투기나 부정부패를 일삼는 집단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민의 눈높이에서 ‘사랑받는 존재’가 되는 것은 위기 국면의 한국 자본주의가 넘어야 하는 또 다른 장애물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조직의 ‘영속성’을 담보해주기 때문이다. 기업끼리의 경쟁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지역 경제가 특히 선호하는 기업과 ‘저 기업은 우리 동네에 오면 정말 안 된다’고 인식되는 기업으로 분화될 것이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더 강화되고 지역 토호 구조도 무너지게 될 때, 그 기업 경쟁에서 ‘지역과 잘 지내는 법’을 상징적 자산으로 가지게 된 기업에게 더 유리한 방식으로 시장 흐름이 진행되게 된다. 일본의 토요타가 지역에서 한 일은 토호 노릇이나 왕 노릇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현재 ‘짝패 자본주의’에 빠진 기업이 찾아나가야 할 길이 보일 것이다.
다섯째, 조폭 자본주의를 넘어서 중소기업과 일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경제학자들에게 한국 경제에서 가장 큰 위기를 딱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좌파나 우파라는 정치적 신념과 상관없이 대부분 중소기업의 위기를 꼽는다. 이 문제의 근본에는 한국 대기업들이 중소기업과 일하는 법을 모른다는 냉혹한 현실이 도사리고 있다. 군대로 치면 자기 후방의 보급부대에게 총질을 하는 것이 한국 대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일본이 만들어낸 ‘신뢰의 자본주의’ 모델과는 전혀 정반대의 길로 한국 자본주의가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대기업이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의 창조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협동진화 모델을 만들어가야 한다. 중소기업에게 대기업이 그저 기술이나 빼앗아가려는 조폭 집단처럼 비쳐질 때 대기업의 미래는 없다. 대기업과의 적절한 협력관계만 있었다면 한국의 중소기업은 지금보다 훨씬 안정적인 경제구조를 가지게 되었을 것이고, 국민경제의 안정성과 다양성 역시 지금보다는 좋은 모습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한국형 국민기업 모델은 가능한가
저자는 위에 제시한 다섯 가지 키워드를 해결하는 기업은 이른바 ‘한국형 국민기업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기업이 ‘영속성’을 가지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국민경제 시스템 내에서 우점종이 될 수 있어야 하는데, 앞서 언급된 다섯 가지 키워드가 바로 그 열쇠를 쥐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화 시대라고 말하지만, 아직 어느 나라에서도 기업이 완전 경쟁 시장에 홀로 내던져지는 경우는 없다. 어느 나라에서든 형식을 바꿔가면서 기업을 보조함으로써 경쟁력을 유지하도록 도와준다. 여전히 국민경제 모델이 작동하고 있는 셈인데, 이는 국가와 국민과 기업이 적절한 합의점과 협동진화의 모델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위의 다섯 가지 키워드들은 바꿔 말하면 기업을 보조하기 위한 장치들을 마련할 수 있는 전제조건들이기도 하다. 그것들을 풀어낸 기업은 자연스럽게 해당 분야에서 정책적 배려에 의한 보조금을 비롯해 여성과 약자 그리고 지역경제에서 ‘사회적 지지’를 받게 되는데, 이런 방식의 진화가 미국은 물론 일본과 유럽 자본주의에서 점점 익숙해지는 새로운 진화의 방식이다. 만약 기업들이 지금까지의 진화 방식을 고수하려 한다면 ‘중남미형 지옥 모델’로 치달아가게 될 것이다. 지금 기업들은 진화의 분기점에 서 있는 셈이다. 어느 길을 선택할지는 기업 스스로의 몫이다.

by 비나리 | 2007/08/03 19:44 | 출간 이야기 | 트랙백(1) | 덧글(2)

블로그의 장점과 단점

길게 보면 블로그를 닫는게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는 중인데, 아는 기자와 방송국의 꽤 높은 자리에 계시는 분들이, 화들짝... 댓글을 제한하더라도, 그냥 열어두는게 좋을 거라고...

나도 몰랐는데, 이 블로그는 거의 개인언론을 한참 뛰어넘어 거의 유일하게 종합 논평이 나오는 곳이라고...

내가 직접 아는 경우는 방송국 작가들이 몇 명 이 블로그에서 죽치고 있고, 기자들도 몇명 떠나지를 않고, 공기업의 높은 분 몇 명이, 종종... 그들은 댓글을 다는 대신에 나에게 직접 연락을 하거나, 때때로 간담회 같은 것을 직접 만들고 날 부른다...

몰랐는데, 동아일보나 이런 데에서 여기에 나온 논평을 가지고 기사 쓰는 일이 종종 있다고... (이런 걸 워낙 안 보니까, 내 글이 인용되어도 정작 나는 모른다...)

하여간, 모든 기자들이나 방송국 작가들이 그런 건 아닌데, 취재 나가는 대신에 블로그에 오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하긴 내가 칩거를 시작한 이후로 집앞 놀이터에까지 방송국 차량이 찾아온 적이 몇 번 있어서 동네 사람들에게 민망스러운 장면이 연출된 적이 몇 번 있기는 하다. (교육방송을 지지하는 나는 교육방송만 직접 찾아가는 경향이 있다...)

좌파들의 공론장 같았던 매체들이 거의 힘을 못쓰는 시기에, 그거라도 열어두고 있으라고... 몇 명이 심각하게 경고를 했다.(이런 닫는 것도 내 맘대로 못하다니...)

블로그가 개인 사이트보다 유일하게 좋은 점은, 해킹 방어를 하지 않아도 좋다는 점이다. 나도 몇 개의 사이트를 운영했던 경험이 있는데, 트래픽 엄청 걸리기 시작하면, 정말 골 아프다.

이글루가 네이버 보다 좋은 점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스팸성 광고들을 지우는 일을 하지 않아도 좋다는 점이 있다. 어떻게 하는 건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하여간 이글루가 광고 방어해주는 것 하나는 잘 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좋은 점은... 완성된 글과 첫 번째 초고 사이에 있는 어정쩡한 글들, 어지간하면 쓰레기통으로 바로 향하게 될 것 같은 글도 일단 써보고, 다시 생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하드가 통채로 날라가는 일이 몇 번 있었는데, 그 중의 일부는 블로그에만 남아있는 글들이 있다.

나쁜 점은... 그외의 모든 점은 다 나쁜 점이다.

나도 가끔 블로그들을 돌아다니는 일을 하기는 하는데, 이 사람들에게 주고 싶은 질문은... "자신이 극우파가 아닌가?"라는 질문을 한 번쯤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극우파 전성시대라서, 평균적으로 남들하고 똑같이 생각하고, 예를 들면 강호동이 하는 말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면, 거의 오토매틱 메카니즘으로 극우파로 배달된다. 황우석 사태가 딱 그랬는데, 모든 황우석 지지자가 전부 극우파는 아니지만, 평균적으로 그런 몇 가지 생각들을 주위 사람들과 기계적으로 공유하면, 그야말로 기계적으로 극우파가 된다.

90% 정도의 블로그는는 극우파 분위기를 짙게 풍기고 있으며, 그 중에 5%는 아주 중증 극우파이고, 5% 정도의 블로그만이 "저는 극우파가 아니예요"라고 적극적으로 항변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요즘의 블로그는... 사회의 평균 비율보다 뭐든지 조금씩 높다. 마초주의도, 사회 평균보다는 블로그가 높아 보인다.

극단적 애국주의도 사회평균보다는... 블로그 평균이 높아 보인다.

동시에 책 안 읽는 비율도, 소위 블로거 비율이 더 높은 것 같다. 몇 사람은 아주 적극적으로 "나는 책 따위는 보지 않는다"라고 이마에 붙여놓고 있다. 물론 책 안 봐도 좋긴 한데, 가끔 미래가 걱정되는 것 같은, 그런 증후군을 보이는 블로그를 가끔 본다.

그리고 역시 90% 이상의 블로그들은 애정결핍증 증상을 보인다. 안스럽다. 이것도 사회평균보다 높은 비율 같다.

결론적으로... 하루 종일 블로그만 돌아다니는 블로그 중독증 환자는 극우파 애정결핍증 환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런 증상을 사회심리학에서는 메저키즘이라고 정의한다. 그런게 사회적 단점인 것 같다.

순수 unplugged 상태를 하루에 한 시간 이상은 갖는 것이 좋고, 일부러라도 음악이라도 들으면서 독서도 하지 않고, 벽만 쳐다보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상태를 한 시간 정도는 갖는 것이, 집착으로부터 잠깐 벗어나고, 가난한 삶의 고통으로부터 잠깐 벗어나서, 새로운 창조가 생겨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명상, 요가, 대충 이런 것들은 사기를 가능성이 높지만, 모든 것으로부터 unplugged 되어 있는 상태가 사람이라는 동물에게는 필요할 것 같다. 블로그... 너무 많이 하면 자동적으로 극우파되기 딱 좋은 조건이라서, 자신이 극우파가 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 보다는 아예 모든 것과 단절하는 경험을 잠깐이라도 갖는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다움의 아고라에 누군가 가보라고 해서 가봤더니, 참 볼만했다. 데이타를 구할 수 있다면, 다음과 네이버의 몇 가지 경향을 가지고 통계분석해보면 재밌는 결과가 나올 것 같다.

자본, 무서운 거다. 다음이든, 네이버이든, 이미 그런 분석결과를 다 가지고 있을 것 아니냐... 세상에는 우연한 것이 별로 없다. 네트워크 세상이라도 마찬가지이다.

이것만 놓고 기계적으로 해석하면, 살살 욕하면 화내지만, 쎄게 욕하면 오히려 부드러워지는, 그런 증상이 생겨난다. 노무현한테 딱 걸리기 좋은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많은 블로그들이 극우파 성향을 보이는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by 비나리 | 2007/08/03 17:21 | 그냥 잡담 | 트랙백(1) | 덧글(2)

신자유주의가 어디까지 갈까?

경제학에도 유행이라는 것이 있고, 세상에도 흐름이라는 것이 있는 것 같기는 한 것 같다.

내가 처음 경제학 공부를 시작하던 시절은 케인즈 전성기에서 약간 꺽어지려고 하던 순간이었는데, 진짜로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케인지안이라고 한다면 정운찬 선생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물론 케인즈의 원전들을 번역한 사람은 조순선생이기는 한데, 그가 정말로 케인지안인지는 잘 모르겠다. 진짜 황당한 케인지안들은 서강학파라고 불렸던 곳에서 박정희 시대의 개발 이데올로기를 만든 사람들인데, 조순선생도 그런 계열은 아니고... 경부고속도로도 조순선생은 반대했다고 들었고, 88 올림픽에 대해서도 나서서 찬성하지는 않은 걸로 알고 있다.

외국에서  가끔 쓰는 분류로 조순, 정운찬을 서강학파와 비교한다면, 케인즈 좌파 정도로 볼 수도 있다. 이런 연구 흐름에서 공부했던 사람 중에서 제일 유명해진 사람은 김상조 선배이고, 이보다 덜 유명하지만 한밭대의 조영탁 교수도 맑스와 케인즈에 발을 반반 걸치게 된 사람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특별한 이데올로기적 선택이라기 보다는 그 시절에는 다 그런 공부를 했다. 조영탁 교수가 건강만 편했더라도 지금보다는 더 많은 작업을 했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안타깝게 생각한다. 하여간 그 시절, 김상조 선배가 포워드를 했고, 조영탁 교수가 가드를 봤다는 말을 전해들은 적 있다. 몇 년 전에 조영탁 교수와는 농구를 한 적이 있는데, 역시... 그 나이에도 3점슛을 하다니, 놀라웠다.

90년대는 new industrial economy가 정식명칭인 시카고의 시대였다. 왈라스의 시대가 가고, 케인즈의 시대도 가고, 미시적 접근 위에 거시를 세우려는 흐름이 유행이었고, 그런 돌풍이 90년대 초반에 불었다. 연대의 조하연 교수나 서울대의 이지순 교수 같은 사람들이 실제 시카고에서 그런 분위기 속에서 공부했던 사람들인데, 개인적으로는 기품도 높고, 공부 기본이 튼튼해서,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나도 주로 이런 사람들한테 여쭤본다. 개인적으로도... 너무 많은 도움을 이 사람들에게 받았고,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강사 시절에 조하연 선생이 그 방에 있던 책장 하나를 주셨을 때에는, 너무 감격해서 왈칵 눈물이 나올 것 같기도 했다.

조하연 선생이나 이지순 선생 같은 분들은 억지로 분류하면 시카고주의자들이기는 하지만,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황당한 신자유주의자들은 아니고, 학풍은 아주 점쟎다. 오히려 한전 민영화하던 시절에 민영화 맨 앞에 섰던 서울대 이승훈 교수가 더 신자유주의에 가까운데, 아마 개인적으로 "선생님이 신자유주의자이십니까?"라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그러실 것 같다. 개인적으로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그런 것까지 물어볼 자리는 아니고... 동생 결혼식과 같은 집안 행사나 뭐 그런 데에서 주로 만났기 때문에...

한국 경제대안 논의의 3권은 북한 문제에 맞춰져 있는데, 이런 쪽의 연구를 내가 처음 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 바로 이지순 선생이 나에게 주신 책 한 권이 출발점이었다. "나는 이런 것 밖에 줄 게 없어서..."라고 주신 책이, 북한을 내생성장론 모델로 풀었던 책이었는데, 생각보다는 감명 깊게 읽었다. 나는 책에 헌정을 한 적이 없었는데, 이 3권은 이지순 선생에게 헌정을 할까... 생각 중이다.

시카고에서 경제학 공부하고 서울대 교수로 정년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농부라면 웃기겠지만, 진짜로 겸업농이다. 농부의 아들로 자라나, 농부로 흙에 묻히고 싶다고, 요즘도 주말마다 농사를 직접 짓는다. 아마 조하연 선생이나 이지순 선생 같은 분이 주위에 없었다면 나도 시카고주의자 욕을 엄청 했을지도 모르지만, 이 분들을 비롯해서 시카고 출신들에게 내가 한 가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점은, 하버드 출신들이나 프린스턴 출신들보다는 확실히 경제학의 기초가 튼튼하다는 점이다. 평균적으로 좀 그렇다... 막상 시카고 출신들에게, 당신들이 그 유명한 신자유주의자들이냐, 그러면...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 할 것 같다. 막내 동생이 시카고에 떨어지고 울 때는, 가슴이 좀 짠하기도 했었다. 개인적인 내 선호이기는 하지만, 박사과정 코스웍은 당시로서는 시카고보다 파리 10대학이 개설된 과목이 더 많고, 범위도 더 넓었었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돌풍은 내 기억으로는 DJ 시절에 불었다. 물론 YS 시절에 '세계화' 논리를 가지고 왔던 몇 명은 아주 양아치같은 사람들이었지만, DJ 시절에 청와대에 들었갔던 경제 지도부가 초기의 서슬시퍼랬던 힘이 빠지게 된 1~2년 후부터 슬슬 신자유주의가 전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했었는데, 녹색평론에서 내가 했던 분류로는 이 시기를 '완화된 신자유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고대의 김균 교수와 연대의 홍훈 교수 그리고 동국대의 박순성 교수가 이 시절의 이론적 방어선의 최전선에 서 있던 시절인 셈인데, 이 방어막은 아주 약했다.

진짜 신자유주의는 노무현과 함께 왔다. 신자유주의와 노무현 사이에는 어떤 내생적 관계가 있는지 아직도 잘 모른다. 당시의 청와대 비서실장, 그리고 부총리였던 사람들, 여기에 지금의 부총리까지, 이런 흐름인데, 인맥과 힘을 파라메타를 가지고 분석해본다면, 공대 출신들이 절반, 재경부 출신들이 절반, 여기에 국회의원 386들이 얹혀가는 그런 모양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여간... 당시에 집권세력 중에 절반은 인권 쪽으로 매달렸고, 나머지는 신자유주의적 변화에 매달렸는데, 1~2년 정도, 그러니까 이라크 파병이 그 분기점이었던 것 같다.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우리나라는 완전히 신자유주의 한 가운데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걸 나는 '강화된 신자유주의'라고 불렀다. 원래는... utilitarianism에 붙이는 형용사인데, 이걸 신자유주의에 응용하면, 우리나라에서는 DJ와 노무현 두 개로 완전히 분리될 수 있을 것이다. 이헌재 시절의 경제 정책은 아주 이상했는데, 결국 이런 허빵들을 만회하기 위해서 한미 FTA 같은 것을 꺼내들게 된 것이 아닌가... 나는 이렇게 분석한다.

DJ 시절부터 실무진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재경무 공무원의 이름 중 하나가 노대래라는 사람이다. 가장 최근에 떠오른 걸로는 소위 '반값 골프장', 이것의 실무총책의 이름에서 노대래라는 이름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이 사람도 개인적으로는 신자유주의자는 아니었는데, 노무현 정부 시절을 거치면서, 하여간 요즘은 그렇다. 개인적으로는 몇 번 만났고, 한 때는 정책 파트너였던 적도 있었다. 과장 시절의 일인데, 고유가 시절에 조세틀을 지금의 틀로 만들 때 그 때 재경부의 담당과장이 노대래였다. 그가 신자유주의자의 진정한 지지자일까? 고개가 약간 갸우뚱거려진다.

좌파에서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비하여, 나는 이 용어를 잘 안 쓰는 편이다. 10년 정도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셈인데, 막상 그렇다면 한국에서 누가 신자유주의자이냐? 또 그렇게 질문하면, 대표적 이론가는 물론이고, 실제로 자신을 신자유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렇다면 전경련이나 상의에서 만든 말이냐?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자유기업원 같은 데가 이런 곳의 원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자유기업원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냥 극우파의 '고장난 축음기' 같은 곳과 더 비슷해보인다.

그럼 누가 신자유주의자냐? 삼성? 이건희 회장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신자유주의자였던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때그때 외국에서 유행하던 말을 갖다 쓴 것일 뿐이고, 꼭 신자유주의자로 분류하기도 어렵다.

내 개인적인 경험만으로 보자면, 공대출신들 중 나에게 프로젝트 달라고 왔던 사람들이나 아니면 그런저런 이유로 만나게 되었던 소위 황우석 스타일의 연구기획자들은 대부분 골수 신자유주의자였다. 가끔 차라도 한 잔 마시면... 주로 나는 듣는 일을 하는데, 이 사람들이 나에게 설득하고자 했던 것은 공학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시장의 미덕과 경제의 효율성 같은, 그야말로 조선일보 스타일의 대충 뭉개면서 "이런 게 대세다"라는 식의 말들이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실험실이 아니라 관청이나 신문사 간담회장이나 같은 곳에서 만나본 공대출신들은 대개 매우 열렬한 신자유주의 맹신자였다. 그들의 개인적 삶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러한 공대 엔지니어들의 삶의 철학이 신자유주의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경제학자이기 때문에 신문에서 본 엉성한 경제 얘기들을 하면, 혹시라도 내가 그런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지 않을까... 그런, 자리가 만들어낸 상황이 연출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기업가 CEO 중에서 신자유주의 광신자는 한 명도 없었다. 물론 기자들 만나면 뭐라고 얘기하고, 정치인들 만나면 뭐라고 얘기할지 모르지만, 경제학자들과 차 한 잔 마시거나, 식사 한 번 하는 자리에 나에게 자신이 신자유주의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얘기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나에게 워드뱅크의 최신 연구 흐름 혹은 어떻게 하면 UN에 자신도 나가서 연설할 수 있게 되느냐, 혹은 중남미나 아프리카의 최신 흐름, 그런 것들을 주로 나에게 물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내가 그렇게 의심할까봐... 자신은 신자유주의 흐름이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대부분 한 마디씩을 덧붙였다. 현대자동차 CEO, 인천제철 CEO, 아니면 이명박 이후의 현대 엔지니어링 CEO - 이 사람이 날 처음 현대로 데려간 사람이었다 - 심지어 SK나 뭐, 기타등등... 크거나 작거나 기업가 CEO 중에 자신의 철학이 신자유주의인 사람은 아직 만나본 적이 없다.

모집단만으로 보면 어디에 많은가?

신문기자 중에서는 신자유주의자가 아닌 사람이 매우 드물다. 이건 한겨레나 경향 같은 곳도 그렇다. 일부의 기자가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서 약간 풍이 다른 기사들이 나오지, 대부분의 신문기자들은 매우 강렬하거나 아니면 소극적인, 정도의 차이만이 있지 상당히 강렬한 신자유주의 지지자들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최근에 강남 출신들이 중앙 일간지 기자 중에 너무 늘어나서 그렇다는 것이 일부 기자들이 나름대로 분석해본 결과들이다. 이런 곳의 신자유주의 신념을 가진 기자들에게는 '부국강병파'라는 별칭이 따라붙는다.

자칭 개혁파 정치인들 중에서 신자유주의자가 아닌 사람을 또 찾기가 어렵다. 옛날에는 자신도 투사였는데, 하여간 생각해보니까 신자유주의가 맞더라... 손학규에서 정동영을 거쳐 최근 손학규한테 붙은 아주 웃기는 사람들까지, 여기에 유시민까지... 말은 복잡한데, 전부 이 명제 하나로 수렴되는 사람들이다.

천정배, 임종인, 이계안, 여기에 제종길 정도가...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 거의 유일한 사람들이다.

골프치는 사람들 중에서는... 신자유주의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종종 있는데, 기준 하나를 더 사용하면 90% 이상의 확률로 빈도수를 계산할 수 있다. 집을 투기의 대상으로 생각하느냐, 아니냐... 최소한 자신의 사는 집을 자주 이사다니면서 투기하지 않았던 사람 중에, 신자유주의가 우리나라 망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소득으로 기준을 삼아보면... 좀 미안한 얘기지만, 연봉 4천만원 이하에서 신자유주의를 믿는 사람들이 많고, 비정규직일수록 신자유주의의 세상이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높아진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내가 아는 20대 대학생은 두 집단으로 나뉘는데, 운동하면서 만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그렇지 않은 대학생은 100% 신자유주의의 신봉자였다. 친척, 친구 후배, 친구 동생, 선배 아들, 이렇게 만난 대학생은 100% 신자유주의자 광신자였다.

교회를 통해서 알게 된 집단도 두 집단으로 나뉘는데, 기독교환경운동, 뭐 이런 범주에 들어가서 강연 중에 만나거나 혹은 그런 일 중간에 만난 사람들 중에는 신자유주의와 싸우는 것이 주님이 주신 소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내 둘째 동생과 같이 강남의 대형교회와 그 근처에서 알게 된 사람들은 약 70~80% 정도의 비율로 신자유주의를 강조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다단계판매에 가입된 사람은, 내가 아는 한은... 100% 신자유주의의 광신도들이었다.

이건 워낙 샘플이 작아서 일반화시키기는 어렵지만, DMB를 사용하는 사람 혹은 DMB폰을 사용하는 몇 사람은 내가 아는 가장 강력한 신자유주의의 지지자들이었다.

세계적으로... 이 신자유주의가 거의 그 유행의 끝에 도달한 것 같다는 느낌이나 징조를 조금씩 보게 된다. 물론 워낙 작고 예민한 징조라서 일반화시키기는 어렵지만, 2~3년 전부터 외국에서는 그런 신호가 조금씩 생겼다. 우리나라에서는... 물론 아무런 징조도 없지만, 외국이 변하면 우리나라도 따라 변하는 패턴상... 3~4년의 차이를 두고 우리나라에도 그런 변하가 생겨나게 된다.

세상에 어떤 경제학 사조도 영원하지는 않고, 왈라스주의도 밀려났고, 케이즈주의도 밀려났고, 90년대 초반의 강력했던 시카고주의도 밀려났듯이, 신자유주의도 훨씬 약화되고 완화되는 시기가 올 것이다.

그 이후의 균형이 그 이전의 균형보다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노무현 시대에 절정에 달했던 신자유주의, 그것이 영원히 우리나라에서 힘을 쓰고, 세상이 언제나 그런 사조를 중심으로 움직이게 되지는 않는다.

3~4년 지나면 신자유주의는 해묵은 주장으로 한 물 가고, 한미 FTA만이 그 시절의 상처처럼 남아있는 그런 시대가 오게 될까?

온다는 것과 와야 한다는 것과 오게 한다는 것은 조금은 다르다. 물론 작동 메카니즘의 기저의 기저까지 들어가면 그렇게 분명하게 구분되지는 않지만... 내 생각에는 신자유주의가 아닌 시대가 올 것 같다.

by 비나리 | 2007/08/03 16:03 | 공부 이야기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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